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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18

Azofra→Santo Domingo de la Calzada

by 안녕
Day 16.
Thursday, June 11


눈을 뜨니 7시다. 2인실에 들어올 때마다 완전히 숙면이다. 그런데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배낭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좀 더 일찍 일어날 걸 그랬다.

레인 커버를 씌워도 배낭의 어깨가 드러나는 상태라 제대로 보호할 수 없었다. 배낭이라도 제대로 커버하려면 배낭의 확장된 부분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슬리퍼를 빼내니 레인커버가 제대로 씌워진다. 그래도 어깨끈은 젖을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출발하려고 베란다에 두었던 등산화를 꺼내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베란다의 창은 유리가 없었는데 창살 틈을 통해 밤새 비가 들이쳐서 등산화에 빗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너무 충격이라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절망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짐을 정리하고 배낭 위에 비옷을 걸쳐보니 오늘은 단추도 잠기고 지퍼까지 채워진다. 배낭이라도 젖지 않게 된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비가 오면 빨래를 할 수 없으니 늦게 도착해도 상관없었다. 비가 잦아들면 출발하기로 하고 로비에서 멍하니 앉아있는데 한국인 청년도 머뭇대고 있었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고 이미 발은 젖었으니 비가 와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심한 오르막이 없고 N-120 고속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포도밭과 농지를 편안하게 걸으면 되는 길이라 8시 반쯤 출발했다.

젖은 신발이 묵직해져 자꾸 벗겨지려 했다. 끈을 바짝 조여매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뒤꿈치에 자극이 가해지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비는 적당히 오다 그쳤다.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비옷을 벗을 때 서로 도와주고 있는데 난 혼자라 번거로워서 그냥 걸었다.




아소프라에서는 두 가지 루트를 통하여 시루에냐에 갈 수 있는데 도로의 끝자락에 공원이 나오면 시루에냐로 향하는 두 가지 루트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아소프라에서 왼쪽으로 N-120 고속도로를 따라 6km 떨어진 까냐스를 거치고 8km를 더 걸어서 아름다운 은자의 수도원이 있는 산 밀란 데 라 꼬고야로 가거나 수도원으로 향하는 샛길에서 오른쪽으로 14km를 걸어 시루에냐로 돌아가는 길이 첫 번째 루트다.

두 번째 루트는 일반적인 까미노 루트로 포도밭 사이로 이어진 길이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우물을 오른쪽에 두고 작은 운하를 넘으면 드넓은 밀밭 사이로 나있는 평화로운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10km 정도를 외롭게 걸어가야 한다. 흙으로 된 넓은 길을 통해 고지대로 올라가는 오르막 중간에서 뒤돌아보는 까미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첫 번째 루트를 따라 시루에냐로 가는 것은 도보 순례자에게 적당하지 않다. 두 번째 루트보다 적어도 13km를 더 이동해야 하는 데다 포장된 도로라서 자전거 순례자들에게 적합하다. 오른쪽 까미노를 따라 아소프라를 나왔다.




언덕을 오르는데 발뒤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비탈길이라 멈출 수가 없어서 그냥 참고 오르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잠깐 멈추어 섰다. 확인만 하려고 등산화를 벗어보니 발뒤꿈치 피부가 동그랗게 벗겨져 있었다. 그새 물집이 잡혔고 피부가 찢어져 벗겨져 있었던 거였다. 작은 밴드로는 감당이 안되고 거즈를 꺼내려면 흙탕길에 배낭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일단 티슈로 피와 진물을 닦아내고 있으니 사람들이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지나간다.

그때 타이완에서 온 아이비가 흙탕물 바닥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기 배낭을 내려놓고 습식 밴드를 꺼내 주었다. 최악의 순간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까미노 천사, 오늘도 고맙습니다.




