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ía de la Plata #5

배낭꾸리기

by 안녕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


언젠가 떠날 날을 기대하며, 미리 준비하려다가 정말 떠날 수는 있는 걸까 싶어 수십 번은 망설였다. 결국은 항공권을 예매하고 나서야 마음 놓고 준비했다.

까미노로 치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누군가의 후기를 참고해서 준비했고, 두 번째는 한번 경험으로 만만하게 보고 짐을 꾸렸다.

부상에 따라 준비물은 달랐다. 부상이 없었던 첫 번째 까미노에선 스틱은 그야말로 짐이었다. 발바닥 물집이 생겼다고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는 과감히 포기하고 떠났다. 하지만 2살 더 먹었다고 내 무릎은 견디지 못했다. 스틱이 절실했다.




은의 길의 출발지인 세비야는 뜨거운 날씨로 유명했다. 더위는 걱정 없었지만 서울 여름 날씨에 고생을 하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더운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땀띠와 염증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일찍, 설마 3월에 덥겠어? 싶었다.

하지만 3월은 세비야의 우기였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날씨였다. 일 년 중 강수량이 가장 많은 달이 3월이라는 사실을, 항공권 예매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비 오는 날에 걷는 까미노가 가장 싫었다. 한여름에 저체온증으로 고생했던 때도, 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수하물 없는 항공권이 많았다. 저가 항공사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에티하드항공
베이직 : 기내수하물 7kg 위탁수하물 없음
밸류 : 위탁수하물 23kg

까미노를 위해 출국할 때는 기내수하물로도 충분하지만 등산스틱이 기내 반입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문의 결과와 경험으로 문제가 없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배낭무게도 10kg 이하가 가능하고 등산스틱도 문제없으면 위탁수하물 없는 대신 금액이 저렴한 편이 나았다. 하지만 일부 항공사의 경우, 스틱은 기내 반입이 금지되었다는 경험담이 나오기도 해서 고민되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경유지에서 혹시 문제가 될까 봐 걱정되어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위탁수하물 있는 티켓을 구입하기로 했다.

게다가 기내수하물 10kg이 아니라 7kg이라는 것도 불안요소 중 하나였다.




첫 번째 까미노 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지인에게 10리터 확장되는 도히터 35L(+10L)를 빌려서 다녀왔다.

하지만 먹거리를 채우고 확장된 공간까지 짐을 채우면 자체 레인커버가 씌워지지 않았다. 비가 올 때는 레인커버를 씌우기 위해 부피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짐을 손에 들고 다니는 날이 많았다.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구두가 더 맞았던 나에게 등산화는 발톱이 빠질 정도의 압박이 있었다. 그럼에도 까미노의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그 길은 만만했고, 돈 없어도 유럽 배낭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떠나겠다는 의지로, 아이더 55L 배낭을 미리 사두었다. 다 채우고 걸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욕심은 여전했다. 배낭이 커진 만큼 먹거리를 지고 다녔다.

침낭을 별도의 맨 아래칸에 넣어두었더니 압축이 되지 않았고, 무언가 빵빵하게 느껴졌다. 보는 이마다 배낭이 크다고 한소리씩 했던 것 같다.

파리의 제이콥스 인 호스텔에서 베드버그의 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자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하루라도 여정을 빨리 끝내는데 치중했다.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며 배낭을 처분해 버렸다.

노년을 위해 떠난 제주살이는, 가자마자 무릎을 다치고 수술대에 올랐다. 비행기를 다시 탈 수 있기까지 9달이 걸렸고, 무작정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망가져 버린,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무릎을 보면서 까미노는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었다.

결국 데카트론에서 포클라스 50L 배낭으로 다시 구입했다. 블랙 색상에다 왠지 부피가 작아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불필요한 끈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여성용 배낭이 굳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배낭은 허리끈을 바짝 조여서 배낭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일반 배낭은 최대한 조여도 바짝 조여지지 않았다. 허리끈이 헐거워지면 어깨에 무리가 갔다.

그럼에도 여성용으로 따로 구입하지는 않았다. 걷다 보면 살이 더 빠지고 더 헐거워질 테지만 그렇다고 배낭에 많은 돈을 들이기는 싫었다. 여성용 배낭이 특별히 더 비싼 것은 아니지만, 쉽게 찾을 수 있는 제품이 아니기에 거의 정상가로 구입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게 조이고 나면 불필요한 끈이 남아돌아 걸리적거렸다. 무언가를 위해 필요했을 그 끈들의 무게는 제법 되었다. 그래서 불필요한 끈이 최대한 없는 배낭으로 구입했다.

등산스틱은 스페인 데카트론에서 사서 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지만 일단 탑승할 때마다 배낭 속에 집어넣어 은폐하기로 했다.

어쩌다 문제 삼는 거라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시비는 없을 것 같았다. 항공기 탑승 전에 엑스레이 검사를 다시 하지 않는 이상 들킬 염려는 없었다. 네덜란드 항공사는 탑승 전에도 보안 검색을 한번 더 했었다. 하지만 에티하드항공은 그랬다는 후기가 없었다. 그냥 가자.

인천공항은 등산스틱이 기내반입이 가능하고 까미노가 유명한 스페인에서는 저가항공사만 그렇다고 들었다. 경유지에서만 조심하기로 했다.

하지만 돌아올 때를 생각하니 7kg는 무모했다. 그렇게 고민했지만 결국 위탁수하물로 부치기로 했다.




착용 : 크록스, 스틱, 모자, 선글라스, 야광시계, 무릎 보호대, 스카프
힙쌕 : 여권, 사진, 카드, 항공권, 아이폰, 핸드폰, 충전기, 머리끈, 옷핀
배낭 : 크레덴시알, 판초우의, 티슈, 위생품, 신발, 깔창
치약, 칫솔, 클렌징폼, 샴푸, 빗, 치실, 수건, 손톱깎이, 진통제, 맨소래담, 반창고, 알코올웹, 피부연고, 선크림 침낭, 패딩, 바람막이, 레깅스, 반바지, 원피스, 상의 2, 하의 2, 속옷 2, 양말 2
(컵라면, 라면수프, 종이컵, 커피, 젤리, 셀피봉)




한식에 미련은 없지만 집에 있던 것들을 챙겼다. 세비야에서 먹어치우기로 했다. 걸으면서 먹을 젤리 무게가 상당해서 고민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뒷모습을 찍고픈 생각이 들어서 셀카봉도 경량으로 챙겼다.

틈틈이 챙겨둔 짐을 배낭에 정리해 넣었다. 다이소에서 구입한 여행용 저울로 무게를 쟀다. 침낭, 트래킹화, 스틱 포함해서 딱 8kg이다. 음식을 먹어치우면 그래도 7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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