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view #6,처음을위한눈감기-작지만두터운손짓,김윤하-홍소이
이 글은 전시 <처음을 위한 눈감기, 작지만 두터운 손짓>을 관람한 후 작성했습니다. 철저히 관람자로서의 주관적인 관점과 해석을 포함하는 글입니다.
전시 일정: 2021.05.13 ~ 2021.05.23 / 13:30 ~ 19:00
전시 장소: 예술공간 의식주(@the_necessaries,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16길 52-19)
기획 및 글: 박소호
참여 작가: 김윤하(@yoonamuna), 홍소이(@nowwe__)
작은 손짓이 주는 두터운 한 마디와 다시 돌아보기 위한 눈감기를 통해,
우리가 함께 출발했던 최초를 발견하는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주말 오후 거리의 소음을 적당히 가려주던 빗소리는, 관람객은 오직 나뿐인 작고 단정한 화이트 큐브 속의 고요함을 극대화해주었다. 관람 순서를 잘 지키지 않는 습성 탓에, 전시 안내문을 펼쳐보지도 않은 채로 그저 눈이 가는대로 발이 이끄는대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향했다.
알 수 없는 소음과 함께, 갖가지 오브제와 그림이 자유롭게 놓여 있는 작은 방에 발을 디뎠다. 가장 먼저 눈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들을 마주했으나,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나도 모르게 그 눈빛들을 무시했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방 가운데에 놓인 모니터와 그 속에서 재생되는 영상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영상을 통해 시각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모니터와 모니터 뒤편에 놓여 청각적인 단서를 통해 시각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헤드셋(소리)으로 이루어진, 방 속의 작은 방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출처를 알 수 없던 소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앰비언트(Ambient music). 음색과 분위기를 강조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음악 장르(출처: wikipedia)로,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소리로 분위기와 공간감을 만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 가장 익숙한 예시로는 전시장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있다.
모니터 뒤편의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또한 처음에는 포괄적인 의미의 앰비언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모니터의 앞과 뒤라는 의도적인 경계를 통해 그 소리는 앰비언트이면서 동시에 전시의 핵심 요소로 작동하고 있었다. 헤드셋을 착용함으로써 주변의 소음이라는 방해 요소와 모니터의 영상이라는 시각적인 자극에서 분리되는 순간, 모든 신경은 내 귀에 닿는 소리에 집중되고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는 곧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그 소리를 연속된 장면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으로 치환된다.
과연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 장면은 건너편 모니터에서 지금 보여지고 있는 영상과 일치할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기에.
최근, 달리기를 하던 중 아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요 며칠 달리기를 할 때마다 안경 때문에 불편하던 참이었다. 마스크를 쓴 탓에 덜컹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숨이 가빠질수록 렌즈에 김이 서려 시야가 가려졌다. 그렇게 안경에 신경을 쓰다 보니 달리기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홧김에 안경을 벗고 손에 쥔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밤이 다 되어가는 어둑어둑한 길거리가 뿌옇게만 보이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일단 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랬더니만, 내가 달리며 가르는 공기의 흐름과,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의 세기와, 땅을 내딛는 발의 감각이 한 차원 가깝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좋은 페이스로 더 많이 뛴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 우리는 지금까지 오감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던 것일까.
사라지는 관점에서 우리의 감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각을 선택하고 몰입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가진 습관과 관습의 지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바라보기'를 제안하고 있다.
- 전시 안내문, #다시 돌아보기 위한 눈감기 中
「ALL LANGUAGES IN THE WORLD」와 「14 days of meeting」. 개인적으로 이전 작품들을 보면서 느껴왔던,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공통점이 있다. 하나씩 따로 놓고 보면 단순하고 무심한 선으로 이루어진 낱개의 그림이지만, 그 사이에는 다음 장을 기대하게 하는 분명한 서사적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가 오히려 불필요한 개입으로 느껴질 수 있을 만큼.
화이트 큐브 속에서도 가장 하얗게 빛나는 순백의 공간에 손이 놓여있다. 정확히는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손들이 질서정연하게 축적되어 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도 앞에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손 그림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나답지 않게, 놓여진 그대로의 질서를 지키며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손을 읽어 내려간다.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비닐로 포장된 그림들은 각자의 다음에 나타날 이야기를 은근하게 드러내며 그 속으로 나를 유인한다.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이야기. 심지어는 그 질서 또한 이미 무질서한 것일 수도 있는, 도무지 알 수 없을 이야기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내 손짓에 따라 그 큐브 위에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문명이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 갈수록 우리가 처음 손을 사용했던 질감, 온도는 변형되어 간다. 그럼에도 작가가 그려낸 손은 차곡차곡 쌓여 보는 이에게 또 한 번의 손짓을 유도한다.
