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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23. 2020

「30살 앞 30날」D-10

21. 10

30살 앞 30날



21. 10, 자문자답



이제 만 10개월 차에 접어드는 백수 생활을 기념하며, 스스로에게 10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대답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Q1. 백수란 무엇입니까?



백수. 흰 백 자에 머리 수 자를 쓰는 단어로,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관직을 얻지 못한 자를 칭하는 것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손 수 자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그건 그냥 빈털터리를 말하는 것에 가깝다고 나무위키에 적혀있네요.


유래야 어찌 되었든, 고정된 직업이 없이 노는 사람을 백수라고 사회적으로 칭하고는 하죠. 하지만 그건 너무 가혹합니다. 취업준비생이나 일시적인 실직자, 프리랜서들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 거예요. 또, 그렇다고 건달이나 한량, 잉여인간 같은 단어처럼 부정적이고 싶진 않고. 백수는 조금 달라요.


일단, 머리가 하얗게 새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흰머리가 하나둘씩 난다는 것은,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고, 그건 노는 건 아니라는 말이거든요. 적어도 미래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다는 증거죠.

여기에, 경제적인 수입이 없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찾는 중이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부터 찾고 있는 사람인 거죠.


그냥 제가 딱 백수예요. 요즘 흰머리가 많이 나네요.



Q2. 백수라서 행복한가요?



전혀요.


백수는 수명이 정해져 있거든요. 아르바이트든 뭐든 해서 수명을 조금씩 늘릴 수는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기에도 바쁘잖아요. 나는 더 이상 백수가 아니라는 것을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겠죠.



Q3. 백수로 언제까지 지낼 생각인가요?



일단 내년 상반기까지요. 그때까진 어떻게든 수명을 늘리면서 백수로 살아야 해요. 자칫 조급하게 판단했다가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백수가 될 거예요. 그러면 정말 돌아갈 길이 없어질지도 몰라요.


제 인생에 있어서 지금, 그리고 내년 상반기까지가 유일한 백수 기간이기를 바랍니다.



Q4. 10년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10년 전 오늘이면 신입생 때였네요. 전형적인 건달이었죠. 밴드 동아리 하면서 음악 하기 좋아하고,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미래에 대한 생각도 할 나이가 아니었으니까요.


자취를 시작한 지 고작 3달 남짓된 초보 자취생이었기도 하네요. 친구와 함께 4평 남짓한 방에서 둘이 살았었는데. 자취 메이트들은 원래 평생 같이 살거나 연락을 끊거나 둘 중 하나거든요. 그 친구와 연락 주고받은 지가 몇 년이나 지났더라..?



Q5. 10년 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으면 하나요?



10년 후 오늘이면 40살을 코 앞에 둔 상황이겠네요. 30살도 이렇게 무거운데 40살은 얼마나 대단할까요. 주변에 40살이 되는 분들이 항상 30살 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거든요. 그때가 한창이니까 늦지 않게 열심히 놀아야 한다고. 백수 더 하라는 말일까요.


당장 1년, 1달 뒤도 모르겠는데 어찌 10년 뒤를 예측하나요. 다만, 그때도 지금의 추억을 생각하며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때면 쓴다는 표현이 더는 쓰이지 않는 시대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지만.



Q6. 지난 10개월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최고의 달은 언제였죠?



하아. 잔혹한 질문인데요.


그나마 지난달이 좋았던 것 같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토크도 해보고, 매거진 다음호 준비를 위해 원주에 취재도 나가고, 12월에 여러 행사를 준비하면서 의지를 다졌던 시기거든요.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지만.



Q7. 그렇다면, 가장 최악의 달은요?



5월이요. 백수가 되고 몇 달 동안은 모두 최악이긴 했는데, 5월은 정말 대단했어요. 감정의 T 익스프레스가 있다면, 세 번 연속으로 타는 기분?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가 된 기분.


그래도 5월이 끝나갈 때쯤 엄마 생신이 있었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어요. 아들 노릇을 제대로 하진 못했지만요.



Q8. 공교롭게도 자취 10년차 이기도 한데, 소감이 어떤가요?



집이 그리워요. 집밥도 그립고, 집의 온기도 그립고, 발 뻗어도 남을 공간도 그립고, 심지어 눈칫밥도 조금 그립네요. 어쨌든 밥이잖아요.


자취를 한다고 반드시 자립에 성공한 건 아니잖아요. 특히 서울에서는 자립보다는 근근이 버티고 있기에 가까운 느낌이죠. 10년 동안 4개의 자취방을 거치면서 쌓인 노하우나 팁들은 많겠지만, 그 노하우나 팁들이 필요 없는 삶을 빨리 이루고 싶어요.



Q9. 자취를 꿈꾸는 분들께 한 마디를 남긴다면?



ASAP. 꿈만 꾸지 말고 당장 실천해보세요.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게 그나마 부담이 덜하거든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개인적으로는 요리를 꼭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10분이면 먹을 끼니를 위해 1시간 동안 요리를 하고 있는, 버리고 버려도 짐이 점점 불어나는, 그리고 숨만 쉬어도 집안일이 쌓이는 그런 신기한 경험들을 꼭 나누고 싶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로또 1등 당첨되고 싶어요. 그래도 여전히 백수겠지만요.



10문 10답, 끝.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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