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use me, am I useful?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입에는 펜을 물고,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갖고 싶다, 쓰임새.'
지도를 멍하니 바라보며, 입에는 쓸모를 물고, 오늘도 그는 생각한다.
'찾고 싶다, 쓰임새.'
일을 하지 않는, 주말이면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시간이 반복된다. 삶의 이유, 가치, 방향, 의미, …. 거의 대부분의 질의응답은 허무한 결론으로 끝이 나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이 다시 토론은 시작된다.
쓰임새는 어디에 있을까. 우연히 찾은 쓸모 하나가 유의미한 단서가 되어줄 수 있을까. 고행에 가깝게 반복되는 삶에서 쓰임새는 어떤 존재가 되어줄까. 그는 과연 구세주일까, 아니면 고행을 함께할 친구일까. 혹은, 사실은 그 고행을 설계한 지독한 감독관일까.
퉷. 물고 있던 것을 뱉으며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뒤로 젖혀 몸을 푹신한 베개 위로 눕힌다. 이대로 잠시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을 더듬어 뱉은 것을 도로 되찾는다.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지만, 뱉은 것은 되찾을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기에, 가볍게 손에 힘을 주어 꼭 붙잡아본다.
입이 심심하다.
아직 약을 먹을 시간은 아니지만, 차를 한 모금 머금고 홀짝이며 그날을 떠올린다.
Interviewer: 스튜디오 빌롱잉스
Interviewee: 나
Q4. 본인의 공간에 함께 있던 물건들이 빌롱잉스 쇼룸으로 옮겨졌다. 물건들이 빠져나가고 난 후 공간의 변화 혹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먼저, 공간은 확실히 변화했다.
빈자리만큼 여유 공간이 생기면서 조금은 사람 사는 집 다워진 느낌이 든다. 미니멀한 삶을 지향하는 맥시멀리스트라서 그런지, 떠나보낼 때는 없으면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막상 지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만큼 또 다른 물건들이 그 자리를 고스란히 채웠으니까. 빈자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내 방은 아마 몸을 뉘일 곳도 없는 창고가 되었을 것이다.
심경의 변화도 있었다. 은근한 질투심을 느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것들은 쓰임새를 되찾았고, 나는 여전히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떤 변화를 주어야 나도 내 쓰임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졌다.
확실한 것은 내 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그 임시 공간에는 쓰임새가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의외로 아쉬움이나 그리움은 크지 않다. 가끔은 아예 까먹기도 하는 것 같다.
진정한 미니멀리즘의 가치를 깨닫고 있는 것일까.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