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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Mar 21. 2021

찬빈네집이 살아있다.

Leeview #3,<찬빈네집vol.1>, 박찬빈

찬빈네집. 

‘찬빈이’ 개인도, 찬빈님의 가족도 아닌 그의 집을 위해 지어진 제목이 사뭇 이목을 끌었다. 위트 있는 부제와 매거진스러운 구성, 멋스러운 내지 디자인도 구매 충동을 일으키는 데 한몫을 했지만.


*'찬빈이'는 찬빈이네라는 단어에 포함된 저자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쓴 표현이며, 낮춰 부르려는 의도가 아님을 밝힙니다.


<찬빈네집 vol.1 촌스러운 집의 낭만>은 저자의 다사다난했던 거주 및 이사 경험을 시작으로 예스럽고 낡았지만 촌스러워 낭만스러운 그의 찬빈네집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찬빈네집의 특유의 분위기는 책 앞뒤의 표지에서부터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 촌스러운 집, 하지만 그래서 낭만적인 집.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

<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김정운


이 책의 프롤로그, MY HOUSE BRANDING에 인용된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장이었다. 책의 시작부터 저자와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하다니, 왠지 느낌이 좋았다.


[1]

찬빈네집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내 지난 10년도 반추해보게 된다. 나도 어느새 10년째 서울에서 혼자 살아남는 중이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취생활을 시작하였고, 지금 네 번째 자취방에서 살아남고 있다. 기간에 비해서는 이사를 많이 하지 않은 편인데, 군 제대 직후에 머물렀던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무려 4년을 지냈기 때문이다. 말년 휴가 내내 학교 근처 자취방을 이 잡듯이 싹싹 뒤졌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불편한 것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름 만족스럽게 지냈던 것 같다. 1층 화단 때문에 가끔 바퀴벌레가 기어 나와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거나, 외부로 돌출된 형태의 통창이 달린 화장실 탓에 겨울에는 밖에서 샤워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취업을 하고, 편한 출퇴근을 위해 지금의 자취방으로 이사를 했을 때가 2018년 9월 즈음. 공교롭게도 이때를 전후로 집에 대한 나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 계기는 나 자신을 브랜딩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에피소드는 차치하고,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를 브랜딩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이 더 명확해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을 때, 가장 먼저 변화를 준 부분이 바로 집이었다. 그 전 자취방은 베란다까지 합하면 거의 10평이나 되는, 널찍하고 여유로운 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기본 옵션인 책상, 침대, 옷장, 냉장고 등을 제외한 어떠한 가구나 소품도 들이지 않았다. 집은 그저 먹고, 자고, 숨 쉬는 공간일 뿐이었고, 그 공간은 말 그대로 무색무취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나.


새로운 자취방으로 이사를 할 때에는 시작부터 달랐다. 애써 멀쩡한 벽지를 뜯어내고 포인트 컬러를 넣고, 미리 사이즈를 측정해 일러스트레이터로 도면을 그려 가구를 이리저리 배치해봤다. 기본 옵션이 달랑 의자와 냉장고뿐인 것이 오히려 좋았다. 침대부터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가구들을 배치해보며 내 집을 내가 디자인했다. 평소 목재보다 철재를 좋아했기에 모든 가구를 철재로 맞추고, 블랙을 기본으로 다양한 포인트 컬러를 살리는 소품들을 모으고, 손님들이 올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의자와 식기를 구비했다. 그만큼 돈을 많이 들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생에 처음으로 내 공간에 내 취향을 덧입히기 시작했다. 


‘내 집’은 브랜딩에 있어 아주 훌륭한 연습장이 되어준다. 바깥에서 일로 브랜딩을 경험하기에는 기회도 부족하고 성과에 대한 부담도 크다. 옷으로 취향을 드러내기에는 주변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인 ‘내 집’은 내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는 무한한 기회를 준다.


이 책의 16-17p에 기록된, 2018FW부터 2020SS까지의 찬빈네집 변천사도 그렇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닐지라도, 조금씩 새것 냄새는 사라지고 취향이 진해진다.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오늘의 집’에 보이는 베스트 상품만 사들여도 꽤나 멋스러운 집으로 꾸밀 수 있다. 그렇게 브랜딩을 시작하는 것이다. 점차 그 위에 각자의 취향을 덧칠하면서 나만의 집, 나만의 브랜딩을 완성하는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여도 끝은 창대하리라! 


[2]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린ㄷㅏ..’ 는 싸이월드 감수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올해 들어 나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자는 새로운 다짐을 했다. 때가 잔뜩 낀 어둑하고 칙칙한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에만 머물던 시선을 하늘을 향해 올리면,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해소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그런 면에서 굳이 집을 나설 필요도 없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찬빈네집의 촌스러움이 심히 부럽다.