두 번째 루트를 따라 한참을 가다 보면 포도밭 언덕을 넘어서 지친 다리를 쉬게 해 줄 쉼터를 만나게 된다. 시루에냐는 이제 가깝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시루에냐로 착각을 하고 들어서는 곳은 드넓은 골프연습장과 인적이 드문 새로 만들어진 현대식 계획도시다. 진정한 시루에냐 마을을 만나려면 계획도시를 지나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면 마을 끝에서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포도밭 언덕을 넘으면 쉼터를 만나게 되지만 비가 오고 있어 계속 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포도밭과 밀밭을 걸으면 근사한 골프장을 지나쳐 조용한 마을인 시루에냐에 도착한다.




Cirueña (736M)는 로그로뇨에서 44km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시루에냐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광장의 나무 그늘 밑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을 보면 이곳에 살았던 역사의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시루에냐가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천년 전쯤이다. 나바라 왕국 연대기에서 960년에 빰쁘로나의 왕 가르시아 산체스와 까스띠야의 페르난 곤살레스 백작 사이에서의 전투가 시루에냐에서 벌어졌는데 전투에서 진 페르난 곤살레스 백작이 포로로 잡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마을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까미노를 걷다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시루에냐의 첫 모습은 근사한 골프장과 그 뒤로 만들어진 신축된 빌라의 모습들이다. 한겨울 새로 만든 신시가지를 지나다 보면 사람의 인적이 보이지 않아서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현재 시루에냐는 일 년 내내 축제가 벌어지는 흥겨운 마을이기도 하다. 5월 15일에는 이시드로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6월 15일은 근교의 발바네라 수도원으로 순례를 가는 축제가 벌어진다. 9월의 첫 번째 주말은 레메디오의 성모를 기리는 축제가 있고 11월 30일에는 성 안드레아의 축일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Iglesia Parroquial
석재와 벽돌로 건축된 교구 성당은 1965년 10세기에 만들어진 건물의 토대 위에 재건축되었다. 네 구역으로 나뉜 신랑, 직사각형 후진, 아치형 궁륭이 아름다우며 바로크 양식의 주제단화가 볼만하다.




11시쯤 도착한 시루에냐 마을 초입엔 골프연습장이 있다고 했으나 비가 오고 있어서 그런지 신축 빌라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사진으로 확인하니 건물 뒤쪽으로 푸르른 잔디가 보이긴 했다. 시루에냐에 진입하자마자 천둥번개에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비를 피할 곳은 없었지만 배낭은 안전하고 등산화는 이미 젖어있는 상태라 그냥 계속 걸었다. 세찬 빗줄기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화살표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나 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순례자들이 보이고 아까 지나쳤던 익숙한 길이 다시 나왔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나온 거였다.

화살표를 따라 그곳을 빠져나오니 같은 마을이 맞나 싶은 마을이 이어졌다. 주로 감자 농사를 짓는 시루에냐의 높게 쌓아 올린 감자 창고를 지나쳐 시계탑이 있는 성당을 지나 까미노를 따라가면 쉽게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로 향하는 까미노를 만난다. 이 길은 직선에 가까우며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길을 잃거나 쉽게 지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까미노 성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산또 도밍고 델라 깔사다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가득한 도시다. 집처럼 편안한 아주 오래된 알베르게와 향기로운 빵 가게 그리고 순례의 살아있는 속삭임이 들릴 정도로 사람들의 친절함이 넘치는 곳이다.




Santo Domingo de la Calzada (645M)에는 에스까라이 산에서부터 아로의 포도밭까지 펼쳐진 넓은 평원에 늘씬한 탑이 우뚝 솟아 있다. 이 탑은 나침반처럼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나타내 주는 역할을 한다. 탑이 있는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대성당은 까미노의 건축가 성인이라 불리는 성인이 남긴 것이며 도시의 이름도 성인의 이름과 동일하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성과 성당, 순례자를 위한 병원, 궁전, 스물네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오하 강 위의 다리 등이 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산티아고 가는 길 때문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래서 순례자를 위한 모든 서비스가 갖춰져 있어 항상 순례자들로 붐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에서는 이 까미노의 성인을 기리는 축제가 항상 벌어진다. 4월 25일에는 닭이 작은북과 함께 행진하는 축제가 있고 5월 1일에는 성인의 빵을 나눠주는 축제가 있으며 5월 10일~15일에는 성인을 기리는 성대한 행렬이 이어진다.

