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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Apr 03. 2024

day13 부르고스-온타나스

스파게티 라면은 맛이 없어요

산티아고 순례길 13일차 (부르고스 - 온타나스)


부르고스에서 온타나스까지의 거리는 32Km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까미노 길을 걷기 시작한 뒤로 가장 긴 거리를 걷는 날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인 부르고스를 조금 더 관광 하거나, 그간의 여정에 지친몸을 달래기 위해 위해 부르고스에서 하루 더 머물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그럴 수 가 없었다. 어제 경량 패딩에 거금을 쏟아부은 우리는 부르고스 에서의 관광과 쉼 이 사치 라고 생각 되었기 때문에 오늘도 어김없이 온타나스를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부르고스는 대도시인 만큼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 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날씨는 어제만큼이나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추운 날씨 였다. 쓸때 없는 지출이 었다고 생각했던 패딩 장만이 정말이지 천만 다행 이라고 생각 되었다. 부르고스라는 대도시를 빠져나갈 때 날씨는 까미노 길을 걷는 기간 중 가장 추운 날씨였다. 패딩을 입고 장갑을 낀 것도 모자라 바지도 두 개씩 껴입고 길을 걸었음에도 어제 얼어버린 허벅지는 화끈거리며 너무나 아팠고 칼바람이 부는 황량한 벌판을 걸을 땐 한걸음 한걸음이 엄청 고통 스럽게 느껴졌다. 새벽이라 추울 것이라며 낮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 했지만 해가 높이 뜬 낮이 되어도 날씨가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부르고스를 빠져나올 때 우리 앞에는 한 동양인 부부가 걷고 있었다. 외형이 한국사람 같아 보였는데 그간 길에서 본적이 없었던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우리보다 하루 먼저 부르고스에 도착해서 부르고스에서 1박을 더 한 사람 들 일것이라고 생각하며 걸어갔다. 동양인 부부 보다는 우리의 걷는 속도가 조금 더 빠른 편이었기에 앞서 나가는 동양인 부부를 마주칠 때 너무나도 한국인 스러웠던 그들의 모습과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이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지만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LA에서 왔고 한국말은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이들을 LA부부라 칭했고 LA부부는 우리처럼 얼리버드 였다. 걷는 패턴이 비슷한 덕분에 매일 같이 길에서 LA부부를 만날 수 있었고 이날부터 레온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같은 길을 걷고 같읕 풍경을 보면서 마주칠때마다 부엔 까미노 라는 인사를 주고 받게 되었다. 

부르고스를 빠져나오면서 또다시 자연과 함께한다.

까미노 들은 길을 걷다가 시간상의 이유라던가, 체력적인 이유라던가, 금전적인 이유 기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일부 구간을 걷지 않고 버스나 차량으로 이동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렇게 걷지 않고 차량을 이용하는 것을 "점프"라고 칭한다. 그리고 오늘 걷는 길부터 앞으로 도착할 레온이라는 곳까지는 메세타 평원이라는 곳 이기도 하다. 메세타 평원은 지평선이 보이는 끝없는 평지를 며칠간 걸어야 하는 코스여서 매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 길이 지겨워 버스로 "점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구간 이기도 하다. 


한국을 떠나와서 타지에서 생활한 지 20여 일이 지나가고 있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지도 10여 일을 훌쩍 넘어가던 때였기에 나도 아내도 모두 육체적으로 상당히 피로한 상태였다. 다행히 아내의 사타구니는 어느덧 안 아프게 되었지만 피로가 쌓인것 때문인지 부르고스를 벗어나는 시점 부터 나는 발바닥과 발목 쪽이 매우 아팠었다.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게 아직도 한참 남았었기에 아내와 나도 점프를 뛸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을 보면서 아내와 이야기했다.


"여보 여기서부터 레온까지 앞으로 한 일주일 정도는 맨날 똑같은 풍경이래"

"나도 그렇게 본 것 같아 끝이 없어 보이네"

"점프를 뛰면 일주일 정도 시간이 남을 것 같네"

"산티아고 여행 뒤에 세비야나 그라나다 쪽 여행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그라나다 되게 좋데"

"우린 여행을 온 건데 꼭 순례길만이 여행이 아니잖아?"


아내도 나도 점프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누가 먼저 나서서 "그럼 우리 점프 하자" 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냥 걸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무의미한 대화만 오고 갔던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까미노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걸었던 곳은 바로 이 메세타 평원 구간이다. 매일매일 똑같이 지루한 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루함이 아닌 아름다움이었다. 


누군가 점프를 뛴다고 하면 그건 몸이 힘들어서 그러고 싶은 것이지 실제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은 메세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움이 익숙해져 지루함이 되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실없는 대화를 하며 그저 묵묵히 걸었다. 날이 추워 오들 오들 떨면서도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도 가장 많이 찍은 구간이었다. 

