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3
28. 3, 2, 1.
출발, 시작, 또는 Go. 내 심장소리가 가장 가까이 들리는 그 설레고 두려운 순간.
2021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이 그렇다.
어릴 적, 학교 운동회에 달리기 주자로 참여했을 때.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도, 그 출발선 앞에 자리를 잡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괜히 팔다리를 쭉쭉 늘려보기도 하고, 크게 숨을 마셨다가 내쉬어보고, 행여나 신발끈이 풀릴까 다시 끈을 조여 보기도 했다.
셋, 둘, 하나. 카운트를 세는 목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느려지는 시간. 혹여나 나 혼자 민망하게 먼저 출발하면 어쩌나, 발을 헛디뎌 넘어지진 않을까, 느리게 출발해서 뒤쳐질 수는 없는데,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을까.
막상 출발 신호를 듣고 본능적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 다시 시간의 흐름은 되돌아오고 공기는 제 흐름을 되찾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경기는 끝이 난다. 3초 동안의 수많은 걱정이 민망할 정도로. 숨 가쁘게 달려온 그 길을 되돌아볼 새도 없이 다음 경기는 시작된다.
출발을 알리는 경쾌한 총성
정적을 삼키고 열광하는 함성
떨리는 호흡은 이 전부를 집어삼킬
강렬한 욕망 i am the fastest gun
...
순간 거짓말처럼 시간은 멈추고
펼쳐지는 저 지평선
ready and get set go!
indigo skies up high!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순간
...
지금 여기서 숨이 멎어도 후회 따윈 없어
불타는 태양 i'm a new black star
<ready, get set, go!>, 페퍼톤스
30일 글쓰기의 마지막 3일. 27일간의 울고 웃던 글쓰기를 뒤로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왠지 이 3일은 다른 날보다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하는 마음. 조금은 더 진지하게, 무겁게, 소중하게 남은 주제를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 3인의 팟캐스터
지난 27일, 브런치 「앞뒤로 30날」 매거진을 계기로 팟캐스트 녹음을 진행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팟캐스트 <xyzorba> 에 「32살 앞 30날」을 연재 중인 보라님과 함께 초대를 받아, 2021년에 대한 ‘기대’를 주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30일 글쓰기로도 나를 되돌아보고 있었지만, 팟캐스트 녹음을 위한 사전 질문의 답변을 작성하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성찰을 이룰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하지만 그만큼 인상 깊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살짝 공개한다.
Q. 지난 3년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잘한 일과 가장 아쉬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A. 지난 3년이면, 공교롭게도 학생 신분을 졸업한 직후, 직장인으로 살았던 시기를 모두 포함하고 있네요. 잘한 일도 아쉬웠던 일도 모두 회사와 관련된 일만 떠오르는 것 같아요.
아쉬웠던 일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가끔씩 너무 섣부른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후회가 들 때가 있어요. 첫 회사에서 정말 운이 좋게 원하던 직무를 맡았어요. 그래서 정말 열과 성을 다 해서 일했죠. 그만큼 야근도 많이 하고 고생도 했지만 배운 것도 정말 많아요.
그런데 1년도 지나지 않아서 팀을 옮겼어요. 원래 30살 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에는 팀을 옮기는 것이 조금 이르기도 했고 기존 팀분들께 죄송한 상황이기도 했거든요. 결국 하던 프로젝트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팀을 옮겼는데, 나중에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할 때에도 저를 기억해주시고 잡아주셨던 분들이라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잘한 일은 그 직장을 결국 나온 선택인 것 같아요. 다음 직장을 결국 이른 시기에 나오게 되고, 백수라는 다소 우울하고 초라한 결과를 맺게 됐지만, 그래도 그건 잘한 일이에요.
아마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제 삶에 대해 지금처럼 진지한 고민을 해볼 기회를 가질 수는 없었을 거예요. 안정적인 직장생활에 파묻혀서 가끔 퇴근 후에 하는 소일거리에 만족하는 삶을 살았겠죠.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니 주변에서 많이 말렸던 것도 이해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팟캐스트에 초대도 받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 에피소드는 12월의 마지막 날, 31일 오전에 업로드될 예정이다.
이 팟캐스트의 호스트와, 다른 팟캐스트의 호스트, 그리고 팟캐스트 게스트인 나의 만남.
나도 언젠간 팟캐스터가 될 수 있을까.
· 3각 인간관계
유독 나는 친구들을 만나면 나를 포함해 3명이 모이는 경우가 많다.
3명이 주는 구조적인 특징이 무엇일까. 의견이 2대 1로 나뉘어서 싸우거나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지금껏 회사에서 겪어온,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던 3인 구조는 모두 그런 특징 때문에 대부분 나쁜 결과를 낳았는데. 의견을 세울 필요가 없는, 친구 관계의 3인이라면 조금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자연스레 그 3각 관계들을 떠올려보면 떠오르는 공통점이 있다. 나를 제외한 다른 2인이 훨씬 가까운 관계라는 것.
같은 소속일지라도 사적인 친분의 정도가 다르다거나, 나 혼자 다른 소속이라거나, 원래 친분이 있던 사이에 내가 끼어들어간 형국이라던가. 불편한 진실을 이제야 깨달은 눈치 없는 인간인 것인지, 아니면 또 괜한 자기 방어적인 태도로 벽을 쌓고 있는 것인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년에도 그 3각 관계들은 여전할 것이다.
· 3호까지는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내년을 바라보는 나의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이 목표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다음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산 넘어 산이다.
페이보릿 매거진 편집장님들과의 대화에서 시작된 목표였다. 다른 편집장님들과의 대화 중, 그런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3호까지는 나와야 매거진으로서 정체성이 생기는 것 같다고.
꾸준함, 혹은 지속성은 지금까지의 내가 자연스레 포기한 가치였다. 30살 전까지 뭐든 닥치는 대로 해보겠다는 마음가짐과는 정반대의 것이었으니까. 길어야 6개월짜리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나에게는 굉장한 도전인 것이다. 물론 마음은 조급하지만, 그래도 3호까지는 견뎌야 한다.
그래야 내 매거진도, 나도 정체성이 생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곧, 정말 곧 있으면 출발 신호가 들려올 것이다. 그 서막을 알리는 첫 카운트가 이제 시작된다.
셋!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