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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Apr 09. 2024

day14 온타나스-보야디야

스위밍 맨!

산티아고 순례길 14일차(온타나스-보야디야)


10Kg가 넘는 무게의 배낭을 메고 매일 25Km 이상의 길을 걷다 보니 발목이나 무릎에 통증이 온다. 때때로 그 통증은 심하게 오기도 하고 걷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어제 그간의 걸었던 길중 가장 긴 거리였던 32Km을 걸어서 몸에 이상이 온 건지 그동안 걸었던 피로가 누적 되었던 건지 보야디야를 가는 길에 호주 아저씨를 만나 bar에 잠깐 쉬어갈 때부터 나는 갑자기 왼쪽 발등이 아파왔다. 


bar에서 쉬기 전까지는 벌써 2시간을 넘게 걸어 오는 동안에는 아픈 줄 몰랐었는데 쉬면서 잠깐 음료를 주문하러 갈 때부턴 갑자기 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통증이 있었다. 잠깐 쉬었다 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발을 디딜 땐 통증이 왔다. 새끼발가락과 네 번째발 가락 이 이어지는 부위부터 위아래로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통증은 생각보다 심하게 느껴졌지만 아내에겐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있었다. 아내가 잠시 화장실을 간사이 호주 아저씨와 이야기를 했다. 


"갑자기 발등 쪽이랑 새끼발가락 쪽이 아프네요"

"아프면 더 걷지 말고 여기서 쉬었다가"

"아직 절반밖에 못 왔는걸요?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안돼요"

"그러다 완전히 일정이 끝나는 수가 있으니 그냥 쉬었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방금 전까지 잘 걸어왔는데 왜 갑자기 아픈 건지 모르겠네요"

"몸이 보내는 신호야 그 신호를 무시하면 안 돼"

"아저씨는 아픈 곳 없어요?"

"나는 괜찮아 정말 무리하면 안 돼 적당히 쉬었다가 걷는 게 좋아"


호주 아저씨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왔고, 아내가 오는 바람에 아픈 얘기는 잠시 접어뒀다. 발의 통증 때문에 호주 아저씨를 먼저 보내고 아내와 잠시 더 쉬었다 가려고 했다. 그리고 앉아서 고민을 했다. '계속 더 걸어도 되는 것일까 그냥 아저씨 말대로 여기서 쉬었다 가는 게 나을까?' 혼자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이야기했다. 


"오빠 이제 가자!"


나 때문에 오늘의 목적지를 아내도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통증을 숨긴채 그냥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국 통증 때문에 발걸음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아내가 왜그러냐며 캐물었기에 결국 아내에게 발등 쪽이 아프다고 말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왼쪽 발 발등부터 네 번째 다섯 번째 발가락까지 계속 통증과 발 저림이 지속되었다. 아마도 나의 무거운 무게에 더해 배낭의 무게까지 짊어진 나의 발목 어딘가의 신경이 눌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된다.


괜스레 몸이 아픈 것이 아내에게 미안했다. 걷는 내내 내 컨디션에 맞춰주느냐고 아내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왠지 죄를 지은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내내 항상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저하게 느려진 나의 발걸음 덕분에 아내는 오늘의 목적지인 보야디야에 도착하기 전에 혹시 마을이 나타나면 거기서 머물자 했지만 중간에 마을이 나타나지도 않았을뿐더러 어떻게던 오늘의 목적지에는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오늘 하루 늦어지면 계속 늦어질 것만 같은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메세타 평원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이래서 버스를 타고 가게 되나? 개인적으로는 메세타의 지루함 때문이 아닌 10여 일 이상을 걷게 되며 쌓인 피로도 때문에 점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몸이 불편하니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말수가 줄어듦과 동시에 생각이 많아졌고 생각이 많아짐과 동시에 담배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어느덧 담배를 끊은 지 13일째가 되었다. 당연히 끊었다기보다는 참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담배와 싸우고 있었고, 단지 아내에게 얘기하는 것이 미안해서 더 이상 담배 얘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통증을 참아가며 길을 걷다 보니 결국 오늘도 목적지인 보야디야에 도착 할 수가 있었다. 보야디야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리버드 답게 일찍 출발한 덕분에 알베르게에 도착한 시간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알베르게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몸을 씻고 나와 햇볕을 맞으며 잠시 쉬고 있다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부르고스를 지난 뒤부터 돈을 아끼기로 했던 우리는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저녁보다 저렴한 메뉴를 먹기 위해 마트를 찾았지만 보야디야 역시 조그만 마을이다 보니 마트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걸을 때 아팠던 발의 통증은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사라졌다. 덕분에 보야디야 라는 작은 마을도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한 시간 남짓을 돌아 다닐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또다시 통증이 시작 되었다. 아침과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저녁까지 굶으면 가뜩이나 아픈 몸에 지장이 있을것 같아 발등에 통증에도 불구하고 조금더 싼값에 저녁을 먹기위해 가장 저렴한 Bar 를 찾아 마을을 돌아 다녔지만 보야디야는 워낙 작은 마을 이었기에 길을 걷다 항상 보이는 bar 조차도 없었다. 


