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bon, Portugal
Day 93.
Wednesday, July 26
눈을 뜨니 6시, 밤새 한기가 들어서 잠결에 이불을 덮은 모양이다. 목이 따끔거리고 피곤했다.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장을 비우고 왔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혼잡해지기 전에 샤워까지 하고 왔는데 여전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커플 중에 여자는 6시쯤 남자를 깨웠지만 남자가 일어나지 않자 자기도 도로 눕더니 시간마다 남자를 깨워댔고 결국 그들은 9시에 일어났다. 더블룸은 2명, 4인실은 1명, 8인실은 스태프 포함 6명인데 우리 룸만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하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공항에 직접 와서 체크인을 하란다. 또 오버부킹이면 통로 쪽에 앉아서 가겠구나 싶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누워만 있었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주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 사람들과 같이 나가려고 기다렸으나 부은 목을 가라앉히려면 따뜻한 커피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10분 전에 나가서 팬케이크를 굽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습관적으로 인사를 건네니 여전히 대답을 안 한다. 다른 사람들에겐 항상 먼저 인사했으나, 나에겐 단 한 번도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먼저 건넨 인사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렇게 또 유령 취급을 당했다. 대답을 할 때까지 인사를 하려다 다시는 안 볼 사이에 굳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말자 싶어 그만두었다.
오늘은 식빵이 두꺼워 식빵 두 조각에 치즈 한 장과 버터를 발라서 먹었다. 그렇게 한 번 더 만들어 먹고 샌드위치를 하나 만들어 챙겨둔 후에 하나 더 만들어 먹었다. 물 대신 커피를 끓여 통에 담았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코티지치즈가 뒤늦게 생각나서 꺼내 먹었지만 맛은 별로였다. 처음부터 꺼내먹었으면 다 먹었겠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8조각 같은 토스트 6조각을 먹고 나니 배가 부르긴 했다. 이걸로 오늘 하루 잘 견딜 수 있을까? 이제 쉬다 나가면 된다. 까미노 때 입었던 블랙 바지를 버렸다.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해서 원래 여기서 하루 더 머물다 새벽 2시쯤 이른 체크아웃 하려고 했다. 새벽에 택시를 부르기도 싫고, 그 시간에 걸어가기도 부담이라 하루 일찍 체크아웃하고, 대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밤에 공항에 미리 가있으려고 예약도 변경했었다.
하지만 시내에 갔다 오는 것도 내키지 않아 공항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최대한 호스텔에서 머물다 11시 반쯤 체크아웃하려고 누워있는데 11시 20분이 되자 아주머니가 와서 쏘리~ 하고는 내 침대의 커버를 벗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오후가 되어야 시작하던 청소를 오늘은 사람이 누워있는데도 와서 저러니까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그냥 내가 싫은 거였구나. 나도 더 있기 싫어 바이~ 하고는 나왔다.
마음만큼 배낭도 짐도 너무 무거웠다. 과자가 들어있는 박스 무게만 8kg였고 배낭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은 후회가 되겠지만 집에 가면 잘했다고 생각할 거라 믿었다.
호스텔에서 5km 떨어진 리스본 국제공항까지 걸어갔다. 한참을 걷다 죽어있는 커다란 검은 고양이 사체와 맞닥뜨렸다. 눈을 뜨고 죽어있는 상태에서 눈이 마주쳤는데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고가도로가 보이는 지점에서는 땀이 비오 듯 쏟아져서 버스 정류장에서 쉬어야 했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13시쯤 고가도로 구간 교차로 부근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앉아 쉬었다. 포르텔라 국제공항까지는 700m도 채 남지 않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무릎은 한계에 다다랐고 땡볕이라 솔직히 지쳤다. 급할 게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새벽에 걸어왔으면 무서워서 맘 편히 쉬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그런 부담이라도 없어서 다행이긴 했다.
마지막 길은 편히 걷길, 더 이상은 돌발상황이 생기지 않길 빌었다. 그러나 여전히 돌발상황은 생겼다.
