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52

Navarrete→Nájera

by 안녕
Day 47.
Saturday, June 10


나바레떼에서 나헤라까지 16km 3시간 반이 걸리지만 난 13시쯤 도착할까?

어제 도착하자마자 장을 비우고 자기 전에 또 비웠지만 그럼에도 속은 편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큰소리로 방귀를 계속 뀌고 있었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냄새를 계속 풍기고 있었다.

여기저기 코골이들의 합주도 이어졌다. 그렇게 자정 넘어서도 잠을 못 자고 있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깼던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또 장을 비웠으니 정말 엄청나다.

5시 반쯤 한 팀이 나가는 소리에 눈을 떴으나 이내 다시 잠이 들었고 6시 반쯤 되니 다들 일어나 준비하길래 나도 일어났다.

남겨두었던 파스타를 먹고 용기는 반납하고 아침으로 먹으려던 식빵이랑 치즈는 점심에 먹기로 했다.

모든 게 예전과 같았던 나바레떼 알베르게를 7시 20분쯤 나섰다.




나바레떼에서 나헤라까지는 벤또사를 향하는 오르막과 Alto de San Antón을 오르는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힘든 구간이 없으며 이 오르막도 그리 높지 않다.

나바레떼를 나와 벤또사의 언덕길을 오르기 전 까미노를 따라 내리막을 가다 보면 1986년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은 벨기에 순례자 앨리스 그래이머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볼 수 있다.

그녀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고속도로 N-120의 확장으로 과거의 까미노 구간이 바뀌면서 자전거 순례자에게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

특히 마을을 나와 고속도로로 들어가서 걷게 되는 구간에서는 주의를 해야 한다.




왼쪽으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와 평행한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이후 길은 까미노의 오른쪽으로 지나는 고속도로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반복하면서 4개의 교차로를 건너 이어진다.

Sotés에서 나오는 길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고속도로를 향해 진행하다 도로를 가로질러 샛길로 들어가야 한다.

소떼스의 잘 알려진 포도주 양조장의 포도밭 사이로 왼쪽으로 조금 비스듬히 샛길을 따라 까미노를 걷다 보면 나지막한 언덕 기슭에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는 벤또사가 내려다 보인다.




N-120 도로 표지판은 11km 지점부터 시작이었다.

도로를 따라 이어지던 까미노 루트는 어느새 사라졌고 난 계속 전진하며 챙겨 온 오이 하나를 꺼냈는데 오이인지 호박인지 모르겠다.

우걱우걱 씹으며 걷다 보니 큰 도로와 합류하게 되었다. 위험하지만 갓길을 걷고 있었는데 철조망 너머로 흙길이 조성되어 있는 게 보였는데 까미노 루트 같았다.

구글조차 그 길을 안내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고민이 되었다. 진입 직전에 노란 화살표를 보긴 했지만 벤또사를 둘러가는 길을 안내하는 줄 알고 무시했었는데 이젠 그 길로 걷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공식적인 거리 775km에 포함되지 않는 소떼스, 벤또사로 가지 않으려고 직진하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배낭을 메고 2미터 철조망을 넘을 자신은 없으니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 계속 걸어야 했다.

도착지점까지 직진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도를 다시 확인하니 나헤라로 가려면 도로를 빠져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 커다란 고속도로에 샛길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와야 했다.

허비해 버린 30분의 시간보다 써버린 체력이 더 아까웠다. 가뜩이나 걷기 싫은데 발 상태는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부담을 줄여야 했지만 그렇게 4km가량을 허비했고 다시 원점에 도착하니 내가 애써 외면했던 노란 화살표가 그 옆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8시 반, 다시 출발했다.

한참 후 구글 내비가 잘못된 거였다는 걸 알았다. 길을 인식하지 못하고 중간에 멀리 돌아갔다 다시 도로로 돌아오는 경로를 추천하고 있었던 거였다.

어쩔 수 없이 걷게 된 까미노 루트는 흙길, 자갈길, 오르막 길이 이어져 은근히 힘들었다. 발바닥에 불이 날 것 같았다.

구름이 한가득이더니 어느새 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완전 땡볕이 되었다. 마지막 지점은 정말 힘겨운 싸움이었다. 머핀이랑 카스텔라를 꾸역 먹으며 버텼다.




작고 조용한 마을인 벤또사에는 까미노의 공식 협회 중에 하나인 산 사뚜르니노 협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다.

마을의 출구를 나오연 가파른 오르막을 통해서 산 안똔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이 오르막에서 과거 이곳에 있었던 안또니아노스 수도원의 유적을 지나치며 잠시나마 까미노의 허망함을 느낄 수 있다.

산 안똔 정상에서는 편안한 내리막길이 시작되어 멀리 보이는 나헤리야의 계곡과 나헤라까지 축복받은 포도밭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마지막 부분의 급경사를 지나면 나헤리야 계곡을 따라 까미노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그러나 N-120 고속도로와 만나게 되는 지점에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계속 걷다 보면 왼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통신용 안테나와 불모지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이내 얄데 강 위를 지나는 보행자용 다리를 건너게 된다.




