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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Jun 25. 2024

day31 포르토마린-팔라스데레이

산티아고 순례길 31일차 (포르토마린-팔라스데레이) 


오늘의 목적지인 팔라스데레이는 포르토마린 부터 26km 거리를 걸어야 하는 곳 이다. 아마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던 초반부 였다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 였지만 정강이 통증이 시작된 이후 부터 최근까지 걸으며 느낀 바로는 26km의 거리는 현재의 몸상태로는 다소 무리가 되는 거리 라는 생각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전날부터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을 참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내와 나는 처음 폰세바돈을 넘어갈 때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었다. 처음 동키서비스를 이용할때는 배낭을 짊어지고 걷지 않는 다는 것에 그렇게 죄책감이 들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결정이 쉬었다. 최근 몸상태와 걷는거리를 고려해서 오랜만에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순례길 후반부에 이용하는 동키서비스의 가격이 너무 저렴해 져서 였기도 했고, 오랜만에 장거리를 걸어야 하는 것이 겁도 많이 났기 때문이다. 


아내도 나도 몸상태가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택시를 이용하는 것 모두 무언가 순례길의 취지와 맞지 않은 것 같아 무척이나 꺼려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게 없었다. 내 몸이 힘든 게 먼저이고 아내 몸이 버티는 게 우선이었다.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더라도 지난번 폰페라다를 갈 때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사리아 부터 무수히 많아진 순례자들 덕에 알베르게 역시 원하는 알베르게가 마감돼 버릴까 봐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얼리버드 답게 해가 아직 뜨지도 않은 깜깜한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시골길을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한채 길을 조금 걷고 있는데 일찍 나온 사람이 우리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우리를 불러 뒤돌아 보니 반포 아줌마 부부였다. 


"오늘은 몸이 가벼워 보이네요"

"네 다리가 좀 불편해서 배낭을 부쳤어요"

"그럼 조금 천천히 나오지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우린 노인네들이라 새벽잠이 없는 거고"

"알베르게 마감될까 봐요 어제도 그래서 저희 알베르게 못 들어왔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아주 부지런하네"


새벽잠이 없으신 반포 아줌마 부부는 우리 부부에게 부지런하다고 하면서 배낭이 없이 걷고있는 우리의 가벼운 몸을 보고 부러워하셨다. 유쾌하신 반포 아줌마 덕분에 활기찬 아침을 시작했다. 잠시간 4명이서 길을 같이 걷다가 동이 틀 무렵부터는 반포아줌마 부부가 우리의 속도를 따라붙지 못했다. 아마도 배낭이 없이 걷는 우리가 조금더 빠른 속도로 길을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 싶다. 


어제 점심에 이야기했던 대로 오늘의 목적지는 우리와 반포아줌마 부부가 서로 같았기 때문에 조금 있다 다시 만나자고 하고 금새 따로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배낭이 없던 탓인지 유쾌한 아침 기운 때문인지 아내도 나도 몸상태와 컨디션이 꽤나 좋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스페인 사람들은 페레그리뇨(Peregrino)라고 한다. 그리고 사리아부터 걷는 사람들을 보고 페레그리뇨 들은 투리그리뇨(Tour + Peregrino) 라고 불렀다. 모두를 투리그리뇨 라고 부르지는 않고 순례자 행세를 하면서 시끄럽거나, 뛰어 다닌다거나,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는 등 매너 없는 사람들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었다. 이들 덕분에 사리아를 지나면서 보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습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의 진지함과 경건함 엄숙함 같은 분위기는 사리아 이후부터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했다. 


