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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29. 2020

「30살 앞 30날」D-4

27. 4

30살 앞 30날



27. 4, 목록을 만들다



6월 30일, 그리고 12월 14일. 6개월 간격으로 총 4번의 검사를 받았다.



Inventory. 여러 종류의 심리 검사들의 명칭 끝 I는 모두 이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재고조사, 재고목록, 목록을 만들다 등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 Inventory. 

2020년의 나는 드디어 그동안 들춰보려 한 적이 없었던, 먼지가 잔뜩 쌓인 마음속 창고를 헤집어 그동안 쌓인 것들의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먼저 6월 30일에 받은 검사들은 현재 나의 심리 상태나 정신적인 건강함을 알아보기 위한, 매년 받는 건강검진과 흡사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TCI 기질검사는 크게 기질과 성격으로 검사 항목을 구분한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환경의 영향을 받는 성격을 파악하여,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한지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검사이다.

MMPI 검사는 인성검사의 한 종류로, 심리적 상태와 개인적 성향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두 가지 검사 결과 중 특기할만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1) 극도로 높은 위험회피 성향


특히, 예기불안(미래의 어떤 상황을 떠올릴 때 느끼는 불안함의 정도)이 상위 0.01% 수준으로, 원체 비관적이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내 성향과 일치했다.


2) 낮은 자율성


전반적으로 책임감이 낮고, 목적의식이 부족하고, 스스로를 무능하다 느끼며, 자기 자신에 대해 무지한 상태.


3) 우울증을 비롯한 불안한 심리 상태


4) 평범한 남성성에 비해 강한 여성성


일반적인 남성에 비해 섬세하다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한몫을 하는 항목이었다.



검사 이후 한동안 검사 결과로 인해 더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정상범위에서 벗어난 수치를 확인하고 그 해석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역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자책에 빠졌고, 그것이 심지어는 기질에 대한 것이어서 고칠 수도 없다는 것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6개월이 지나고, 지난 12월 14일에 받은 검사들은 흥미나 성향에 대한 것으로, 앞으로 어떤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되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트롱에 의해 만들어진 STRONG 직업흥미검사는 6가지 척도로 직업을 분류하여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이 어떤 것인지를 분석하는 검사이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MBTI는 4가지 척도를 2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총 16가지로 개인의 성향을 분석한다. 웹에서 간편하게 진단할 수도 있지만, 공인된 기관이나 전문가를 통해 정식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두 가지 검사를 통해 정리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탐구 및 예술 분야에 대한 높은 선호도


2) 종교 및 사회 서비스 분야에 대한 낮은 선호도


3) 홀로 연구를 수행하거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함


팀 활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홀로 무언가를 깊게 파고들며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것을 선호해왔다. 논문 작성, 발표자료 제작, 디자인 작업 등.


4) INTJ 유형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던 유형이지만, 올해에는 이런저런 일들의 영향으로 INFP가 자주 나왔던 탓에 의외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통적으로는, 내적 신념이 강하고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으며 목적 달성의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 있다.



이전 두 가지 검사를 진행할 때와는 다른, 조금 더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진행된 검사라서 그런지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지표가 생겼다는 것에 흥미를 느낄 뿐이었다. 

여전히 내 미래에 대한 뚜렷한 꿈이나 목표가 없는 상태지만, 그것을 그릴 수 있는 밑그림을 아주 느리게 그리고 있는 느낌이다.



4가지 검사를 통해 얻은 것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나에 대한 정보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심리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는, 불안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런 검사들을 받아보기를 적극 권장하고 싶다. 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헷갈리는 느낌을 공감할 수 있다면, 더욱더.



어쩌면,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외부의 조언이나 타인의 평가를 부정하던 6개월 전의 나 자신이, 이제는 그것들을 적어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으니.



그리고, 그 결과들을 토대로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솔직한 목록을 만들었으니.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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