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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Jul 09. 2024

day35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피스테라

산티아고 순례길 35일차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피스테라)


산티아고!! 그토록 바랬던 산티아고 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지만 우리의 여정은 끝이 나질 않았다. 아직 증명서도 발급받아야 했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의미가 있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지 묵시아도 가보려고 했고 그 옆 세상의 끝이라는 피스테라도 가보려 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미리 끊어둔 비행기표는 돌아가려면 오늘을 포함해 아직 4일의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산티아고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해야만 했었다.  


원래 오늘의 계획은 오랜만에 늦잠을 늘어지도록 자고, 순례 증명서와 거리 증명서를 발급받고, 시간 맞춰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대로 라면 이곳 산티아고부터 걸어서 묵시아에 가려고 했으나 돌아가야할 비행기표의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었거니와 정강이의 상태 때문에 그냥 버스를 타고 묵시아에 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뜬 시간은 6시 30분 이었다. 그동안의 버릇을 한 번에 바꾸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우선 당장 길을 걸을 것이 아니기에 억지로 눈을 감고 조금 더 누워서 시간을 죽여 봤다. 그 침낭 속에서의 시간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달콤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원래 집에서 하는 그것 처럼 오래 하기는 어려웠다 8시까지 간신히 시간을 버티고 나서는 아침을 먹기 위해 어제 미리 마트에서 장을 봐 둔 시리얼과 바나나를 챙겨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우리의 침대가 있던 곳은 건물의 3층 이었고 이 알베르게의 식당은 지하층 이었다. 지하층에서 밥을 먹고 3층의 우리 자리로 올라와서 보니 세상에 30일이 넘도록 한 번도 생기지 않았던 도난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식당으로 내려가기 전에 충전기에 꼽혀 있던 핸드폰을 빼고 보조배터리를 꽂아놓고 내려갔다 왔는데 보조배터리와 충전기를 모두 누가 가져갔던 것이었다. 


그동안은 아무렇게나 배낭을 던져놓고, 현금이며 귀중품이며 아무런 신경도 안 쓰고 다녀도 단 한번도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는데 콘센트에 꼽혀있던 충전기와 보조배터리가 없어진 건 누군가 악의적인 마음으로 가져가 버린 도난 사건 임이 분명 했다. 좋은 기억만 있는 산티아고 여정 에서 처음 맞이한 이 상황이 참 당황스러웠다. 


30명이 넘게 쓰는 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몇 사람 안 남아 있었다. 기분 좋게 밥을 먹고 왔는데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처음 보는 한 외국인이 나타나서는 너도 무엇을 잃어버렸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니깐 자기는 누가 신발을 가져갔다고 하며 양말만 신은 채로 이곳엔 더 이상 묵고 싶지 않다며 신발도 없이 나갈 준비를 하고 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산티아고 에 도착하면 도난 사건을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은 적 이 있었는데 정말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니 참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만약 핸드폰을 분실했다면 그동안 찍은 사진이며 동영상이며 모두 사라졌을 텐데 핸드폰은 챙겨서 내려갔던 게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충전기와 보조배터리 정도의 작다면 아주 작은 도난사건 이었지만 한 달을 넘게 갖고 다녔던 소중한 물건이 사라지니 그리고 당장에 다 필요한 것들이라 기분이 매우 안 좋아졌다. 하지만 누가 가져간 것이 기분 나빠한다고 다시 찾아지지는 않을 것 같아 이내 훌훌 털고 그냥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알베르게 에서의 찜찜함은 잠시 미뤄두고 어제 받지 못한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이른 아침 이었는데도 정말 사람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사무소에서는 언젠가 늘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시애틀에서 온 부녀를 다시 한번 만났다. 오랜만에 본 우리는 무사히 완주를 한 것에 대해 서로를 축하해주었다. 정말 산티아고 순례길은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만남을 하는 것의 연속이었던 곳 같다. 


순례자 증명서를 보며 이 증명서가 뭐라며 이토록 오랜 시간 힘들게 걸어왔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중에 집에 가면 액자를 만들어서 걸어놔야지 하고 생각해봤다. 


증명서를 받고 나와 미사를 드리러 가기 전에 아침에 없어진 충전기와 보조배터리를 다시 구매했다. 오늘로써 여행이 끝나는 게 아니라 순례길을 다 마치면 영국 여행을 더 하기로 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산티아고는 관광지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스페인 물가와 다르게 많은 것들이 비싸져 있었다. 충전기와 보조배터리 역시 생각보다 비싼 금액을 치르면서 아침에 우리 물건을 가져간 도둑놈에게 저주를 한번 퍼부었다. 


순례자들의 마지막 의식과도 같은 대성당에서의 미사는 엄청나게 큰 향을 피우는 행위를 해서 대향로 미사라고도 일컬어진다. 매일 정오에 이뤄지는 대향로 미사를 드리기 위해 아내와 나도 다른사람들과 똑같이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정해진 미사시간 보다 30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어마어마한 인원이 성당 안에 꽉차 있었다. 


