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pital da Condesa→Triacastela
Day 72.
Wednesday, July 5
7시가 다 되어가는데 모두들 일어날 생각들을 않는다. 더우면 지치니까 내가 먼저 일어났다. 장을 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7시 20분 출발했다.
오스삐딸 다 꼰데스 앞 154.329km 까미노석이 반긴다.
빠도르네로에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바로 뽀이오 언덕이다. 여기 알베르게에서 세요를 받기 위해 끄레덴시알을 꺼내는데 오스삐딸 다 꼰데사 알베르게 영수증이 끼워져 있었다.
어제 그 설명은 세요 받는 끄레덴시알에 넣어줬다는 말이었던 거였다. 오스삐딸레라 데나다~
마을 출구에서 도로를 돌아가서 오른쪽으로 걷다가 왼쪽으로 빠지면 뽀이오 언덕의 산자락에 위치한 수수한 전원마을인 빠도르네로에 도착하게 된다.
빠도르네로에서 뽀이오 언덕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짧으나 매우 가파르고 험하다.
중세의 뽀이오 언덕에는 성 후안 기사단의 기사령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순례자를 위한 2개의 바르와 알베르게가 있다.
정상을 올라온 순례자에게 뽀이오 언덕은 또 다른 축복을 선사한다.
다음 마을인 폰프리아까지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아름다운 고원지대를 통과한다.
언덕을 내려가는데 드디어 그 지점에 도달했다. 2년 전 이 부근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코피를 흘렸었다.
성인이 되고선 그렇게 많은 코피를 흘려본 게 오랜만이었는데 그 일로 이곳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이어졌었다.
이번엔 코피를 쏟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폰프리아는 좁은 고원지대의 마지막에 위치한 마을로
이 마을을 지나고부터 가파른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
이곳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허기진 순례자에게 크레페를 주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선의로 착각한 순례자가 크레페를 한 조각 베어 무는 순간 아주머니가 터무니없이 엄청난 크레페 가격을 요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폰프리아에서 다음 마을인 비두에도까지는 까미노가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는데 라마스와 빌라르를 통과해 먼 길을 돌아가는 오른쪽 까미노는 오래된 LU-634 도로를 따라가는 루트로 자전거 순례자가 이용하기에 좋다.
도보 순례자들이 선택하는 왼쪽의 까미노는 오르비오 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뜨리아까스떼라를 멀리서 조망할 수 있는 루트다.
저 멀리 서쪽 산자락에 하얀 구름인지 안개인지 산 정상까지 걸쳐 있는 게 보였는데 그게 장관이었다.
설마 저기까지 가는 것은 아니겠지 하며 열심히 걸었다. 어느 지점까지 도로를 걸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폰프리아 지나서 146.479km부터 까미노 루트가 도로와 만났다.
무릎을 생각하면 도로를 따라 걷고 싶었지만 여기서부터는 도로가 구불구불 멀리 돌아가는 지점이었다.
2년 전에는 얼마나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까미노 루트 따라 걸었던 곳이었다. 이번에도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이려면 비두에도 마을로 들어가야 했다.
오르막과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지만 햇빛은 나무가 막아주어 시원했다. 그런데 위치를 보니 도로와 거의 비슷하게 굽이쳐 돌아갔다.
피요발 가는 길은 풍경은 좋으나 정말 가파른 돌길과 흙길로 된 내리막길이 이어져 무엇보다 발톱이 너무 아팠다.
비두에도는 허름한 시골 주택 이외에는 인적도 드물며 순례자를 위한 특별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마을을 통과하여 깔데이론 산의 중턱의 목축지 사이를 지나는데 까미노는 상당히 가파르며 계곡을 지나야 한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오르비오 산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뜨리아까스떼라가 멀리 내다보이는 피요발까지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야 한다.
언덕 정상에 오르자 길 옆으로 하얀 구름이 차올라 있었다. 아까 보았던 그 구름 장관을 가까이서 보며 내려갔다. 정말 그 산까지 걸어서 온 것이다. 까미노에서는 설마 저길 넘어가겠어? 하는 산은 어김없이 넘어가곤 했다.
