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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Jul 10. 2024

day36 피스테라-묵시아

산티아고 순례길 36일차(피스테라-묵시아)


오늘의 일정은 피스테라에서 택시를 타고 묵시아에 갔다가 산티아고로 되돌아 가거나 혹은 묵시아에서 1박을 하거나 묵시아에서 상황을 보고 선택하기로 했다. 피스테라 알베르게의 침대가 영 불편해서 였는지 어제저녁을 쫄쫄 굶어서였는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우선은 짐을 챙기고 아내와 묵시아에 먼저 가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기 위해 어제 버스를 내렸던 곳으로 걸어가며 어제는 0km 표시석을 가기 위해 신경 쓰느라 보지 못했던 피스테라의 풍경을 눈에 담아 보았는데 참 아름다운 마을이었던 것 같다. 바다와 사람들 삶의 터전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휴양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묵시아를 가기 위한 택시정류장에서 택시기사와 흥정을 하고 묵시아까지 30유로에 가기로 했다. 원래 30유로보다 훨씬 더 받아야 하지만 우리는 순례객이라고 조금 저렴하게 해 준 거라고 한다. 이미 30유로라는 금액은 약간 정액제가 된듯한 느낌이었다. 여러 블로그나 후기들을 찾아보면 모두가 30유로를 내고 택시를 이용 하는듯 했었다.


피스테라에서 묵시아까지의 거리는 약 20km 정도의 거리인데 택시를 타니 30분 정도만에 도착을 했다. 걸었다면 꼬박 하루를 걸어가야 할 거리를 단 30분 만에 달려왔다. 정말 문명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밖에 없었다. 


묵시아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지라고 들었다.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 중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걷는 사람들은 당연히 묵시아 역시 의미가 있는 지역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순례길을 걸었던 것 이 아니라 묵시아 까지 갈 필요가 꼭 있지는 않았다. 그냥 남들이 가니깐 우리도 한번 가보지 뭐 하는 정도의 의미로 찾은 묵시아였다. 


묵시아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정도밖에 안된 시간이었고 마을 자체가 그렇게 크다는 느낌을 받지 않아서 오늘은 묵시아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시간에 그냥 산티아고로 돌아가기로 결정 했다. 카페를 찾아 아침을 대충 때우고는 묵시아를 조금 돌아다니기 위해 짐을 맡겨놓고 둘러보기로 했다. 카페 주인은 흔쾌히 짐을 맡아주었고 돌아갈 때는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도 같이 알려주었다. 그렇게 카페를 나와 우선 묵시아에 있는 성당을 향해 아내와 손을 잡고 걸어갔다.  


묵시아 역시 피스테라와 같은 해안가이다. 하지만 피스테라 보다는 조금 더 한적하고 조용하니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피스테라의 0km 표시석과 같이 묵시아에도 상징적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바로 성모 마리의 발현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둔 거대한 돌덩이와 성당 앞 바닷가에 있는 허리를 아프지 않게 하는 바위였다. 바닷가에는 전설의 바위가 하나 있는데 바위 아래로 들어가 허리를 펴지 않고 바위 끝까지 일곱 번을 돌아 나오면 평생 허리가 안 아프다는 전설의 바위였다. 


아내와 나도 한 번씩 들어가서 바위를 통과해 나왔는데 덩치가 큰 나로서는 한번 하는 걸로도 꽤 힘들어서 일곱 번을 다 하지는 않았다. 평소 아내는 허리가 썩 좋지 못해 앞으로를 위해 6번 더 돌고 오라고 했지만 아내도 한 번을 하고 나머지 여섯 번을 채우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리뿐만 아니라 그 바위 밑으로 기어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저 좁은 틈사이를 기어나와야 한다. 

다음은 묵시아의 상징인 거대한 돌덩이를 향해 갔다. 아마도 이곳을 온 모든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인 듯 한 이 돌덩이 앞에서 한국인 1명을 우연히 만났다. 


"한국분 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제가 찍어 드릴게요"

"외국 사람들은 정말 사진을 너무 못 찍어요"

"맞아요 우리도 그래서 거의다 셀피예요 찍고 나서 저희도 좀 찍어주세요"

"네 그럴게요"


그 한국인은 우리한테 사진을 부탁하기 전에 먼저 외국인한테 사진을 부탁해서 찍었지만 사진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우리에게 다시 부탁해서 서로가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 같이 공감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외국인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배경을 거의 무시하고 인물 중심으로만 찍어준다는 점이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배경이나 각도 한국인들이 사진을 잘 찍는 것 같다.


이 거대한 돌덩이와 전설의 바위 사이에는 묵시아 성당이 있었다. 해안가 돌밭에 우뚝 솟아 있는 성당이 왠지 모르게 고즈넉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 다뤘다. 마침 일요일 이어서 그런지 성당에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묵시아를 기념할 수 있을만한 기념품들을 몇 가지 샀다. 그동안은 배낭을 메고 다니느냐 배낭이 무거워질까 봐 기념품 같은 건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이제 끝이라 그런지 쇼핑이 참 자유로웠다. 


아내와 함께 묵시아 해안가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뭔가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이게 끝난 건가? 이제 뭘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묵시아에 도착하고 성당에 들렀다 바다를 보고 있으니 무언가 나도 다 끝이 나고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찾아오는 묵시아였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무리 하기에는 최고의 장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사람들이 피스테라와 묵시아를 갈 때 피스테라를 먼저 갈지 묵시아를 먼저 갈지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들 한다. 각자 그 나름대로의 의미들을 갖고 선택을 하겠지만 아내와 나는 단연코 피스테라 먼저 묵시아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묵시아 시내가 다 보일 수 있는 언덕에 올라가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어느정도 묵시아를 다 둘러본 상태에서 이제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이제 진짜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끝이기도 했다. 부부가 함께한 36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일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순례길에 오기 이전에 나는 지리산 둘레길을 혼자서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던 점이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구나 하는 감정이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길을 걷고, 혼자 숙소를 찾아다니며 나를 지나쳐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일행이 있으면 너무나 큰 부러움을 느꼈고, 나도 누군가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산티아고 여행은 꼭 아내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무사 완주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6일간의 여행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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