수많은 인파덕에 성당을 둘러보긴 어려울 것 같아 빈자리를 잘 찾아서 앉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보니 이번엔 언젠가 나와 함께 다리를 절뚝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덩치 큰 남자를 만났다. 서로 쳐다보자마자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그렇게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며 자리를 잡고 미사를 드리는데 사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내가 느끼기엔 무언가 크게 감동적인 것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까지 큰일 없이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그저 감사해 했다. 미사를 진행하는 수녀님의 목소리가 정말 천상의 목소리 같았고, 향을 피우고 향로를 위아래로 흔들며 날리는 행위는 마치 쇼 같았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고 나와서는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해보았다.


대향로 미사가 끝나고 성당안 이곳 저곳을 아내와 함께 둘러 보고는 이내 성당을 빠져 나와 보니 성당앞 광장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는 더이상 걸을 곳이 없는 여유가 생긴 우리 였기에 계단에 앉아 아내와 함께 공연을 관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공연을 보며 여유를 느끼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아내를 툭툭 치며 놀란 목소리, 그리고 반가운 목소리로 아는 척을 해왔다. 


"헤이! 얼리버드"

"와우 밸로리"

"이게 얼마 만이야 산티아고 언제 도착했어?"

"우린 어제 도착했어 내 발목이 아파서 천천히 걷던 날 기억하지? 그날부터 우린 매우 천천히 걸었어"

"맞아 그건 정말 중요해 나는 4일 전에 도착했어 아만다와 나머지 일행들도 모두 4일 전에 도착했어"

"너희 정말 빨리 걸었구나"

"지금은 나를 제외하곤 모두 돌아갔어 나도 내일 돌아가"

"그래도 돌아가기 전에 이렇게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다. 

"정말 반갑다" 


그동안 보름 넘게 못 봤었기에 간혹 궁금하다 보고 싶다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우리의 산티아고 전우 중 한명인 밸로리를 다시 만나다니 게다가 이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계단 중에서 하필 옆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보고 있을 줄이야... 우리는 서로 한참을 이야기하고는 페이스북 아이디를 교환 했다. 캐나다에서 사는 벨로리와 서울에 사는 우리는 나중에 서로 여행 오면 관광시켜 주기로 약속을 했다. 


밸로리와의 반가운 만남을 뒤로하고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늘의 점심은 어제 반포 아줌마가 장문의 카톡을 보내주면서 추천해 주었던 산티아고 맛집이었다. 다행인지 우리는 반포아줌마가 소개해준 식당을 바로 찾을 수 있었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 식당을 향해 들어갔다. 처음에 들어갈 때는 무언가 고급 레스토랑 같은 느낌에 비싸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무사히 걸어온 아내와 나를 위해 이 정도도 못써? 하면서 맛있게 점심을 먹기로 했고 반포아줌마의 추천은 더할나위가 없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온 뒤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산티아고에만 계속 머물기 보다는 근처의 다른 지역을 관광 하기로 의견을 통일 했다. 산티아고 에서 가장 유명한 근교 지역은 성모마리아의 발현지 인 묵시아 라는 곳이 있었고, 스페인의 끝이자 유럽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해 0km 표시석이 있는 피스테라가 있었다. 피스테라는 세상의 끝 이라고도 불리는 의미가 있는 지역 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남은 3박4일간의 일정을 산티아고 시내를 관광하기 보다는 묵시아와 피스테라에서 보내기로 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계획할때 부터 묵시아 피스테라는 가보려고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걷는속도가 느려지고 하루간 걸어야할 거리를 이틀에 나눠 걷기 시작 하면서 산티아고 까지만 무사히 완주 하자 라는 생각으로 계획을 수정한 터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산티아고 에서 시간이 남는 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묵시아와 피스테라도 일정에 우겨 넣어 보았다.


최초 산티아고 순례길 계획을 세울 때는 묵시아와 피스테라도 걸어가는 것을 생각 하였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걷는 속도가 많이 쳐졌고 거리를 많이 나눠 오는 바람에 산티아고 내에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고, 다리의 컨디션도 워낙에 좋지 않아 졌고 비행기표를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걸어서 그곳을 향하기 보다는 그냥 버스를 이용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하며 일정을 세워 봤다. 


아내와는 모든 걸 다 해놓으면 다음에 다시 올 이유가 없어지니 다음엔 묵시아 피스테라를 걸어서 가보자는 이유를 남겨 놓기로 했다.


알베르게에서 묵시아에 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알베르게에서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이제는 걷는 게 당연해진것 때문 이었는지 순례길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터미널 까지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면 될것을 오늘도 여지없이 두발의 힘을 빌어 걸어 가기로 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확인 해보니 묵시아 가는 버스는 출발까지 1시간도 넘게 남아있었고, 피스테라를 가는 버스는 1분 뒤면 출발하는 상황이었다. 


