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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24. 2020

「30살 앞 30날」D-9

22. 9

30살 앞 30날



22. 9, 아홉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인간이 되지 못한 구미호.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직전의 순간, 아홉수.



0.99999… 는 수학적으로 1이라고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논리적은 것은 아니다.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때가 가장 괴롭고 힘든 법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사실 아홉수라는 것은 우연에 의한 미신이다. 사주팔자에서도 10년 단위의 대운은 개인의 사주에 따라 다른 시기로 존재한다. 나이의 앞 자릿수가 바뀌는 것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다 보니, 그 직전에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자연스레 더 크게 받아들여지면서 생긴 인식이 아닐까. 그만큼 10대와 20대, 20대와 30대, 30대와 40대의 삶은 시대를 따지지 않고 항상 모두에게 천지개벽과 같았던 것이다.



19번째 삶에서 받았던 고통은 지난 글(11, TEAM ALONE)에 자세하게 쓰여있다. 또다시 찾아온 아홉수, 29번째 삶의 고통은 전례 없는 수준이라, 나는 아홉수에 대한 미신을 숭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죽하면 이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30일 연속으로 글을 쓰며 잘 마무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을까. 정화수를 떠놓고 108배를 올리는 전래동화 속 아낙네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



‘뭐라도 해야겠다’ 가 ‘뭘 해도 안된다’ 로 바뀌는 경험을 하다 보면,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냥 제 자리에 멈춰서, 조용히 무릎을 껴안고 앉은 채로,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우연이 만든 기회가 다가오겠지, 구원의 손길이 내려오겠지.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라던데.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아홉수라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의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30번째 삶에서는 또 어떤 핑계를 찾아낼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닳고 무뎌질 뿐.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까지도 없다. 그냥 느리더라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한 걸음씩 내딛는 노력을 해야 한다. 멀리서 보면 멈춰서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멈춰서 있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물살의 흐름이 달라지면 어느샌가 앞으로 훌쩍 나아갈 수도 있으니까. 순풍에 돛 단 듯이.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갈 때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적은 노력에도 큰 성과를 이루다 보면 자연스레 자만에 빠지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게 되는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니까, 거센 바람에 막혀있던 순풍을 타고 날아가던, 중요한 것은 그 배를 움직이는 내 태도인 것이다.



거센 바람에 막혀도 돛을 접지 않고, 닻을 내리지 않고, 노라도 젓는 노력을. 바람을 타고 나아갈 때에도 키에서 손을 놓지 않고, 배의 상태를 점검하고, 주변 물살을 살피려는 태도를.



올해 정말 질리도록 아홉수 탓을 했다. 아직 일주일 정도는 더 탓을 해도 좋다. 더는 생각도 안 날 만큼 훌훌 털어버리게.



이런 그지같은 아홉수 같으니!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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