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96

Lisbon, Portugal

by 안녕
Day 91.
Monday, July 24


집을 떠난 지 석 달째, 이쯤 되면 집에 가기 싫다거나 시간이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거나 일정을 좀 더 길게 잡을 것을 그랬다며 아쉬워하고 있을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비행기를 탈 때부터 아니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후회를 할 정도로, 떠나기 싫었던 여행이었기에 남은 4일도 길게만 느껴졌다.

한국은 뒤늦은 장마로 연일 비가 오고 물난리가 나고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는데 돌아가도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번 주도 내내 흐리고 비 소식이 있는 상황이다.

청춘들은 주방에서 밤새 놀 것처럼 떠들어대었고 아래 침대 커플도 뒤늦게 들어오다 그들과 같이 어울려 놀더니 새벽에는 자기 침대로 돌아왔다.

옆 침대는 비어있는 걸 보니 어제 체크아웃을 한 모양인데 여전히 시트는 교체하지 않았다. 호스텔마다 룸 클리닝 시스템은 제각각인데 여기도 내키는 대로 하는 모양이다.

그제 그 아프리카계 여성이 청소를 하면서 각 침대에서 사용한 이불을 모두 개었는데 굳이 그런 것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체크아웃한 침대의 이불까지 개어버리니 얼핏 봐서는 교체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보스도 어느 침대가 사용한 침대인지 따로 체크를 하지 않았으니 그 상태로 새로운 투숙객에게 배정해 버렸다. 물론 반나절만 사용하다 이른 체크아웃을 하기도 하고 아님 늦은 체크인을 하기도 하니 얼핏 봐서는 사용한 침대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불까지 모두 교체하는 모습을 봤지만 처음 배정받은 침대의 컨디션은 뭔가 애매했었다.

6시 반쯤 장을 비우고 나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8시 반이 되어 투숙객들이 밤새 어지럽혀 놓은 주방을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혼자 커피를 마셨다.

9시가 되어도 그 누구도 아침 준비를 하지 않았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으니 식빵 3조각을 꺼내 토스트 해서 고다 치즈 두 장을 끼워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고 있으니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주방을 보곤 나를 따라서 각자 알아서 챙겨 먹었다. 나도 치즈 토스트 한 세트를 더 만들어 먹고 침대로 돌아왔다.

이 호스텔은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누가 스태프인지도 잘 모르겠고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여기서 자는 걸 보니 숙박을 대가로 무료봉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일하는 게 맞는 건지 구분은 잘 되지 않았다.

도미토리에서 자면서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보스가 있으니 마치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호스텔에 하나 있는 야외 공간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불편해서 사용할 수도 없었다.

호스텔이 좋다는 말보다 스태프가 친절하다는 평이 다수였는데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친절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호스텔이라 하면 시트 교체는 필수고 정해진 시간에 청소를 하고 조식 준비를 해두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부킹닷컴의 평가 점수를 붙여 놓은 걸 보면 나름 신경을 쓴다는 의미인데 혹시 후기 알바를 고용했나 싶었다. 딱히 불친절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후기에 남길 만큼 특별히 친절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덧 9시 반, 올리브 오일이 저렴해서 사 가지고 가고 싶은데 무사히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캐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배낭에 넣어서 부칠 거라 왠지 불안하지만 그래도 가격이 저렴하니 모험을 한번 해보자 싶었다.

모두가 다 씻길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11시가 되었고 오늘도 꼼짝하기 싫었으나 삥구 도스로 갔다. 그런데 내가 가격을 잘못 봤던 거였다. 올리브 오일이 아닌 일반 식용유가 750ml 1€였다. 물론 올리브 오일도 3~4€밖에 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접었고 그러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오늘은 한 명만 남고 모두 체크아웃했다. 여자 두 명은 어제 늦게 체크인하고 밤새 놀더니 12시가 넘어서야 체크아웃했다.

