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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an 14. 2023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54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누구나 관대해질까?

삐뚤어지고 말 테다!




연말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로 일상 같은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12월이 되면 각종 시상식으로 인해 자연스레 연말임을 실감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언젠가부터 TV 속의 한해 마지막 카운트다운마저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연말에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 혼자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기로 하고 여행을 떠났다. 무엇이 되었든 어떤 의미라도 부여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겨울에도 따뜻하다던 베트남은 생각보다 추웠다. 낮에는 따뜻했고 가끔 덥기도 했지만 밤에는 은근히 추웠고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밤에도 문을 열어두는 이들로 인해 점점 컨디션이 나빠지더니 결국 차가운 밤공기에 한기가 들고 말았다.

2022년 마지막 날엔 다행히도 컨디션이 꽤 회복되어서 미리 찜해두었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며 한껏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이대로 한 해를 마무리하면 꽤 성공적일 것 같았다.

밤이 되자 바깥에서 꽤 소란스러운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해변에서 불꽃놀이라도 하는지 폭죽 소리가 요란했다. 그 소리는 침대에 누워있는 내 귀에까지 고스란히 들려왔다. 나가고 싶었지만 찬바람을 쐬면 감기가 다시 심해질 것 같아서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조금만 움직이면 사람들 속에서 색다른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텐데 싶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해변으로 갔는데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그 길마저 힘들어질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실망하게 될까 봐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는 억지로라도 시도했는데 생각만큼 기쁘지 않아서 더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시도하기 전에 포기가 아닌 좌절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지금은 열이 나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될까 봐 더 두려웠다.




사람들 속에서 지내고 싶어서 6인실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하지만 10박을 예약했더니 친절한 집주인은 나를 4인실로 안내해 주었다. 나름 룸 업그레이드였다.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선택한 숙소는 홈스테이 식의 호스텔이었다. 침대에서 미케 비치까지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 있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낭 국제공항에서 미케 비치이어진 큰길 부근이었지만 한적한 골목 안의 주택가에 있어서 밤에도 오토바이 소음 없어 조용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토바이를 세울 수 있는 작은 마당이 있고 폴딩 도어인 현관문을 지나면 리셉션으로 쓰이는 거실이 있었다. 평소에는 주인집 아이들이 점령하고 있는 소파를 지나면 주방이 이어져 있고 그 뒤로 가족들이 거주하는 방들이 있었다. 주방 옆에는 계단이 있는데 2층에 6인실 도미토리 룸이 있었다. 그 룸 앞에는 투숙객 전용 거실이 있는데 책장에는 베트남어로 된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1회용 바디워시와 샴푸가 그곳에 늘 비치되어 있다. 가끔은 코골이를 피해 나와서 자는 투숙객이 소파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낮에는 대부분 비어있었다. 반 층을 오르면 발코니가 있는 더블룸이 있고 또 반 을 오르면 4인실과 2인실, 또 반 을 오르면 베란다 더블룸이 있는 하우스였다.

후면 1층 주방/2층 6인실/3층 4인실+2인실
정면 1층 로비/2.5층 발코니 더블룸/3.5층 베란다 더블룸

가 머물던 4인실은 방 안쪽에 건식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왼쪽에는 샤워실이 있고 반대편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둘 다 불투명 유리문이라 나 혼자 산다 베트남 편에서, 박나래가 느꼈을 그 민망함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남녀공용인 곳에서는 불을 켜면 더 신경이 쓰였다. 침대 헤드는 거대한 수납장으로 짜여 있어서 아래쪽에는 잠금장치가 있는 수납함이고 위쪽은 선반으로 되어있었다. 10cm 두께의 매트리스는 정말 편했다. 깨끗하지는 않지만 이불이 지급되었다. 우기의 베트남 날씨는 제법 쌀쌀했는데 온수가 잘 나와서 좋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오토바이 렌트와 세탁이 가능했다.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가성비 좋은 최고의 숙소였다.

숙소에서 미케 비치 가는 길에 웬만한 편의시설이 다 있었는데 편의점, 기념품 샵, 레스토랑, 약국, KFC, 카페, 반미 노점 등이 있었다.