하지만 오늘은 꽤나 일찍 나온 덕에 반포 아줌마 부부와 헤어지고 나서 아침을 맞이하기 이전까지는 투리그리뇨를 만나지 않고 오랜만에 둘만의 오붓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걸음을 지속하며 걷다보니 좋았던 컨디션은 얼마 가지 못해 금방 다시 안좋아졌다. 배낭이 없어서 자유로워진 몸은 반포아줌마 부부와 헤어져 걸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강이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발 저림과 발목 통증은 불편하더라도 걸음을 지속 할 수는 있었지만 정강이 통증은 걷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찌릿한 느낌을 주다가 계속 걷다 보면 정강이 뼈가 찢어지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오늘따라 내상태가 조금 안 좋아지는 시점에는 아내도 꽤 힘들어 했다. 한동안 잘걸어 왔던 아내도 갑자기 왼쪽 무릎이 아프다고 이야기 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기 전부터 나는 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퇴근하고 나서도 한 시간 반 이상 걷기 운동을 했었다. 아내는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나와 함께 뚝방으로 나가 길을 걷는 시간을 좋아했다. 심지어 우리는 연애를 할때도 한두시간씩 걸으며 데이트를 즐겼었다. 


게다가 나는 주사도 걷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면 마신 장소가 어디던 집까지 걸어가는 주사가 있었다. 그렇게 길을 한 3시간 정도 걷다 보면 어느새 술이 깼고 그때 쯔음 에서야 차를 타고 집까지 이동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와서 길을 걸을 때는 정말 너무나 좋았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길을 걷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아내와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 후반부에 와서 몸이 아프기 시작한 뒤로는 내가 좋아하는 걷는 것이 너무 무섭고 힘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그렇게 자주 걷고 많이 걸어왔던 우리 였는데 이곳에서 지속되는 걷는 행위가 쉼없이 계속 되자 몸에서는 이제 그만 걸으라고 계속 해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걸어야 하기에 계속해서 걷고 또 걷다보니 어디선가 소똥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코가 마비될 정도의 소똥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들어 옆을 보니 소를 사육하고 있는 축사가 있었다. 보통은 드넓은 평원에 그냥 풀어놓고 소를 키우던데 여기는 소를 가둬놓고 키운다. 차이점을 보아하니 들판에서 키우는 소는 육우이고 가둬서 키우는 소는 젖소인 것 같았다. 냄새를 뚫고 나가 bar 에 도착해서 한참을 쉬고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반포 아줌마 부부가 나타났다. 우리에게 방금 전에 소똥 냄새 맡았냐며 자기가 시골에 살 때도 그런 냄새는 못 맡았다고 하며 유난을 떨었다. 


반포 아줌마 부부에게 다리가 아픔을 이야기하자 우리 보고 이제부터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자신들은 이미 400km는 택시를 탔을 거라면서 앞서 7km 택시 탄 거는 아무것도 아니니 몸 생각을 먼저 하라고 했다. 하지만 또 다시 택시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800km는 온전히 걷지 못했어도 7km 정도는 각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이미 걸었을 테니 괜찮다 라고 타협을 했는데 지금 택시를 타고 가면 내일도 모래도 글피도 택시를 탈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소똥 냄새가 지독히도 났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걷다 보니 오늘도 여차 저차 목적지인 팔라스데레이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알베르게는 새로 지어진 알베르게 여서 그런지 깨끗하고 깔끔했으며 시설 또한 상당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헌데 알베르게 입구부터 순례자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투리그리뇨의 속도는 우리보다 월등했었다. 게다가 우리 몸 상태도 많이 안 좋았기에 일정 후반부에는 속도도 느리고 쉬는 시간도 자주 가졌던 탓에 생각보다 늦은시간에 알베르게에 도착 했기 때문 이었다.  


다행히 알베르게는 제법 큰 규모의 알베르게 였기때문에 침대가 없지는 않았다. 동키서비스 덕에 우리보다 먼저 온 배낭을 찾아 짐을 추리고 나니 바로 반포 아줌마 부부가 같은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벌써 며칠째 같은 알베르게에 묶고 있었으며 그간에 한국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우리와 반포아줌마 부부는 서로가 의지를 많이 했었다. 


알베르게 근처에 마트가 있고 새로 지어진 알베르게답게 깨끗한 취사도구가 구비되어 있어 반포 아줌마 부부와 장을 봐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먼저 장을 보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저녁 준비할 때까지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반포 아줌마가 우리를 다급하게 찾았다. 


