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rcos→Viana
Day 44.
Wednesday, June 7
새벽 2시 반쯤 잠깐 깼으나 폰은 아직 충전되지 않았다. 콘센트가 입구에 있어서 아침까지 폰을 방치해 두기엔 왠지 불안했다.
화장실 다녀와서 딥슬립 하고 눈을 뜨니 6시, 마이클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어 게으름 피워보지만 결국 일어나 준비하게 되었다.
배낭을 메고 떠날 차비를 하는데 갑자기 수박 아저씨가 나타나 우유를 슬쩍 내민다. 그런데 중국인 부부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정중하게 사양했다.
기다리라고 했지만 도망치듯 나섰다. 이 아저씨 정체가 뭐지?
로스 아르꼬스에서 비아나까지 18km 내 걸음으로는 7시에 출발하면 12시쯤 도착할 것 같았다.
마을을 지나는데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들이 보였다. 농장을 지나 까미노 루트를 따라가는데 7시 반쯤 NA-1110 도로 표지판 58km 지점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왼쪽에 두고 산 라사로의 묘지와 성당 건물 사이의 길을 따라서 마을을 빠져나올 수 있다. 전쟁과 전설의 역사를 가득 담고 있는 나바라 왕국의 오래된 까미노를 걷는 구간이다.
산솔까지의 길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지만 길고 긴 포도밭이 계속 이어진다. 어제의 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편안하고도 쓸쓸한 길을 걸어야 하는데 산솔을 향하는 마지막 구간은 가벼운 오르막 길로 Desojo를 향하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등지고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산솔을 나와 N-111 도로를 조심해서 횡단하여 바로 Lazagurriá와 Elizagirria를 지나는 자동차 전용도로의 아래를 지나는 좁은 길을 내려와야 한다.
산솔은 원래 Monasterio de San Zoilo의 영지였는데 마을과 수도원, 성당의 이름은 순교한 코르도바 출신의 San Zoilo에서 유래한 것이며 유해는 현재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산솔에서 또레스 델 리오까지는 좁은 길을 따라 계곡을 건너면 바로 마을이다.
또레스 델 리오는 까미노의 가장 독특한 성묘 성당이 언덕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곳에서 템플 기사단은 아랍의 건축양식을 차용하여 독특한 성당을 만들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밖에도 마법사 후아니스와 악명 높은 도둑 늑대 후안의 전설이 숨어있는 늑대 후안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9시쯤 조그만 마을인 산솔이 끝나고 또레스 델 리오에 도착했다.
그런데 같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 예전과 다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멋진 자연 전망대에서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서있었던 것 같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언덕 위로 Iglesia de San Zoilo의 종탑이 보였다.
또레스 델 리오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함락되었다가 10세기 초반 산초 가르세스 1세가 탈환했다고 한다. 템플 기사단이 예루살렘의 성묘 성당과 유사하게 만든 Iglesia del Santo Sepulcro가 있다.
여전히 순례자를 위해 문을 열어두고 있는 띠엔다는 그대로였다.
오솔길을 벗어나서 고속도로에 오르니 66km 지점이다. 두 마을이 4km 정도의 거리에 들어있었다.
오늘은 맑았지만 아직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없어 다행이었다.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다리뿐만 아니라 물집 통증은 참을 만한데 발 뒤꿈치의 통증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욱신대는 통증에 발뒤꿈치가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소나기가 내리기 직전에 차를 얻어 타서 몰랐는데 산을 빙빙 둘러서 내려오는 도로가 생각보다 길었다.
비아나 가는 길은 여전히 걷기 힘들었지만 걱정도 함께라서 더 힘들었다.
중세에서부터 다리를 부러뜨리는 길이라고 불렸던 이 구간은 너덜지대의 자갈과 먼지투성이의 좁은 오솔길로 이어지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뽀요의 암자라고 불리는 16세기 고딕 양식의 작은 성당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첫 번째 오르막의 정상에 다다른다.
다시 협곡과 언덕 사이를 반복해서 지나면 풍경이 다채롭게 변한다.
멀리 보이는 비아나와 에브로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내리막길을 통해 이어지는 발끝의 고통이 점차 밀려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라 리오하로 이어지는 평야에 도착하게 된다.
비아나는 오래된 성곽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의 도시다. 비아나의 까미노 사인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성벽을 통해 궁전 같이 화려한 저택으로 가득 찬 도시의 내부로까지 올라가게 한다.
만약 비아나를 지나쳐 로그로뇨까지 바로 이동할 경우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성벽의 주위를 따라 만들어진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서 쉽게 도시를 빠져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까스띠야와 나바라의 고대 왕국 사이에 튼튼하게 번성한 이 아름다운 도시를 놓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수도 있다.
까미노의 주변이 점점 도시의 모습이 되어가더니 12시 40분 드디어 비아나에 도착했다.
8인실 1번 룸 8번 침대. 여기도 사람 봐가며 침대 배정을 해주었고 침대 번호도 순서대로 붙어있지 않았다.
기껏 차별이라고 해봐야 위쪽 침대를 주는 정도인데 아직은 위쪽이 좋았으니 상관없었다.
우선 주방으로 갔다. 이곳은 유난히 식재료가 풍부하다. 저녁마다 만찬을 즐기고 식재료를 남기고 가는 듯했다.