피요발은 주민이 10명도 되지 않는 초미니 마을로
여기에서 여정의 목적지인 뜨리아까스떼라까지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금작화가 가득한 평화로운 숲을 걷다 보면 LU-634 도로 만나게 되고 도로를 건너면 돌담에 둘러 쌓인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게 된다.
이 길은 중간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작은 마을인 빠산떼스와 라밀까지 이어진다.
라밀은 뜨리아까스떼라와 거의 붙어있는 마을로 마을의 입구에는 1993년 산띠아고의 해를 맞아 만들어진 4층짜리 알베르게가 있다.
지나고 보니 빠산떼스 직전의 도로를 건너는 지점에서는 그냥 도로를 따라가는 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똥 길로 이어진 마을 길보다는 속 편하게 그냥 도로가 나을 것 같다. 만약 다음이 존재한다면 참고하자!
솔직히 폰프리아에서 도로만 따라 걸어와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오솔길이라 시원하지만 꽤 긴 시간 동안 내리막이 이어져 있어서 오늘은 종일 발톱에 무리가 갔다.
라밀 부근 오래된 은행나무를 지나면서 뜨리아까스떼라가 보였다.
마을 입구에 알베르게가 있는데 12시 반 도착했다.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콜라를 마셨다. 매번 뜨리아까스떼라에선 코카콜라를 마시게 된다.
오스삐딸레라가 안에 있었는지 13시 정각에 오픈했다. 내일은 무리는 없으나 알베르게 오픈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문제다.
차례대로 체크인을 하다 보니 예전과 같은 4인실 1층 D룸 15번 침대였다. 위층을 쓰고 싶었으나 바꿀 기회를 놓쳐버렸다.
지하에 내려가서 씻고 안개가 옅어서 빨래를 널었다. 그런데 위층 침대 서양인이 신경 쓰였다. 씻지도 않고 누워서 계속 끙끙댄다.
예전엔 수납장에 바디워시를 비치해 두었는데 이번엔 없었다. 아직 이곳은 꼼쁠리또가 되지 않았는지 오스삐딸레라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 가운데에 미니 냉장고가 있었다. 예전에도 있었던 위치였는데 왜 몰랐던 걸까? 누군가 두고 간 달걀이 있었다. 나처럼 다들 냉장고의 존재를 모르니까 안에 든 콜라는 오래 방치된 듯했다.
파리 한 마리가 자꾸 신경 쓰이게 했다. 콜라는 다 마시지 못하여 물통에 옮겨 담아 놓고 천천히 마셨다. 주스와 바게트로 배를 채우며 콜라를 비웠다. 빈 물통에 복숭아 주스를 옮겨 담았다. 주방이 없어도 챙겨주시는구나.
오후가 되자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제법 났지만 빨래는 잘 마르지 않았다.
시트를 씌우려니 위층 남자가 내려오면서 침대 매트리스를 밟을까 봐 신경이 쓰여 반쪽만 씌워두었다.
내일부터는 무조건 위쪽을 달라고 해야겠다. 절뚝이니까 배려한답시고 자꾸 아래쪽 침대를 배정해 주는 것 같았다.
뽀르또마린 가는 길에 있는 빌라차에 음식 기부대가 있었는데 사실 그게 오늘 일정에 있는 줄 알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었다.
어젯밤 꿈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엄마가 나왔던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엄마 생각이 났다. 지금도 많이 속상해하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연락할 수 없었고 앞으로 쭈욱 그럴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알베르게 근처 바르에 가봤다. 가게 이름 그대로 입력해 보니 접속이 되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돌아오니 첫 번째 건물에서 오스삐딸레라가 안 보이더니 두 번째 건물에 앉아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베드버그 한 마리가 내 침대 시트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내 배낭과 침낭은 침대에 올리지도 않았고 나머지 짐도 비닐에 담긴 상태로 테이블에 올려둔 상태라 이건 내가 데려온 베드버그가 아니다 싶었다.
일단 티슈로 잡아서 두 번째 건물에서 체크인받고 있는 오스삐딸레라에게 가서 보여주었다. 침대를 교체해 달라고 하니 대뜸 베드버그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뭐 어쩌라는 거냐고 한다. 아니 대응이 왜 이렇지? 항의하니까 꼼쁠리또라서 안 된단다. 이미 20시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냥 돌아왔다.
