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 단편동화입니다
단풍잎이 노을빛으로 물듭니다.
떡갈나무 우듬지에서 깨비가 손지붕을 하고 구붓한 산길을 내려다봅니다.
“왜 안 오징, 올 때가 됐는뎅.”
깨비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나무 아래서 단풍잎 모자를 써 보던 도비가 깨비를 핼끔 쳐다봅니다.
“아직 시간이 안 됐엉, 해가 이만큼 떠야 오징.”
해의 위치로 시각을 가늠하는 도비가 머리 위를 가리킵니다.
도비 옆에는 깨비가 만들다 놓아둔 단풍잎 이불이 흩어져 있습니다.
"오늘 오는 거 틀림없징?”
깨비는 벌써 세 번째 물어봅니다.
“내가 분명히 통나무집 아저씨 말을 들었다니깡.”
도비는 가는 풀잎 줄기로 엮다 만 깨비의 단풍잎 이불을 마저 손봅니다.
굵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깨비가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목이 아프고 끼익 끽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깨비가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리자 도비가 안타깝게 올려다봅니다. 어젯밤 낡은 이불을 덮지 않고 자더니 심한 목감기에 걸렸나 봅니다.
아기 도깨비 도비와 깨비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은새 유치원 아이들이 초록산 통나무집으로 1박 2일 가을 캠프를 오는 날이거든요.
드디어 산새소리처럼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옵니다.
“왔당, 왔엉!”
깨비가 나뭇가지를 타고 내려와 훌쩍 뛰어내립니다. 그리고 샐샐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춥니다. 도비도 발딱 일어나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을 훑어봅니다. 언제 봐도 귀여운 모습입니다. 도비와 깨비는 코를 발름거리며 두 번 탁탁 엉덩이를 부딪힙니다. 기분 좋을 때하는 버릇이지요.
도비와 깨비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도 무척 좋아합니다. 등산객들이 부르는 노래와 통나무집 아저씨가 틀어 놓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노래를 빠짐없이 따라 부릅니다. 도비와 깨비는 동요와 가요, 민요와 외국 노래 등. 모르는 노래가 거의 없습니다.
지난봄 캠프 때에도 도비와 깨비는 모습은 감추고, 아이들 틈에 섞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아이의 귀에 대고 함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캠프장 통나무집에 가면 노래를 잘 부르게 된다며 좋아했습니다.
도비는 아이들에게 모습을 보일 순 없지만 그래도 멋있게 꾸미고 싶어서 단풍잎 모자를 만들었습니다.
“목 아파서 어떡행?”
도비가 모자를 쓰며 말합니다.
“힝, 노래가 잘 안 될 것 같앙.”
깨비는 힘없이 말합니다. 둘은 봄 캠프가 끝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엄마가 준 약은 다 먹었닝?”
“하나 남았엉.”
도비가 묻자 깨비는 약을 꺼냈습니다. 여러 종류의 산나무 열매를 으깨서 동글동글하게 뭉친 알약입니다.
“약이 너무 썽.”
깨비는 우거지상이 됩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잖앙.”
도비가 엄마 말투를 흉내냅니다.
"빨랑 나아서 노래 불러야징."
깨비는 마지막 남은 알약을 냉큼 삼킵니다.
아이들이 오자 통나무집은 환하고 즐거워집니다. 와글와글 시끌벅적, 소리는 요란했지만요.
어둠이 스멀스멀 스며듭니다.
타닥 타다다다닥 장작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아이들 얼굴이 잘 익은 석류알처럼 달아오릅니다. 노랑반 아이들과 파랑반 아이들이 둘러앉아 노래자랑을 시작합니다. 도비와 깨비는 아이들 틈으로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도비와 깨비는 봄에 한 번 다녀간 아이들이라서 얼굴은 물론 잘 부르는 노래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랑반에 낯선 얼굴이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호빈이 차례다, 어서 일어나라 쿵짜자작작!”
호빈이는 두 볼이 통통한 아이입니다. 깨비는 손으로 목을 감싸며 얼른 호빈이 옆으로 갑니다. 하지만 세상에! 호빈이는 음정과 박자, 가사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소리 내어 웃습니다. 호빈이는 깨비가 귀에 대고 노래를 불러줘도 따라 하지 못합니다. 깨비는 호빈이에게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다 쉰 목소리가 됩니다.
“호빵맨 호빈이 음치다!”
아이들이 놀려댑니다. 호빈이는 울상이 됩니다. 노랑반 유나 앞에서 창피를 당한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호빈이는 다른 아이가 노래할 때 살그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도비랑 깨비는 호빈이 뒤를 가만가만 따라갑니다.
호빈이는 통나무집 뒷산 계곡으로 올라갑니다. 계곡 물이 옹달샘처럼 잠시 머물다 흘러 내려가는 곳입니다. 호빈이는 물가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통나무집 불빛과 모닥불, 달빛으로 주위는 그리 어둡지 않습니다. 호빈이가 훌쩍훌쩍 웁니다.
“어쩌징?”
“달래야 하지 않을깡?”
도비랑 깨비는 망설이다가 도비만 모습을 보이기로 합니다. 둘이 나타나면 호빈이가 겁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울지 망.”