"혹시 로밍해서 왔어요?"

"네 저희 로밍했어요"

"그럼 우리 한테 전화 좀 걸어줄래요? 핸드폰이 없어졌어요"

"아 정말요? 전화해볼게요"


신호는 갔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아줌마와 아내는 알베르게를 구석구석 찾아보기로 하고 나와 아저씨는 아까 장을 봤던 마트에 다시 가보았는데 마트에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핸드폰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마트에도 핸드폰이 없다고 하니 반포 아줌마가 아저씨 등짝을 한대 후려치셨다. "침대에 있잖아!!" 아저씨는 핸드폰을 침대에 두고 배낭만 계속 찾아봤나 보다. 한바탕 해프닝이 일어나고 나서 같이 저녁을 먹을 때도 반포 아줌마 부부 덕에 유쾌한 저녁 시간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78Km 이다.

오늘 알베르게에서는 인상 깊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90은 돼 보이는 외국인 할머니가 음식을 해서 드시고 있는 중이었는데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머리는 거의 백발이었다. 나시를 입고 있었는데 굉장히 말랐고 어찌 저 몸으로 이 길을 걸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백발 할머니가 우리에게 바셀린이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혹시 바셀린 필요해요? 남는 게 하나 있어요"

"고마워요 헌데 우리도 한국에서부터 바셀린을 챙겨 온 게 아직 남아 있어요"

"그렇군요 순례길은 걸을만한가요?"

"네 최근에는 다리가 조금 아프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할머님은 괜찮으세요?"

"나는 나이가 많아서 조금씩 걷고 있어요 이제 마지막 순례길이 될 것 같아요"


마지막 순례길이 될 것 같다는 할머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보기만 해도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나와 아내도 이다음에 할머니의 나이 대에 이곳에 와서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90의 나이에 이곳을 걷고 있는 할머니를 보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  


저녁을 먹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내일을 준비했다. 내일의 준비는 우선 어디를 갈지 그리고 도착하면 어느 알베르게에서 잠을 잘 지 중간에 쉬었다 갈 마을은 있는지 없는지 체크하는 것인데 이것이 오늘은 엄청나게 우리를 힘들게 했다. 


원래의 일정 대로 라면 다음날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아르수아였다. 헌데 이곳에서 아르수아 까지는 약 29km을 걸어야 했다. 아르수아를 가는 길에 있는 정확히 중간 마을에는 멜리데라는 마을이 있는데 멜리데는 뽈뽀라는 문어 요리로 아주 유명한 마을이었다. 


우리는 멜리데까지만 갈지 아르수아 까지를 갈지 고민했다. 나는 원래 까미노를 시작할 때부터 걷는 거리와 속도와 도착한 시간과 관련해서 욕심이 참 많기도 했다. 그래서 아마도 평소 같았으면 아르수아 까지 가기를 희망했을 텐데 몸상태가 정말 너무나 힘들어서 29km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멜리데까지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의견을 물었다. 아내는 속으로는 짧은 거리를 걸어기가기를 원했는데 내 성향상 긴거리를 걷고 싶어 할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긴거리를 걷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투로 이야기하면서 결정을 미뤘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어디갈지에 대해서 무려 3시간이나 고민을 한 것 같다. 결론은 오늘처럼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고 대신에 29km 마을인 아르수아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사실 멜리데까지만 가고 나눠서 걷기를 원했 었다고 한다. 나 역시 다리 상태가 안 좋아서 멜리데 까지 걷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항상 원했던 것을 해주기 위해 아르수아 까지 가자고 이야기했었고 나는 내가 너무 힘들었지만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 위해 고집 피우지 않고 아내 말을 들었던 것이다. 둘 다 원하는 것은 멜리데까지의 짧은 거리를 걷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서로의 지나친 배려로 인해 아르수아까지 걷기로 한 것 이다. 


오랜만에 긴 거리를 걷기로 해서 그랬던 건지 결정을 하는데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멍 해졌던 건지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오늘따라 우리 옆 침대의 코골이 두 명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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