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72

Rabanal del Camino→Ponferrada

by 안녕
Day 67.
Friday, June 30


6시 반 일어나서 짐 싸놓고 아침 먹으러 주방에 갔더니 아침에는 난방이 되어 따뜻했다.

슬라이스 해서 토스트 된 둥근 빵에 버터와 누뗄라를 듬뿍 발라 커피와 함께 세 조각을 먹었다.

비가 와서 하루 더 머물고 싶었지만 그래도 걷기로 했다.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더 부담이었다.

미리 확인해 둔 바에 따르면 엘 아세보까지 17km 3시간 50분 걸린단다. 나는 얼마나 걸릴지 몰라 7시 반쯤 출발했다.




라바날 델 까미노에서는 흙으로 만들어진 까미노가 시작되고 1km를 전진하면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오는데 도로를 따라 나란히 폰세바돈까지 이어진다.

언덕을 오를수록 주변의 커다란 나무들은 점차 사라지고 항상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의 정상을 향해 가야 한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황량한 마을에는 폐허의 벽돌집이 늘어서 있는 길을 지나 너덜지대를 걸어야 한다.




오늘도 여전히 추웠다. 완전 초겨울 날씨였다.

와이파이가 없으니 최단거리 확인을 못해서 까미노 루트 따라 걸었다.

마을을 벗어나자 바람이 거세어지더니 한 번씩 강한 돌풍까지 불었다. 그래도 오늘은 나름 스카프로 무장을 했다. 손이 얼어붙어 미리 챙겨두었던 핫팩을 하나 꺼냈는데 불량이다.

어제 받았던 핫팩은 배낭에 들어있었는데 배낭을 내리기 번거로워 그냥 걸었다.

까미노 루트 따라 걷고 있으니 LE-142 도로 23km 지점이 보였다.




바람은 멈출 생각은 없는데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강한 비바람에 판초형 비옷이 뒤집어졌고 옷은 물론 배낭이 젖기 시작했다.

아직은 걸을만했는데 바람과 씨름하느라 중간중간 수시로 멈추어야 했다. 뒤집힌 비옷을 정리하고 다시 출발하면 어느새 또 뒤집혔다.

포기하고 그대로 걷자니 옷이 너무 젖어서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스틱을 모아들고 비옷을 간신히 정리하고 걸으면 다시 뒤집히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이라 더 힘들었다.

한 번씩 불어오는 돌풍에 판초형 비옷은 똑딱이 단추와 지퍼까지 한순간에 풀려버렸고 낙하산처럼 펼쳐져서 그 힘에 절벽 끝까지 끌려가기도 했다.

바람에 맞서 버티기를 반복하다 보니 무릎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악을 쓰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상황이 이어졌다.




Civil 차량이 자주 지나다녔다.

2년 전, 까미노를 시작하기 직전 아시아계 미국인이 실종된 곳이 이 부근이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이후, 그녀는 결국 살해된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건이 있었던 지점이고 오늘은 날씨가 험해서 순찰을 자주 다니는 듯 보였다.

나도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마주 오는 차량뿐이라 반대로 가는 차를 굳이 돌려세우고 싶진 않았다.




이제는 안개마저 자욱해졌다. 한 번씩 몰아치는 돌풍에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 봐, 우측 차도를 따라 걷고 있었는데 심한 안개로 인해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아 어쩌다 나타나는 차를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다시 왼쪽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바로 옆이 낭떠러지라 신경이 쓰였다.




산매자 나무와 금작화 사이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면 어느덧 철 십자가상이 있는 평평한 지역에 다다르게 된다.

이 부근이 평평한 이유는 천 년간 수많은 순례자들이 돌멩이를 주워 십자가 주위에 쌓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소망을 담은 돌멩이를 미리 준비해 와서 이곳에 내려놓고 간다.

그런 끄루스 데 페로는 안갯속에 갇혀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쳐야 했다.

2년 전 나는 아주 화창한 날에 이 길을 걸었고 난간조차 없는 이 길은 막힘없이 주변이 뚫려있어서 풍경이 유난히 멋졌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비바람에 휩쓸려 낭떠러지 아래로 끌려갈 뻔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생각났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이미 마음을 뺏겨버려 믿지 않았는데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아름다운 이 풍경이 어떻게 돌변하고 있는지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제는 손가락이 얼어서 스틱을 잡을 수 없었다. 스틱조차 끌고 다니다가 스틱 팁을 또 잃어버렸다. 그래도 늦지 않게 알아채서 그 와중에 되돌아갔고 다시 찾아왔다. 잃어버리길 벌써 두 번째다.

