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미남편 Jul 02. 2024

day33 아르수아-페드로우소

산티아고 순례길 33일차 (아르수아-페드로우소)


배드버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는 항상 주의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그중 배드버그는 경우에 따라 꽤 심각한 결과를 초례하기에 유의해야 하는 것 중 하나이다. 처음에 배드버그는 침대(bed)에 있는 벌레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단순히 나쁜(bad) 벌레라는 뜻으로 배드버그라고 불린다고 했다. 배드버그에 잘못 물리면 물린 곳이 엄청 간지러우며 심하면 수포가 생기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히 벌레에 물린 것 때문에 병원신세를 져야 하거나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 까지 한다고 했다.  

 

평소 모기에 물리는 것조차 민감했던 나는 출발 전부터 배드버그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하며 순례길을 이어왔다. 항상 빨래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침낭은 잘 털고 건조 했다. 덕분에 30일이 넘게 순례길을 걷는 동안 배드 버그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얼마 전 라바날에서 만났던 신부님은 자신의 배드버그 경험을 적나라하게 알려주며 사진으로 보여줬었기에 더욱 철저히 대비를 하며 길을 걸어왔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맙소사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알베르게들은 여러 사람들이 산과 들과 강을 건너며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침대 화장실 등에 벌레나 세균을 옮겨놓고 나 역시 그러한 곳에서 자고 먹으면서 같은 일을 했을 텐데 오늘만큼은 우리가 피해자였다. 순례길을 걷기 전부터 개인적으로는 가장 걱정했던 일이 배드 버그였다. 


"오빠 나 등이 심하게 간지러워"

"어? 한번 봐봐"

"이거 배드 버그에 물린 것 같아"

"여보 모기에 물린 것 같은 게 5개 정도 있는데"


그동안 정강이가 아파왔다는 핑계로 조금은 배드버그 대비에 안일해진 탓인지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자꾸 간지럽다며 등을 긁던 아내의 맨살을 보니 배드 버그에 물려 있던 것이었다. 등 쪽이라 혈관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벌레에 물린듯한 모습을 보인 아내의 등은 다행히 심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사진으로 봤던 배드버그의 그것과 일치했다. 


우선 알베르게 호스트 에게 아내가 배드버그에 물린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호스트는 억울하다는 듯이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정색을 했다. 우리 알베르게에 배드버그 같은 것은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너희가 배드버그를 달고 온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어제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더니 차 안에서 벌레가 옮겨 붙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스페인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탓에 우리가 따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약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말을 못 하니 참 억울하기만 했다.


아내가 물린 곳이 계속 간지럽다고 하여 우선 파스를 발라줬고 생각해보니 베르시아노스에서 주먹밥 커플과 한국인 남자분과 함께 와인과 저녁을 먹을 때 남자분이 배드버그 약을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왔다고 우리에게 나눠 줬었는데 우선 아내에게 그걸 먹였다. 아마 나였으면 난리에 난리를 쳤을 텐데 아내는 대견하게도 의연하게 넘어갔다. 상태가 심각해 보이진 않아 병원을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일단은 그냥 걷기로 하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아파도 간지러워도 우리는 걸어가야만 했다.


아침부터 한바탕 한덕분인지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배가 고파왔다. 아르수아를 다 빠져나가기도 전 bar에서 아침을 대충 때우기로 하고 bar에 들어갔다. 아내와 나는 초코라떼 두 잔과 빵 두 개를 시켰는데 세상에 지금까지 먹었던 쵸코라떼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었다. 정말 초콜릿을 녹여놓은 듯한 따뜻한 라떼 덕분에 아내는 다행인지 가려운 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맛있는 쵸코라떼와 함께 먹은 빵 또한 정말 너무 맛있었다. 스페인에서 찾은 인생 빵집이라며 아내는 평소의 아내답지 않게 다른 빵을 하나 더 시켰는데 이번에는 선택이 잘못된 건지 생긴 것과 다르게 너무 맛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시킨 빵은 그대로 남겨놓고 나오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그 빵은 한국인의 입맛과는 다르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리곤 bar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한국인 아저씨는 환갑 기념으로 단체 여행을 왔고 사리아부터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무거운 배낭과 기타 짐은 단체버스가 옮겨다 주고 버스가 걷기 편한 곳에 내려주면 편한 길만 걷다가 다시 힘든 코스가 나오면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식으로 여행을 한다고 하면서 생장부터 750km를 걸어온 우리를 대단하다고 하며 칭찬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물어봤다. 


"이만큼 걸으면서 뭘 느꼈어요?"

"아직 느낀 게 없어요 그냥 힘들고 다리가 아파요"

"그래도 긴 거리를 걸으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많은 게 남아 있을 거예요"

"지금은 그냥 빨리 산티아고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 반과 매일매일 줄어드는 거리를 보며 아쉬운 마음이 공존하고 있어요"

"아마 산티아고까지 가더라도 못 느낄 수도 있겠지요?"

"산티아고에 가도 그냥 빨리 쉬고 싶다 이제 끝났다 하는 기분만 들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못 느꼈겠지만 아마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언가 남겨 줬을 거예요"


아저씨는 생장부터 걸어온 우리를 대견해했으며 지금 느낀 것 은 없더라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이순례길 을 걸은 이유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기 같은 날라리 순례자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들은 평생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으니 부럽다고 하면서 서로가 무사히 산티아고까지 가자고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잠시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각자의 길에 들어섰다. 


