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의미가 없다 -1부

by 영미남편

나의 22살 첫 월급은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로 90만 원이었다.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 그다음은 인턴사원이라는 이유로 120만 원이었다.

그리고 6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 입사 후 9개월 만에 받게 된 내 정상적인 월급은 170만 원이었다.


당시 업계에서 170만 원이라는 월급은 다른 회사에 비해서는 꽤 많은 편에 속했다. 물론 이름 있는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는 현저히 떨어지는 월급이었지만 말이다.


170만 원 월급을 받을 때 나는 한 달에 100만 원씩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70만 원으로 차비, 밥값, 보험료, 핸드폰비 등을 내고 나머지는 옷도 사고 친구들도 만나며 용돈으로 사용했다. 남들보다는 꽤 많은 돈을 적금하는 알뜰한 청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올라간 나의 월급과 함께 적금에 들어가는 금액도 조금씩 늘어났고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할 때 즈음엔 1억 정도가 모여 있었다.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착실하게 적금을 들고 아껴 쓰며 모아 온 1억이었다.


결혼을 할 때 가장 큰 고민은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다. 당시 아내와 내가 모은 돈을 합치고 이런저런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충당하며 가전제품 가구 등을 사고 남는 돈이 1억 정도였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1억을 들고 집을 구할 수 있는 선택지가 몇 개 있었다.


1. 대출을 2억 정도 받아 3억대의 아파트 매매 하기

당시 나의 직장은 충무로 쪽 아내의 직장은 사가정 쪽이어서 중간 지점인 동대문, 청량리 쪽 아파트를 알아봤었다. 지금은 꿈도 꿀 수 없지만 당시 동대문 쪽의 일부 저렴한 아파트는 3억 언저리에서 구할 수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 얘기 라고 생각하겠지만 불과 5년전인 2016년도의 현실이었다. (5년동안 무슨일이 일어난거니 .ㅠㅠㅠㅠ )


2. 대출을 1억 정도 받아 2억대의 아파트 전세 구하기

역시나 동대문 쪽의 일부 아파트 전세와 4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노원 지역의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3억대의 아파트 매매는 지금은 꿈도 꿀 수 없지만 아직 2억대의 아파트 전세는 서울 일부 구축 아파트 들에서는 아직도 현실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3. 대출을 받지 않고 경기도 권에 1억 언저리 빌라 매매 하기

당시에 서울 외곽지역이나 서울 근교 경기도에는 1억 정도면 빌라, 다가구 같은 집 한 채는 매매할 수 있었다. 1억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가능했던 것들이 꽤나 많았는데 그 시간이 불과 5~6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 버린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많은 고민 끝에 2억짜리 전셋집을 얻어 신혼집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전세를 살아보니 꽤 큰 목돈을 묶어두는 역할만큼은 가장 확실하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고, 2년 뒤에 대출받은 전세금을 반환받으면 갚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선택한 2억짜리 전셋집이었다. 사실 매매를 하는 것도 꽤나 마음에 당겼었는데 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용카드도 한 장 없었던 나에게 2억을 대출받는 행위는 당시에는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년짜리 전셋집에 신혼집을 꾸리고 살다가 어느 날 직장 동료에게서 들은 말 때문에 생각의 전환을 갖게 됐다.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축구라는 취미활동을 같이 하며 형 동생 하는 동생이었는데 심각하게 고민을 상담 해왔다.


"형 큰일 났어요! 집주인이 집을 나가래요 자기들 들어와서 산다고"

"응? 전세계약 아직 남아 있지 않아? 언제 만기인데?"

"2월이 만기인데 지금 12월이니깐 사정 봐준다고 미리 연락 준거라고 하네요"


계약 당시 동생 부부는 집주인이 자신이 다주택자이기에 당분간 매매할 생각도 없으니 오랫동안 살 사람을 구했다고 하여 보다 좋은 조건의 다른 집이 있었음에도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위해 덜컥 계약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히 만료일에 나가 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동생 부부는 임신 3개월인 아내와 함께 12월 한겨울에 덜덜 떨어가며 자신들의 예산에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 2달을 집을 알아보고 집을 구했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는 유산돼 버리고 말았다.


안타까운 동생의 일은 남일 같지 않았었고, 우리도 2세 계획이 있었기에 아내와 함께 미리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2부로 넘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별로 무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