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미남편 Apr 16. 2024

day15 보야디야-까리온데로스콘데스

산티아고 순례길 15일차 (보야디야-까리온 데 로스콘데스)


산티아고 순례길 에는 북쪽 길, 포르투갈 길, 마드리드 길 등 여러 가지 루트가 있지만 우리가 걷고있는 프랑스 길이 가장 대중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걷는 루트이다. 프랑스길은 프랑스의 생장부터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km 나 되는 길이지만 대부분 순례자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에 다 걷는 쪽을 선택해서 여행을 한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구간을 나눠서 걷는 사람들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고, 중간중간 점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개인의 체력과 일정에 따라 걷는 거리를 조절 하고 중간 중간 걷지 않고 쉬는날을 넣어 길을 걷기도 한다.


보름 이라는 기간동안 쉬지 않고 길을 걷다 보니 우리에게도 휴식이 필요한 시기가 필요했을텐데 아마도 이 메세타 평원을 걷고 있는 동안이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메세타 평원에서 아내는 길을 가다 더 이상 못 걷는다고 길거리에 그대로 주저 앉아 뻗었었고, 하루를 마무리 하고 휴식을 제공해줄 알베르게를 구하지 못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으며, 수영장에 빠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발등 쪽이 아프다고 몸에서 신호를 보내 왔었고, 부르고스를 거쳐 오는동안에는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까지 연출 되기도 했다. 최근 며칠간이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오늘은 그야말로 고난의 정점을 찍었던 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시작은 아주 순조로웠다. 보야디야를 출발해 가장 먼저 도착한 마을인 프로미스타 라는 마을 까지는 말이다. 프로미스타는 부르고스나 팜플로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메세타 에서 볼 수 있는 나름은 큰 규모의 도시 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제 묵었던 보야디야 가 아닌 프로미스타에서 1박을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는 경우가 많다. 보야디야 에서 5km 정도 떨어진 프로미스타 까지 가는 길에는 길을 걷는 코스 옆으로 운하가 있었고 우리가 운하 옆을 걸을때 쯔음에는 비가 한두 방울씩 내려 운하와 어우러 지는 모습이 꽤나 운치있는 모습이었다.  


한 두 방울씩 내리는 비는 곧 조금씩 강도가 세졌기 때문에 우선은 재정비도 하고 아침도 먹을겸 프로미스타 초입에 있는 bar에 들어갔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임에도 조금 걸었던 탓인지 배가고파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인 또르띠야, 카페 콘레체, 크로와상, 오렌지주스를 먹기로 했다. 또르띠야는 감자를 넣어 만든 계란말이 같은 형식으로 한 끼 식사를 하기에 충분했고 카페 콘레체는 부족한 카페인을 채우기에 역시나 충분했다. 어느덧 얼죽아 였던 내가 스페인의 카페콘레체에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bar에서 아침을 먹고 나서는 비 오는 날씨를 미쳐 대응하지 못했던 채비를 새로이 했다. 비가와서 추워진 탓에 배낭속에 넣었던 부르고스에서 구입한 패딩을 꺼내 입고 우의를 꺼내 입고 있었다. 사치라고 생각했던 패딩은 톡톡하게 효자노릇을 했다. 휴식을 조금더 취하자 곧 흰머리 아저씨와 아만다가 bar에 들어왔다. 아만다는 '테러블 웨더' 라고 하며 한숨을 푹푹 쉬어 댔다. 채비를 마친 우리는 그들을 뒤로하고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먼저 길을 나섰다. 


우의 안에 경량 패딩을 입은 것 때문인지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 금방 몸이 더워졌다. 그래서 길가에 있는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패딩을 꺼내 다시 배낭을 쌌다가 이번에는 또 얼마 못가 금방 추워졌다는 느낌을 받아서 다시 패딩을 꺼내 입는 바람에 흰머리 아저씨와 아만다 일행이 채비를 다시하고 있는 우리 옆을 추월해서 지나쳐갔다. 


프로미스타를 빠져나올 때 처음과는 다르게 부슬비는 장대비로 변했고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포장된 도로를 걷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길이 진흙탕이 되어 버린다. 진흙탕이 되어 버린 길은 이전에 토산토스 에서 아헤스로 가는 길에도 한번 겪어 보았는데 오늘은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서 걷는길이 쉽지 않았다. 신발은 진흙이 엉겨부터 무거워져서 걷기가 힘들어졌고 비가 오면서 날씨도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무거운 신발을 이끌고 걷다가 bar 가 나올 때마다 채비를 다시 했다.


