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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Mar 20. 2024

day9 나헤라-산토도밍고

다시만난 마빈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이별 

산티아고 순례길 9일 차(나헤라-산토도밍고)


며칠째 같은 길을 같이 계속 걷다 보니 길을 걷는 순례자들 끼리 서로의 얼굴을 알았고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길을 걸었다. 어제 우리가 숙소를 잘 구하지 못한 것처럼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숙소를 구하는것이 꽤나 어려웠었나보다.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순례자들끼리의 인사인 '부엔까미노' 이후의 안부인사는 '어제 어디서 잤어요? 잠은 잘 잤어요?' 가 안부인사였다. 아마도 우리만큼 알베르게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듯했다. 


공립 알베르게를 간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지금까지 겪었던 알베르게와 다르다며 어제 묵은 알베르게는 지금까지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중 가장 안좋았었기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어디서 잤냐는 물음에 호텔에서 잠을 잔 것이 사치를 부린 것 같고 왠지 모르게 같이 힘들게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이었는데, 점차 사람들이 호텔에서 잘 잤다. 자기도 호텔에서 잘걸 그랬다는 말을 들으며 무언가 뿌듯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어제의 힘들었던 기억은 마치 우리 부부만 성공 한듯한 알 수 없는 성취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산토도밍고는 나헤라 로 부터 21Km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상대적으로 요 근래 걸었던 28~29km 보다는 짧은 거리를 걷는 날이었다. 호텔에서 잠도 푹 잤기 대문에 처음 시작은 여유 만만이었다. 


우리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느새 피레네 산맥의 여파가 가시고 드넓게 펼쳐지는 평원이 장관인 메세타평원 을 여행하고 있었다. '메세타평원' 다른말로 '메세타고원' 이라고 도 하는 이 지역은 다른 지역 보다는 높은 고도에 위치하였지만 나무 하나 그늘 한 점이 없는 말그대로 대평원이 펼쳐지는 지역이고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이었다. 수평선은 바다에서 많이도 봤지만 지평선을 본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메세타 평원에서의 햇볕은 어렸을적 들었던 동요처럼 정말이지 쨍쨍 빛나기만 했다. 메세타 평원은 산맥이나 언덕과는 다른 평원이라는 말그대로 길을 걷는 코스가 평지라는 좋은 점이 있지만 쉬어갈 그늘이 없다는 것은 또 단점이었다. 쨍쨍 빛나는 햇볕을 맞으며 오늘도 우리는 길을 걸었다. 

메세타에서의 우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날 움직이는 거리가 숫자적으로는 부담감을 느끼게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몸의 상태를 크게 좌우 하지 않는것 같았다. 목적지가 긴거리 뒤에 있던 짧은 거리 뒤에 있던 목적지를 앞둔 마지막 한 시간은 항상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상하게도 정말 목적지가 5km 정도 남으면 그때부터 온몸이 아파왔다. 우리는 '마의 한시간' 이라고 했다. 


며칠째 길을 걷는 익숙함 때문 이었는지 그간의 걸음 걸이로 인해 체력이 조금 올라와서 였는지 최근 며칠은 금단현상이 조금 힘들었고, 마의 한시간이 힘들긴 했지만 길을 걷는 행위 자체에는 큰 부담감이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거리도 평소보다 짧은 거리를 걸으면 되기도 했고, 아침부터 느꼈던 알 수없는 우월감 때문에 좋은 컨디션으로 시작을 했지만 마의 한시간은 역시나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팜플로나 도시 초입에서 느꼈던 더이상은 못걸을것 같았던 느낌이 그날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졌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어제의 2/3 밖에 안 되는 거리의 길이지만 '마의 한 시간' 덕분에 이날 이후로는 앞으로 남은 거리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 생기기 시작했다.


아내와 내가 길을 걸으며 그나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부부가 동시에 아프거나 힘들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힘들고 아프면 아내가 나에게 파이팅을 외쳐 주었고, 반대로 아내가 힘들고 아플 땐 내가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어쩌면 나는 흙길과 산길 보다는 도시의 돌길과 아스팔트 길을 조금 힘들어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목적지인 산토도밍고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마을중 상대적으로 큰 마을 이었기에 도시 초입에는 돌길과 아스팔트 길이 존재했다. 마의 한시간을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아내는 쉼 없이 '할 수 있다'는 주문을 걸어주었다. 길을 걸으며 아내와 도란도란 얘기를 할 땐 그래도 이야기 속에 빠져 아픔이 잠시 잊혀진다.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힘듦을 파이팅 하며 마의 한시간을 극복해 나갔다. 그렇게 오늘도 목적지인 산토도밍고에 도착해서야 여유가 생겼던 것인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다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보 우리 나중에 또 산티아고 올 수 있을까?"

"오빠 환갑 여행으로 산티아고에 다시 오자"

"그날이 오겠지?"

