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ía de la Plata #12

Sevilla→Santiponce

by 안녕
Martes, 18 de Marzo


13°~18°
눈을 뜨니 자정이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했고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 이호빌 꿈을 꾸다가 bed 9 코골이 소리에 잠이 깼는데 1시다. 정말 우렁차다. bed 6은 액취가 심하다. 저녁에는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지만 깨는 것은 한국 아침 9시. 여전히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 에티하드항공 후기를 마쳤다.

새벽 3시에 장을 비우고 양치했다. 북마크를 정리하는데 세비야 순례자 협회 홈페이지가 있었다. 매일 오전 8시 30분, 세비야 대성당의 왕실 예배당에서 순례자 축복 미사가 거행된다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일요일에 그 미사에 참여했다면 알았을 텐데, 미리 알았으면 어제 아침 미사에 참여했을 텐데 싶었다. 오늘도 서두르면 가능하지만 비가 오는데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배낭을 메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호스텔 세요는 받고 싶지 않지만 세비야에서 받기는 해야 한다. 대성당에서 출발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으니 세요 때문에라도 가서 부딪히자. 11시엔 입장하니까 그전에는 사무실이 문을 열겠지 싶다.

나는 은의 길을 위해 세비야에서 준비하기로 했으면서 내내 그냥 쉬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때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이틀로는 부족했다.

세비야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 온다고 더 좋은 기억으로 남겨질 일은 없다. 그렇다고 마지막이니 억지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다고 추억이 생기지도 않는다.

미사라도 금방 다녀올까 했지만 지금 체크아웃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왕복할 거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미 발엔 물집이 잡혔고 굳고 있다. 배가 아프다.

화장실 문제로 음료는 숙소에서만 마시고 출발 전에 갈증을 해소하고 화장실 들렀다 가기로 했다.

산 이시도로에 있었으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또또또.

세비야 대성당은 세요 받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오늘은 숙소까지만 잘 가보자. 낮에는 비가 안 온다고 하니 스틱은 내일부터 쓰자. 오늘은 세비야에 남은 미련 처리하고 떠나기.

암흑이 되지 않으려면 블라인드를 미리 걷어야 할 것 같다. 저 좀 살려주세요. 주스는 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추위에 대비하자.

8시에 가서 미사 참석 9시 반에 돌아오면 10시 바로 나가야 하는데 의미가 없다.

부엔카미노 앱에도 협회 사진이 있었다. 철문이다. 부엔카미노에 알베르게 사진이 있다. 이탈리카 메일이 왔다. 코드를 보내왔는데 일찍 가도 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호스텔 출입 코드는 ****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코드를 입력하는 동안 문을 당겨야 합니다. 객실은 리셉션을 지나 왼쪽, 남자 화장실 옆에 있습니다. 문에 녹색 그림이 있습니다. 2번 침대 또는 4번 침대를 선택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계속 꼼지락 거리면서 바게트를 먹었다. 날이 밝기 전엔 블라인드를 올려두니 그나마 빛이 들어왔다. 더 있으면 뭐 하나 싶어 미사에 가보기로 했다.

7시 50분, 불을 켜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8시 10분이지만 8시 20분이 되어 셀프 체크아웃 했다. 서둘러 나왔다.




골목이 많아서 열심히 지도를 보고 갔는데 거의 직선 도로였다.

세비야 대성당에 20분 만에 도착했지만 반대편 동쪽 문으로 가야 했다. 그제 들어갔던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직원이 나왔다. 뻬레그리노 미사? 맞단다.

10분이나 늦었지만 들어가니 좌측 소성당이 왕립 성당인가 보다. 10분 늦은 미사는 10분 만에 끝나 버렸다. 뭐지?

잠시 앉아있다가 날씨가 너무 맑아서 비옷을 집어넣고 배낭을 메다가 기우뚱, 쓰러질 뻔했다.

직원에게 세요를 어디서 찍는지 물어보니 기둥 뒤에 숨겨둔 세요를 꺼내서 찍어준다.

이제 출발하면 된다. 날씨 좋고 기온도 딱 좋았다.




