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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Apr 02. 2024

day12 아헤스-부르고스

잊지 못할 눈물 

산티아고 순례길 12일차 (아헤스-부르고스)


아침부터 날이 너무 추웠다. 해도 안 뜨고 바람도 많이 불어 왔다. 어제 그제 비가 와서 그런 건지 바람이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아내는 경량 패딩을 가져와서 입었는데 나는 서울에서 짐을 쌀 때 마지막 순간에 경량 패딩을 빼버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할 때 모든 사람들이 배낭의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이라고 말한다. 당연한 것이 배낭을 짊어지고 800Km을 걷는데 정말 종이 한 장까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짐 을 싸며 아내와 이야기 했었다. 


"여보 우리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경량 패딩 필요할까?"

"오빠는 더위는 못 참아도 추위는 잘 참잖아"

"그렇지? 경량 패딩 필요 없겠지?"

"4~5월인데 뭐 필요 없지"


서울에서 생각했던 것 과는 다르게 비가온 다음날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날씨는 정말 너무나도 추웠다. 아내는 자신이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해서 안 가져온 경량 패딩 때문에 아침부터 너무 미안해 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오들 오들 떨면서 길을 걸었다. 몸이 얼어 걷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 상태였다. 어제 만난 아만다는 양말을 손에 끼고 새로 장만한 장갑이라며 넉살을 떨고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해가 뜨면 곧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하며 길을 걸으면서 감자칩을 뜯어먹었다. 맨손으로 먹는 감자칩 덕분에 장감을 안낀손이 엄청 시렸지만 입의 즐거움이 손시려움을 이겨냈다. 

길을 가다 만난 양때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첫 번째 마을 BAR에서 몸도 녹일 겸 아침을 먹기로 했다. 무슨 빵인지 모르는 빵을 하나 구매했고 날이 너무 추워 따뜻한 초코라떼를 한잔 시켜 마셔봤다. 그동안 항상 오렌지 주스나 까페콘레체만 마시다가 처음으로 초코라떼를 마셔보았다. 카페 콘레체를 마실까 했지만 초코라떼의 달달함과 따뜻함이 필요한 날씨였다. 뭔지도 모르고 주문했던 빵은 참치가 들어간 빵이었다. 어쩐지 빵값이 조금 비싸다 했는데 포만감은 최고였다. 초코 라테와 따뜻하게 데운 참치빵을 먹으니 속이 든든 해져서 몸도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bar 에서 몸을 조금 녹이고 속을 든든히 채우고 길을 다시 걸었다. 하지만 다시 길을 걷다보니 해가높게 떳음에도 날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아헤스를 출발해 부르고스를 가는 길은 정말이지 추웠던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 산길과 흙길을 지나쳐 대도시인 부르고스를 가는 동안에는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걷게 되는데 그때는 바람을 막아주는 건물도 나무도 없었기에 칼바람을 정통으로 맞아야 했고 추운날씨에 불었던 바람은 살이 에이는 느낌을 주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부르고스는 오랜만에 만나는 대도시 이다. 그것도 그간 만났던 팜플로냐, 로그로뇨 정도의 대도시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대도시 이다. 그리고 역시나 대도시에서는 대부분의 길이 아스팔트와 돌길이었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흙길, 산길을 걸을 땐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는데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을 걸을 땐 발바닥이 아팠다.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부르고스는 대도시 답게 도시 초입 부터 다양한 버스들이 눈앞에 지나 다니고 있었다. 알베르게가 있는 도시의 중심부 까지는 앞으로도 꽤 걸어가야 했는데 발바닥도 아프고 날도 너무 추워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 했다. 실제로 눈앞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꽤많은 순례객들이 이 길을 버스로이동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보 저 앞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타면 알베르게 까지 15분이면 도착하는데?"

"걸어가면 얼마나 걸리는데?"

"안 쉬고 가면 2시간 쉬고 가면 2시간 반"

"버스비는 얼마나 하는데?"

"1유로"


내가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에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던지는 순간에도 몇몇 순례객들이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순례객들처럼 나도 버스를 타고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사실 일부 구간들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순례객들이 꽤 많은 편이다. 도시에서 다음 도시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를 점프 뛴다고 하는데 고작 15분 정도를 점프 뛰는 것은 점프 축에도 못끼는 편이다. 


앞으로 최소 두 시간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도시 중심에 있는 알베르게를 버스를 타면 15분 이 면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구글맵을 통해서 확인하기도 했고, 마침 도시로 들어와 걷는 길의 환경이 바뀌어 발바닥도 아프고, 날도 너무 추워서 살이 에이는 기분이 들었던 상황에서 버스가 주는 그 유혹이 정말 엄청 났다. 