아침부터 배드버그 때문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며 액땜을 해서 그런 건지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 하는 탓에 땅이 촉촉이 젖었고 젖은 땅은 질척 거리지 않고 오히려 푹신푹신한 느낌이 들어 걷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덕분인지 최근 들어 가장 정강이와 발목의 상태가 좋았다. 땅의 폭신함과 나무 그늘, 새소리, 풀냄새가 좋았다. 이런 것이 힐링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내도 등이 간지러운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컨디션이라고 하였다. 다만 최근 들어서 느끼기에 완벽한 컨디션이었을 뿐 30일을 넘게 먼 거리를 걸어온 우리 몸은 역시나 지칠 때로 지쳐 있었기에 아주 아주 천천히 길을 걸어야만 했다. 길을 걷다 보니 오늘은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거북이가 꾸준히 길을 걸어 경주에서 이겼듯이 나와 아내도 꾸준히 길을 걷다 보니 1시가 되자 예정했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19km 밖에 안 되는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1시에 알베르게에 도착한 걸 보면 확실히 걷는 속도가 꽤나 떨어진 것 같았다. 오락가락했던 비는 오늘도 역시나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그치고 해가 쨍쨍 났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반포 아줌마 부부가 같은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언젠가부터는 서로 약속하지 않았지만 어제를 제외하곤 항상 같은 알베르게로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아내가 배드 버그에 물렸다고 이야기하자 반포 아줌마는 마치 제일인 양 안쓰러워했다. 앞으로 남은길이 얼마 안 남았지만 서로 조심해야겠다고 하며 오늘도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적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밀린 빨래를 하고 샤워를 마치고 시간이 여유로워 아내와 같이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나왔더니 아내가 다시 한번 등이 간지럽다고 하며 등을 보여줬는데 이번엔 아침에 있었던 곳과는 다른 쪽에 배드 버그의 흔적이 있었다. 하루에 한 번이면 됐지 두 번이나 배드버그에 물리다니 정말 최악이었다. 


아무래도 아르수아의 알베르게에 있던 배드버그가 아니라 우리의 배낭이나 침낭 같은 어딘가에 배드버드가 있는 것 같아서 이미 손빨래로 오늘의 옷가지를 다 빨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내의 배낭에서 모든 옷을 꺼내서 세탁기에 넣어 또다시 빨래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빨래하지 말고 첨부터 세탁기 돌릴걸 하면서 아내는 자신이 물린 벌레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두 번째 물린 건 별로 간지럽지도 않다고 말을 하는 아내였다.


아마 나였으면 난리를 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오히려 민감한 피부를 가진 내가 아닌 자신이 물려서 다행이라고 했다. 정강이와 발목이 안 아픈 채로 페드로우소까지 온덕에 기분이 좋았는데 정말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인 것 같다. 


아내의 모든것을 세탁기로 빨래 하고 건조기 까지 돌려서 정리를 해놓고는 저녁을 만들어 먹기 위해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봤다. 반포 아줌마 부부와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지만 서로 먹고 싶은 것이 다를 수 있으니 장은 각자 보고 각자의 음식을 쉐어 하기로 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쌀과 고기 그리고 오랜만에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어 6개들이 계란을 한팩과 와인과 콜라를 샀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먹을 빵과 치즈도 함께 준비했다. 스페인의 물가는 정말 저렴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것을 사도 우리 돈으로 2만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저녁거리와 다음날의 아침 거리 간식까지 전부 준비할 수 있다. 


알베르게에 돌아와 장 본 걸 펼쳐정리 하고 있다보니 반포 아줌마 부부가 뭘사왔나 하며 보시더니 본인들이 장본것을 꺼내면서 또다시 한바탕 크게 웃는일이 생겼다. 우리딴에는 함께 저녁을 먹는데 필요할 것 같아서 6개들이 계란을 사왔는데 반포 아줌마는 통도 크게 계란 한판을 사 오신 것 이었다. 남는 음식들은 배낭에 싸서 챙겨 갈수 있지만 계란은 그럴수가 없었기에 36개의 계란을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안에 해결하지 않으면 천상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계란을 좋아해서 저녁은 우리가 사 온 고기는 뒷전이 되고 계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했다. 1인당 계란 프라이를 5개나 만들고 계란 스크램블을 만들었으며 계란국을 끓였다. 거기에 고기도 구워 먹고 남는 계란으로 빵과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길을 걷다 간식으로 먹을 생각에 삶은 계란까지 만들었지만 합이 36개의 계란을 다 처리 할 수는 없었다. 내일 방귀 냄새는 지독할 것만 같았다.  


반포 아줌마 부부와 계란파티를 하고 나서는 아침에 먹을 시리얼까지 준비를 하고 오늘을 마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내일은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이다. 이곳에서 산티아고 까지의 거리는 18km의 짧은 거리였다. 드디어 30여일간 800km 의 여정이 완전히 끝난다. 아침에 만났던 환갑여행의 아저씨처럼 누군가 산티아고를 걸으며 뭘 느꼈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확실히 변한 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저 산티아고를 마치면서 새로운 것이 시작되겠지만 이 길이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마음으로 느낀 산티아고의 길 누군가에게는 큰 깨달음의 길이 었을 것이고 만남과 헤어짐의 길이 되었을 거고 저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추억을 만든 길로 머릿속에 기억될 것이다. 왠지 모르게 아직 끝나지 않고 내일이 남았음에도 감상적인 저녁이 되는 하루였다. 내일도 힘차게 전진하는 일만 남아있으니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전 02화 day32 팔라스데레이-아르수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