그리고 더블룸에 머물던 남자 두 명이 8인실로 옮겨왔는데 저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비어있는 침대를 따라 옮겨 다니고 있었고 어제 조식 준비를 하던 그들이었다. 그렇게 머문 침대는 시트를 교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오늘은 왠 한 여성이 와서 인사를 하더니 익숙하게 시트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룸메이드인가?

그 여자가 시트 교체를 하다가 한 곳을 빼먹고 나가려고 해서 그곳도 체크아웃한 침대라고 영어로 알려주니,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포르투갈어로 막 뭐라고 한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나 싶었더니 다시 와선 사람이 있는 침대까지 모두 교체해 버렸다.

아프리카계 여성 대신 온 것일까 아님 이 여자 대신 그 여성이 잠시 왔었던 걸까? 청소가 끝나야 밥을 해 먹을 텐데 여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 마냥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이 현지인이 청소까지 하는 걸로 보아 아프리카계 여성은 이제 오지 않으려나 보다. 어쩌면 이 아주머니가 원래 스태프인지도 모르겠다. 본의 아니게 몇 명 되지도 않는 호스텔에서 사람 구경을 하게 되었다.

어느새 14시 반이다. 지겨운 하루가 지나고 있다. 청소가 마무리되는 것 같아 밥을 했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는 와중이라 또 전기가 나갔는데 아주머니가 와서 능숙하게 스위치를 켜는 걸 보니 직원이 아니라 어쩜 진짜 보스인지 모르겠다.

보스라고 생각했던 그 아저씨는 전기가 나가니 어찌 된 영문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주방을 쓰고 있는 나를 보더니 주방 깨끗이 쓰라고 한마디 한다. 치우지 않았을 때 잔소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너네들이 해야 할 설거지까지 내가 다 했노라고 걱정 말라고 생색을 내야 하나 싶었다.

체크아웃했던 여자 두 명이 다시 돌아와서 어제 만들어 두었던 파스타를 먹었다. 얘네들이 어지럽히고 있는 건 모르나 보다. 쌀이 애매하게 남아서 모두 밥을 지었는데 미련스럽게 먹지 않으려 조금 덜어두고 남은 채소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외국에서 먹는 마지막 밥일 것 같다.

누룽지도 끓여 먹고 주스도 마셨는데 왠지 허전해서 남은 밥으로 쌈장 주먹밥을 만들어 마저 먹어버렸다. 쌈장을 두고 가자니 왠지 버릴 것 같아 남으면 한국에 도로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내일은 무얼 해 먹지?

어느덧 15시 반이다. 오늘도 바람이 몹시 분다. 냉장고에 고구마가 있었는데 잊고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머니는 서양인들에게는 친절했다. 체크아웃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척하더니 서양인들과는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주방을 쓰는 그녀들에겐 미리 주의를 주지도 않았고 치우지 않고 가는 그녀들에게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18시가 되어가는데 더블룸엔 노부부가 체크인했다. 아무도 오지 않으려나 했더니 커플 두 팀이 들어왔다. 더블룸에 있다 짐을 챙겨 나온 남자들까지 포함하여 8인실은 오늘도 만실이다.

그중 한 명은 선풍기부터 켰고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둘이 한 침대에 앉아있는 걸 보니 한 명 더 예약되어 있나 싶다. 얘네들은 아무래도 빈 침대를 찾아 이동하는 모양이다.

갑자기 대화가 시작되더니 아예 자리를 잡고 떠들기 시작했다. 덥다면서 강한 바람에 문이 닫혀도 다시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을 열어두어야 맞바람에 실내 환기가 되는 구조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커플 한 팀이 외출하면서 문을 열었고 세 명이서 계속 떠들었다. 바람도 강해서 추운데 선풍기까지 돌아가니 더 힘들어서 두어 시간 만에 선풍기를 껐다.

밖에 차가 왔는데 한 명이 짐을 싣고 가버렸다. 오늘 떠나는 날이었나 보다.

22시 넘어서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자정 무렵이었는데 화장실 가다 보니 그 스태프는 카우치에서 자고 있었다.




Holla Hostel +B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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