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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Mar 19. 2024

day8 로그로뇨-나헤라

생각보다 힘든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 8일 차(로그로뇨-나헤라)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우리 부부의 별명은 '얼리버드'였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어갈 때 우리의 걷는 속도가 남들보다 조금은 느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조금 일찍 출발하자는 생각에 항상 7시가 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당시 길을 걸었던 순례자들은 대부분 7시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하고 8시쯤 출발 하는 편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1시간 정도 빨리 일정을 시작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에 일어난 시간이 이미 7시가 넘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내와 나 둘 중에 한 명은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그 준비하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다른 한 명도 잠에서 께어 같이 준비를 마쳤는데, 오늘은 사이좋게도 둘 다 늦잠아닌 늦잠을 자게 됐다.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일정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고, 또 어떤이들은 이미 출발하고 자리에 없었다. 어제 같이 저녁을 먹었던 흰머리 아저씨 부부 일행도 마찬가지로 자리에 없었다. 아무래도 순례길을 여행 하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넘어가서 체력적으로 힘들어 졌던것 때문인지 아내와 나 둘 다 사이좋게 늦잠을 자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평소보다 조금 더 잠을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아침 컨디션은 상대적으로 좋기만 했다.


일반적으로 알베르게는 다음에 올 순례자들을 맞이 하기 위한 준비시간을 갖기 위해 8시쯤 순례자들을 모두 내보낸다. 다만 그렇다고 늦게 출발하거나 늦잠을 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 편이고 자율 속에 규율을 주는 편이다. 알베르게를 나가야하는 시간도 있고 늦잠을 잔 것 때문에 괜스레 마음이 급해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출발했다. 아침에 든든히 먹고 출발하려고 어제 저녁에 바게트 빵과 하몽을 이용해서 하몽 샌드위치를 만들어놨는데 늦었다는 생각에 만들어놓은 샌드위치는 먹지도 못하고 그저 출발 하기에 급급했다.

길을 걷다 만난 노란 리본

오늘은 어제보다 더 긴 거리인 29Km 지점 뒤에 나헤라 라는 마을로 목적지를 정했다. 어제 28Km 을 걸어봤던것 때문인지 이제는 길을 몇번 걸어봐서 어느정도 거리감이 생겼던것인지 29Km 를 걸어야 하는 오늘을 아내는 전날부터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긴 거리를 가야 하기도 했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평소 보다 빨랐고, 부지런히 걷다 보니 첫 번째 마을인 라바레츠에서 흰머리 아저씨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흰머리 아저씨 일행 외에도 몇몇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같이 걷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만남 하나하나가 얼마나 힘이 되고 반가운지 모른다.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또다시 각자의 속도대로 길을 걸었나갔다. 오늘따라 유난히 햇볕이 뜨거웠다. 아마도 늦게 출발한 만큼 해를 일찍 맞이해서 그랬던 걸지 모르겠지만 정말 유난히도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아침에 먹으려고 전날 준비 했던 하몽 샌드위치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길을 걷다 중간에 쉬면서 먹으려고 했지만 햇볕이 너무 뜨겁고 길가에 그늘이 없어 먹지도 못하고 배낭 한켠에서 무게만 차지 하고 있다가 나바레츠에 도착해서나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잠시 쉬다가 다시 길을 걷다보니 한동안 괜찮다고 했던 아내가 사타구니를 다시 부여잡았다. 


"여보 또 사타구니가 아파?"

"아니야 괜찮아"

"아프지도 않은데 왜 그쪽을 자꾸 만져"

"조금 불편하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괜찮냐고 물어보는 정도와 그저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라도 다른데 정신이 팔려 아픈 걸 모를 수 있게 노래를 불러줬다. 길가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도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로그로뇨를 떠나는 길에 한컷

나바레츠에서 잠시 쉬고 길을 나설 때는 이곳이 스페인임을 다시한번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아직 4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햇볕은 너무 뜨겁고 더웠다. 게다가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왜인지 햇볕을 정면으로 떠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보통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가기 때문에 햇볕은 등뒤에서 우리를 비춰주는데 오늘은 아침햇볕을 껴안고 걷는 형국의 이상한 날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걷다가 컨디션이 급속도로 떨어진 아내는 결국 포기 아닌 포기 선언을 했다. 땡볕을 계속 걷다가 잠시간 나온 그늘에서 드디어 뻗어 버렸다. 


"오빠 나 더 이상은 못 걷겠어"


아내는 이 한마디를 하고는 가방을 집어던지고 그대로 길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이런 아내를 보며 파이팅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사진을 찍어가며 놀려댔다. 길바닥에 누웠다느니 밥 먹고 누우면 살찐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나름은 떨어진 기분을 올리기 위한 농담이었다. 아마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나도 같이 뻗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분을 그렇게 누워있던 아내에게 나는 20분간 장난을 쳤던 것 같다. 이내 말 한마디 없이 꼼짝도 않고 누워만 있던 아내가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라고 했을 땐 가슴 한편을 쓸어내렸다. 