어렵게 내게 와 준 스틱마저 무용지물이 되면 더 힘들어진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끝까지 꼭 챙겨야 했다.




엘 아세보까지는 무리라 판단이 되었고 만하린에서 쉬기로 마음을 먹었다. 거리가 어느 정도였는지 생각나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굳어버려 폰 꺼내기조차 힘들었다.

10시 45분쯤 만하린 직전으로 예상되는 32km 도로 표지판이 나타났다.

희망이 보였지만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사방이 안개 속인데 비는 오고 바람까지 불어서 옷은 이미 다 젖었고 그래서 더 추웠다. 무릎도 얼어버렸는지 감각이 없었다. 굳어버린 다리를 질질 끌며 걷다 보니 이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몸이 따뜻해졌다. 무슨 거대한 막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포근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걸었다. 무릎에서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서 또 멈추었다. 걸음을 멈추니 몸이 따뜻해졌고 살 것 같았다. 그러나 잠이 쏟아졌고 금방이라도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았다. 여기서 잠들면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면 고통이 따르는 현실이 느껴졌다. 몇 발자국 걷다 멈추고 또 걷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냥 자고 싶었다. 잠이 들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잠이 들었다던 누군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몸이 따뜻해지며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 누군가 거친 힘으로 내 배낭을 잡아채서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순간 놀라 절벽 끝의 무언가를 간신히 붙잡았고 내 몸은 절벽 끝에 매달리게 되었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나를 집어던진 누군가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려줄 수도 있겠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잠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아무 감정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구해줄 마음이 없구나.'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얼어붙은 내 손가락이 끊어질 것 같았다.

'여기서 죽겠구나.'

죽으려고 노력할 때는 그렇게도 매번 살려내시더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죽을 운명이었나 보다.

살겠다고 버텨보지만 더 이상은 버틸 힘도, 희망도 없었다. 손을 놓으면 죽는다는 걸 잘 알지만 지금 이 순간이 더 힘들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너무 컸고 끊어질 것 같은 손가락의 통증이 더 고통스러웠다. 희망이 없는 지금 버틴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이 길을 지나가고 난 후라 도와줄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고통이 길어지는 만큼 차라리 손을 놓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손을 놓았다.




그런데 바로 발아래에 땅이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맨체 살겠다고 버티느라 발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없었고, 그럴 정신도 없었는데 바로 그 아래에 길이 있었다.

순간 긴장이 풀리니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웃음이 났다. 절벽이 바람을 막아주어 고요했고 어디선가 빛이 비치고 있어 너무 따뜻했다.

살 것 같았다. 아니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보여 그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누가 부른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누군가 나를 깨웠고 그렇게 눈을 떴다.




나는 그 자리에 몸이 얼어붙은 채 잠이 들었고 순찰 중이던 가디언즈에 발견되었다.

눈은 떴지만 이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은 이미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었고 여전히 멍한 상태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가디언즈 아저씨가 괜찮냐고 물었다.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 눈만 꿈뻑였다. 또 다른 한분도 차에서 내렸고 내 배낭 버클을 풀고 내 몸에서 배낭을 떼어냈다. 그들은 아무 말없이 나를 차에 태웠다.

차 문이 닫히자 온기가 내 몸을 감쌌다. 이내 체온이 돌자 몸이 붓기 시작했고 피부가 가려웠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현실로 돌아왔다.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나서 꿈이라는 게 더 믿기 힘들었다. 어디까지 꿈이고 어디까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Proteccion Civil 차량을 타고 그 산을 내려왔다.

안개를 뚫고 내려가니 산 아래는 햇빛이 비치는 화창한 날씨였다. 몇 km 차이로 그렇게 다른 세상이라는 게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걸어가는 순례자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보다 오늘은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디든 데려다주는 곳까지 조용히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병원으로 가겠냐고 물었다. 안 가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갈 수 없었다.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으니 병원에 가는 순간 일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안 가도 될 것 같다고 말하니 다행이라며 알베르게로 데려다주겠단다. 몰리나세까, 뽄페라다 어디로 가고 싶냐고 해서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다.

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산 아래 뽄페라다는 맑은 날씨 속에 마을 전체가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산 중턱 위로만 먹구름과 안개가 한가득이다. 바람만 없어도 견딜만했을 텐데 도로도 내 기억 속의 도로보다 더 험한 모습이었다.




몰리나세까부터는 날씨가 정말 좋았다. 며칠 전 땡볕을 걸을 때만 해도 이곳 메루에로 강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었고 이번에는 나도 이곳에서 머물고 싶었다.

