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pitalera en Madrid
Lunes, 14 de Abril
10°~15°
새벽에 깨긴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6시 50분 눈을 떴다.
6시 54분 조명이 켜졌다. 장을 비우고 샤워했다. 배가 아프다.
밤새 나온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화장실 청소도구를 챙겨 와서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사이 또 재활용 쓰레기가 나와서 버리고 왔다.
8시 보카디요를 만들었다. 두 개는 만들어두고 하나는 먹었다. 하루가 지난 빵은 푸석했다.
바게트는 하루가 지나도 맛있었는데 이건 왠지 다른 종류 같았다. 커피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제 컵이 생겼으니 커피를 사 와야겠다.
결국 보카디요는 남기고 배가 부름에도 오렌지를 까먹었다. 휴대폰 분실 신고 안내 문자가 다시 왔다. 로밍한 지 한 달째라 그런 것 같다.
9시가 다가오자 2박을 결제한 순례자가 오늘 체크아웃하겠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디에고에게 톡을 보내니 바로 답이 오지 않아 보이스톡을 해서 허락받았다.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가 왔다.
다른 순례자가 일어날 기미가 없어서 9시 퇴실을 알리니 10 시인 줄 알았다고 한다. 나갔다가 14시에 들어와야 하는지 묻길래 최대한 빨리 청소를 마치겠다고 했다. 12시면 끝날 것 같다고 전했다.
환불해 준 순례자는 삶은 달걀을 먹고 가겠단다. 그리고 비노띤토와 빠따따스를 남기고 떠났다.
문을 열어두고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디에고가 왔다. 다른 화장실은 자기가 청소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했다고 하니,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역시 이미 끝냈다고 알리자 바닥 물청소를 했다.
청소가 끝나고 나는 발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오른쪽 발이 심하게 부었다. 왠지 불안했다. 염증이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그때 디에고가 프랑스길을 걷던 한국인이 실종되어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3월 27일 정도에 가족과 연락이 끊겼는데 행적 파악을 위해 프랑스길 알베르게에 확인한다고 한다.
밖으로 나가서 보카디요를 마저 먹었다. 물청소를 마친 디에고가 바스켓 물을 알베르게 현관 입구에 버리면서 비둘기똥을 처리했다.
덥다고 바깥에 나온 디에고를 대신해서 청소도구를 정리했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려는데 주머니가 가벼웠다. 폰이 사라졌다. 설마!
밖을 체크하고 소파 그리고 침대를 조용히 체크했다. 없다. 설마. 내 일기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절망했다.
배낭을 뒤집었다. 그리고 주방 쓰레기통을 체크했다. 혹시 보카디요를 감싼 냅킨을 버리면서 같이 버렸나 싶어 바깥 쓰레기통까지 체크했다.
결국 디에고에게 얘기했고 보이스톡으로 내 폰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진동으로 되어있는 내 폰은 어디에서도 울리지 않았다.
동선이 고작 침대, 소파, 주방, 바깥이라 한눈에 보여야 했다. 하지만 진동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광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나 싶어 국제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신호는 가고 있었다.
여전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휴대폰을 잃은 적이 없었다.
디에고가 폰 하나를 빌려주겠다는데 나도 서브폰은 가지고 있었다. 나의 모든 데이터가 문제였다.
그렇게 망연자실했다.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포기해야 했다.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안신부님 묵주를 집어 들고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리고 소파로 향했다. 수십 번도 더 뒤졌던 소파 틈새를 또다시 체크했다. 담요와 소파 사이에 시꺼먼 폰이 끼어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디에고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당장 백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진동을 벨소리로 바꾸고 볼륨도 최대로 올렸다. 한번 겪어보니 남 배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 온 택배는 공유기였다. 와이파이 공유기를 설치하려고 했는데 순례자 베드에선 와이파이가 되었다. 얇은 벽이 하나뿐이라 와이파이가 되는 거였다.
하지만 봉사자 숙소는 두꺼운 벽이 두 개가 막고 있어서 와이파이가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 문제로 중단되었다.
어느덧 12시, 춥다. 오렌지를 권하니 거절해서 혼자 까먹었다.
일찍 와도 된다고 했지만 순례자는 13시쯤 돌아왔다.
다리가 아파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의무감으로 보카디요를 먹었다.
그런데 디에고가 라면 사러 간다고 먹겠냔다. 보카디요 먹고 있다고 하면 그뿐인데 라면 안 좋아한다는 사족을 붙였다.