말 그대로 뻗어버렸다.

조금 쉬면서 어느정도 컨디션을 찾았던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우리는 나헤라 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나헤라 마을 입구 초입에서 다시 한번 흰머리 아저씨 일행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같이 묵을만한 알베르게를 찾았다. 


사실 나는 잠자리에 상당히 예민한 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며 준비할 때도 잠자리만큼은 계속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나헤라의 공립 알베르게는 200명이 넘는 인원이 다닥다닥 붙어 자야하고 시설이 낙후되어 매우 안 좋다고 들어서 지금까지는 공립 알베르게를 이용했지만 나헤라에서 만큼은 사립 알베르게를 이용하고 싶었다. 그리고 흰머리 아저씨 에게도 공립 알베르게의 열악함을 알려드렸다.


"아저씨 나헤라는 공립 알베르게가 열악하데요"

"그러게 나도 그 얘기를 들은 것 같아"

"저는 오늘 처음으로 사립 알베르게를 찾아보려고요"

"그럼 우리도 같이 묵을 만한 곳을 찾아보자"


아저씨와 함께 공립이 아닌 사립 알베르게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다른데서는 잘만 보이던 알베르게가 나헤라에서는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알베르게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 알베르게를 구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첫 번째 알베르게를 갔더니 오늘 알베르게 수용인원이 마감됐고 1자리만 남았다고 한다. 두 번째 알베르게를 갔더니 1인당 50유로라는 금액을 제시한다. 세 번째 알베르게를 갔더니 3인실이 있고 1명은 침대가 없다고 한다. 숙소를 잡는데 너무 고생하고 애를 먹었다. 걷는 길만 29Km였는데 나헤라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느라 한 시간 이상을 더 걷고 있었다. 


흰머리 아저씨도 흰머리 아저씨의 아내분도 뒤에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따갑게 느껴졌다. 괜히 공립 알베르게의 열악함을 얘기해서 그들의 잠자리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만 같았다. 흰머리 아저씨 부부도 나 때문에 알베르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 무언가 알 수 없는 죄책감 때문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게다가 오늘은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긴거리인 29Km를 걸어온 날이었다. 걸은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고 오늘따라 햇볕을 정통으로 맞으면서 걸었던 날이기에 너무 지쳐서 그냥 빨리 숙소에 들어가서 씻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나헤라를 헤맨 지 1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우리 4명 모두 지쳐갔다. 


그러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우리에게 먼저 너희들 알베르게를 찾느냐며 다가왔다. 본인이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29Km 을걷고 온 마을을 한 시간 넘게 휘젓고 다녔으니 발도 다리도 엄청 아프고 이제 그만 쉬고 싶은 순간에 구세주 같이 나타난 알베르게 호스트 였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사람을 따라가서 알베르게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느낌이 싫었다. 결국 흰머리 아저씨 일행은 그 사람을 따라가기로 하고 우리는 다른 알베르게를 찾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미 29km 를 걸었고 마을을 돌아다닌 것 까지 합치면 족히 35Km를 훌쩍 넘는 거리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알베르게를 찾는 나를 묵묵히 따라주면서 여느때와 같이 힘내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해주었다. 늦잠을 자서 늦게 출발 했던 탓인지 길을걷다가 아내가 뻗어버려서 20분 이상을 지체했던것 때문이었는지 찾는 알베르게마다 이미 정원이 차서 숙박이 불가 하다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몇번의 알베르게 잡기가 실패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공립 알베르게에 가서 이제 그만 쉴까 했지만 이날만큼은 이상하게도 공립 알베르게가 싫었다. 지금껏 돌아다닌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오기가 생긴것인지 꼭 마음에 드는 알베르게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인 나헤라에서 우리가 찾는 시설을 갖춘 알베르게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할 때 우리는 순례자의 의미가 아닌 여행객의 의미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했으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호텔 같은 곳에서 잠도 자고 맛있는 것도 먹자며 계획했었다. 물론 실제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는 지금까지 단한번도 사치를 부린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공립 알베르게는 정말 가기 싫었고, 사립 알베르게는 찾아볼 만큼 찾아본 우리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결국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잠깐 쉬었다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보자고 하며 어느정도 휴식을 취하고 고개를 든 순간 정말 거짓말 같이 눈앞에 호텔이 있었다. HOTEL이라고 써진 글자를 보고 아내와 나는 서로 쳐다본 뒤 한마디 말도 없이 호텔로 걸어갔다. 호텔이 마지막 희망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은 너무 비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그런데 아까 1인당 50유로를 제시한 알베르게도 있는데 호텔은 더 비싸겠지?"

"그러게 근데 50유로 이상 주면 우리 너무 비싼 곳에서 자는 거 아니야?"

"그럼 1인당 30유로가 넘어가면 그냥 다음 마을까지 걸어갈까?"