가족이 실제 거주하는 집이라 1층 거실과 주방은 정리가 안 되어 있었고 아이들 물건들로 어지럽혀 있었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공부하거나 놀고 있었으니 사용하기엔 힘들었다. 식사 시간대에는 가족들이 주방을 쓰기 때문에 편하게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대부분 나가서 식사를 하지만 재료를 사다가 매 끼니 식사를 만들어 먹는 외국인도 있었다.

집 가운데가 뻥 뚫린 구조라 모든 룸의 대화소리가 다 들려서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24시간 문밖출입이 자유로운 대신 누군가 드나들 때마다 잠에서 깨곤 했다.




도미토리의 만족도는 숙소의 시설보다 어떤 투숙객과 함께 그 공간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13박 하는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고 어차피 그들과는 하루 이틀 정도만 겹치게 될 거라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처음엔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했지만 대부분의 투숙객들은 그마저도 외면했다. 심지어 멀뚱히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어서 나도 그들의 암묵적인 룰대로 점차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인사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순간 당황하기도 했다.

한해의 마지막 날엔 다들 들떠서 여기저기에서 대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도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차마 나가지 못했고 침대에 누워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밤이 되자 그들은 바닷가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자며 모두 밖으로 나갔고 숙소는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룸 안으로 "Happy New Year~!"라고 외쳤다. 순간 울컥했지만 같이 나가자고 할까 봐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답이라도 할걸 하고 이내 후회했다.

활기찬 서양인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그들은 주로 6인실을 사용했고 내가 머물렀던 4인실은 일본인, 베트남인 등 주로 아시아인이 체크인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인 만큼 불편한 일들도 많았지만 낮동안에는 모두 외출해서 그나마 참고 넘길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투숙객은 어디에서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녀는 떠나는 날까지 힘들게 했다.

한밤중에 체크인한 그녀는 4인실에 체크인하자마자 자고 있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모든 불을 켜놓고 큰 소리로 통화부터 했다. 베트남 사람이었지만 어눌한 한국말로 "나 도착했어. 친정."이라고 했다. 친정이 있는 베트남에 잠깐 온 모양인데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잘 도착했다고 인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왜 친정으로 가지 않고 호스텔에서 머물고 있는지 의아했다. 한국에서 막 도착한 그녀의 침대 옆엔 두꺼운 겨울용 코트가 걸려있었지만 짐은 의외로 단출했다.

그녀는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큰 볼 일을 보더니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나왔다. 닫아달라고 요구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샤워하고 나와서는 챙겨 온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다. 자던 사람들이 기척을 내며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 와중에 어떤 남자와 자정이 넘도록 영상통화를 했다. 사정을 하는 듯 애걸복걸하고 있었지만 베트남어라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정이 넘자 이내 조용해졌다. 그녀가 켜놓은 룸의 전등뿐만 아니라 화장실, 샤워의 불을 대신 끄고 누웠다. 그녀는 침대에 딸린 개인 조명을 켜놓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는 허둥지둥 나갔다.

그날 밤에도 그녀의 통화소리에 잠이 깼고 그녀가 잠이 들면 불을 대신 꺼야만 했다. 그녀는 개인조명을 밤새 켜놓았는데 백열등이라 과열될까 봐 조금은 불안했다. 그다음 날은 그 조명마저 켜놓고 외출했다. 개인 공간에 있는 조명을 끄려면 그녀의 침대로 들어가야 해서 대신 끌 수 없어 난감했다. 곧 돌아오겠거니 생각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나가야 해서 불을 꺼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날도 밤늦게 돌아왔으니 내가 대신 끄지 않았으면 하루종일 불이 켜져 있을 뻔했다.