근데 꼼쁠리또라면서 그녀는 왜 계속 앉아있는 거지? 상주하는 오스삐딸레라도 아니고 빈자리가 없으면 보통 퇴근을 해야 하는 게 맞을 텐데 싶었다.
다시 가서 룸을 확인했다. 빈 침대가 많이 남아있었다.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라 가서 따졌더니 대뜸 "뭘 원하냐?"라고 한다. 당연히 "베드 체인지!" 했더니 "왜?" 이런다. "베드버그!" 하지만 자꾸 베드버그가 아니었단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영수증을 가져오란다. 갖다 주니 B룸 34번 침대로 고쳐주었다. 진작 바꾸어주었으면 서로 기분 상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다시 You have? 이런다. 그리곤 나보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누군가와 한참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왜 기다리게 하는 건지 이유는 모르고 시간이 길어지니 서 있기 힘들어졌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라고 하니까 대뜸 "왜 거기 서 있냐?"라고 한다. "이미 다른 침대 번호를 주지 않았냐?"는 표정이다. '얘 뭐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돌아왔다.
하지만 B룸 34번 침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물어보기도 그래서 일단 작은 짐만 챙겨 찾아 나섰다.
하지만 1층엔 없었다. 지하로 내려갔더니 거긴 28번까지 뿐이었다.
다시 올라오니 그녀도 첫 번째 건물로 들어오길래 방역하려고 온 줄 알았다. 그렇게 차례로 확인하니 34번은 두 번째 건물 1층이었고 들어가 보니 B룸에는 위쪽 침대 두 곳이 비어있었다.
서양인 여자가 사방에 짐을 어질러 놓고 1층에서 자고 있었다. 반대편 1층은 누군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냥 위로 올라가 시트부터 깔아 두고 배낭 가지러 첫 번째 건물로 갔다.
저 멀리 정문으로 향하는 오스삐딸레라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떠한 방역도 없이 그녀는 그렇게 사라졌다.
기분 나쁜 순례자를 만나서 그녀도 기분 나빴겠지만 나도 좋진 않았다. 자리도 많은데 그냥 침대 바꾸어 주면 되는 거였다.
아래 침대의 그녀는 위쪽에도 수건과 지저분한 옷을 걸어두었길래 일단 젖은 수건만 치우고 내 짐은 반대쪽 침대 위층에 걸어두었다.
위쪽 침대는 콘센트가 너무 높이 있고 내 충전기 선은 짧아서 닿지 않았는데 되려 아래쪽 콘센트가 더 가까웠다.
그녀는 문 옆의 콘센트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아래 침대 콘센트를 썼다. 내 침대에 침낭을 깔고 나니 그녀는 일어나서 옷을 들고나가버린다. 어쩐지 지금까지 자고 있더라니.
그리고 반대쪽 아래 침대 주인이 돌아왔는데 이 아저씨가 문 옆 콘센트를 쓰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침대 옆 콘센트를 두고 굳이 힘들게 충전하고 있어서 침대 콘센트 위치를 알려주니 고맙단다.
사실 폰 충전이 완료되기도 전에 그녀가 돌아와서 자기 침대 옆 콘센트를 쓰겠다고 하면 그때를 위해서 문 옆 콘센트는 비워두려던 계획이었다.
어느덧 21시다. 오늘 참 힘든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침낭 위에 누웠는데 왠지 몸이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이곳 수납장에서 바디젤 3개랑 바늘을 찾았다.
21시 45분 오스삐딸레라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를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그녀에게도 오늘 일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겠지. 만약 나중에 내가 오스삐딸레라가 되는 날이 온다면 오늘 일을 후회할 것 같았다.
Hospital da Condesa→Triacastela 15.4km
○Hospital da Condesa
●Padornelo 2.4km
-Iglesia Parroquial de San Xoan de Padornelo
●Alto do Poio 0.4km
●Fonfría/San Xoan 3.4km
●O Biduedo 2.4km
●Fillobal 3.0km
●Pasantes 1.5km
●Triacastela 2.3km
-Iglesia Romanica de Santiago
133.7km/775.0km
Albergue de Peregrinos Triacastela -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