"다리가 많이 아픈데..."

"다음 마을까지는 여기서 4km 밖에 안돼 1시간이면 갈 수 있어"

"그럼 둘이서 60유로가 넘으면 다음 마을까지 가자"


그 힘들고 지친 와중에도 2명이서 60유로 이상이면 안 잘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호텔로 이끌리듯이 걸어 들어갔다. 이미 묵을곳이 없기도 했고 알베르게 여러군데를 돌아다녀 보니 나헤라지역은 다른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알베르게 가격이 비싼 것을 체감할 수 있었기에 가격 마지노선을 정하고 눈앞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순례자들을 위한 객실이 있고 순례자들에게는 저렴한 요금을 제공한다며 두 명이서 55유로 방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더이상의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좋다고 하며 호텔로 숙소를 정했다. 60유로가 넘으면 패기 있게 다음 마을까지 가자고 해놓고는 사실 60유로가 안 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나 보다. 55유로라는 호텔 주인의 말에 쾌재를 부르며 짐을 풀기로 했다.  

55유로짜리 호텔

열쇠를 꽂고 돌리고 방문이 열렸을 때는 정말 희열이 느껴졌다. 침대도 단층이고 텔레비전에 우리 둘만 쓸 수 있는 화장실과 욕실 게다가 에어컨까지 있었다. 우리는 바로 짐을 풀고 에어컨을 켰고 한명씩 샤워를 하면서 오늘의 피로를 풀기로 했다.


뜨거운 물로 욕조 안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여유롭게 씻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알베르게에 잠을 잘때는 공동의 숙소 이기에 암묵적인 룰이 있다. 아무래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다음사람을 위해 최소 10분 안에 샤워를 마치고 나와야 하기 마련인데 오늘은 내뒤에 샤워실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내 1명뿐이라는 상황에 여유로운 샤워시간을 즐길 수 있었고 소소한 행복감을 가져다줬다. 그것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때도 마찬가지 였다. 오랜만에 일정이 끝난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필요 없고 규율을 지킬 필요 없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침대에 누워 역시 호텔은 안락하고 조용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 돈만 쓰면 참 행복하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순례길에서 호텔 숙박은 뭔가가 취지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오늘은 출발부터 200Km를 넘게 걸어왔으니 서로에게 자축하는 의미를 갖자고 했다. 

길을 걷다 만나는 bar 와 알베르게에서 순례자 여권(크레덴샬)에 인증 도장을 찍어준다.

호텔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오늘 하루가 시작부터 늦잠을 자고, 햇볕이 너무 뜨거웠고, 알베르게 찾기에도 너무 고된 하루 여서 그런건지 너무 너무 배가 고파 왔다. 오늘 묵는 곳은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이니 취사가 불가능했기에 저녁을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숙소를 잡는데 비용을 많이 지출 했기 때문에 가급적 저렴하게 비용을 지출하며 식사를 때우려고 마트 같은 곳을 찾아 빵 같은 걸로 저녁을 때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알베르게를 찾으면서 봤던 마트에서 간단하기 요기할 생각으로 길을 나섰는데 하필 오늘은 일요일 이었다. 낮시간에는 씨에스타 때문에 문이 닫혀 있을꺼라 생각하고 다시 찾아간 곳들이 저녁시간 까지도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밖에는 고급 레스토랑만 즐비하고 문을 연 마트 같은 건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고급 레스토랑 까지 가기에는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사치를 부리기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먹이를 찾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 처럼 나헤라 식당가를 어슬렁 거리다가 다행히도 피자집을 하나 발견했다. 앞에서 보기엔 고급 레스토랑인데 뒷편에서 보니 냉동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내주는 집이길래 가격이 조금은 저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피자 한 조각에 6유로란다. 역시 저렴한 피자는 아니었지만 고급 레스토랑에 자리잡고 앉아 먹는다거나, 순례자 메뉴를 먹더라도 1인당 15유로는 들었을 테니 6유로로 저녁을 때울 수 있다면 저렴하게 먹는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며 그냥 6유로 짜리 피자를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 왔다. 


숙소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피자 한조각에 6유로 그것도 냉동피자를 그저 전자렌지에 데워주는 것에 불과했는데 6유로라는 금액은 꽤나 비싼 돈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지치고 힘들고 배가고파서 판단력이 많이 흐려졌던게 아닐까 싶다. 시장이 반찬인지 그럼에도 호텔에 돌아와서 먹었던 피자는 꽤 맛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피자 한판을 다먹어야 배가 차는 대식가인데 한조각으로 때우려니 배가 든든해지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배가 찼다며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 하루 힘들게 고생시켰는데 군말 없이 날 응원해줬던 아내에게 너무 형편없는 저녁 식사를 대접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다.


피곤에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더니 매트리스가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아내와 위아래 위치가 아닌 양옆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에어컨을 틀고 이불을 덮고,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정말 힘들었던 하루였지만 호텔에서의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가끔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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