도비가 호빈이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호빈이가 흠칫 놀라며 뒤돌아봅니다.
“어, 유나구나. 벌써 도깨비 분장했니?”
호빈이가 도비를 빤히 바라봅니다. 오늘 밤 연극 놀이에서 유나가 도깨비 분장을 하나 봅니다.
도비가 시치미를 뚝 뗍니다.
“응. 혼자 있지 말고 나랑 같이 내려가장.”
“싫어, 안 가. 어라, 그런데 너 목소리도 바뀌었네.”
호빈이 눈이 알사탕처럼 동그랗습니다.
“어땡, 진짜 도깨비 같징? 노래 못하는 건 잘못이 아냥. 넌 다른 거 잘하는 게 있잖앙.”
그 말에 호빈이가 또 시무룩해집니다.
“난 게임을 잘하는데 울 엄마는 그걸 싫어해. 내년에 학교 가면 공부만 해야 한대.”
호빈이가 뚱한 얼굴로 신발을 벗어 탁탁탁 칩니다. 신발 한 짝이 물속으로 퐁당 떨어집니다.
“어? 내 신.”
호빈이가 급히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바닥이 미끄러운지 호빈이는 물속에서 엎어집니다. 일어나려고 하면 또 넘어지고 넘어지고.
“어푸, 어푸, 엄마야!”
호빈이가 손을 내젓습니다.
"어떡행. 어떡행."
깨비가 발을 동동 구르자 도비가 서둘러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호빈이는 도비 허리를 꽉 끌어안습니다. 도비와 호빈이 몸이 한 덩어리가 되어 아래 가파른 계곡 쪽으로 밀려갑니다.
“아, 안됑!”
깨비가 잽싸게 뛰어듭니다.
깨비는 겨우겨우 도비와 호빈이를 물가로 끌어올립니다.
호빈이는 한 손에 물에 떨어졌던 신발을 꼭 쥐고 있습니다.
“이거 새 신발이란 말이야. 잃어버리면 혼 나.”
호빈이가 부르르 몸을 떱니다
한쪽에 옹송그리고 있던 깨비가 심하게 기침을 합니다. 호빈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여기 또 누가 있나 봐, 소리가 났어.”
“난, 난 못 들었는뎅.”
도비가 어물쩍 일어나 깨비에게 다가갑니다. 도비는 떨어진 나뭇잎을 모아 깨비의 몸에 덮어줍니다. 몸이 좀 따뜻해지라고요.
“왜 낙엽을 모아?”
“으응, 그냥 예뻐서.... 호빈아, 잠깐 여기 있엉. 내가 선생님 모셔 올겡. 그리고 이겅, 네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게 줭.”
도비는 물가에 벗어 두었던 단풍잎 모자를 호빈이에게 주고, 재빨리 통나무집 마당으로 내려갑니다. 도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유나 귀에 소곤거립니다.
‘지금 호빈이가 뒷산 계곡 물에 빠졌엉’
손뼉을 치던 유나가 간질간질한 귀를 만집니다. 도비는 큰소리로 두 번 더 말합니다. 그제야 유나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호빈이를 찾습니다.
“선생님! 호빈이가 안 보여요. 저어기 계곡으로 갔나 봐요.”
선생님과 유나가 뒷산으로 뛰어갑니다. 도비는 유나 자리에 놓여 있던 노란색 은새 유치원 수건을 들고 좇아갑니다.
호빈이는 선생님과 유나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립니다. 선생님이 웃옷을 벗어 호빈이를 감싸 안습니다. 호빈이는 선생님 등에 업혀 산길을 내려갑니다.
“유나야, 언제 도깨비 분장 지웠어? 조금 전에 여기서 도깨비 연습했잖아. 이거 너 가져.”
호빈이가 주는 단풍잎 모자를 쓰며 유나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무슨 말?나 여기 처음인데.”
유나가 손사래를 칩니다. 호빈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유나가 장난으로 속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비는 싱그레 웃으며 멀어지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도비는 깨비의 채 마르지 않은 몸을 노란 수건으로 닦아주고, 함께 동굴로 돌아옵니다.
“콜록 내년에는 콜록 다른 애들을 콜록 만나겠징. 콜록 그때 콜록 노래 많이 콜록 해야징. 콜록”
“에취 그랭. 에취 호빈이랑 유나는 에취 이제 에취 언제 보낭. 에취.”
도비와 깨비는 새 단풍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듭니다. 내년 봄에 만날 새로운 친구들을 그리면서요.<끝>
*이야기 너머, 작은 속삭임
도깨비는 지닐총이 없고 이물스럽지도 않습니다.
대개 순박하고 순진한 어린아이 같습니다.
재미있고 정겹게 표현하려고 도비랑 깨비, 두 꼬마 도깨비의 말투 끝받침에 'ㅇ'을 두었습니다.
오래전 할아버지가 들려주셨던 도깨비 이야기를 아이들은 지금도 좋아합니다.
보이지 않게 사람들을 도와주고, 믿음과 의리가 있는 정겨운 도깨비!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깨비방망이를 선물하고 싶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