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34일차 (페드로우소-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디데이!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의 시작 지점인 생장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의 거리를 종료하는 순례길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레온에서 하루 쉰 날을 포함하여 꼬박 34일이 걸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지만 무언가 큰 심경의 변화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이전처럼 똑같이 아침에 눈 비비며 일어나고 똑같이 침낭을 말아 배낭에 넣고 그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게 다였다.
페드로우소에서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는 18km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 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 에서는 매일 정오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도착 당일 미사를 드리기 위해 산티아고 도착 5km 전에 있는 마을에서 하루 더 묵고 일정을 진행하거나 정오미사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일찍 출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오늘 당장에 미사를 드릴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조금은 여유로운 아침을 시작해 보았다.
마지막 날 아침이라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것 만 같았던 아내와 나는 둘 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는지 레온을 들어가는 그날처럼 서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앞으로 길을 걸어 나갔다. 마냥 즐거울 것 만 같았던 산티아고 가는 길이 생각보다 그리 즐겁지는 않았 던것 같다. 아마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걸을 곳이 없다는 것에 대해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록 우리는 서로 앞과 땅만 쳐다보며 길을 걷는데 말없이 걸었다.
조금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길가에 있는 표시석은 13km가 남았다는 표시를 우리에게 보여왔다. 우리의 긴 여정이 끝나가는 오늘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이제 34일간 누렸던 비현실 속에서 빠져나와야 했고 현실 속으로 돌아가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 있는채로 길을 걷고 있자니 길에 있는 표시석의 남은 거리가 점점 줄어 들었고, 남은 거리가 줄어 들수록 아쉬운 마음은 조금씩 더 커져만 갔다. 아내에게 "여보 생장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다시 하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넌지시 이야기했더니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서로가 말이 없었지만 아마도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며 골인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랬는지 주변에 길을 걷는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그동안 그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서 잠을 자고 어떻게 걸어왔는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축제를 즐기러 가는 사람들처럼 밝았다. 모두가 우리를 축하해주었고 우리도 그들을 축해주었다. 처음부터 만나왔던 많은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걸으면서 보았던 지난날의 풍경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침에 두 세 시간을 서로 말없이 걷다 보니 우중충 했던 날씨가 해가 쨍한 날씨로 변하면서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서로의 축하 속에 우리도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던 것인지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아내와 나는 다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여보 느낀 점이 있어?"
"아직 잘 모르겠어 오빠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산티아고 까지 빨리 가고 싶기만 했었는데 막상 다와가니 너무 아쉽네"
"얼른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자"
"그래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오늘도 뭘 먹을지에 대해 한참 떠들다 보니 이내 도로 표지판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알리는 푯말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도착한 산티아고였다.
"와 산티아고다"
"오빠 눈물 날 거 같아"
"아직 도착하려면 좀 더 가야 돼 그때 울어"
"그렇지? 아직은 좀 이르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라는 저 푯말을 보기 위해 위리는 그동안 그렇게도 열심히 걸어왔나 보다.
하지만 진작에 표지판을 봤음에도 아직도 더 걸어야 했다. 레온이나 부르고스와 같이 갈리시아의 주도답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도 엄청난 대도시였다. 분명 저 멀리서 산티아고 대성당이 눈에 보였는데 도시 초입부터 대성당까지는 아직도 5km를 더 걸어가야 했다. 물론 남은 거리는 급속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사리아를 지나 100km를 돌파한 뒤부터는 남은 거리가 줄어드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갈리시아의 주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마치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 었다. 도시는 이런저런 볼것들이 많았고 작은 상점들은 순례길을 상징하는 기념품 같은 것들을 참 많이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구경하며 5km의 거리를 2시간 동안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우리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뛰다시피 길을 걸어갔다. 12시에 시작하는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았는데 우리는 그 미사를 꼭 오늘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12시 15분!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을 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는 큰 광장이 있었고 우리는 광장 뒤에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기 위해 하나 둘 셋 하며 동시에 뒤를 쳐다봤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대성당은 아쉽게도 공사 중이었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는 충분했다.
