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리스트 카터 <작은나무야 작은나무야>
그들은 이제 그가 온 것을 알았답니다.
숲과 숲바람,
아버지이신 산은 자기네의 노래로 그를 맞아들입니다.
그들은 작은나무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들은 그의 마음이 따뜻하다는 걸 알지요.
그들은 노래를 불러요, ‘작은나무는 외롭지 않다’고.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철없는 레이나까지도
골짜기를 타고 흐르며 즐겁게 춤을 추어요.
‘오, 내 노래를 들어 봐요,
우리 형제 하나가 우리를 찾아왔어요.
작은나무는 우리 형제, 그리고 작은나무는 지금 여기 있어요.’
어린 사슴 아우이 우스디와
암메추라기 미넬리
그리고 까마귀 카구마저 노래 불러요.
‘작은나무의 마음은 굳세고,
그의 따뜻한 마음은 그의 힘이 되어 주어요.
그리고 작은나무는 결코 외롭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의 낮고 부드러운 노래.
‘작은나무야 작은나무야’의 주인공 작은나무는, 할머니가 실개천 레이나와 숲 속 형제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알리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말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나무는 그들이 자기를 이해하리라는 것을 느끼며 외로워하지 않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책을 1991년에 ‘작은나무야 작은나무야’란 제목으로 먼저 만났다. 전미 서점상 연합회가 판매에 가장 보람을 느낀 책으로 선정하여 제1회 에비상(American Booksellers Book of the Year)을 수상한 책이다.
이 글을 만나면서 외로움과 이별에 대한 올망졸망한 기억들을 더듬을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정이 많고, 누구의 말이든 잘 믿었다.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치레의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 말도 잘 기억했다.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초등학교를 일곱 번 옮겨 다녀서 정들만하면 친구나 주위 풍경들과 헤어져야 했다.
이사한 날 밤이면 낯선 방에서 숨죽이며 베갯잇을 적시기 일쑤였다. 며칠 밤을 일기장에 떠난 동네 이름과 친구들 이름을 수없이 적으며 그리움을 삭였다.
그때 작은나무처럼 자연과도 마음을 열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덜 외로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래 머물며 엮어지는 정을 그리워해서인지 커서도 내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쉽게 그 사람을 믿었다.
얼마 전에도 몇몇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서 한동안 마음을 앓아야 했다.
‘누가 너에게 말을 할 때는 그 말뜻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라고 한 작은나무의 할아버지 충고를 잊은 탓이었다. 달콤하고 많은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휴지보다 못한 것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침묵이 참되고 깊은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잊고 있었던 거다.
인디언들은 말은 불필요하며, 느끼고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알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믿었다.
그들은 영혼으로 이야기했으며 왜곡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질서를 가르쳐 주었다.
그들 삶의 방식을 배우고 익혔다면 굳이 상대의 잘잘못을 따지고 원망할 일도, 가슴에 담아 둘 일도 아니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만일 우리가 정직하고 근검절약하는 태도를 갖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라 배웠다면 이러한 가르침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라는 지은이의 말처럼 마주한 이들의 가치관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했다면 헛웃음으로 돌아설 일들이었다.
마음이 답답해지면 이 책을 펼친다.
어느 부분이고 읽으면 잔잔한 감동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마음에 평온이 깃든다.
어느 땐 작은나무의 이야기가 찬서리처럼 서늘한 아픔으로 와닿을 때도 있다.
새로운 느낌으로 만나는 슬픔이 내 정서에 또 얼마의 무게를 더 할지 몰라 조심스럽기도 하다.
책을 펼친 채 창밖을 바라본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없는 체로키 인디언들의 진실한 삶의 모습은 메마른 삶 속에 허덕일 때마다 촉촉하게 젖어든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연을 닮아간 그네들의 삶에서 삶다운 삶을 배운다.
작은 나무의 할머니는 ‘영혼을 크고 실팍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 것뿐이다.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점점 커져간다.’ 고 한다.
외로움이나 슬픔의 대부분은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잘 알면서도 실천 못하는 일 중 하나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이해해 달라고는 하지만 상대에 대한 참다운 배려는 드물다.
작은나무의 할아버지는 말한다.
‘남들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해하는 데는 많은 고투가 따라야 하므로.’
고통 속의 이해, 내 생각을 버려야 상대방의 마음이 보이고 이해가 찾아든다.
책을 펼치면 ‘자연과 인간의 동화(同化)’도 아름답지만,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정과 사랑이 가장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이야기가 삶의 푸석함에 단비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