결국 오늘은 우리의 계획과 다르게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음식 하는 시간도 없어지고 치우는 시간도 없어져서 조금 더 여유로운 오후를 보낼 수 있다는 좋은 면도 있었다. 


보야디야의 알베르게에는 알베르게 내에 수영장이 있었다. 이틀 전 구입한 패딩을 입어야 하는 추운 날씨가 아직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영장은 운영하지 않고 천 같은 걸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천 같은 것이 시멘트 색깔이었다. 수영장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나는 그 시멘트 같은 바닥에 햇볕이 잘 들어오길래 걸터앉으려고 발을 내디뎠는데 내가 발을 내디딘 곳은 수영장 물을 빼지도 않고 천 같은 걸로 덮어놨었던 곳이었다. 덕분에 나는 한겨울 같이 추운 날씨에 수영장 물에 빠져버렸다. 


첨벙이며 나왔는데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다. 허우적 거리며 수영장에서 나와 들었던 첫번째 생각은 또 미안하다는 생각 이었다. 돈을 아끼기로 했는데 수영장에 빠져버려서 옷이다 젖어버렸기에 씻고 나와 갈아입은 옷을 또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따뜻한 날씨의 햇볕이 좋은 날은 그날 입었던 옷을 손빨래해서 햇볕에 널어두면 금방 마르지만 날이 추워 빨래가 안마를것 같기도 했고 엊그제 구입한 경량패딩을 입고 물에 빠져 버렸었기에 세탁기 와 건조기를 이용 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 않았던 세탁기와 건조기 6유로의 지출이 발생해 버렸다.


부르고스를 지나며 금전적인 이유로 한바탕 눈물 파티를 연 다음부터는 돈을 아끼기 위해 가급적 손빨래를 하고 세탁기와 건조기는 최대 3일에 한 번만 이용 하기로 했는데 어제 온타나스에서 너무 피곤해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했고, 오늘은 속옷만 손빨래를 하기로 했었다. 


나 때문에 패딩을 샀는데 나 때문에 또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려야 했다. 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남들의 비웃음은 아무렇지 않았는데 나때문에 쓸때없는 지출이 계속 되는 것에 아내에게 매우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결국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렸다. 알베르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스위밍 맨'이라고 했다. 그들은 웃자고 농담한 것이고 평소 같으면 나도 웃어넘길 수 있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너무 기분이 좋지 못했다. 

문제의 수영장 내가 빠지기전에는 물기 하나 없는 마른 바닥이었다.

덕분에 오늘 오후는 우리에게 꽤나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평소처럼 장을 볼 필요도 없었고, 저녁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빨래도 세탁기가 다 해주니 그저 누워서 시에스타를 즐기고, 아내와 수다를 떠들고 주변에 다른 순례객들과 눈인사를 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니 어느새 내 기분도 안정되고 내 발의 통증도 사라진 듯했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저녁은 그날 알베르게에 묵는 대부분의 순례객이 다 같이 모여서 먹는 자리였다. 물론 장소가 조금씩은 구분이 되어 있다. 호주 아저씨도 흰머리 아저씨도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지만 저녁식사 자리는 멀리 떨어져 앉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부르고스에서 우리와 자리를 바꿔주었던 브라질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브라질 아저씨는 포르투갈 어 를 사용한다. 영어도 아니고 스페인어도 아니고 (물론 스페인어도 1도 모른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니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뭐라 뭐라 하는데 손짓 발짓이 안 통한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구글 번역기로 소통을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구글 번역기의 효능이 좋다. 포르투갈어와 한국어가 휴대폰 하나를 두고 소통이 되기 시작했다. 정말 여행을 하면서 언어가 안되면 너무 힘들 줄 알았는데 닥치니깐 다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배낭여행이라는 건 해본 적이 없어 처음엔 안 해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걱정됐었는데 해보니깐 다 되고 지금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붙어버렸다. 


"물에 빠진 건 괜찮아?"

"네 괜찮아요 물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래 그럴 수 있어"

"아저씨 부르고스에서 고마웠어요"

"ardorable couple"


물에 빠진 나를 모두가 비웃는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브라질 아저씨의 괜찮냐는 한마디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줬다. 수영장에 빠지면서 놀림감이 되어버려 기분도 좋지 않았고, 쓸 때 없이 예상하지 않았던 지출까지 해버린 바람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여러 순례자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특히나 브라질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함께 나누면서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메뉴를 먹으니 당연히 물 또는 와인이 공짜였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물대신 와인을 마시는데 옆에 앉은 브라질 아저씨가 알고 보니 술고래였다. 잔을 비우기 무섭게 잔을 채워줬고 급기야는 옆 테이블에 남은 와인을 가져와 마셨다. 아내도 나도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데 브라질 아저씨가 주는 와인은 거절하기도 뭐하고 홀짝홀짝 주는 대로 받아 마셨더니 거나하게 취해버려 일찍 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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