새벽마다 그녀 대신 불을 끄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내 슬리퍼는 항상 그녀의 침대 앞에 놓여있었다. 처음에는 지나다니다가 휩쓸려 간 줄 알았다. 그러나 매일 밤마다 반복되니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바깥에서 신는 신발은 1층에 두고 실내에서만 신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와야 했다. 첫날은 슬리퍼를 신고 방으로 들어왔지만 둘째 날부터는 자신의 신발을 신고 방까지 들어왔고 화장실과 샤워실에 들어갈 때는 내 슬리퍼를 신고 다니고 있었다. 호스텔에서 지급하는 공용 슬리퍼라 외출하고 들어오면 매번 슬리퍼가 바뀌기 때문에 샤워하면서 슬리퍼도 씻어두는데 그녀가 매일 밤 신고 다닌 셈이었다. 그녀의 모든 행동들은 꽤 신경 쓰였고 그녀로 인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31일 아침, 그녀는 모든 짐을 챙겨서 사라졌다. 드디어 체크아웃을 했구나 싶어 안도했다. 하루라도 편하게 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녀의 침대에 다리미와 드라이어가 그러니 남겨 있었다. 드라이어는 그렇다 쳐도 다리미를 굳이 챙겨 다니는 것이 이상했다. 놔두고 가버렸으니 버리고 간 건가 싶었다.

그날은 일찍 룸 클리닝이 시작되었는데 그때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짐은 어떻게 했는지 핸드백만 들고 나타났다. 며칠 동안 그녀가 사용했던 침대 시트를 교체하던 룸메이드가 그녀를 보고는 주인에게 알렸다. 신경전을 벌이던 룸메이드가 나가자 그녀는 교체가 끝난 침대에 다시 누웠다. 베트남어로 하는 이야기라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아직 체크아웃 시간이 안되었으니 조금 더 있다가 가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혼자가 되조용히 캐리어를 정리하려했으나 그녀는 나가지 않았다. 바닥으로 내려가 혼자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건넸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나도 궁금한 것이 많았으니 여느 때라면 반가운 대화가 이어졌겠지만 그땐 이미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라 건성으로 답했다.

그녀는 그날 오후 늦도록 나가지 않고 계속 침대에 누워만 있어서 숙박 연장을 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체크인한 투숙객을 안내하기 위해 나타난 집주인이 그녀를 발견하고 뭐라고 하자 그녀는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역시 부당하게 침대를 점령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리미와 드라이어도 사라졌지만 새로운 투숙객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침대는 이미 어지럽혀져 있었다. 투숙객은 다른 침대로 안내하고 주인이 직접 침대를 다시 정리했다.

이제 그녀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자정 무렵에 그녀는 다시 들어왔다. 마침 비어있던 침대를 또다시 차지하고 누웠다.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불을 켜놓았다. 그리곤 매일밤 통화하던 그 남자와 오늘도 영상 통화를 했다. 자정이 되자 카운트다운 라이브 영상을 틀어놓았자정이 넘어서는 다시 그 베트남인 남자와 영상 통화를 하더니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불을 끄기 위해 2층 침대에서 내려가는데 내 슬리퍼가 멀찍이 화장실 앞에 놓여있었다. 또 그녀가 내 슬리퍼를 신은 모양이다. 별 수 없이 맨발로 그 슬리퍼를 가지러 야 했다. 그렇게 먼 나라에서 그녀를 향한 짜증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벽 4시쯤,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깼다. 그녀도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가려고 보니 또 내 슬리퍼가 안 보여서 그녀에게 왜 내 슬리퍼를 신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영어도 쓰고 한국말도 곧잘 하던 그녀가 갑자기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듯이 행동하더니 도망치듯 맨발로 화장실에 들어가 버렸다. 새해 아침부터 언짢은 그 상황이 너무 싫어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주방에 내려가서 물을 끓여 오니 모든 불을 켜놓은 채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행을 다녀왔다. 다녀오면 지인들에게 인사하고 떠나려고 했지만 본의 아니게 인사를 계속 미루게 되었다. 누가 물어보더라도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계획을 세울 수 없으니 집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 나에겐 단순히 살기 위한 집을 구하는 것과 일을 하며 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직을 확정하고 여행을 다녀오는 거라 생각했지만 여행을 가기 전에도, 다녀와서도 찝찝한 기분은 여전했다. 두 달이 지나고 있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통보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 생활을 준비하는 것임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으니 준비할 시간을 줄 거라 생각했고 미리 알려주길 바랐다. 어렵게 연락을 해봐도 정확한 일정에 대해서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준비하고 있으라고만 했다. 처음 언급되었던 그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초조해졌다.

기다리는 것은 잘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은 싫었다. 그래서  먼저 연락하니 이미 사람을 구했고 이미 오픈했다고 답했다.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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