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blación de Campos→Carrión de losCondes
Day 55.
Sunday, June 18
6시 반쯤 모두들 떠났다. 오랜만에 장을 비우고 짐을 싸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계속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밥을 주었으나 밥은 안 먹고 나만 따라다녔고 다리 사이로 끼어들어 고양이에게 걸려 넘어질 뻔했다. 아무도 없는 외딴곳에서 아침부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까지 15km 3시간 10분 걸리지만 오늘은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까지만 가기로 해서 7시 반쯤 여유 있게 출발했다.
마을 출구에서 왼쪽으로 난 까미노를 선택하면 우시에사 강을 건너 레벵가 데 깜뽀스를 거쳐 비야르멘떼로 데 깜뽀스까지 그늘 한 점 없는 P-980 자동차 도로 옆 까미노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마을의 출구에서 오른쪽 까미노를 선택한다면 조금 더 돌아가는 루트가 될 수도 있으나 수로를 따라서 비요비에꼬를 지나 비야멘떼로 데 깜뽀스까지 보다 쾌적한 길을 걸을 수 있다.
12세기에 만들어진 레벵가 데 깜뽀스를 거치든지 빨렌시아의 아름다운 수로 옆에 세워진 작은 마을인 비요비에꼬를 거치든지 까미노는 비야멘떼로 데 깜뽀스에 도착하게 된다. 두 가지 길 모두 특별히 까미노 사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비요비에꼬 루트는 뽀브라시온 데 깜뽀스를 나와 오른쪽 까미노를 통하여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 시간 후에 비요이에꼬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마을을 통과하여 아르꼬나다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진행하면 우시에사 강을 건너게 된다.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강변을 따라 자라난 버드나무 길을 따라 직진하면 왼쪽으로 비야멘떼로 데 깜뽀스로 향하는 길을 만나게 된다.
레벵가 데 깜뽀스를 거치는 루트는 더욱 간단하다. 뽀브라시온 데 깜뽀스의 마을 출구에서 우시에사 강을 건너는 왼쪽 까미노를 따라 자동차 전용 도로와 나란히 걷기만 하면 된다.
벌써부터 순례자들이 나타나서 나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타미네 가족도 지나갔다.
8시 반쯤 레벵가 데 깜뽀스에 도착했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독립전쟁 때 빨렌시아를 지켜낸 바르똘로메 아모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조각상을 지나 Iglesia Parroquial de San Lorenzo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누군가 청소를 하러 들어왔는데 거칠게 바닥을 닦는 게 마치 무언의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져 앉아있기 불편했다. 일어나서 나오니 그제야 그 청소를 멈추었다. 뭐지?
레벵가 데 깜뽀스에서는 오른쪽으로 비요비에꼬를 지나 아르꼬나다로 향하는 도로를 가로질러 P-980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비야멘떼로 데 깜뽀스는 레벵가 데 깜뽀스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까미노 마을로 성 마르띤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까미노 마을이라고는 해도 마을은 벽돌로 만들어진 작은 집들과 여름 한철 개장하는 바르를 제외하고는 순례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없는 곳이다. 때문에 마을 출구의 커다란 소나무 숲 밑에 자리 잡은 순례자를 위한 쉼터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비야멘떼로 데 깜뽀스에서 잠시 휴식을 가지고 다시 P-980 도로의 오른쪽으로 이어져있는 까미노를 따라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로 이동했다.
