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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27. 2020

「30살 앞 30날」D-6

25. 6

30살 앞 30날



25. 6, LOTTO



매주 토요일, ‘혹시?’ 라는 헛된 기대를 품게 만드는 그것. 꿈에서 번호 6개를 점지해주실 조상님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바로 그것. 



나는 꽤 자주 로또를 산다.



참 웃긴 생각이지만, 안 될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로또를 산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을 확률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들어봤고, ‘로또는 수학을 못하는 사람에게서 떼는 세금이다’ 라는 말도 들어봤음에도. 찾아보니 1등 당첨 확률이 무려 0.0000122774%란다.



거의 매주 로또를 까먹지 않고 사는 편이지만, 그 액수는 고작해야 5천 원. 가끔 기분이 좋거나 느낌이 있는 날에는 거금 1만 원을 쾌척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아직은 조상님의 덕을 본 적이 없다. 숫자 6개는 생각보다 많아서, 내 생일이나 여러 관련된 번호를 찾아봐도 마음에 꼭 드는 6개 번호를 다 채우는 것이 쉽진 않다. 그래서 차라리 운에 맡기자는 심정으로 매번 모두 자동으로 번호를 선택한다. 아니 이쯤 되면 당첨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로또를 사는 이유는 있다.



매주 자동으로 로또 1장, 5천 원. 아직은 내 삶에 이 정도 여유는 있다는 것을, 아직은 내 삶이 벼랑 끝에 몰려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식적인 행위다.



무작위로 정해진 6개 번호를 보며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그 번호의 당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말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울컥이며 삼키는 삶. 1-2년 전, 회사에 다니며 격무에 시달릴 때면 어김없이 로또를 사며 이번 주, 다음 주를 위한 의지를 충전했다. 그렇게 어떤 주에는 몇 장씩이나 로또를 사기도 했고, 가끔은 연금복권에도 손을 댔다. 물론 액수는 절대 크지 않게, 매번 5천 원에서 1만 원 정도만.



내가 로또를 사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혹시 모를 일확천금의 행운보다는 그 기대감과 설렘으로 채워지는 삶의 의지와 여유였다.

지난 자문자답 글의 마지막 대답에서도 말한 것처럼, 로또 1등이 되어도 나는 아마 계속 건달이나 한량이 아닌, 백수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다르다. 그때보다는 삶의 의지도, 시간적 여유도 충만한 듯하니까.

지금은 내 삶의 여유를 확인하는 의미가 더욱 크다.



매주 로또 1장을 살 돈도 없는 삶이라면 꽤 불행하고 비참할 것 같다. 물론 그 5천 원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거나, 생활에 필요한 다른 물건을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어떤 것에 그 5천 원을 쓰더라도 ‘여유’라는 정신적인 만족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가끔 정말 정신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내면, 토요일이 지나고 나서야 로또를 못 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는 기분이 오히려 좋다. 분명 그만큼 열심히, 의미 있게 일주일을 보냈다는 것이니까. 굳이 로또를 사서 억지로 일주일을 버틸 힘을 채우거나 불안함을 달래려 하지 않아도, 아주 근사하게 멀쩡한 일주일이었다는 것이니까.



아쉽게도, 이번 주에는 로또를 샀다. 물론 당연히 낙첨이다.



그래도, 다음 주에도, 또 로또를 사야지.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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