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소리 듣는건가?

by 영미남편

2020년 설날 뉴스에 중국에 전염성 바이러스가 발생되었고, 이 바이러스로 인해서 관광지들이 폐쇄하고 일부 지역은 출입이 통제되기도 하였다. 당시 우한 바이러스라고 불렸던 이것은 곧 코로나19로 명칭이 바뀌었고 2년이 다돼가는 지금까지도 우리 삶의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당시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중국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업무였다. 코로나가 세상에 나타난 지 2개월 만에 중국과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졌고 회사 내에서 다른 업무를 하는 쪽으로 발령이 났지만 이내 다른 쪽도 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결국 20년 4월 1일부터 나는 무기한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휴직 기간 동안에 월급의 약 70% 정도를 회사와 나라에서 보조해주었고 이 때문에 당장의 벌이를 새로 구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생활은 할 수 있었다.


마침 만삭의 아내는 4월에 아이를 출산했고 덕분에 휴직시기에 나는 육아휴직을 낸 아내와 함께 공동 육아를 하며 월급에 대한 부담감은 같지 않고 그저 육아와 아내의 산후조리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24시간 아이 옆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게다가 이제 막 아이를 출산한 아내의 산후조리까지 도와줘야 했던 당시는 출근해서 업무를 보는 것보다 10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아내가 어느 정도 회복을 하고 아이가 조금씩 자라 가면서 급여 소득이 없던 내 걱정도 조금씩 함께 자라났다. 회사에서는 휴직자들을 대상으로 타 부서 전배 지원자를 수시로 모집했고 그때마다 나는 계속 지원을 했음에도 전배는 5년 차 이내의 사원 대리 급만 발령이 나고 10년 차 이상의 직급자 들은 언감생심이었다. 게다가 휴직으로 인한 지원금이 급여의 70%에서 60%로 줄었고 이내 50%로 줄어버리는 상황까지 오게 되자 더 이상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육아는 이제 아내에게 맡겨두고 소득을 일으킬만한 새로운 일을 찾아봐야 했었는데 미리부터 준비하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백수 인생에다가 아이를 보느냐 진이 다 빠져버리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건 정말 쉽지가 않았다. 나는 다양한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느 날 아침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내차를 보니 차의 한쪽면이 움푹 들어가 찌그러져 있었다. 누군가 차를 찍고 도망간 모양이었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장만했던 새 차였기에 수리를 해보고자 동네 덴트 집 들을 몇 군데 다니다가 가격이 그나마 괜찮은 덴트 집 사장님에게 수리를 맡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장님이 덴트 집을 차린 지 6개월이 채 안되었고, 자기도 원래 직장생활을 하다가 코로나 직전에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를 오픈했다고 했다.


차를 맡긴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며칠을 그 가게에 출근하다시피 방문해서 커피를 얻어 마시면서 내상황을 공유하고 일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기꺼이 도움을 주려고 했다. 사장님의 이전 직장은 외국계 기업 인사팀이었고 덕분에 사람 보는 법을 좀 배웠는데 내가 참 절실해 보였다고 하면서 많은 것을 알려줬다.


가게는 어디에 얻어야 하고 기술은 어디에서 배워야 하며 또 어떤 장비들을 구매해야 하는지도 알려줬다. 그런데 이게 모두 돈이었다. 가게를 얻는데 몇천이 들고 기술을 배우는데 또 몇천 장비 값도 몇천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곳들을 자기가 소개해 줄 수 있다고 했으며, 또 그냥 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다. 사장님 말대로 하면 남들보다 저렴하게 나도 사장님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런데 못해도 1억은 있어야 내 가게를 차릴 수 있었고 기술을 배우는 시간까지 하면 최소 3개월은 아무 소득 없이 돈만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장님은 필요하면 자신의 가게에서 일을 해도 된다고 했지만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기에 급여는 줄 수 없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좋은 마음으로 도움을 주려 했던 것 일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나를 상대로 한몫 땡기려고 했던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어쨌든 무언가 다른 걸 시작해보려 했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돈돈돈 이 필요했다. 목돈을 그만큼 만들어두지 못했고 아직 퇴직이 아닌 휴직 중이었던 나는 쉽게 사장님이 내민손 을 맞잡지는 못했다. 아마 직장이 아예 없어졌던 상황이었으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덜컥 일을 벌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운이 좋게도(?) 20년 12월 나는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 나의 휴직 생활은 종료되었다. 기존에 하던 업무에서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하는 것이었지만, 아직 휴직 중인 원래 같은 부서의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나은 상황이 되었다. 발령난지 1년이 지나간 지금 새로운 업무에 잘 적응하며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다가올 백수가 되는 시점엔 코로나로 인한 휴직 시기보다는 조금 더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 하고 싶기에 이런저런 많은 것을 알아보며 퇴직을 준비하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래서 뭐해먹고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