"그래 이번에 오빠의 버킷리스트를 이뤘으니까 다음 버킷리스트는 환갑여행으로 하자"

"그래 그럼 은퇴 후에 60이 넘어 꼭 한 번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시 오자"


지금까지의 여정이 비록 육체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을 다시 하고싶을 만큼 행복했었나 보다. 

산토도밍고 도 대도시이다.

산토도밍고는 스토리가 있는 지역 이었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마을마다 저마다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지역이 있는데 산토도밍고의 스토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모두가 알만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순례를 하던 가족이 산토도밍고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마을에 살던 한 여인이 순례자 가족 아들의 외모에 반해 구애를 하지만 아들은 산티아고 까지 가야했기 떄문에 여인의 구애를 거절 했다. 이에 화가 난 여인이 아들에게 누명을 씌었고 아들은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 


가족들은 아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순례를 마쳤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살아있다는 성인의 말을 듣게 되어 다시 산토도밍고에 방문해서 그곳을 총괄하는 산토도밍고 수도원장에게 아들이 아직 살아있으니 교수대에서 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고 한다. 


수도원장은 몇일을 교수대에 걸려있던 아들이 살아있을리가 없다며 코웃음을 치면서 "아들이 살아있으면 내가 먹고 있는 닭도 살아나겠다" 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닭이 살아났고 이때문에 아들도 교수대에서 내려지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르게 되면 누구나 크레덴샬 이라는 순례자용 여권을 받게 된다. 이 크레덴샬에는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칸이 있으며 자신이 묵었던 알베르게, bar, 성당 등에서는 각각 고유의 모양을 한 도장을 찍어준다. 산토도밍고는 앞서 이야기한 닭에 관한 전설 때문인지 크레덴샬에 찍어주는 도장도 닭 모양의 도장을 찍어줬다. 그리고 거리에 있는 제과점에도 닭 모양과 그 아들의 형상을 한 파이를 판매했다. 스토리가 있는 마을인 만큼 그런 스토리를 잘 엮어서 상품화 했던 것 같다. 

마빈이 건네준 닭 모양 파이

아내는 산토도밍고는 자기가 보았던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마을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했다.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고 했고 거리의 풍경이 아름다운 마을이었으며, 우리에겐 너무나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준 마을이기도 했다. 알베르게에서 짐을 풀고 씻고 휴식을 잠시 하다가 마을을 구경하러 밖으로 나왔다. 마을에 진입할 때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느낌이 좋다고 했는데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아내는 더 좋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오빠 나 산토 도밍고에 살고 싶어"

"그렇게 좋아?"

"응 이 마을은 뭔가 그냥 너무 예쁘고 느낌도 너무 좋아"


아내는 순례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고 싶다' 라는 말을 했었다. 산토도밍고의 추억이 가장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알베르게도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 어제의 열악했던(물론 우리는 아니었지만) 숙소 환경에 비해서 알베르게가 정말 크고, 깨끗하고, 주방이며 침대며 휴게 공간까지 갖춘 순례길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알베르게 였다. 우리는 그 휴게공간에서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니 만큼 볼거리가 많이 있는 마을 이었는데, 무엇보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잠시 같이 길을 걸었던 적이 있는 마빈이었다. 마을을 구경하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해서 봤더니 마빈이 있었다. 그런데 마빈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너무 다리가 아파서 벤토사 라는 마을까지 걸어왔다가 하루 쉬고 버스를 타고 이곳 산토도밍고에 왔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마빈이 너무 반가웠지만 다리가 아파 잘 못 걷는 마빈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마빈 괜찮아?"

"난 너무 힘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지금 마을을 구경하고 있는걸?"

"알잖아 걷는 시간의 아픔은 도시를 관광할 땐 사라진다고"

"그나저나 오랜만에 만나니깐 너무 반갑다."

"그러게 난 마을을 먼저 둘러봤으니 조금 있다 알베르게에서 보자"


마빈과의 제회를 잠시 뒤로 하고 아내와 나는 산토도밍고를 구경했다. 산토도밍고 성당에서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설 때문인지 닭을 우고 있었으며, (키운 것인지 정말 전설의 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느낌은 도시를 구경할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스포츠 용품점에서 엉뚱하게도 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마의 한시간을 걸을때는 걷는 내내 발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걸었던 적이 자주 있었다. 그런데 슬리퍼보다는 안정성 면에서는 샌들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샌들을 살까 말까 하고 잠시간 고민했다. 아내는 '오빠 사고 싶으면 하나 사'라고 했지만 속사정을 알지는 못했다.  

마빈과 함께

나는 순례길에서 사용할 돈을 한국에서 올 때부터 모두 유로로 환전해 왔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돈관리는 모두 내가 도맡아서 했다. 한국에서 접한 정보로는 보통 1Km 당 1~1.5유로 정도를 사용하고 완주까지 800~1000유로 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순례의 목적이 아닌 여행의 목적을 가졌었기에 나름대로는그 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환전을 해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이생각이 잘못된 생각 이었다.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본격적으로 여행하기 이전에 파리에서 5일정도 먼저 관광을 했었는데 파리에서 사용할 돈은 따로 환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엉뚱하게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며 여유있게 환전 해왔다고 생각 했었기 때문에 파리 여행때도 돈이 여유 있다는 생각에 가뜩이나 물가 비싼 파리에서 무려 5일간 아낌없이 지출을 했었다. 