Catedral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또 도밍고 데 깔사다 대성당은 12세기에 세워져서 13, 15, 18세기에 여러 번 증축과 보수를 거쳤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제단부는 여덟 개의 기둥으로 Capilla Mayor와 분리된다. 천장을 덮은 궁륭과 성인의 영묘, 주제단화, 15세기의 기적에서 유래한 암탉과 수탉이 살고 있는 닭장 등이 눈에 띈다. 성인이 잠들어있는 영묘는 여러 양식이 혼합된 작품으로 성인이 누워 있는 무덤 부분은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기적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탁자는 고딕 양식이며 소성당은 후기 고딕 양식이다. 15세기 다미안 데 포르멘뜨에 의해 그려진 주제단화는 1994년까지 마요르 소성당 안에 있었는데 이 그림은 스페인 르네상스의 보물로 알려져 있다. 닭들이 사는 닭장은 15세기의 고딕 양식인데 아직까지도 성당 내부의 이 닭장에서 살아 있는 흰 닭 한 쌍을 키우고 있다. 까미노를 밝혀주는 대성당의 탑은 18세기에 증축된 것으로 세 번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첫 번째로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은 1450년 번개를 맞아 무너졌고 두 번째로 만들어진 고딕 양식의 탑은 붕괴 위험이 있어서 해체하고 마르띤 베라뚜아에 의해서 현재의 세 번째 탑이 건축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이 탑의 높이는 무려 70m에 달하는데 땅 밑으로 흐르는 지하수 때문에 대성당 건물과 분리해서 지어야만 했다. 탑에는 일곱 개의 종이 있는데 그중 두 개가 시계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탑의 장식이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어서 보수되었다.

Monasterio de Nuestra Senora de la Anunciacion
시토 교단의 수도원인 수태고지의 성모 수도원은 162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수도원의 성당은 라틴십자가형 평면에 바로크 양식의 제단화가 있다. 성당 측면에는 세 명의 주교의 와상이 있는데 이 중 가운데가 이곳의 설립자인 돈 뻬드로 만소이다. 현재는 순례자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으며 수도원의 수녀들이 운영하고 있다.

Convento de San Francisco
산 프란시스꼬 수도원은 16세기 후반 사라고사의 대주교 베르나르도 데 프레스네다에 의해 세워졌다. 19세기 중반까지 프란시스코회 수사들이 살았는데 앞으로 박물관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Rollo Juridiscional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단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재판용 원주로 아소프라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된다. 도시를 들어오는 입구 교차로 가운데에 있다.




닭의 기적
15세기에 독일 윈넨뎀 출신의 우고넬이라는 이름의 18살 청년이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머물던 여인숙의 딸이 그의 외모에 반하여 사랑을 고백했으나 신앙심이 남달랐던 우고넬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다. 상심한 그녀는 그에게 복수를 하려고 은잔을 우고넬의 가방에 몰래 넣고 도둑으로 고발을 했다. 재판소로 끌려간 우고넬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산티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순례를 계속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산티아고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음성을 들은 부모가 재판관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는데 마침 닭고기 요리로 저녁식사 중이던 재판관은 그들의 말을 듣고는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당신들이 날 귀찮게 하기 전에 내가 먹으려던 이 암탉과 수탉도 살아 있겠구려.” 그러자 닭이 그릇에서 살아 나와 즐겁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 전설 덕택에 1993년부터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이 기적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었던 청년 우고넬의 고향인 독일의 윈넨뎀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산또 도밍고의 재판관들은 우고넬의 결백을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죄로 몇 백 년 동안 목에 굵은 밧줄을 매고 재판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과 전통 때문에 중세 순례자들은 여행 중에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좋은 징조로 여겼다. 프랑스 순례자들은 닭의 깃털을 모았고 그것이 순례 중에 그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또 폴란드인들은 순례 지팡이 끝에 빵 조각을 얹어서 닭에게 주고 했는데 닭이 빵을 쪼아 먹으면 순례에 좋은 징조라고 여겼다.