- 전시 안내문, #최소한의 손짓이 주는 두터운 한 마디 中
전시를 관람한, 혹은 위 동영상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한 당신들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렸는가?
그림을 넘기는 손짓이 차츰 익숙해지며 일정해지려는 찰나, 나는 어떠한 소리를 떠올렸다. 그 소리는 그림을 넘기는 내 손짓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리듬 위로 퍼져나오는 유려한 화음의 연속이었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익숙하지만 이름 모를 교향곡처럼. 무작위한 손동작들의 누적되는 반복은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가 되어 음과 마디와 악장을 채워가고 있었고, 그 순간 나는 상상 속 오케스트라 앞에서 열심히 악보를 넘기며 손을 놀리는 지휘자가 되어있었다. 작은 손짓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서사의 깊이와 풍부함에 놀라움을 느끼며 내 손짓을 반복했다. 비록 악보를 끝까지 넘길 의지가 부족했던 탓에 그 소리는 얼마 못가 그쳤지만.
손은 소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손으로 직접 소리를 내는 것도 물론 가능하지만, 매개체를 통제하는 도구로서 간접적으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때, 손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정교하고 세밀한 도구로서의 가치가.
현악기, 관악기, 심지어 타악기까지도, 멀리서 바라보면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도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미세한 힘의 차이나 손가락의 움직임, 손끝의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그렇게 정교하고 조심스럽게 만들어진 소리는 곧 언어이자 메세지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손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공명(共鳴). 맞울림이라고도 하는,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가하여지는 힘의 진동수가 고유의 진동수에 가까워질 때 일어나는 현상.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느껴진, 각자의 주제에서 시작된 울림이 맞닿으며 더 큰 울림으로 증폭되는 그 느낌. 그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두 작가님의 서로 다른 이야기에서 '익숙함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연상되는 새로운 언어'라는 공통된 교훈을 얻었다. 각자 정적인 개체로 존재하던 손짓들이 모이고 쌓여 만들어진 동적인 흐름에서 어떠한 소리가 연상되었고, 시각적 단서와 분리된 채 특정한 시공간의 상황과 분위기를 담은 소리를 들으면서 어떠한 장면을 그릴 수 있었다.
언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시각(글자)과 청각(음)이다. 한글, 알파벳, 한자 등 기존의 언어체계는 모두 위의 요소를 갖춘, 우리에게 아주 낯익은 것들이다. 하지만,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된 언어인 것은 아니다. 단지 기존과는 조금 다르기에 낯선 것일 뿐.
시각적인 자극을 수용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점자는 촉각을 대신 활용하는 언어이다. 반대로, 청각을 시각으로 대체하여 표현하는 수화도 존재한다.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언어들인 것이다.
언어라는 딱딱한 개념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어째서 낯설기에 특별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연습을 하며 호흡을 맞추었기에 지휘자의 작고 빠른 손짓은 웅장하고 단원들을 거쳐 아름다운 음악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언의 소통에 경외로움을 느끼며 전율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눈빛만 봐도 통한다는 말처럼, 너와 내가 서로의 마음을 읽은 듯이 행동할 때면 자연스레 즐겁고 기쁘다. 더 나아가, 손끝이 닿는 찰나의 순간을 느낄 때나 매력적인 향기가 코 끝을 스칠 때면 어떠한 언어적 표현보다도 강력하고 짜릿한 설렘을 느낄 수 있다.
기존의 감각에 의지할 때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 혹은 기존의 감각을 새롭게 받아들일 때 느껴지는 생소한 것들. 잠들어있던 우리의 상상력을 일깨우는 그 모든 것들은, 어쩌면 너무 낯익어서 지루하고 뻔한 글과 말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언어일지도 모른다.
이 글의 제목처럼, 낯익기에 낯선 것들은 그래서 그만큼 위대하고 소중하다.
전시장 안쪽, 화장실 문 위에서 우연히 발견한 또 하나의 그림. 글자 하나, 말 한마디 오간 적이 없지만 왠지 모를 반가움과 유대감을 느끼는 짜릿한 순간을 그날 나는 또 한 번 겪었다.
기획 및 글 작업을 담당하신 박소호님의 마지막 문장으로 리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이번 기획이 차별과 구분에 관해 질문하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은 손짓이 주는 두터운 한 마디와 다시 돌아보기 위한 눈감기를 통해 우리가 함께 출발했던 최초를 발견하는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 전시 안내문, #효율의 과잉 中
그러니까 짧게 말하자면,
가끔은, 낯익기에 낯선 것들을 마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