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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Jul 27. 2021

인생이라는 게, 참.

Leeview #8,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민주.

'인생이라는 게, 멀어지면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면 또 멀어지고.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없고. 거 참.'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무엇이 있을까.


엄마…를 포함한 가족들과 친척들?
저 멀리 구석에 숨겨진 나만 알고 싶은 곳들?
혹은, 한 해의 첫날에 바라보는 그 해의 마지막 날?


예를 들어, 남산 타워는 언제나 멀지만 가까운 것처럼?




되레 나는, 가까워서 멀게 느껴지는 경우에 속했다. 출퇴근에 걸리는 두 시간이 그리도 아까워 입사 후 9개월 만에 회사 근처로 이사를 결심했고, 실제로 코 앞으로 거처를 옮기는 데 성공했으니까. 걸어서 5분, 뛰면 3분이라는 실로 경이로운 위치에.


그런데 막상 이사를 해놓고는 1년 만에 그렇게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던 퇴사라는 것을 저질러 버렸다. 그 후로 3년째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걷는 날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날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가까워지고 싶었으면서, 막상 가까워지니 또 멀어지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게 최근 3년 사이에 지하철, 버스, 도보라는 대부분의 대중적인 출퇴근 수단을 경험하고, 심지어 그것이 필요 없어지는 상황에도 처해보니, 출퇴근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엄밀히는, 출퇴근 중에 이동수단에 몸을 맡기고 실려가는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아쉽게도 자전거를 못 탄다.


"엄마, 저 아저씨 자전거 못 탄대." "그렇게 놀리면 안 돼요~"


출근 때는 어떻게든 느리게, 퇴근 때는 어떻게든 빠르게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게 되는 모순적인 순간. 하지만 언제나 정직하게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고 도착하고야 마는 그 순간.

 

나의 경우에도 음악은 그 순간 순간들을 훌륭하게 채워주는 수단이었다.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 대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언제나 나를 해방시켜줄 노래들이 가득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비 오는 날 Nell의 노래를 찾아서 듣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작가님의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는 무려 인생의 절반을 Nell의 팬으로 살아온 사람이기에.


음악은, 듣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내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 내가 귀로 듣고 있는 다른 세상으로 전이시킨다. 그곳은 어두침침하고 좁은 방일 수도, 햇살 내리쬐는 울창한 숲일 수도, 수만 명이 나만 우러러보는 공연장일 수도 있다. 적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매일같이 실험하게 하는 출퇴근 지옥은 아니란 말이다.


이 책도 그런 음악들 중 하나다. 출퇴근으로 고생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내가 경험해본 것과 비슷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는 그런 책.


그리 특이하거나 화려하거나 요상하지 않지만, 그리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지는 않지만 흘러가는 풍경의 흐름에 시선을 맡기고 멍하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음악 같은 책. 그런 음악이 플레이리스트 한쪽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많은 에피소드들 중에 가장 오래 펼쳐두었던, 내 시간을 붙잡았던 에피소드는 '산출물'에 대한 것이었다.


산출물. 사전에서는 이를 '일정한 곳에서 생산되어 나오는 물건'이라 정의하고 있다. 반사적으로 어릴 적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산업혁명 어쩌고, 산업화 저쩌고, 공장이 어쩌고, 생산량이 저쩌고.


오래 펼쳐두긴 했지만, 사실 답은 그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결정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적어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나는 쓰인 것보다는 쓰는 것이 되고 싶으니까.


주의: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습니다.


뜬금없지만,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사람의 시야는 중심시와 주변시로 구분되며, 중심시에 비해 주변시는 마치 안개가 낀 듯 초점이 흐리게 보인다. 그런데, 카메라 렌즈를 통해 같은 모습을 바라보면 그런 구분이 없기 때문에 훨씬 넓고 멀리 느껴진다.

그래서,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핸드폰 카메라를 2배 정도 당기면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한 거리감이 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쩌면 항상 훨씬 멀리 있는 것을 그보다 가깝게 느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한참 멀리 있는데도. 뭐 예를 들면 죽음이라던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던지, 내일 아침 출근하는 순간이라던지, 과제 제출까지 남은 시간이라던지.

그러니, 조금은 여유를 가져보자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버스의 이동거리에 비례하게 작가님의 당당함과 솔직함과 깨달음이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출퇴근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지혜인지, 다독으로 인한 성장인지, 아니면 그냥 나이가 먹어감에 따른 것인지.


혹은 그냥, 소주병(또는 팩)이 늘어감에 따른 것일 지도!




그러니까 짧게 말하자면,

인생이라는 거, 조금은 즐기자구. 즐겨야 즐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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