날씨는 점점 더워졌다. 차도 따라 걷는 이 길은 그늘이 없다. 지평선을 바라보고 걸어야 해서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좋았지만 주변에 순례자가 많으면 이어폰으로 들어야 했다.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까지 가서 까미노 후반을 위해 여유 일정을 더 만들어볼까 갈등했지만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냥 멈추기로 했다.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는 인구가 약 2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나 중세 스페인에 있었던 템플 기사단의 본거지였기 때문에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마을은 까리온 데 꼰데스로 향하는 P-980 도로의 왼쪽에 위치한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적절하게 절충된 블랑까 성모 성당의 아름다운 회랑에 감탄했다면 성당 내부에 있는 돈 펠리뻬 왕자와 그의 아내인 도냐 레오노르의 영묘와 템플 기사단의 비밀이 숨어있는 우물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성당 앞에 있는 광장은 새롭게 정비된 듯 식탁에 앉아 성당을 느긋이 쳐다보는 순례자의 동상 곁에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10시쯤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로 가니 스페인어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아직 오픈 전이니 문은 닫혀있겠지만 무언가 불안했다. 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문을 닫았다는 말인 것 같았다.
Iglesia de la Virgen Blanca로 가니 1€를 내란다. 성당 앞에는 순례자 조각상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팟이 있었지만 보고 지나쳤다.
알베르게로 다시 돌아가서 확인을 해볼까 하다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10시 15분 다시 출발했다. 수녀님들 계시는 곳으로 가라는 뜻인가 보다.
오전임에도 뜨거운 햇살이 정말 힘들었지만 이런 날은 베드버그도 물지 않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놓였다. 뜨거운 열기에 배낭 속 베드버그가 전멸하길 빌어본다.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에서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로 향하는 까미노는 N-980 도로의 오른쪽을 따라 걷다가 조그만 언덕을 오르면 도로를 가로질러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빨렌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까미노의 심장으로 불리는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는 중세에 이미 12개의 크고 작은 성당 건축물과 병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특히 중세의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에서는 까리온 데 꼰데스를 찾아오는 순례자에게 11월부터 4월까지는 한 개의 커다란 빵을 주었고 5월에서 10월까지는 반 개의 빵을 주었으며 성직자에게는 빵과 2개의 계란, 포도주 1/4병과 20 레알의 돈을 줄 정도로 번성했다고 전해진다.
도시의 입구에 있는 산따 마리아 델 까미노 성당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로 현관에는 동방박사의 경배와 이슬람교도에게 바쳐진 100명의 처녀의 전설에 관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산따 마리아 광장을 통과하여 판토크라토르가 있는 산티아고 성당을 지나가게 되는데 광장 입구의 아치에는 24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각이 숨겨져 있으며 이어서 오래된 중세의 다리를 건너면 현재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는 오래된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에서 도시가 끝나게 된다.
마을 초입에서 Iglesia de Santa María del Camimo까지 너무 멀지 않음에 감사드렸다.
11시 30분 산따 마리아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12시 오픈이라니 그냥 기다리기로 했고 10분 전에 오픈해서 체크인했다.
이곳의 웰컴 드링크는 언제나 반가웠고 수녀님들은 여전히 활발하고 친절했다. 2층 4번 침대를 배정받았다.
이곳 수녀님들을 처음 봤을 때 나도 그냥 수녀원에 들어갈 걸 그랬나 잠시 후회를 했었다.
성소 모임에도 다녔지만 역시나 아버지가 무서워 중단을 해야 했고 서른 살 되던 해에는 본당 수녀님이 마지막 기회라며 독려해 주셨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포기했었다.
주방에는 수녀님들이 간식을 미리 준비해 놓곤 하신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지만 선뜻 내어주시는 모습에 그저 감탄했었다. 순례자를 위해서는 뭐든 다 내어줄 기세였다. 레몬 맥주와 콜라, 나초가 남겨져 있었다.
요거트를 하나 먹고 정신을 차린 후 샤워하고 옷을 모두 빨아 널었다.
음료 마시고 샐러드를 만들고 있는데 소이소스가 있어서 쌀을 조금 넣어 볶았다. 양파, 가지, 줄기콩, 토마토까지 넣으니 엄청난 양이 되었다. 옆에 있던 한국인에게 권하니 자기 거 먹겠단다.
샐러드부터 먹었는데 생 양파가 아렸지만 그럼에도 맛있었다. 뽀블라시온에서 같이 묵었던 대만인 영과 링이 보이기에 권해보니 먹겠단다. 같이 먹었는데 감동스러워했다.