13시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에 다다르자 비가 멈춘다. 마을 초입에서 쉬고 있는 아이비와 함께 있는 또 다른 한국인 일행을 만났는데 발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묵으란다. 난 멈출 생각은 없었지만 발 상태도 그렇고 등산화도 수습해야 해서 내일을 위해 멈추기로 했다.

첫 번째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익숙한 한국인들이 보였다. 왠지 피하고픈 마음에 다른 알베르게로 갔다. 웰컴 와인과 보카디요가 반기는 두 번째 알베르게에 등록했다. 1층에 등산화와 스틱을 두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크고 작은 도미토리 룸이 있었다. 룸마다 까미노 위에 있는 마을 이름이 붙어있었다.

샤워실 대기줄이 너무 길어 먼저 주방으로 내려갔다. 엄청 넓은 만큼 커다란 냉장고도 두대나 있었는데 전날 묵었던 순례자들이 두고 간 식재료가 많이 남아있었다. 남이 두고 간 것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똑같은 걸 사 오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식재료가 많았다. 수뻬르메르까도가 근처에 있으면 두고 가는 식재료가 더 많아진다. 초리소와 치즈를 찜해놓고 샤워하러 갔다.

비가 그치긴 했지만 혹시 몰라 빨래는 그늘에 널어놓고 등산화는 아예 빨아서 말리는데 여의치가 않았다. 고어텍스 등산화라 세워 두면 물이 고여서 수시로 고인 물을 빼주어야 했다. 뒤늦게 나온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자주 옮겨주어야 했다.

파스타를 만들어서 나누어 먹으려고 했는데 아이비 일행은 나가서 먹는단다. 그래서 미니 사과와 바게트만 사 와서 초리소와 치즈로 보카디요를 만들기로 했다. 식당에서 혼자 서성이던 한국인이 저녁을 걱정하는 것 같아서 같이 먹자고 권했더니 그러겠단다. 그런데 빵만으로는 안 되겠는지 국물 재료를 사 오겠다며 나갔다.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만났던 H와 J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주방에 스파게티 면이 많이 있어서 찜해 놓고 파스타 소스를 사 왔는데 그새 면이 다 없어졌다고 한다. 내가 가진 음식을 같이 먹겠다고 해서 나누어 주었다. 여분의 면을 주었더니 배가 불러서 만들어 먹기 귀찮아졌다고 자기네가 사 온 볼로네즈 소스는 놓고 갈 거란다. 내일 만들어 먹으라고 하니 무거워서 가져가기 싫단다. 맛있는 걸로 고른 거라고 이따 냉장고에 넣어둘 테니 나라도 챙겨가란다. 얘기를 하면서 초리스는 안주 삼아 맥주와 먹고 치즈 보카디요를 만들어 먹었다. 국물 재료를 사러 나갔던 이가 뒤늦게 돌아와서 해물탕을 끓였는데 시원하고 맛있었다.

모처럼 배불리 먹고 등산화를 가지고 들어와 신문지를 채워놓고 침대에 누웠다.




Azofra→Santo Domingo de la Calzada 15.3km

○Azofra (546M)
■Ciriñuela (720M) 1.0km
●Cirueña (736M) 9.3km
-Rioja Alta Golf Club
-Iglesia Parroquial
●Santo Domingo de la Calzada (645M) 6.0km
-Catedral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
-Monasterio de Nuestra Señora de la Anunciación
-Convento de San Francisco
-Rollo Juridiscional

562.1km/775.0km




Albergue de Peregrinos Santo Domingo de la Calzada -7.00€
Dia 2.58€
Manzana 1.5kg -1.99€
Baguette -0.59€




치즈 보카디요, 초리소, 에스떼야 맥주, 해물탕, 사과, 오렌지주스, 요거트


Cochina
Refrigerador
Microondas
WIFI
Supermercado(Lupa, 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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