아내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 그간에 고생했다고 토닥여 줬다. 아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나는 왜 눈물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으로 또랑또랑 한 눈으로 아내를 쳐다보니 울뻔했는데 오빠 보니깐 눈물이 쏙 들어간다고 했다. 아무렴 어떠하리 그곳에 아내와 내가 둘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너무나 벅차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아마도 혼자서는 정말 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아내 덕분에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쳐지면 앞에서 끌어줬고 뒤에서 밀어줬으며 힘들 때 힘내라고 파이팅을 외쳐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던 아내다. 아내가 없었으면 정말 이 길을 완주하는 게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된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지만 일정이 끝난 건 아니었다. 산티아고를 온전히 걸었다는 완주증을 받아야 했고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도 드려야 했으며 당장 오늘 묵을 알베르게도 구해야 했다. 완주증과 미사는 우선 내일 하기로 했고 산티아고에서 1박을 하기 위한 알베르게를 구해야 하는데 산티아고 에서만큼은 정말 알베르게 찾는 게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가는 알베르게마다 전부다 마감됐다고 하여 결국 대성당에서 15분 이상 떨어진 곳에 간신히 알베르게를 찾아 짐을 풀었다.
짐을 풀고 잠시 쉬다 보니 또다시 반포 아줌마 부부를 만났다.
"고생하셨어요 이 먼길 걸어오느냐고"
"우리는 날라리잖아 버스 타고 택시 타고 고생은 당신네들이 더했지"
"저희도 택시 탔어요 7km! 생각해보니 그거 아쉽네요 약간"
"그래도 이 먼길 온전히 다 걸어오느냐고 고생했어요 둘은 아직 젊으니깐 남는 게 많을 거야"
"산티아고에는 얼마나 더 머무르실 거예요?"
"우리는 내일 순례 미사 드리고 포르투갈 갈예정이에요"
"그래요? 저희는 계획이 없어요 아직 비행기표 시간까지 4일 정도 남아서 천천히 생각해보려고요"
반포 아줌마 부부와 함께 산티아고에 도착한 기쁨을 느끼면서 우리는 산티아고 맛집을 찾아 점심도 사 먹고 저녁엔 자축의 의미로 와인도 한 병 사서 한잔씩 마셨다. 내일 부터는 무얼 할지 계획을 안 세워도 되는 저녁이었다. 그렇게 34일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나의 까미노 순례길은 끝이 났다. (아직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혼자가 아닌 둘이 걷다 보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본인의 컨디션은 본인이 잘 알지만 상대방의 컨디션은 알 수가 없다.
말과 행동 등의 언어나 제스처 정도로만 상대의 컨디션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더군다나 내색을 잘하지 않는 사람인 경우에는 더 어렵다.
우리는 길을 걷는 중간중간, 휴식 시간, 밥을 먹는 시간, 잠들기 전,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할 때, 출발할 때 등등 수없이도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아픈 곳은 없는지 컨디션은 괜찮은지 배는 고프지 않은지 등등
본인의 아픔보다도 상대방의 아픔에 더 속상해하고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다.
덕분에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괜찮다고 하면서 안심시킬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우린 이런 서로의 모습에 뭔가 더 애잔해지고 끈끈해졌던 것 같다.
다녀온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우린 여전히 까미노 블루에 빠져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헤어 나올 생각이 전혀 없다. 매일 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티아고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산티아고에 안 갔으면 무슨 대화를 했을까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할 정도다.
누군가 나에게 산티아고를 걸으며 무엇을 느꼈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을 위해 한참 동안 생각할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이 길은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었고 새로운 만남으로 추억을 만들어 주고 또한 헤어짐을 나눴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개인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고 추억을 쌓은 길이지만 까미노 블루는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