우리에게 김치가 그러하듯 동양인에게 소이소스로는 무얼 만들어도 입맛에 맞는 듯했다.
14시인데 수녀님이 철수하셔서 내다보니 벌써 꼼쁠리또란다.
너무 먹어서인지 아침에 이어 또 장을 비웠고 다시 샤워했다.
15시 반, 빨래를 널다 떨어뜨린 옷핀을 찾으러 다시 내려갔는데 결국 못 찾았다.
목이 말라서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조금 남아서 그냥 들고 마셨는데 삼키는 순간 상한 걸 느꼈다. 팩을 열어보니 우유가 완전히 상해서 덩어리가 되어있었다. 이미 마신 상태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지만 무사하길 빌었다.
남겨둔 식재료를 정리만 해두시는데 내용까지는 미처 확인을 못 하셨나 보다. 화장실에는 사람이 있어 입만 겨우 헹구고 밖에서 토해봤으나 아무것도 나오진 않았다.
주방 싱크대에 있던 설거지 거리는 모두 정리되어 있었는데 주스병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로비에 방치되어 있는 웰컴 드링크 잔을 모두 가져다 설거지하고 있는데 잘생긴 청년이 와서 도와주겠단다. 혼자서도 상관없었지만 내 집도 아니니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공용으로 사용한 컵이라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끝나자 먼저 그라시아스! 하고는 나간다.
굳이 따지자면 도와준 너에게 내가 더 고맙지. 잘생긴 사람은 마음도 예뻤다. 그 사람도 이게 어떤 컵인지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난 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반성해 본다. 용서를 청하고자 하는 일이면서 왜 그랬을까?
16시, 처음으로 침대에 올라가 누워보았지만 할 일은 없었다.
여기서 오스삐딸레라로 눌러앉고 싶었지만 수녀님들이 계시니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청소라고 하겠다고 할까? 그러나 얘기할 용기는 없었다.
미사는 헌금 내러 가려고 했으면서 대만인들에게 미사 참여는 안 한다 그랬고, 하루 더 머물려고 왔으면서 내일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까지 간다고 했다. 생각과 말이 따로였다.
여기서 하루 더 머무는 것은 민폐다. 내일은 떠나자.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셨는데 난 왜 자꾸 못된 짓만 하려는 걸까?
배낭을 옮기다 죽은 베드버그 한 마리를 발견했다. 뜨거운 열기에 죽은 모양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 좌절했다.
물집을 소독하는데 코스타리카에서 온 로이가 보더니 밴드를 하나 준다. 땡큐~
18시 모임 후 19시에 미사가 있었는데 술 취한 이상한 사람이 미사를 계속 방해해서 불안했다. 별일 없이 끝났고 미사 후에 수녀님이 안수 후 별을 주셨다. 2년 전에 받은 별도 아직 간직하고 있었다.
20시가 넘어도 더위는 사라지지 않아 그냥 누웠다. 정말 덥다.
이번에는 침낭도 패딩도 필요 없는 까미노가 계속되고 있었다.
Población de Campos→Carrión de los Condes 15.4km
○Población de Campos (778M)
●Revenga de Campos (785M) 3.4km
-Iglesia Parroquial de San Lorenzo
-Casas Blasonadas
●Villarmentero de Campos (790M) 2.1km
-Iglesia de San Martín de Tours
●Villalcázar de Sirga (804M) 4.1km
-Iglesia de la Virgen Blanca
●Carrión de los Condes (836M) 5.8km
-Iglesia de Santa María del Camimo
-Real Monasterio de Santa Clara
-Real Monasterio de San Zoilo
-Iglesia de Santiago
-Iglesia de San Andrés
-Iglesia de Nuestra Señora de Belen
404.8km/775.0km
Misa Carrión de los Condes -1.00€
Albergue Parroquial Parish de Santa María -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