갈림길에서 내 위치가 잘못 표시되어 우회하는 길을 따라 걸었고 그 길에서 한참 벗어나고 나서야 잘못된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걸 알았다.
가운데 길로 조금만 갔으면 공항 건물이고 짐을 실을 수 있는 카트도 구할 수 있었는데 폰을 자주 확인할 수 없다 보니 지하철 역이 있는 도로로 우회를 하고 있었다.
공항 건물이 보이면 희망이 보일 거라 생각했지만 담장 너머로 보이는 공항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공항 담장을 따라 1km를 더 돌아서 드디어 공항 건물에 들어섰지만 출발하는 곳이 아닌 도착하는 곳이라 나오는 사람들뿐이다.
터미널 1은 어떻게 가냐고 물으니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단다. 짐을 다시 챙겨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니 바로 옆에 엘리베이터가 떡하니 있었다.
그렇게 14시쯤 리스본 국제공항 터미널 1에 도착했다. 결국 호스텔에서 리스본 포르텔라 국제공항까지 2시간 반이 걸렸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인데 앉을 곳이 없어 한참을 돌아다녔다. 간신히 배낭을 내렸는데도 무릎의 통증은 절정에 다다랐다.
앞으로 15시간이 지나야 짐을 부칠 수 있는데 여기는 게이트가 아니라서 자칫 방심하면 도난당할 수가 있다. 무엇이든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겨우 자리를 잡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왔다. 옷은 땀에 절었지만 에어컨으로 이내 추워졌다. 공항답게 소란스러워 귀가 먹먹하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으니 할 일이 없어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근데 커피가 부족했다. 그냥 물이라도 얼려오는 건데 싶었다.
스타벅스는 22시, 맥도널드는 23시에 문을 닫는다니 그래도 나름 비상책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자리를 뺏길까 봐 일어날 수 없었고 자리를 맡아두겠다고 짐만 두고 갈 수도 없었다.
잠깐 둘러보니 아래층에 대기자 구역이 따로 있어서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24시간 사용할 수 있는 그곳은 누울 수 있는 베드가 하나 있었고 나머지는 소파였다. 에어컨도 강하지 않았다.
누워있는 사람이 나처럼 오래 머물 줄 알고 근처 1인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오래 있을 것 같지 않아 근처로 가서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1인용 소파에 자리가 나서 옮기는데 할머니도 자리가 난 다른 쪽 1인 소파로 자리를 옮기는 게 보였다. 아마 빈자리가 없어서 베드에 앉아있었던 모양이다.
1인용 소파에 앉아있다가 혹시나 싶어 베드에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가서 자리를 바꾸겠냐고 하니 좋다며 바꾸어주었다.
16시 10분쯤 난 누울 수 있는 베드를 차지했다. 졸리다. 이젠 잘 수도 있다. 게이트에 들어가야 식수대라도 있을 것 같은데 목이 마르다. 배낭 무게를 재보고 싶은데 유료 저울만 보였다.
티켓을 확인하는데 리스본발 런던행은 터미널 3에 도착하는데 런던발 서울행은 터미널 5에서 타야 한단다. 설마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왜 자꾸 불안한 일이 생기나 모르겠다. 그래도 선진국의 국제공항 연계 시스템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스타벅스에도 구경을 하고 왔는데 커피 원두는 7.45€, 시티 데미타세는 14€가 넘었다. 불안하게 외워지던 성모 찬송이 갑자기 술술 외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12시간 남았다. 안내문을 보니 여기가 리스본 공항 내 24시간 오픈 구역이었고 23시부터 5시까지 대기하는 승객을 위한 자리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리스본 공항에서의 노숙을 은근히 걱정했었다.
2년 전 첫 번째 까미노를 다녀온 이후에는 사진을 꺼내서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정리조차 하지 못한 채 다시 여행을 떠나왔고 이번 여행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 같다.
저번 여행은 제대로 정리하고픈 욕심 때문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그냥 잊고 싶은 기억 때문일 것 같았다. 베드에 누워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리스본 공항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