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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Jul 31. 2021

-21,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feat. Buzz

지난 주제(-22, 死)에 이어서,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당장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라!’


그래도 이건 너무 가혹하다.
지금부터 정확히 24시간 뒤에 내가 죽는다면, 세상이 모두 멈춘 동안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 1/3은 없어지는 셈이고, 열심히 돌아다니면 그만큼 쉴 시간도 필요하니 1/3이 또 사라지니까, 진짜 내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남고 남은 나머지 1/3, 고작 8시간뿐일 테니.


그래서 내 마음대로 조금은 관대해져 보기로 했다.
3주, 21일, 정확히 504시간 뒤에 난, 죽는다.




가장 먼저,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제 더는 쓰임새를 찾지 않아도 된다고, 당신도 당신의 길을 떠나라고. 나에게는 곧 쓰임새가 필요가 없어질 테니, 그동안 고생했고 고마웠다고. 어안이 벙벙해졌을 그를 한 번 꼬옥 안아주고 집을 나선다.


다음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탈탈 털어야 한다.
은행이 열자마자 뛰어들어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인출해야 한다. 언제 당첨될지 모를 청약통장이나 코흘리개 시절 나도 모르게 만든 통장에 남아있던 단 1원까지도 박박 긁어내어.


그렇게 모인 돈을 들고, 명품 패션의 메카 압구정 사거리로 떠나 익히 아는 어느 편집샵에 들어선다.
그리고는 인생의 로망 중 하나였던 ‘여기부터 여기까지 싹 다 주세요!’ 를 실천한다. 잔고가 조금 모자랄 수도 있지만. 아니, 조금 많이.


어쨌든 입을 옷만 골라 입고 나머지는, 직원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환불을 하고 그 돈을 챙겨 서울역으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빨리 탑승할 수 있는 기차를 타고 무작정 떠난다. 아침부터 이리저리 바쁘게 다녔으니, 잠시 눈을 붙인다. 늘어지게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면, 바로 다음 역에 내린다. 그곳이 어디일지는 나도 전혀 알 수 없다. 기왕이면 가본 적도 없는 아주 작은 도시였으면.



어디든 도착하면, 그곳이 첫 번째 여행지다. 나를 찾아 떠나는 마지막 여행의 최초의 여행지.
이왕이면, 그 동네에서 가장 풍경이 좋은 숙소에 일주일 동안 머문다. 되도록이면 바닷가 근처의 숙소로. 그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괜스레 행복해지더라.


마지막 세 주의 첫 주는, 남은 두 주를 위한 재충전과 사색의 시간이 될 것이다.
남은 두 주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한 주 동안, 무려 1/3의 기간 동안이나, 계획을 하리라며 계획하고 있는 지금 내 꼴이 조금 사납긴 하다. 정말 그럴 여유가 있을는지. 여튼,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을 것이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춤도 추면서. 그렇게 첫 주에는 그간 내 몸에 쌓인 것들을 모두 비워낼 것이다.


다음 한 주는 제대로 즐길 시간이다.
마침 여름이니 동해로 떠난다. 저번 여름에도 들렀던 게스트 하우스에 일주일 동안 묵으며 미친 사람처럼 먹고 놀고 즐길 것이다. 더는 아쉽지 않도록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테다. 잠은 죽어서도 많이 잘 수 있으니.


뜨거운 여름 햇볕에 피부가 다 타버리고 익어서 벗겨질 때까지 그늘을 찾지 않을 것이다. 나약함을 자극하는 그 타오르는 고통도 죽어서는 느끼지 못할 것이니,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그렇게 지난 주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나면, 인생 마지막 한 주가 남는다.


마지막 한 주 동안은 무엇을 해야 하나. … 사실, 떠오르는 것은 없다.

상상을 해보려 해도, 그 무게감이 실로 대단해서인지 쉽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


어쩌면, 더는 아쉬울 것이 없다며 매일같이 향을 피우고 명상을 하며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후회와 회한에 몸부림치며 이미 정해져 버린 죽음을 거부하려 애를 쓰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새 어딘가에서 홀로 먼저 죽어버리려나.


어떤 모습이 나다운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미래에 그 순간을 맞이할 나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 한 가지 있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사랑해야만 한다.
꼭, 그랬으면 한다.

    



Far away you’re my sunshine. We were together.

나는 사랑보다 좋은 추억 알게 될 거야

텀블러 한 잔에 널 털어 넘기고

이젠 나를 좀 더 사랑할 거야



Far away you’re my sunshine. We were together.

나는 사랑보다 좋은 추억 알게 될 거야

For my life, find my life. 찾아 누릴 천국에

지지 않을 너를 안게 될 거야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中, Buzz, 2005.




     『앞뒤로 30날』은


삶의 크고 작은 분기점의 앞뒤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마음을 다 잡는 솔직한 고백이자 성찰의 기록입니다. 매일 남은 혹은 지난 날짜를 체크하며, 주제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


앞뒤로 30날을 기록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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