메세타 평원에서는 숨어있던 마을이 갑자기 나타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기 시작한 지 13일째 그리고 금연을 시작한 지 12일째이다. 에스떼야에서 심각하게 담배와 관한 이야기를 한 뒤로 어느덧 나는 아내에게 담배 이야기를 잘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때까지도 담배 생각이 간절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 기분을 내세워 아내의 즐거운 여행을 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는 금전적인 이유도 금연을 하는데 있어 단단히 한몫 하게 된것 같다. 


담배 이야기를 안 하면서 우리는 다른 여러 가지의 주제들로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시기여서 정치 얘기도 많이 했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행을 떠났던 것이었기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던것 같다. 세부적으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내와 내가 조금 더 깊어지고 진해질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32Km! 평소보다 긴 구간을 걸었던 탓이었는지 온타나스에 도착하기 2Km 정도를 남겨둔 상황에서 눈앞에 마을이 보이는데 아내가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며 또다시 길바닥에 누워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하긴 평소 같으면 벌써 도착해서 씻고 나왔을 시간 이었다. 날이 추워 몸을 덜덜 떨면서 걸었기에 더욱더 지쳤을 것이었다. 우리는 보통 1~2시에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했는데 시간은 이미 3시가 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2km 정도를 더 걸어가야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었는데 그 2km를 못걷고 또다시 길에 멈춰 서야 했다.  


여기서 30분만 더 가면 도착한다며 조금만 더 힘내 보자고 했지만 아내는 도저히 더이상 못 걷겠다고 말을 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선 같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내는 언젠가 처럼 눈을 감고 누워서 미동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며 걱정을 하며 나 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에 괜시래 마음이 미안해졌다. 그렇게 10여분을 길에 누워있던 아내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다시 일어섰지만 걷는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져 버렸다.  2km의 거리를 한시간동안 걸어가며 온타나스에 간신히 도착 했을땐 몸이 너무 지쳐 있었다.  


온타나스 알베르게에서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호주 아저씨(한국인)를 만났다. 호주 아저씨는 한국인인데 호주에 산다고 해서 호주 아저씨라 불렀다. 호주아저씨는 우리보다 하루빨리 부르고스에 도착해서 부르고스에서 2박을 하고 왔다고 했다. 생장에서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넘어가던 첫날 인사 했던 아저씨 였는데 처음부터 잘 걸었었기에 길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지 않았었다. 한동안 안보이던 아저씨를 오늘에서야 만났는데 역시나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참 반가운 사람 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알베르게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아저씨는 자기 영어 이름이 제임스이고 산티아고의 미국 이름이 제임스라고 하면서 본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산티아고, 성야곱, 제임스 전부 같은 이름인데 국가별로 불리는 게 달랐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만 하면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의미를 갖고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타나스는 작은 마을이라 마트 같은 건 없었다. 알베르게에서는 bar를 함께 운영하고,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이 bar에서 저녁을 사 먹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긴축정책이 필요했기에 어제의 계획대로 40유로 미만의 지출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사 먹을 수는 없었다. 하루가 고되어 편하게 음식을 사 먹었으면 좋았겠지만 금전적인 이유로 오늘 저녁은 만들어 먹어 보기로 했다. 


날이 너무 추워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는 아내를 위해 우리는 스파게티 라면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우리에겐 그간 저녁에 음식을 만들어 먹을때 구입했다가 남아서 들고 다녔던 스파게티면이 조금 있었고,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왔던 라면수프가 있었기에 둘을 조합해서 스파게티 라면을 만들어 먹는다면 돈을 하나도 안 쓰고 저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맛있는 라면이 여기서 맛이 없을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 했었다.


하지만 생각 과는 다르게 스파게티면과 라면수프의 조합은 정말 맛이 없었다. 괜찮을 것 같다는 나의 판단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우리가 순례를 하러 고행의 길을 온 것도 아니고, 서로가 즐겁자며 여행을 하러 왔는데 이렇게 춥고 힘들었던 날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음식을 먹는다니 속으로는 화가 났고, 아내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드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맛없는 스파게티 라면을 허기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먹으면서 어린애 마냥 아내에게 맛이 없다며 투정을 부렸다. 그런 나를 보며 아내는 "오빠 생각보다 너무 맛있다. 따뜻해서 너무 좋다" 라며 맛있게 잘도 먹었다. 


훗날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나서 이곳을 추억할 때 아내는 사실 정말 맛이 없었다고 사실을 고했다. 이날도 아내는 나를 위한 거짓말을 하며 나에게 배려 해준 것이었다.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정말 맛이 하나도 없는 최악의 음식 이었지만 아내는 지금의 상황을 또 내가 미안해 할까봐 정말 맛있게도 먹어주었다. 정말이지 고마운 사람이다.  


저녁을 먹고 좀 쉬다 보니 언제 힘들었냐는 듯 다시 밖에 나가고 싶어 좀이 쑤셨다. 마을을 구경 하자며 밖으로 나왔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사진 찍기에 재미 들인 우리는 다양한 포즈로 여러 컷 사진을 찍고 만족해하면서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내일은 오늘보다 춥지 않기를,, 그리고 내일은 마트가 있는 마을이어서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며 오늘 하루도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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