아내에게 갑자기 우리 묵시아 말고 피스테라 먼저 가는 게 어떠냐고 하니 아내도 당연히 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묵시아로 가는 일정을 피스테라로 변경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는 약 3시간 정도를 달려 피스테라에 도착했다. 아마도 이길을 걸어서 갔으면 족히 4일은 걸렸을 텐데 3시간 만에 도착하는 걸 보니 새삼 문명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끝이고 유럽 대륙의 끝인 지역이다. 그러니 당연히 바다와 맞닿아 있다. 매일 산과 들만 보다가 바다를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맞이 하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알베르게 호객행위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의 집요한 홍보에 귀신에 홀린듯이 따라 가서 오늘 묵을 알베르게를 정했다. 사실 묵시아에서 잘걸 생각해서 묵시아 알베르게는 조금 알아놓긴 했지만 피스테라 알베르게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우선 가격을 물어보니 괜찮은 가격인 것 같아한번에 ok를 하고 알베르게에 짐을 풀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었지만 아내는 피스테라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다. 물론 산티아고 전체 일정 중에도 아내는 무언가를 알고 길을 걷는다기 보다는 오롯이 나와 함께 한다는 이유로만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가고 싶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해주기 위해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곳까지 따라와 준 것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0km 표시석을 보여주고 싶었다. 구글로 피스테라, 피니스테라, 0km 등을 검색해서 찾아보니 구글맵이 웬 산꼭대기를 가르쳐주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아내와 나는 짐을 풀자마자 산을 타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구지 구글맵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노란색 화살표가 항상 우리가 향하는 곳을 알려주었는데 순례길을 벗어난 이곳에서는 길찾기가 쉽지 않아 구글맵에 의지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동안 찾아봐서 알고 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곳으로 길을 안내해주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저 언덕만 넘어서면 표시석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는데 정말 산만 나왔다. 한 시간을 걸었나? 이제 점점 지쳐 올 때쯤에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여기가 아니 것 같다고 했다. 우선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자고 했다. 


아내는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터미널까지 약 두시간을 걸었고, 세 시간을 걸려 피스테라에 왔다. 게다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산자락을 한시간 이상 올랐기 때문에 저녁시간이 가까워져서 배도 고프다고 했다. 우선은 다시 한 시간을 내려가야 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은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날이 너무 환해 시간을 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9시가 넘어야 노을이 지고 해가 떨어지는 스페인 이었다.  


결국 목표한바를 이루지 못하고 알베르게 앞까지 도착했지만 아내에게 0km 표시석은 꼭 보고 싶었다. 아내에게 꼭 가고 싶은데 다시 찾아보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오빠가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고 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에게 물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갔던걸 알고는 0km 표시석을 향해 다시 길을 걸어갔다. 배고픔을 먼저 해결 했어도 됐을텐데 당시에는 0km 표시석에 먼저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굴뚝 같았다. 


순례길을 끝마친 우리였지만 오늘도 역시나 미사를 드리러 갈 때, 터미널을 갈 때, 잘못된 0km 표시석을 향해 산을 타고, 제대로 된 0km 표시석을 향해 다시 걷는 것까지 족히 25km는 걸었던 것 같다. 


엄청 힘들고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팠지만 아내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계속 계속 걸었다. 고맙게도 아내는 불평 불만 없이 계속 해서 내옆을 따라와 줬다. 나도 너무 힘들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이끄는 대로 와주는 아내는 나보다 더 힘들었을법 함에도 묵묵히 따라와 주는것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드디어 0km 표시석을 맞이 할 수 있었다.


"여보 끝났어!" 

"오빠가 이걸 위해 이렇게 힘들게 걸어왔구나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생했어 여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안아 주었다. 


피스테라 0km 표시석은 순례길을 마친 사람들이 감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들리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끝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활용했던 의미 있는 무언가 들을 불로 태우고 가는 곳 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신발을 태우기도 했고 배낭을 태우기도 하고 가슴 깊이 간직해온 편지를 태우기도 하는 곳이었지만 불로 인한 사고가 많이 발생한 탓인지 우리가 피스테라에 갔을 때는 불태우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시간은 우리가 언젠가 길을 걸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찬양했던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찬란한 아름다움이 바다와 함께 눈앞에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또 사진을 남겨 보았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바다를 바라보고 또 지는 해를 쳐다봤다. 바다와 해와 노을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관을 보면서 아름답다 하는 생각을 하며 아내와 얘기했다. 이시간이 너무나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배가 너무 고파서 감상에 계속 젖어있기가 힘이 들었다. 


빨리 내려가서 식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10시가 넘은 시간에 이 조그만 마을에서 문을 연 마트나 식당을 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우리는 알베르게로 돌아와 누군가 먹다 남긴 체리를 두세 알 먹고는 고픈배를 움켜쥐고 그냥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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