나헤리야 강변의 리오하 언덕에 자리 잡은 중세의 도시 나헤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불쾌해 보이는 공장지대를 지나야 한다.

가구가 많이 생산되는 도시인 까닭에 까미노 길을 따라 부서진 가구들과 같은 폐기물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창고와 오래된 공장 건물을 지나면 더러운 공장 벽에 써져 있는 시를 보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순례자를 위한 시는 에우게니오 가리바이 신부님의 작품이다.

다시 N-120 고속도로를 건너 나헤라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 도시의 알베르게가 그러하듯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공장지대를 지나면서 느끼는 실망감은 도시로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진다.

마치 거대한 벌통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뚫려있는 붉고 커다란 바위산들을 끼고 있는 나헤라는 라 리오하의 주도였으며 10세기와 11세기를 거치면서 나바라 왕국의 본거지 역할을 했고 그 이후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빰쁘로나를 무너뜨렸던 거점이 되기도 했다.

나헤리야 강을 사이에 두고 8개의 아치를 가진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다리가 Barrio de Adentro 라고 하는 구시가지와 Barrio de Afuera 라고 하는 신시가지를 연결시켜주고 있다.

기사들의 회랑과 신비한 왕가의 영묘를 볼 수 있는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이 있다.

과거 기독교 왕국과 이슬람 왕국 사이에 있었는데 로마 시대에 세워진 이 도시를 아랍인들은 바위 사이의 도시라는 의미인 Naxara 라고 불렀다.

2년이 지나도 강렬한 풍경은 여전한 곳이었다.




나헤라 시내에 진입하니 심쁠리, 루빠 등 대형 마트가 종류별로 다 있었다. 들러서 구경하는 즐거움이라도 누리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어 그냥 지나쳤고 다리를 건너 알베르게로 갔다.

강변 따라 들어가니 우측으로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고 12시쯤 도착했지만 오픈은 13시 30분이란다. 그래도 도착하니 살 것 같았다.

중국인 커플, 일본인 커플, 서양인 두 명 등 이미 여섯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늘진 벤치는 이미 만석이라 양지바른 벤치에 배낭을 올려두었다. 그늘에 서 있다가 자리가 나서 복숭아를 씻어 먹고 체리를 먹으며 기다렸다.




12시 반, 오스삐딸레로가 와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먼저 사용했다. 대기하고 있으니 13시쯤 일찍 오픈해 주었다.

강당 같은 커다란 공간에 2층 침대가 세줄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나름 남녀가 양쪽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남자 쪽 26명, 여자 쪽 28명, 가운데 28명, 오스삐딸레로 2명. 난 34번 침대였지만 입구 쪽 첫 번째였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주스를 한잔 마시고 시원한 맥주와 누군가 남긴 나초를 먹었다. 바나나 가격표 날짜가 일주일이 넘은 걸 보니 그동안 아무도 먹지 않았는지 푹 익어있었다.

씻는 이가 없어 먼저 씻었고 양지바른 곳에 빨래를 널었다.




주방 냉장고에 들어있던 재료들로 양송이 볶음과 키위, 레몬, 당근, 고추피클 한 접시와 샐러드 한 접시 그리고 까망베르 치즈와 크림치즈를 바른 식빵을 먹었더니 배가 터질 듯했다.

식재료가 조금씩 남겨져 있으면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되었다. 식빵 4조각은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서 내일을 위해 따로 챙겨두고 남은 까망베르 치즈와 크림치즈는 기부했다.

배가 부른 것도 있었지만 계속 앉아 있었더니 너무 힘들어서 샐러드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침대로 돌아왔다.




발을 소독하는데 오른쪽 발엔 새로운 물집이 생겨있었고 왼쪽 발엔 피멍과 염증이 생겨서 욱신거린 모양이다. 내일은 더 긴 일정인데 고민이다. 줄일까?

한국인 몇 명이 들어왔다. 땡볕이라 16시가 되기도 전에 빨래는 바짝 말랐다.

또 장을 비웠지만 편하지 않았다. 벌에 쏘인 손등 상처는 가라앉을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부어있었고 너무 가려웠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실내가 너무 더워서 긴팔 상의를 벗고 있었다. 리셉션 쪽은 에어컨을 켜놔서 통로문을 열어두니 찬기운이 들어와서 살 것 같았는데 누군가 금방 닫아버린다. 나만 더운 걸 보니 또 열이 나고 있나 보다.

17시쯤 남은 샐러드를 먹고 바나나와 레몬 맥주를 마셨더니 배는 또다시 빵빵해졌다. 오늘은 여기서 끝, 너무 피곤하다.




Navarrete→Nájera 16.9km

○Navarrete (510M)
■Sotés (580M) 3.5km
■Ventosa (596M) 2.1km
-Iglesia Parroquial de San Saturnino
-Poyo de Roldán
-Alto de San Antón
●Nájera (498M) 16.9km
-Monasterio de Santa María la Real de Nájera
-Puente de San Juan de Ortega
-Monasterio de Santa Elena
-Real Capilla de la Santa Cruz

583.1km/775.0km




Albergue de Peregrinos Municipal de Nájera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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