달걀 여섯 개를 삶으면서 방울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를 만들어먹고 식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먹었다. 오일이 있었으면 달걀 프라이를 해 먹었을 텐데, 삶고 나니 누가 쓰고 기부를 했는지 오일이 있었다.
물병을 채우고 남은 그레이프 주스는 밥 먹으면서 먹기로 했다.
마늘 밥을 짓고 뜸을 들이는 동안 일단 샤워를 하고 왔다. 빨래는 내일 일찍 가서 하려고 보니 공립은 늦게 오픈한단다.
다시 내려가서 카레라이스를 만들었고 꼬마 와인병에 와인을 담고 그레이프 주스를 마시려고 보니 주스가 아니라 반가운 상그리아였다. 밥 먹으면서 상그리아 한잔을 마셨다.
설거지하고 룸으로 올라와 보니 주방에다 충전 중인 폰을 두고 온 게 생각났다. 내려가는 길에 산책이라도 갈까 했으나 발 상태가 절망이라 이대로 나가면 망할 것 같았다.
폰만 챙겨 와서 물집 치료를 했다. 짐을 정리하고 나니 16시가 넘었다.
그 중국인 부부와 수박 아저씨는 로그로뇨로 갔나 보다. 아님 비아나의 다른 알베르게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수박 아저씨의 의중을 알지 못했으나 중국인 부부와 어울리면서 나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고 왠지 중국인 부부가 잘해보라며 부추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나쁜 의도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왠지 농락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는데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생각지 못한 누군가의 호의에, 이성 간의 어떠한 감정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왜 그렇게 불편한지 모르겠다.
짝사랑만 줄곧 해오던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한 친구가 고백을 해왔고 그렇게 바라던 일이 일어났지만 난 너무 당황했었다.
분명 싫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그 친구가 무서워졌고 급기야 그 친구를 피해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포기하고 사라지자 줄곧 후회를 했다.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면 난 그렇게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유일하게 연락되지 않는 친구라 미안함은 계속되었고 여전히 마음이 쓰였다.
오랜만에 한국인 팀이 들어왔는데 젊은 또래들로 구성된 그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었지만 왠지 그들이 부러웠다.
이곳은 주방과 식당 규모가 커서 만찬을 즐기기에 좋았고 혹시 까미노 친구를 만나게 되면 같이 고기라도 구워 먹고 싶었던 곳이었다.
까미노에서 대부분의 재료는 구할 수 있었지만 쌈장은 구할 수 없는 것 같아 한국에서 챙겨 왔지만 아직 기회가 없다.
발의 발진 중에 유난히 가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뭔가에 물린 게 아닌지 자꾸 의심스러웠다.
내일 나바레떼까지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발뒤꿈치를 위해선 이제부터라도 걷는 거리를 줄여야 했다. 아무 때나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기회가 있을 때 거리를 줄이기로 했다.
침대에서 벌레를 잡았는데 아직 피를 먹은 상태가 아니라 베드버그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증으론 거의 확실했다.
아직도 베드버그가 있나 보다. 배낭이 불안했다. 한동안 베드버그에 물리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게 되었는데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면 그동안 물리지 않은 게 더 신기했다.
베드버그로 망친 여행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했는데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침대에선 인터넷이 안 되어 주방으로 다시 내려갔는데 그 한국인 팀은 여자 2명 남자 4명으로 구성된 청년들이었다.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데 쌈장을 주고 싶었지만 이미 한국인에게 상처를 받은 전적이 있는 터라 애써 모른 척하고 떨어져 앉았다.
그들은 식사가 끝나고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스토리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한국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다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동양인이 혹시 한국인이 아닌지 나에게 관심 갖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한국인이면 알아들을 것이고 아무 말이 없으면 외국인이라 생각할 모양이다.
외국인으로 남게 되더라도 끝까지 모른 체하고 싶었으나 혹시 다음에 마주치게 되면 애매한 상황이 될 수도 있어서 그냥 인사를 했다.
그렇게 그들은 나를 그 무리에 끼워주었고 오랜만에 한국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그들도 각자 따로 와서 뭉치게 된 케이스였다.
같이 어울리다 알베르게 마당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Iglesia de Santa María에도 같이 갔지만 내부가 궁금했던 성당 알베르게엔 들어가 보지 않았다.
팀원 중에 34살의 S는 미국인 청년에게 마음이 있는 듯하여 둘의 사진을 몰래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니 좋아했다.
비아나에 오면 자연스레 한국인과 어울리게 되는 것 같았다.
내일은 거리가 짧아 부담이 없어서 늦게까지 어울리다 21시쯤 침대로 돌아왔다.
발의 가려움이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또 베드버그에 물린 것 같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오니 뭔가 허전했고 마이클에게 안부 메일을 보냈다.
어릴 적부터 사람과의 관계는 대화보다 편지가 더 편했다. 더구나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아서 더 편했다.
그렇게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들이 생각나기도 해서 까미노 블루에 빠지곤 한다.
Los Arcos→Viana 18.3km
○Los Arcos (447M)
●Sansol (479M) 7.0km
-Iglesia de San Zoilo
●Torres del Río (471M) 0.8km
-Iglesia del Santo Sepulcro
●Viana (474M) 10.5km
-Iglesia de Santa María
-Monasterio de San Pedro
-Balcon del Ayuntamiento
622.2km/775.0km
Albergue de Peregrinos Andres Munoz -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