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일, 그러니까, 1년 하고도 31일 전
그동안 쓰임새는 찾지도 못하고, 쓸모 하나만 우연히 발견한 것이 그의 유일한 성과이다.
여름이라 더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풀이 잔뜩 죽은 채 오늘도 그는 홀로 돌아왔다. 곧 400일째가 되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애써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것이 도리긴 하나, 나도 슬슬 마음이 조급해지기는 마찬가지다. 놀고먹는 것도 400일이면 질릴 법도 하지 않겠나.
그가 어김없이 돌아오자마자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그 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 날도 그리 호락호락한 날씨는 아니었다. 땀을 흘리면 괜히 더 긴장한 것처럼 보일 텐데, 라는 걱정을 하며 나는 이마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고 있었다. 나는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시선을 애써 먼 곳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긴장한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런 나를 나는 애써 모른 체했다.
이미 앞선 관문들은 넘어섰다. 일주일 전에, 만약 오늘 면접만 통과한다면, 함께 일하게 될 동료와 선임들에게 합격을 받았으니.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평소답지 않게 차려입은 옷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어깨를 곧게 펴고 연신 각을 세웠다.
자신감을 갖자. 당당해지자.
그러나, 그런 각오와 다짐들이 무색하게도, 면접장의 분위기는 실로 처참했다.
이 이야기가 시작될 즈음 말했듯, 면접관은 나를 그 나이를 먹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파랑새나 좇고 다니는 철없는 아이 정도로 취급했다. 자괴감과 모멸감이 느껴졌지만, 그보다도 아주 많이 부끄러웠다. 그런 취급을 받는 나를 내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렇게 얼굴이 벌게진 나는 땀을 흘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는 돌아올 가망이 없을 그 회사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때, 그 회사를 나오던 그 길에서, 쓰임새를 처음으로 마주쳤다.
원래는 버려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컵쯤이나 놓여있을 법한 주차금지봉 위에, 쓰임새가 앉아있었다.
정확히는, 앉아서 나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그 길로 땀을 흠뻑 흘리며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내가 오늘 하루를 절망적으로 망칠 줄 알았다는 듯이.
쓰-? 왠지 익숙한 소리. 아까 면접관이 내 이력서를 훑으며, 미간이 찌푸려지는 줄도 모른 채 입으로 뱉어내던 그 소리. 여름철 매미 소리 같기도 하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쁜 그 소리는 쓰임새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서슬 퍼렇게 공허했다.
그 한 마디를 내뱉고, 쓰임새는 훌쩍 날아가버렸다.
그 직후 나를 회사에 소개해준 선배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높은 빌딩이 즐비한 대로변으로 기어 나와, 집 근처로 향하는 파란색 간선 버스를 타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내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영문을 몰라 멍해진 상태였다.
천연기념물 404-1호.
털을 제외한 몸통이 반투명한 색이며, 아주 작은 체구 탓에 찾으려고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조류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쓰임새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물건에 깃들어 있다.
울음소리는 '쓰-' 또는 '쓰임'.
쓰임새의 털.
깊고 진한 파랑색을 띠며,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든다.
하지만, 쓰임새는 서식하는 주변 환경이나 스트레스에 따라 털갈이를 조절하므로, 상황에 따라 쓸모가 아주 많거나 아예 쓸모가 없게 된다.
쓸모가 없는 쓰임새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