여러 사람이 묵는 알베르게에서 숙박을 하다 보니 돈을 꺼내놓고 세어보기가 조금 불안해서 그동안 그냥 돈을 숨겨놓고 다음날 쓸 돈만 일부 빼서 쓰곤 했었는데 어제는 호텔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프라이빗한 공간이어서 남은 돈 전체를 볼 수 있는 상황이되어 금전 사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어제서야 알게 되었다. 아내가 샤워할때 혼자 계산 해봤었는데 앞으로는 하루에 둘이 합쳐서 40유로 이상을 지출하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가 처한 금전 상태를 따로 공유하지는 않았다. 나만 철썩같이 믿고 따라온 아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속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아내는 파이가 먹고 싶다고 했으며, 오빠 필요하면 샌들 하나사 라는 호의적인 말들을 했지만 샌들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고, 아내가 사달라고 하는 파이도 난 먹기 싫다고 둘러데며 거절 하기도 했었다. 금전적인 부담이 있다는 혼자만의 고민을 새로이 하면서 나름대로 돈을 아끼려고 하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사실 두명이서 하루 40유로 라는 돈은 정말 부족할 수밖에 없는 돈이다.  

돈주고 살 수 없었던 닭모양 파이와 쵸콜릿

마을 관광을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저녁을 만들어 먹고 휴식을 취하다 마빈을 다시 만났다. 아내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의학적 지식이 당연히 일반인인 나보다는 높은 수준이었다. 마빈의 상태는 일반인인 내가 보더라도 조금은 심각해 보였고 아내는 마빈의 다리를 조금 만져보고 상태를 보더니 혹시나 몰라 우리가 사용하려고 준비했던 파스를 붙여주고 진통제를 주었다. 마빈은 너무나 고마워 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잠시 기다려 달라던 마빈은 본인자리에 갔다가 무언가를 들고 왔는데 바로 우리가 길거리에서 봤던 닭 모양 파이 였다. 마빈은 파이를 건내며 우리에게 먹으라고 권해줬다. 아내에게 사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못 먹었던 파이를...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베풀었던 선의에 마빈이 또 당연하다고 가져왔다. 


우리도 그냥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내일 아침과 점심으로 사놓은 사과와 바게트 빵과 하몽 그리고 요구르트 등을 꺼내와 함께 1시간 정도 티타임을 즐겼다. 정확히 말 하자면 번역기와 함께 손짓 발짓을 했다. 닭모양 파이가 정말 너무 먹고 싶었었는지 아내는 참 잘도 먹었다. 아내가 너무 많이 먹자 마빈은 나에게 아내가 나보다 더 잘 먹는 거 아니냐며 장난을 쳤다. 말도 정확히 잘 안 통하면서 우리는 뭐가 좋았는지 계속해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빈 어떤 것 같아?"

"너희가 해준 파스와 진통제 덕분에 괜찮은 것 같아"

"내일도 걸을 수 있겠어?"

"아니 난 내일은 걷지 못할 것 같아. 그것보다 이 마을에서 내일 축제가 열려 너희도 함께 보지 않을래?"

"축제? 팜플로나도 아닌데 축제가 열린다고?"

"스페인에는 여러 축제가 있어 난 축제를 보고 하룻밤 더묵고 다음 목적지까지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야"

"마빈 너는 순례길을 정말 즐기고 있구나"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라는 것을 우리도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버스를 타고 순례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롯이 산티아고 까지는 걸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내는 산토도밍고가 너무 좋다며 하룻밤 더 묵고 싶어 가긴 했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사실은 마빈의 한마디의 우리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돈이 부족한 금전적인 이유 산토도밍고에서 하룻밤을 더 묵지는 않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즐기는 것도 나름 괜찮았던 선택 이었을 수 있을것 같다. 사실 우리에게 시간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하룻밤을 더 묵을 만한 장소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부르고스나 레온같이 큰 대도시를 추천해 주는데 나는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주저 없이 산토도밍고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산토도밍고는 좋은 기억을 남겨줬던 곳이다.


마빈은 안타깝게도 이날 이후로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 와서도 가장 궁금한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마빈이었다.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착했던 친구인데 또다시 길에서 만날 줄 알고 연락처도 물어보지 못한 채 헤어졌다. 너무너무 아쉬운 인연이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길을 걷다가도 걷는 걸 마치고 알베르게에서 휴식을 취하다가도, 혹은 마을을 관광하다가도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생기는 것 같다. 오늘은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더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비록 몸은 점점 지쳐가지만 마음은 점점 행복해지는 순례길을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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