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더꿍 달빛 아래 3

by 제노도아

“난 모, 모르겠어.”

“히히, 구경거리 생겼지 뭐야. 나도 한 번 구경해야지. 너희들도 같이 볼래?”

진우가 아이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봉주야, 너도 나와라. 응?”

“아, 안 돼.”

“왜 미친 사람이라니까 무섭냐?”

“그게 아니고...”

봉주는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지난번 어머니 가게에 갔다 늦게 들어왔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봉주가 방문을 벌컥 열자 탈춤을 추던

아버지는 흠칫 놀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봉주는 그때 일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집에 와서도 아버지를 힐끔힐끔 쳐다보았습니다.

“무, 무슨 일이 있냐, 내 얼굴을 자꾸 보게.”

“아니에요, 오늘도 엄마 마중 가실 거예요?”

“그, 그래야지.”

밤이 깊었습니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봉주는 냉큼 일어났습니다.

봉주는 아버지 뒤를 바람만바람만 따라갔습니다.

공터에는 달빛이 흐르고, 아파트에는 듬성듬성 불빛이 반짝였습니다.

봉주 아버지는 느티나무 밑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어깨부터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팔을 들어 올려 외사위, 양사위 동작도 했습니다.

’아! 아버지가...‘

봉주는 멀리 아파트 복도에서 진우가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봉주 어머니가 서둘러 언덕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봉주는 멀거니 어머니를 지켜보았습니다.

“여보!”

봉주 어머니는 달빛에 몸을 맡기고 있는 봉주 아버지를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새벽에 주인아줌마가 그러더군요. 이상한 사람이 밤마다 공터에서 춤을 춘다는 말이 돈다고.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당신이었군요. 여보, 미안해요. 당신이 탈춤을 누구보다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어요. 그리고 실은 영호 아버지가 가게로 몇 차례 전화했어요. 우리 가족이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다들 기다린다고.....”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땀이 흐르는 아버지의 얼굴을 닦았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봉주의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봉주는 얼른 몸을 돌려 집으로 왔습니다.

“달님, 정말이죠? 정말 봉주네가 돌아오는 거죠?”

“그래, 벌써 몇 번째 묻는 거니. 봉주 아버지가 마을 어귀에 토산품 가게를 낸대.”

사자탈은 마음이 설렜습니다.

“정말 잘 되었어요. 우리 마을이 봉산 탈춤 시범 마을이 되고 봉주 아버지는 좋아하는 탈을 만들어

팔 수도 있고.”

“간절한 네 마음 덕분이지. 그동안 푹 쉬었으니 이번 단옷날에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네, 달님. 다시 춤출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봉주 할머니도 기뻐하시겠지요?”

“그럼, 아마 제일 좋아하실 거다.”

음력 오월 오일. 단옷날이 되었습니다.

봉산 탈춤 시범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봉주네 마을 큰 마당에서 몇 겹으로 놀이판을 둘러쌌습니다.

날이 저뭇해지자 마을은 술렁거렸습니다. 마당 가에 횃불이 밝혀지고, 빙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쑤

얼쑤‘ 추임새에 맞춰 한바탕 놀이판이 벌어졌습니다.

달님은 봉주 아버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봉주 아버지는 사자탈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자 뒷다리 역을 맡은 영호 아버지가 봉주 아버지의 허리를 꽉 잡았습니다.

어디선가 봉주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둥둥둥둥 짐승 났소, 짐승! 자아. 움직임을 무겁게, 힘 있게, 시원스럽게 하거라. 그렇지 그렇지 자알

한다.”

파도가 굽이치듯 몸을 흔들며 겅중겅중 마당을 도는 사자의 가슴으로 달님은 흥건히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끝>


*이야기 너머, 은 속삭임

이 동화는 대학 시절 봉산탈춤 사자 앞머리 역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쓴 글입니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과 이웃의 정, 우정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