다행인지 오늘은 지난번처럼 12km 동안 bar가 없는 구간은 아니었다. 1시간 정도를 걸으면 어느새 bar가 하나씩 나타났었는데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음에도 몸을 녹이고 채비를 다시 해야 했기 때문에 보이는 bar 마다 들어가서 쉬다 걷도록 일정을 소화했다. 처음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었고 비가 많이와 휴대폰으로 위치나 다음 bar 의 정보를 미리 알수 없었기에 지금 지나치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 bar 를 그냥 지나 칠수는 없었다. 


어느덧 프로미스타 bar 이후로 세 번째 bar에 들어오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목적지 까지 1번 정도 들르고 많이 들러봐야 두번정도 들렀을 bar를 벌써 4번째 들리는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부터 오늘의 목적지인 까리온데로스콘데스 까지는 5Km 정도의 거리만 남아 있었다. 날씨가 너무 안좋아서 아내도 나도 많이 지쳤고 이곳에서 그냥 오늘 하루 쉬고 내일을 준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bar의 주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비가 많이 오는데 이 마을에서 묵는 건 어때?"

"그러게 비가 정말 많이 오네 우리 정말 많이 지쳤어."

"마침 내가 알베르게도 운영하고 있으니 여기서 쉬고 내일 가도록 해"

"알베르게 숙박비는 얼마야?"

"10유로 비 오는 날은 일찍 마감되니 서둘러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아내와 잠시간 고민을 하고 창밖을 보니 어느덧 비가 조금 그쳐 가고 해가 나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목적지까지 5km 밖에 안남기도 했었고 일찍 출발한 덕에 시간은 아직 1시도 채 되지 않은 상황 이었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무엇보다 10유로 라는 금액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게다가 가만히 두면 우리가 알아서 생각할 것을 알베르게 호스트의 끈질긴 호객행위가 오히려 우리를 다시걷게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 마지막 5Km는 마의 1시간 답게 우리가 산티아고를 걷는 날 중 가장 힘든 날을 만들어줬다. 잠시 좋아졌던 날씨는 우리가 딱 50m를 걷자마자 다시 폭우를 쏟아냈고 비와 더불어 날이 추워 우박이 함께 내렸다. 우박은 우의에 패딩까지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맞을 때 몸이 아플 정도였다. 게다가 바람까지 태풍처럼 불었는데 입고 있는 우의가 펄럭 펄럭 거려서 우의를 입고 있는게 무의미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순간의 선택이 최악의 환경에서 길을 걷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해 버렸다. 


비바람이 너무 거샜기에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나는 조금이나마 비바람을 막기 위해 앞장서서 걸었고 그런 나를 바람막이 삼아 아내가 내뒤를 바짝 달라붙어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5분 걷고 뒤를 보면 아내가 저만큼 멀어져 있었고 잠시 기다렸다 다시 아내를 뒤에 두고 걷다 또 5분이 지나면 아내는 또다시 멀어져 있었다. 진흙으로 뒤엉킨 신발은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졌고, 바람이 안 통하는 우의를 입었음에도 날이 너무 추웠다. 우박과 비를 맞으며 한발 한발 내디딜 땐 이전 마을에서 쉬고 올걸 하는 후회가 막심했다. 


정말 지금까지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날 중에 최악의 환경에서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서 아내가 길가에 누웠을 때도, 부르고스에서 추워서 허벅지에 동상이 걸렸을 때도, 이 날의 강풍과 폭우는 비교할 것이 못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만이 살길이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발이 다 젖은 상태에서 강풍이 불었기에 발이얼어 동상에 걸릴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내리는 폭우에 시야도 확보가 잘 안되고 바람에 우의는 이리저리 펄럭거려서 단단히 붙잡고 걸어야 했는데 내 몸하나 지탱하며 걷기 힘든데 펄럭이는 우의에 무거운 배낭까지 짊어지고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마지막 bar에서 까리온 까지는 5Km 정도였고 이 구간은 1Km를 걸을 때마다 표지판이 나타났다. 까리온 까지 4Km, 3Km, 2Km, 1Km… 1km를 걸을 때마다 앞으로 얼마의 거리가 남았다는 것을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지 않고도 알수 있었다. 남은거리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보면서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길을 걸었다.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 했고 그저 뒤에 걷고 있는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은 마음뿐 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정말 말 그대로 비바람과 싸워가며 드디어 까리온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우리는 매번 목적지마다 우리가 묵을 알베르게를 정해놓고 움직였었다. 까리온 데 로스콘데스 에는 모든 침대가 1층 침대만 있는 있는 알베르게가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알베르게를 목적지로 정해 두었지만 실상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눈에 보이는 알베르게에 빨리 들어가기 급급 했기에 처음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닌 다른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우연히 들어갔던 알베르게는 우리에게 꽤나 괜찮은 기억을 남겨 줬다. 알베르게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 였고, 도착하자마자 수녀님들이 따뜻한 차와 비스킷을 제공해주어 잠시 목을 녹이며 알아보니 이곳은 공립 알베르게였다.   