하늘을 본다는 것에서 중요한 점은 바라보는 대상인 하늘이 아니라 고개를 올려 바라본다는 행위이다. 시선이 낮아질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가까운 것에 초점을 두게 된다. 반대로 시선이 높아질수록 시야는 자연스레 넓어진다. 동시에, 건물이나 산의 경계 또는 하늘과 같은 멀리 있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층고가 높은 환경에서 창의력과 사고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처럼, 시야를 넓히고 멀리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여러모로 좋은 효과를 지닌다. 먼저, 눈 건강에 아주 좋다. 우리의 눈에는 모양체근이라는 초점을 조절하는 근육이 있는데, 초점을 한 곳에만(같은 거리에만) 지나치게 오래 두게 되면 근육이 퇴화되어 초점을 맞추는 기능이 약화된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초점을 다양한 거리로 맞추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생각을 환기할 수 있다. 매분 매초 생각이 끊이지 않는 나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흐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의 속도와는 반대로 천천히 흐르는 구름과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의 줄기를 보면서, 잠깐의 멍때림으로 지쳐가는 우리의 뇌에 휴식을 주는 것이다.


잠시 다른 길로 벗어났던 것 같지만, 결국 하늘 접근성이 좋은 찬빈네집이 부럽다는 이야기다. 아침에 잠이 깨서 하늘을 보고 싶을 때면 침대 옆 커튼을 젖히고 이중 창문을 열어 그 틈에 머리를 디밀고 괴이한 각도로 고개를 꺾어야만 하는 나이기에 더더욱.


[3]

다양한 성격의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찬빈네집. 그래서 시즌 2가 정말 기대된다.


피드백을 수용하고 그에 맞게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재밌는 경험이 된다. 당연히 집의 주인인 나의 피드백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을 이용해본 다양한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왠지 업무의 연장처럼 느껴지는 말이지만.


찬빈네집처럼, 나도 이번 자취방에서 손님맞이를 할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여분의 의자와 식기를 구비한다고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6평 남짓한, 주거와 생활이 혼재될 수밖에 없는 작은 원룸에서 나와 손님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내 프라이버시도 지키면서 손님들에게 편안한 움직임을 보장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니.


내 자취방 부엌 옆에 놓인 붙박이 테이블이 그 모든 고뇌의 중심에 있었다. 움직이지도, 접히지도 않아서 공간은 양껏 차지하면서, 네 명 이상이 앉기에는 비좁은 계륵과 같은 존재. 어쩔 수 없이 그 테이블을 중심으로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가상의 거실과 같은 그 테이블 주변에 모든 여유공간을 배분한 탓에, 옷장과 선반, 침대 모두 좁고 불편한 동선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손님들도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 테이블이 너무 좁아서 다닥다닥 붙어 앉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3월, 대대적으로 모든 가구의 배치를 바꾸기로 했다. 가장 먼저, 테이블을 포기했다. 테이블을 가전제품과 잡동사니를 놓는 선반으로 용도를 바꾸니 차례로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테이블 주변과 부엌에 집중되었던 여유 공간을 없앴더니 침대의 방향도 바꿀 수 있었고, 추가 작업대를 설치할 공간도 마련되었다. 그럼 손님맞이는? 바닥에 생긴 여유공간에 카펫을 깔고 필요할 때만 접이식 테이블을 설치하여 해결했다. 

그 결과, 테이블에서 손님을 맞을 때보다 훨씬 여유롭고 편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나도 손님도 만족스러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찬빈네집 시즌 2에서 작은 방을 침실로, 큰 방을 거실로 바꾸는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모듈식 가구로 만든 작업대. 가장 좋아하는 뷰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 것은 모듈식 가구였다. 모듈식 가구란 뼈대를 포함한 각각의 파츠들을 직접 조립하고 배치할 수 있는 형태의 가구로, 1인 가구나 소형 주택의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가구이다. 소재와 뼈대의 사이즈, 파츠의 종류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그중에서도 나는 레어로우(@rareraw_insta)의 시스템 모듈 가구를 선호한다. 

모듈 가구의 확장성을 고려하면 계속해서 같은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기에 신중해질 필요가 있는데, 철재라서 내구성이 좋다는 점도 있고 뼈대가 벽부형(벽에 부착하는 형식)이 아니면서 파츠가 다양하다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사실, 디자인이 내 취향이라는게.


찬빈네집에서 직접 목공 작업을 해서 사이드 테이블이나 매거진 스탠드를 만들고, 팔레트를 야외 테이블이나 침대 지지대로 활용하는 것도 나도 언젠가는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다. 적은 비용으로 나만의 가구를 가질 수도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단, 목재 대신 철재로.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제안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합니다."
박찬빈 @dripcopyrider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것. 찬빈네집은 '찬빈이'를 닮아있다. 인싸의 향기가 난다고 할까. 과연 내 방은 어떤 꼴로, 어떤 향기를 품고 있을까.


찬빈네집을 읽는 것이 즐거웠던 이유는, 단순히 예쁜 집을 꾸미는 법이나 좋은 집을 구하는 팁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소 촌스럽고 투박하고 모자랄지라도, 집을 구하고 꾸미는 그 과정이 나의 정체성과 브랜딩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각자 생각해보게 만드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리 거창한 일도 아니다. 책상이나 침대, 욕실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작은 가구나 소품 하나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답게 하라는 건 특별하거나 특이하게 하라는 게 아니다.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그걸 잃지 말라는 뜻이다.”
<기록의 쓸모>, 이승희


네 번째 챕터, VISIT ME의 도입부에 인용된 위 문장처럼, 나답게 살아가자는 것. 바로 그것이 찬빈네집이 품고 있는 메세지가 아닐까.




그러니까 짧게 말하자면, 지금도 찬빈네집은 살아있고, 살고 있다.


언젠가는 찬빈네집에 나도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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