그런데 무언가 버스를 타면 반칙을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버스가 주는 유혹을 꾹 참고 다시 길을 걸어 나갔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은 있었겠지만 내가 말했던 버스 얘기에 어느 정도 반응만 할뿐 막상 버스를 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은근히 마음속으로는 아내가 힘들다고 버스 타고 가자는 말을 해줬음 하는 바람도 있었다. 

눈앞에 버스가 보인다.

길을 걷다 보니 맥도날드가 보인다. 쫌더 길을 걸으니 버거킹이 보인다. 진짜 사람 사는 동네에 온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길을 계속 걸어 나가다 보니 두시간이 지나자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도 결국 시간이 고통을 해결해주었다. 부르고스의 알베르게는 스페인의 3대 성당 중 하나인 부르고스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알베르게였다.  


부르고스 알베르게는 공립알베르게 였는데 도착해서보니 호스트가 직접 베드를 배정해주는 형태였다. 헌데 우리는 젊다는 이유로 두 명 다 2층침대로 배정을 받았다. 보통은 일행끼리 1층 2층을 같이 배정해주었는데 오늘은 둘 다 2층에 배정 받아서 배드가 있는곳에 와서 확인해보니 둘의 자리도 매우 떨어져 있었다. 호스트에게 가까운 위치를 주거나 우리 둘이 1,2층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1층침대는 노약자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며 완강하게 거절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배정받은 배드로 다시 와보니 내 자리 밑에 그동안 길에서 몇 번 봤던 브라질 아저씨가 있었다. 브라질 아저씨는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았는데 1층에 배정 받았다. 혹시나 싶어 나의 일행이 저쪽 다른 쪽 배드에 배정받았는데 자리를 바꿔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브라질 아저씨는 흔쾌히 자리를 바꿔 주었다. 바뀐 배드가 2층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아저씨는 "너희는 아름다운 커플이니 함께 있어야 해" 라며 오히려 너희 둘이 함께 할 수 있게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했었다. 정말 감사한 분이다. 


짐 정리를 마치고 샤워를 하며 보니 허벅지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아침부터 너무 추웠고 세찬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걸어오면서 굵은 내 다리가 모진 바람을 다 맞았는지 동상이 걸려 버렸던 것 이었다. 허벅지는 매우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나는 마치 훈장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리가 이렇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타지 않고 온전히 길을 걸어온 내가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에게 다리를 보여주니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당장 밖에 나가서 보온 용품을 사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괜찮다고 했다. 아내는 한국에서 짐을 쌀 때 자기가 무거운데 패딩 빼자고 했던 말 때문에 내가 추워한다고 너무 미안해했지만 별반 도리가 없었다. 


알베르게에서 신변 정리를 하고 잠시간의 휴식을 마치고는 또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부르고스를 구경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는 부르고스 성당은 지금까지 본 성당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르고스 성당은 스페인 3대 성당 중 한 곳이라고 했다. 성당에 들어가 보려 했는데 성당 관람에 입장료가 있다고 했다. "순례자들에게는 할인된 금액으로 1인당 6유로" 아내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저 안에는 볼 게 없을 거라고 최면을 걸며 그냥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부르고스 성당을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도시 자체가 워낙 큰 도시였기에 다른 볼거리가 꽤나 많이 있는 곳이었다. 사실 그동안 만났던 마을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전부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고, 그동안 대도시라고 봐왔던 팜플로나, 로그로뇨와는 비할바 안되게 더 큰 도시였기 때문에 오랜 만에 만나는 문명의 모습에 이곳저곳 으로 눈이 돌아갔다. 그렇게 눈을 돌리며 부르고스 시내를 구경하다보니 스페인의 한 스파 브랜드에서 경량 패딩 29.99유로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던 아내는 저렴한 가격이니 패딩을 하나 사서 입으라고 한다.  


"저기서 오빠 패딩 하나 사자" 

"아냐 오늘만 추웠지 내일부터는 더워질 수도 있잖아"

"아냐 그래도 저기서 패딩 하나 사자 가격도 저렴하잖아"

"그런데 패딩 샀다 더워지면 그냥 무거운 짐덩어리가 돼버리잖아"

"그럼 다음 순례자들을 위해 기부하고 오면 되지"


자금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아내는 계속 패딩을 사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못 이기는 척 매장 안에 들어가서 패딩을 입어봤다. 생각보다 사이즈도 잘 맞고 따뜻했다. 오늘 오는 길이 너무 추웠기에 사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금전적인 이유로 사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매장 안에서 옷이 안 예쁘다. 사이즈가 잘 안 맞는다. 등의 핑계를 대가며 패딩 사는 것을 거절했지만, 내 허벅지를 보며 충격받은 아내는 완강했다. 사실 나도 오늘 하루가 너무나도 추웠었기에 하나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 29.99유로 지출!! 한 푼 한 푼이 소중했던 시간인데 거금을 지출한걸 보니 아마 꽤나 춥긴 추웠나 보다. 


