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átima, Portugal
Day 84.
Monday, July 17
너무 피곤해서 새벽에 깨면 리스본 숙소를 검색해 봐야지 하고 누웠는데 눈을 뜨니 7시다.
파띠마에 온 지 이틀이 지났지만 누워서 맞이한 아침은 오늘이 처음이다.
지난 이틀간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잘 버틸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장을 비우고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했다. 마음껏 씻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여긴 동향이라 햇볕에 말리려면 아침에 빨래를 해야 했다.
문득 유치원에서 받았던 하늘빛 옥구슬이란 책이 생각났다. 파띠마의 세 아이들 이야기였다.
그 책을 읽었을 땐 파띠마가 어디인지도 몰랐고 포르투갈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그저 내가 갈 수 없는 여러 나라 중의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올 수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곳, 지금 내가 거기에 와 있다.
악몽 같았던 지난 시간들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대가인지도 모르겠다. 난 무얼 그렇게 잘못하고 살았던 걸까?
이 좋은 아침, 울컥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나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가 행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자며 나만의 착각으로 잠시 위안을 삼아 본다.
8시 직전 식당으로 내려갔다. 과일바구니에 바나나 세 개가 있어서 하나를 까먹고 있으니 직원이 나타나서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치즈를 가져와 빵에 끼우고 버터를 발라 먹고 커피에 우유를 넣어 마셨다. 4인분이 세팅된 식탁에 앉았더니 필리핀에서 온 세 명이 더 앉았다.
빵을 채워 달래서 끊임없이 먹었다. 커피도 세 잔이나 마셨다. 오늘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디저트 과일 대신 빨간 사과와 초록 사과를 챙겨 방으로 올라왔다.
어머니가 아기 사진을 보내왔다. 인큐베이터에서 손바닥만 한 몸집으로 이젠 웃기도 한다. 소화력이 좋아지면 목표 몸무게에 빨리 도달한 수 있다는데. 보이스 톡을 하다가 끊겨버렸다. 메시지로 마무리하고 마리아랑 잠시 톡 했다.
오늘은 나가볼까 했는데 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독이 풀리지 않았다.
11시쯤 또 허기가 져서 빨간 사과 하나를 먹고 숙소를 알아보다 잠들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파크마저 조용했다. 눈을 뜨니 14시가 다 되었다.
오늘은 몇 년 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바로 그날이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했던 고향집에서 가까스로 내 방을 가지게 되었던 때였다.
세를 주던 별채를 오빠가 쓰게 되면서 나는 오빠가 쓰던 작은방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내 방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그 방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다.
무의식적으로 방에서 기어 나왔던 모양인지 어딘가를 가려던 나는 마당에 두 발을 내딛는 순간 화단으로 쓰러졌고 앞으로 엎어졌다.
그러나 흙에 파묻힌 얼굴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고 잠시 정신이 들었다. 간신히 어머니를 불렀지만 그 소리가 들리진 않았단다.
바깥의 이상한 인기척에 어머니가 내다보았고 그렇게 난 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누군가 자꾸 깨우려는 소리만 기억날 뿐 병원에서의 기억은 전혀 없었다.
마침 그때 학교에서는 해양훈련 현장학습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나의 결석은 아무도 모르고 지나가게 되었다. 어머니가 입단속을 시켜서 병문안을 오는 사람도 없었다.
퇴원수속은 어머니가 오셔서 따로 하기로 하고 나는 시간 맞추어 학교로 가라고 해서 나 혼자 퇴원을 했었다.
그러나 그때 병원을 헤매다 길을 잃었는지 대학병원 지하에 있었던 영안실 앞에서 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날 아침의 행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그 쉬운 일을 난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도 병원 영안실은 근처에도 가보지도 못했고 병원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그때는 어떻게 중학생 여자아이가 거기까지 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거기까지 가는 동안 어떻게 병원 관계자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정신이 빠진 채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바로 학교로 갔는데 그 와중에도 지각할까 봐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난다.
전날 어머니가 가져다 두었던 책가방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 필기구조차 친구에게 빌려 써야 했다. 가정 시간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해서 가정 선생님이었던 담임에게 야단을 맞았지만 병원에서 바로 오느라 챙겨 오지 못했다는 변명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입원했던 걸 알면서도 꾸짖는 담임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어쩌면 어머니가 얘기를 안 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내 생일이 다가오면 불편한 기억이 되풀이되었다. 붉은 숫자로 각인되어 있던 17일 제헌절을 볼 때마다 기억이 되살아나곤 했지만 그나마 공휴일에서 해제되고 나서는 잊으려 노력할 수 있었다.
그때는 아파도 학교를 꼭 보냈던 집안의 분위기도 있었지만 며칠 더 입원을 권유했던 의사의 만류에도 어머니는 퇴원을 요청했고 나도 괜찮다고 거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랬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해되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폐로 들어오던 그 신선한 공기의 느낌은 지금도 가끔 생각나곤 한다.
오늘은 우울함마저 잊을 수 있을 정도로 피곤했다. 17시쯤 이틀 만에 호텔을 나섰다.
삥구에 갔다가 성지 정문으로 들어왔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쉼터도 보였다. 그제야 내가 파띠마에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2년 전에는 컨디션도 날씨도 모두 좋았으나 무료 숙소를 찾지 못한 그 이유만으로 파띠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무료 숙소는 나와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고 되려 싸고 좋은 호텔을 안내해 주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이번에도 무료 숙소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이고 밤을 새우며 배회할 때도 열심히 지켜주셨다. 성지 곳곳을 다시 둘러보니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일 당장 파띠마를 떠날 수는 없었다. 하루만 더 연장하고 가자니 뭔가 아쉽고 리스본에서의 일정이 애매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등산화 끈을 빨아서 널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초코 비스킷과 초록 사과를 먹었다.
20€짜리 호텔, 어딜 가서 이런 곳을 찾을까? 무엇보다 여기 직원들이 순박하다. 빵도 맛있다.
하루냐 이틀이냐 오랜 고민 끝에 드디어 리스본 숙소 예약을 마쳤다.
19일 Midtown Hostel, 20일~21일 Kab+1 Hostel. 배낭을 메고 버스터미널에서 Kab+1 Hostel까지 한 번에 가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는데 알아보니 되려 시내와 가깝고 내부도 깨끗했고 건물도 대로변에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근처 테주 강가에서 시간을 보내어도 좋을 것 같아 아예 3박을 하고 싶었으나 19일엔 룸이 없어 Midtown Hostel에서 1박 하며 거리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이제 수요일 리스본으로 떠난다. 내일은 흐리다는데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Fátima
●Capelas da Apariçoes
●Basílica de Nossa Senhora do Rosário
●Basílica da Santíssima Trindade
Domus Carmeli +B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