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누군가는 죽었다.
불 꺼진 방 침대 위를 손으로 더듬어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을 때가, 새벽 4시 16분.
현실의 나로 돌아오기 직전, 꿈에서 나는 그 순간 칼에 찔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새벽 4시 16분에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깬 사람이 있다면, 정말 죄송하게도 범인은 나였다.
다시 기억을 되짚으며 꿈속의 나를 헤짚어본다. 갑자기 칼에 찔리다니, 도대체 왜. 마주 보던 상대방의 형체만 어렴풋이 아른거린다. 대화, 아니 말다툼을 하던 중이었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길래.
아니, 그보다도 결국 칼에 찔린 건 나였던가, 아니면 '그' 였던가.
내 발작에 덩달아 잠이 깬 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모두 다 알겠다는 듯 다시 잠을 청하라며, 새벽녘 여명에 더욱 시퍼렇게 물든 침대 위로 나를 뉘었다.
그래 봐야 잠이 올리가 있겠나 싶었지만, 금세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잠이 들더니, 결국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이 다 달아나버렸다.
알람이 단 한 개도 울리지 않은 날은 올해 오늘이 처음이지 않을까.
오후 4시 16분의 나는 문득 점심때 나눈 이야기를 되짚어본다.
어떤 스님의 이야기였다. 우리의 존재는 자신이 결정한 것이 아니기에, ‘나는 왜 사는가?’ 라는 질문의 끝은 죽음으로 결론이 날 뿐이라고. 그러니 삶의 이유를 찾으며 괴로워하지 말고 삶을 그 자체로 즐겨보라고.
그 짧은 이야기가 의외로 내 오랜 고민에 대한 해답이 되어줄 줄이야. 그런데, 고작 그렇게 끝날 정도로 싱거운 고민이었다면 인류 역사에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리가 없지.
그 다음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잘 산다.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돈, 명예, 권력, 지성, 아름다움, 혹은 그 외의 무엇인가. 혹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잘 산다? 못 사는 것은 그럼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인가, 정신적인 수양이 부족한 삶인가, 혹은 악한 의도를 가진 삶인가. 아니면 이런 끝없는 고민만 하는 삶을 말하는 것인가.
…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내 귀에는 혁오의 <Die alone>이 흐르고 있다.
그의 안부가 궁금해져 메시지를 보낸다. ‘쓰임새는 잘 찾고 있나요?’
한참 뒤에야 그는 대답한다. ‘아니, 정신이 없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하나는 알겠다. 얼빠지게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것.
(생략)
나도 임시보호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며칠을 고민하다, 몰래 짧은 글을 써 내려갔다. 임시보호를 직접 해달라고 요청하는 꼴 같아서 웃기기도, 씁쓸하기도 했지만.
나는 '사자'였다.
사자 한 마리가 초원에 누워있다.
아주 여유롭고 한가한 표정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내뱉으면서.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
아니, 그건 사실 거짓말이야.
사자 한 마리가 초원에 웅크리고 있다.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발톱을 숨긴 채. 먹잇감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쫓으며. 언제든 뛰어오를 기세로.
아니, 그것도 사실 거짓말이야.
사자 한 마리가 초원에 숨어있다.
초조하게 흔들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한 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할 텐데. 혹시라도 하이에나들이 지나가다 나를 보면 어떡하지. 물소들도, 얼룩말들도, 기린들도, 아니 심지어 미어캣들도. 아무도 나를 찾지 말아야 할 텐데.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애써 걱정하며.
몰래 숨어 지낼 구덩이를 파내면서.
아니, 그것까지도 거짓말이야 사실.
나는 사자니까.
나는 거짓말쟁이니까.
- 매거진 <손>, vol.2 PUSH PULL 中
내일은 휴재입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