알베르게의 시설이 엄청 좋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춥고 힘들었던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알베르게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몸을 녹이고 있자니 그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따뜻한 물의 안락함에 기분 좋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것 과 다르게 아내의 상황은 썩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의 입술은 보라색이 되어 있었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우선 아내를 침낭 속에 눕히고 가지고 있던 옷가지중 비에 젖지 않은 옷가지들을 침낭 속에 넣어 따뜻하게 해주려고 했다. 마침 알베르게에서 담요를 빌려주어 침낭 속에 있는 아내에게 담요까지 덮어 주었다. 


얼굴이 질리고 보라색이된 된 입술을 보여주는 아내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걱정밖에 해줄수 있는게 없었다. 우선 아내를 재우고 나는 홀딱 젖은 옷을 세탁기에 돌렸다. 이로써 3일 연속으로 의도치 않게 세탁기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씨이니 당연히 건조기 까지 돌렸다. 신발은 알베르게 에서 신문지를 줘서 신문지를 뭉쳐 신발 속에 넣어놓고 신문이 젖으면 다시 갈아 끼워 놓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말리는 작업을 했다. 


알베르게에는 세탁기가 1개밖에 없었고 오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탁기를 이용해야 하는 날인데 보통 먼저 온 순서대로 세탁기를 이용했다. 1등의 세탁물은 이미 돌아가고 있었는데 세탁물의 주인은 밸로리였다. 캐나다인 밸로리는 전직 마라톤 선수였고 까미노 길을 누구보다 잘 걷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늘 언제나 유쾌한 웃음으로 인사를 하며 예전부터 함께 걸어왔다. 


그리고 2등은 아만다였다. 아만다와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 항상 1등으로 함께 출발했다. 그리고 언제나 벨로리는 뒤늦게 출발해서 우리를 앞질러 갔다. 벨로리와 아만다와 나는 내 순서가 올 때까지 세탁실에서 3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중간중간 우리는 신발장에 가서 젖은 신문지를 빼고 새로 마른 신문지를 갈아 넣었고 아내가 자고 있는 3층에도 왔다 갔다 하면서 아내의 상황도 살펴 보았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모두 돌리고 자리로 돌아와 옷을 정리할 때 까지도 아내는 일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입술은 보라색이었다. 건조기를 돌려 말린 패딩을 입히고 나도 조금의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다행히도 아내의 얼굴색이 돌아왔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4시가 됐을 무렵 날씨는 거짓말 같이 해가 나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밖을 나가 장을 보려 했지만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모든 마트가 문을 닫았고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저녁은 사 먹어야 했다. 다행이 근처에 체인점으로 보이는 파스타 집이 있어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는 오랜만에 성당에 저녁 미사를 드리러 갔다. 


까리온에 있는 성당은 규모가 꽤 큰 성당이었다. 성당에서는 꽤나 많은 순례자들이 미사를 드리러 왔었고, 걔 중에는 우리 알베르게의 주인인 수녀님들도 있었다. 같이 미사를 드리고 알베르게로 돌아오자 이번엔 알베르게 내에서 또다른 이벤트가 벌어졌다. 


같은 알베르게에 묵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펼쳐졌다. 첫 시작은 수녀님들의 합창이었다. 수녀님들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우리에게 이런저런 노래들을 들려줬다. 그중에 우리는 원곡의 가수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펜타토닉스의 할렐루야라는 곡에 완전히 꽂혀 버렸고 산티아고를 생각하면 가장 떠오르는 노래가 생겨버렸다. 얼마간의 합창이 끝나고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소개하고 왜 까미노에 왔는지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결혼한 지 6개월 된 신혼부부입니다."

"연애기간이 짧았기에 서로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원했고 24시간 같이 할 수 있는 이곳은 최고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남들처럼 거창한 의미를 갖고 이 길에 오르지 않았지만 점점 엄청난 의미를 발견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30년 뒤 우리가 다시 까미노 길에 오를 것을 기대합니다."


이렇게 우리 소개를 마쳤다. 조금 더 유창한 영어실력이었으면 아마 더 잘 설명했겠지만 짧은 영어 실력이라 그러지는 못했다. 다른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저마다 각자의 소중한 의미들을 갖고 이곳을 찾았고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를 함께 나누게 되었다. 비록 오늘 하루종일 걷는 길이 춥고 힘들었지만 같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다. 


먼훗날 30년뒤 우리가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를날을 기약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하루 였다.   

이전 14화 day14 온타나스-보야디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