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 do rough Feb 01. 2021

짜릿해, 새로워.

Leeview #2, <14 days of meeting>, NOWWE

이번 리뷰는 커넥티드 북스토어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커넥티드 북스토어 서평단의 일원으로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활동할 계획이니 더 많은 리뷰 기대해주세요.


*을지로 독립서점 커넥티드 북스토어 살펴보기 https://www.instagram.com/kenektidxbookstore/




우리가 책을 만나는 순간의 모습은 아주 다양하다.


책을 처음 만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우연히 들린 작은 책방 구석에서 빛나고 있었던 적도 있었을 테고, 일이나 공부의 목적으로 필요에 의해 격식을 갖추고 만나기도 하며,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의 형태로 예상치 못하게 첫 만남을 갖기도 한다.

책을 펼치는 상황도 다양하다. 퇴근길 지하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펼쳐보기도 하고, 집에서 홀로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며 펼치기도 한다. 시간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잠깐 열었다 닫기도 하고,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어도 좋을 만큼의 여유를 함께하기도 한다. 또, 한 번에 억지로라도 끝까지 읽고 마는 책도 있지만, 여러 번 틈틈이 자주 펼쳐보게 되는 책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한다.


세상의 수많은 책을 굳이 둘로 나눠야 한다면, 글의 유무가 분명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글이 주가 되는 책은 자연스레 읽게 되고, 그렇지 않은 책은 자연스레 보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그 글을 따라가게 되고, 책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새로운 글을 떠올리게 한다.


이전에는 잘 몰랐던, 책을 보는 것의 즐거움이 이런 것인가 싶다. 책의 페이지마다 나만의 생각을 매 순간 새롭게 새길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적당히 즐길 수 있다. 생각을 억지로 하지 않고 눈으로 보기만 해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14 days of meeting> 이 그런 책이다. 항상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있지만 내 시야를 넓어지게 만드는 책. 

자주 펼쳐보고 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새로움을 간직한 책.


14 days of meeting. NOWWE. 44p. 16,000원.


<14 days of meeting>.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시간과 장소의 변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만남을 다양하게 그린 그림책이다. 사실, 이마저도 책의 제목과 수록된 그림들에서 유추한 것일 뿐, 책을 보는 것에는 전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그저 보이는 그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함께하기를 권장하고 싶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더 자주, 깊게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볼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내는 재미, 시간의 흐름을 묘사하는 독특한 방식을 이해하는 재미, 이야기의 흐름을 내 상상력으로 마음껏 재구성해보는 재미.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의 흐름처럼, 시간과 장소의 변화 속에서 이 책과 나의 만남도 다양하게 그려졌다.



Scene #1.

Date 2020/12/18.

Location 북적이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안에서.

Background music <Berlin>, 백예린.


을지로 세운상가 커넥티드 북스토어에서 책을 받은 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빈자리를 잽싸게 차지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조심스럽게 책의 포장지를 뜯었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시끄럽게 달리는 지하철 속에서 아주 천천히 조용하게 책을 바라보았다.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낯설음으로 시작한 만남은, 자연스레 나와 세상을 격리시키고 있었다. 이 책을 보는 나는 낯익은 일상 속에 한 점과 같은 존재였지만, 이 책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낯선 것들이었다. 다시 한번 제목을 바라보았다. 14 days of meeting.


2017년 12월, 그러니까 딱 3년 전에 유럽으로 떠난 여행이 정확히 14일짜리 여행이었는데. 베를린과 파리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에서 보낸 2주 동안에는 눈에 보이는, 피부로 느끼는 모든 것이 낯선 것이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 낯선 풍경, 낯선 음식, 낯선 언어, 낯선 공기. 


그대로 잊혀질뻔한 그때의 추억이 이 책의 페이지 위에서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Scene #2.

Date 2020/12/22.

Location 내 방구석에 놓인 포근한 빈백에 파묻혀.

Background music <Cilla>, SURL.


일부러 불을 켜지 않아 낮부터 어둑어둑한 내 방에서, 나는 한쪽 구석에 놓인 포근한 빈백에 몸을 파묻고 이 책을 다시 바라보았다. 점과 선과 면의 요소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하며.


‘불친절한 책이다’ 라고 생각했다. 


만남의 대상에 대한 힌트는 전혀 없었다. 단 한 글자도 없이, 그림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저 대충 짐작을 할 뿐이었다. 누군가가 누군가와 어딘가에서 만났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시간이 흘렀고,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구나. 그렇구나.


<Cilla>를 들으며 그 답답함을 조금은 해소하는 기분을 느꼈다. 좋아하는 노래지만, Cilla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궁금한 적이 없었다.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에 대해 노래하는 분위기와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했으니.



Scene #3.

Date 2020/12/25.

Location 작업대 위에 노트북을 놓고 그 앞에 앉아.

Background music <Sherpa>, 재달.


‘이 차가운 페이지 너머로 펼쳐질 / 다음 장을 난 봐야겠어.’ 이 글을 쓰기 전, 다시 한번 책을 바라보며 문득 <Sherpa>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들이지만, 그리고 있는 분위기는 왠지 비슷해 보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그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상상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의지 같은 무거운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 등장인물들의 다음이 궁금했고, 그다음에 대해 내 상상력은 어떤 답을 내려줄지도 궁금했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 다음을, 내일을, 내년을 기약하게 만드는 것인가 보다. 그리 대단하진 않더라도,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더라도, 다음 페이지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내일을 살아갈 의지는 충만해진다. 그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열려있는 결말에 괜히 감사하다.



나는 평소 책을 읽을 때 자연스레 어울리는 노래를 떠올리거나 듣고는 한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어김없이 노래를 찾아서 들으며 책을 바라보았다. 이 노래들이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좋은 단서가 되었으면.



덧붙여, 누군가 이 책을 어떤 계기로든 만나서 보게 된다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었는지, 어떤 그림이 가장 좋았는지, 어떤 음악을 들으며 어떤 분위기 속에서 어떤 자세로 이 책을 보았는지. 당신은 이 책을 재밌게 보았는지.




그러니까 짧게 말하자면,

이 책은 늘 짜릿하고, 새로워.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까나.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찬빈네집이 살아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