여기까지만 가겠다고 할 것을 그랬나 싶었지만 괜스레 죄책감마저 들었다. 걷고 있는 많은 순례자를 지나치고 멀리 빠하리엘 산이 보이면 마스까론 다리에 다다르게 된다.

LE-142 도로 54km 지점을 지나 11시 15분쯤 뽄뻬라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한기는 가시지 않았고 손가락은 얼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손가락은 퉁퉁 부어있었다. 걷는 것조차 혼자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곤 알베르게 내부까지 배낭을 옮겨주셨다.

그들은 끝까지 도와주고 쾌유를 빌어주며 그렇게 떠나가셨다. 그라시아스!




이렇게 앉아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아 여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아직 오픈 전이라 마당 의자에 앉아 햇빛을 쬐고 있으니 학생 단체 순례자가 와서 배낭을 줄 세우고 있었다.

늦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배낭을 들어다 놓을 힘이 없었다. 대기 행렬 맨 뒤에 등산화를 갖다 두었더니 누군가 와선 자기네보다 내가 먼저 왔으니 내 등산화를 앞으로 이동시켜 주겠단다. 학생들이 참 선했다.




날씨는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산 위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조차 평화로웠다.

불과 한 시간 전, 지옥 속에 있었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더 버텼으면 내 손가락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며칠 전 폭염과 싸웠는데 이젠 동상과 싸워야 했다. 어제 무릎 보호대를 준 타이완 순례자를 다시 만났다.

이 무릎으로 어떻게 내가 여기에 앉아있는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굳이 상황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13시 오픈했고 1순위로 체크인을 했다.

부담스러운 도나띠보, 가진 동전을 모두 넣었다. 여성 전용실인 우측 첫 번째 4인실로 안내되었다. 위쪽 침대를 쓰겠다고 하니, 무릎이 이 지경인데 위쪽을 쓰겠다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오늘은 충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곳이라 일정 정리하는 걸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씻으러 가니 아직 여자 순례자는 보이지 않아 여유로웠다. 따뜻한 물이 닿으니 아직은 몸이 따가워서 찬물로 샤워하고 따뜻한 물로 마무리했다.

빨래를 해서 바깥에 널어두고 수건과 속옷만 침대에 널어두고 주방으로 갔다.




바나나 양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 소시지와 야채 모둠을 볶아서 레몬 맥주와 함께 먹으려니 오프너가 없었다.

요거트와 초코 도넛까지 배불리 먹고 나니 어느덧 15시다.

침대로 돌아오는데 창밖으로 어제 라바날 델 까미노에서 통역을 해주었던 김 씨 아저씨 일행이 보였다.

아래 침대에는 누군가 체크인해 있었다. 침대를 정리하고 침낭을 깔고 자리에 누웠다. 열어둔 창 때문인지 아직 실내도 싸늘해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16시 넘어 마지막 순례자가 체크인을 했다. 아래 침대 아주머니들은 나가고 위쪽 침대만 남아서 쉬고 있으니 조용하다.




평화로운 시간, 뽄페라다에 다시 오면 뗌쁘라리오스 성 구경을 가려고 했는데 무릎도 아프고 날씨도 추워서 오늘도 나가기 싫었다.

무엇보다 나가려면 주방을 거쳐야 하는데 한국인을 만나기가 번거로웠다.

한참을 쉬다가 나가보았지만 바깥에 널어둔 빨래들은 마르지 않았다.

요거트를 세 개나 더 먹고 바게트 그리고 복숭아와 자두도 먹었다. 밤새 화장실에 들락거리게 생겼다.

오늘이 유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전 세계 어디서나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온은 산띠아고 가는 길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유월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일을 맞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Rabanal del Camino→Ponferrada 32.9km

○Rabanal del Camino (1,152M)
●Foncebadon (1,431M) 5.6km
●Cruz de Ferro (1,495M) 2.2km
●Manjarín (1,433M) 2.3km
●El Acebo (1,139M) 7.0km
-Iglesia Parroquial de San Miguel
-Ermita de San Roque
-Monumento a Heinrich Krause
●El Acebo de San Miguel
●Riego de Ambrós (919M) 3.4km
-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ía Magdalena
●Molinaseca (585M) 4.7km
-Santuario de la Virgen de las Angustias
-Parroquial de San Nicolás de Bari
-Monumento El Peregrino
-Río Maruelo
●Campo (531M) 4.3km
●Ponferrada (544M) 3.4km
-Castillo de los Templarios
-Iglesia de San Andrés
-Basilica de Nuestra Señora de la Encina

207.3km/775.0km




Albergue de San Nicolás de Frue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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