Vía de la Plata

실버 루트는 안달루시아 (세비야), 에스트레마두라 (바다호스, 카세레스), 카스티야 이 레온 (살라망카, 사모라), 갈리시아 (오우렌세, 폰테베드라, 아 코루냐) 등 4개의 자치주와 6개의 주를 통과한다. 아스토르가를 경유하는 경로는 사모라 주에서 레온 주로 넘어간다.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된 이정표는 전반적으로 잘 되어 있어 따라가기 쉽다. 일부 구간에서는 노란색 화살표 위에 돌무덤, 에스트레마두라 지역의 경우 탑, 로마 시대 이정표 복제품 등 다른 표식들이 겹쳐져 있다.

리오 데 라 플라타의 풍경은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사나브리아와 오렌세의 울창한 참나무 숲, 살라망카와 그란하 데 모레루엘라 사이의 광활한 곡창지대, 안달루시아와 에스트레마두라의 올리브 밭과 포도밭, 아 코루냐의 유칼립투스 농장과 숲 외에도, 리오 데 라 플라타를 진정으로 특별한 여행지로 만드는 한 가지 유형의 삼림 지대가 있다.

안달루시아, 에스트레마두라, 그리고 살라망카 주의 남부에서는 소와 돼지가 자유롭게 풀을 뜯는 광활한 데헤사, 즉 참나무가 우거진 개방형 삼림 지대를 지나게 된다. 이 숲들은 인간의 개입으로 원시림이 대규모 가축 사육지로 탈바꿈한 결과물로, 놀라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가장 오래된 데헤사는 3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실버 루트의 본질을 요약하는 두 단어는 바로 '고독'과 '더위'다.

"특히 세비야와 살라망카 사이 구간에서는 극심한 고독을 느낄 수 있다. 몇 시간이고 걸어도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사람이 사는 곳도 지나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순례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봄과 가을에는 다른 순례자들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비아 데 라 플라타에서 여러 순례자들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이 순례길을 걷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특히 안달루시아와 에스트레마두라 지역의 기온은 35°C를 쉽게 넘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더 40°C까지 오르며, 일부 지역에서는 43°C 또는 44°C까지 치솟는다.

밤에도 기온이 거의 30°C에 육박하여 휴식을 취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길은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비아 데 라 플라타 (가장 흔하지만 순례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님), 루타 데 라 플라타(최근에 생겨났으며 주로 관광적인 측면을 나타냄), 그리고 카미노 모사라베 아 산티아고가 있다.

사모라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그란하 데 모레루엘라에서 푸에블라 데 사나브리아와 오렌세를 거쳐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길은 카미노 사나브레스라고도 한다.

그리고 살라망카에서 푸에블라 데 산아브리아와 오렌세를 거쳐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길은 카미노 폰세카라고도 불린다.




Vía de la Plata는 이베리아 반도의 남서부와 북서부를 연결했던 로마 도로망에서 유래했다.

로마 도로의 중앙 부분은 현재의 기술 용어로 Iter Ab Emerita Asturicam이라고 불리며, 로마 제국의 중요한 두 도시인 루시타니아 속주의 수도 에메리타 아우구스타 (메리다)와 아스투리카 아우구스타 (아스토르가)를 연결했다.

수 세기 후, 이 아름다운 돌길은 아랍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는 동안 이용되었고, 이후 기독교의 레콩키스타(재정복) 이후에는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순례하는 신자들이 이용했다.

"플라타"(은)라는 이름 은 금속 아르젠토(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 어원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포장된 길"을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 balata의 음운 변형으로 여겨진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달은 3월, 4월, 5월, 10월이다. 이 기간에는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다. 6월과 9월에는 더위에 대비해야 한다. 7월과 8월은 특히 세비야에서 살라망카까지의 구간은 추천하지 않는다. 겨울은 혼자 여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9시 나의 세 번째 까미노가 시작되었다.

일단 대성당 북서쪽 모서리 부분을 찾아갔다. 스타벅스가 있었다. 성당 건너편 골목입구에 비아 데 라 플라타 파란 표식이 있었다.