그렇게 옷을 사서 매장에서 나오기 무섭게 당장 상표를 떼고 패딩을 입고 걸어 다녔다. 낮시간에도 쌀쌀했던 이날은 대부분의 스페인 현지 사람들도 패딩과 코트를 입고 길을 걷고 있었다. 도시 구경을 할 때도 계속 추웠었는데 작은 옷 한 벌이 주는 따뜻함이 너무나 좋았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여전히 디자인이 안 예쁘다며 툴툴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거금 아닌 거금을 쓴 미안함 의 잘못된 표현이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부르고스를 어느정도 구경하고 알베르게에 돌아 왔다. 우리 침대 자리는 벽 쪽에 붙어 있어서 나름의 보안(?)이 유지되는 자리였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남은 돈을 전부 꺼내 봤다. 남은 돈을 다 꺼내서 계산을 해보니 둘이서 하루에 30유로 미만을 지출해야 산티아고 까지 갈 수 있는 상황 이었다. 좀 추워도 참았어야 했는데 29.99유로를 주고 패딩을 산것이 큰 파장을 일으킨 것만 같았다. 


보통 알베르게의 숙박비는 5~10유로 정도이니 우리 둘의 숙박비를 빼면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10유로 정도밖에 안되는 상황이었다. 길을 걷다 bar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에 1~2유로, 물한병에 1~2유로, 주스 한잔에 1~2유로 어쩌다 빵이라도 먹으면 1~2유로 추가 점심 저녁은 사 먹을 수조차 없었으며 1인당 10~15유로 정도 하는 순례자 메뉴 같은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안 쓰고 3일을 굶어야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혼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물었다. 


"오빠 뭘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어"

"여보 돈이 조금 부족할 것 같아"

"응? 돈이 왜 부족해?"

"아무래도 패딩 환불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환불하러 갈까?"

"안돼 날이 너무 추워 돈이 부족해도 얼어 죽진 말아야지"


돈이 너무 부족한데 나 때문에 쓸때 없는 지출을 한 것 같아 너무 미안 했다. 내가 춥다는 소리만 안 했어도 그리고 시뻘겋게 변해버린 허벅지를 훈장처럼 보여주지만 않았어도 됐었는데... 처음부터 준비해 올 때 계산을 잘해서 환전을 해왔으면 됐을 텐데 하면서 미안했다. 그런데 아내가 오빠 지금 남은 돈이 얼마지? 그러면서 갑자기 계산을 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점심 저녁은 항상 마트에서 사서 만들어 먹고 알베르게는 7유로 이하의 공립 알베르게에만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bar에서 주스나 빵 사달라고 안 할게 라며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토닥여줬다. 


순간적으로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아니면 고마웠는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또르륵 흐르던 눈물은 겉잡을수 없이 번지게 되어 어느새 어린애처럼 펑펑 울게 되 버렸다. 아내는 오빠 왜 그러냐며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는데 그 말이 눈물을 더흐르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 이후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처음인 것 같았다. 정말 억지로 감정을 추슬러 가며 침대에 누워 등을 돌리고 혼자 감정을 식혔는데 아내는 훌쩍 거리는 내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6유로가 없어서 구경하지 못했던 부르고스 대성당

우선은 아내와 둘이 아껴 쓰되 돈이 다 떨어지면 그땐 atm기에서 돈을 뽑아 쓰자고 하며 상황을 마무리 했다. 하지만 아내는 몰랐다. 통장 잔고에는 우리가 돈을 뽑아 쓸 만큼 여윳돈이 많지 않았다. 정말 돌아가서 얼마간 생활해야 할 돈 일부를 남겨놓고 모든 걸 쏟아부은 여행이었다. 우리는 둘 다 직장을 퇴사하고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계획 했었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갖고 여행을 준비 하면서 일부 돈은 한국에 돌아가서 써야하는돈, 또 우리가 한국에 없어도 필요한 공과금등 만 남겨놓고 여행을 시작 했기에 정말 지금 남아 있는돈 말고는 뽑아 쓸만한 여윳돈이 없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쓸 돈과 빠져나가야 할 공과금 다녀와서 사용할 돈 정도는 남겨놨었지만 불의에 사고에 대비하는 비상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로 여행을 떠났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ATM기에서 돈을 뽑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바탕 소란을 피웠던 게 미안해서 우선은 ATM기 에서 돈 뽑으면 된다고 하며 애써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마무리 지었지만 가급적이면 이제 30유로 미만으로 하루를 버텨보자 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앞으로 일어날일을 걱정하면서 눈물을 삼키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우리에게 부르고스에서의 눈물바람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평생 추억이 되어 계속 우리들의 이야깃거리로 함께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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