골목으로 접어들다가 지도를 켰는데 굳이 최단거리를 갈 필요가 없었다. 일단 직진. 그런데 이후엔 어디에도 표식이 없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필름이 아쉬웠지만 어차피 빈 공간이라 의미가 없다. 깨지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이사벨 다리를 건너자 길은 협회 쪽으로 이어졌고 어제저녁에 갔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82번지는 하나뿐이었다. 이상하다. 어제는 무엇을 보고 착각했을까?

허브에서 바로 오는 길도 상관은 없었다. 또 다른 다리를 건너서 새로운 길이 생겼는데 홍수가 났으니 직진.

순례자 한 명이 강가 루트로 접어들길래 불렀지만 못 듣고 물 웅덩이를 지나갔다. 또 다른 아저씨 순례자가 앞서가고 있었다.




까마스 방면으로 직진. 마을 중앙 Santa Maria de Gracia 교구 성당에서 잠시 쉬었다. 할머니들이 봉사하고 있었다.

배낭이 너무 무겁다. 스틱을 꺼낼까 하다가 참았다. 내일부터 제대로 하자.

좌측 골목을 잊고 우측 골목으로 갔는데 시작을 누르고 걸으니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경로 재검색을 해주었다. 세상 좋아졌다.

그리고 끝없는 길 끝에 산띠뽄세에 도달했다. 로마 황제 트라얀이 태어난 로마 유적지인 이탈리카,




고요한 마을 속에서 이탈리카 호스텔을 찾아갔다. 첫날이니 절반만 걸었다.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니 여성 순례자 두 명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스웨덴 뤼까? 남녀로 구분된 8인실이다.

화장실 2칸 샤워부스 2칸은 여성 전용이다. 메일에는 2/4번을 고르라고 했지만 청소되어 있지 않았다. 7번 윗침대.

일단 씻었다. 뒷마당이 있고 건조대가 있어서 하나씩 빨아서 널다 보니 다 빨아서 널었다. 양말 2, 수건, 스카프, 상의도 마저 빨아서 널었다. 햇볕이 뜨겁지만 가끔 구름이 가릴 때면 싸늘했다.

커피와 차류는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믹스커피를 마시고 바게트에 치즈를 넣어서 먹었다. 맛이 이상했다.

청소 중이라서 어수선했다. 요구르트를 먹었는데 두고 간 거라 생각했다. 룸에이트 거라면 어쩌나 했는데 콩요구르트라서 버리고 간 듯. 냉장고는 정리하지 않았다. 두고 간 거라면 다음 투숙객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면 좋을 텐데. 머핀 하나를 꺼내먹었다. 해바라기씨가 있어서 먹고 싶은데 새거라 눈치가 보인다. 발바닥이 가렵고 열이 나는데 열꽃이 핀 듯.

유적지 가겠다고 여기로 온 건데 꼼짝도 하기 싫다.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발가락 양말 신으니 물집은 잡히지 않는데 발뒤꿈치가 주저앉을 것 같았다.

빨래는 잘 마르고 수시로 뒤집었다. 그사이 누가 건조대를 햇빛이 이동한 쪽으로 옮겨두었다. 스카프, 수건은 말라서 걷었다. 두꺼운 양말은 다시 빨았는데도 거의 다 말랐으나 아직은 부족하고 뒤늦게 빨았던 긴팔도 햇볕이 닿은 부분은 말랐으나 아래쪽은 축축했다.

해바라기씨를 개봉해 버렸다. 만사나 수모도 다 마시고 바게트도 다 먹었다.

코가 시큰거릴 정도로 추워졌으나 발은 퉁퉁 붓고 열이 났다. 걷기 싫다. 깜빡 졸았다. 자려고 누웠다가 빨래를 걷어왔다. 해는 졌는데 습기가 도로 붙을까 봐 걱정이다.

그리고 너무 졸려서 잠들었다. 인기척에 눈을 뜨니 투숙객들이 돌아온 듯싶은데 다들 식사를 하는지 방은 비어있었다. 그대로 잠들었고 1시 그리고 2시 반.




Sevilla→Santiponce 9.3km
-Sevilla
-Santiponce 9.3km

Itálica Hostel 16.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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