라면은 영영 이별이 되었다. 가만있었으면 나중에라도 먹었을 텐데. 라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래도록 오지 않아 점심을 사 먹고 들어오나 싶을 무렵 돌아왔다.
결국 디에고는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라면 냄새가 유혹했다. 한 젓가락, 아니 한 국물만 달라고 하고 싶었다.
이곳에는 대도시답게 음식점도 많고 갈 곳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봉사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스페인에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으니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프라도 미술관 부근의 상점에 오르골을 사러 가고 싶었다.
2012년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 그저 모든 게 새로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했으니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오늘따라 센티해진다.
미셀의 메시지가 뭔가 오묘하다. 내가 말 실수한 걸까? 답변하기가 어렵다. 번역본이 자꾸 바뀌면서 이상한 의미로 바뀌었다. 우리 사귀는 거니?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15시다. 잠깐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나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식탁엔 녹차, 카모마일이 있었는데 디에고가 사 온 모양이다. 머쓱해서 오렌지를 까먹었는데 커피도 사 왔다고 하며 컵을 준비한다.
나는 물을 끓였는데 컵이 크긴 했지만 2스푼은 너무 쓰다. 레체를 사 와도 되겠다 싶었다. 가예따스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2017년 6월~7월에 걸었던 순례자의 후기를 발견했다.
그때는 나도 그랬다. 젊었다.
2015년 아스또르가에서 실종되었던 데니스 티엠 41세
여름의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아 늦도록 밝았다. 걸을 때는 산책할 기운이 없었지만 지금은 기운이 남아도는데 도무지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걷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고작 1km 거리의 마트에 다녀오기도 벅찼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문득 서글퍼졌다. 걷고 싶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이제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까미노 아니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시련이 오고 있었다.
아침의 폰 분실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나는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이번에는 국경을 걸어서 넘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고 또한 프랑스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마드리드로 입국했다.
오로지 스페인에 올인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스페인어는 다 까먹었고 이제는 외워지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벼락치기로도 웬만한 스페인어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도 예약자가 있지만 비행기가 지연되고 있단다.
이제 걷지 않으니 쇼핑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샐러드와 소스 그리고 등산화가 15유로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어차피 다시 마드리드로 와야 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걷지도 않을 거면서 신발을 사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니 순례자가 쓰고 있었다. 순례자 숙소 화장실 앞 침대를 쓰면서 왜 먼 이곳까지 와서 씻는 걸까?
아침에도 화장실 청소 후에 누군가 그곳에 가는 것 같았는데 만약 표지판을 놔두지 않았다면 썼겠다 싶다. 심지어 작은 샤워실이 아닌 장애인 화장실을 사용했다.
휴지통 비우기 싫어서 하루 종일 노력했는데 그냥 쓰고 비우기로 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확인하니 모든 화장실을 사용했는지 휴지통마다 휴지가 들어있었다.
순례자 숙소 화장실에 더운물이 안 나오나 싶어서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변기 딸린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스삐딸레라다. 잊지 말자.
그런데 문득 한 사람만 있으니 뭔가 그랬다.
여긴 문도 없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 여자 혼자 알베르게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오면 막을 방법이 없다.
예약을 허위로 하고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는 찢어 버리면 그만이다. 사고가 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또 다른 순례자가 오고 있다. 비행기 지연으로 체크인 마감시간 이후에 온단다.
디에고에게 퇴근하라고 하니 홈페이지를 만드는 중이란다. 예약 홈페이지 madridalbergue.com 오픈.
디에고는 내일 재택근무라 아침 7시 반에 여기 와서 컴퓨터를 켜야 한단다.
순례자는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디에고는 20시 퇴근했다.
1인용 소파를 구석 자리로 밀어 넣어 3인용 소파와 나란히 배치했다. 티테이블은 입구로 옮겨서 간식거리를 놔두었다. 일자가 되니 뭔가 깔끔해 보였다.
21시 쓰레기통을 내다 놓고 왔다.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미셀이 자꾸 사심으로 질문을 하는 것 같아서 화제를 돌리고자 보르도 알베르게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간단히 답하고는 나에 대해 자꾸 물었다. 그러다 자신은 이혼했지만 아들을 만나러 갈 때는 전부인을 만나서 함께 간다는 등,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건 무언가 잘못된 거였다. 자원봉사자 인터뷰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번역이 잘못된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나는 당신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해요!
자고 싶은데 순례자가 아직 오지 않았다. 22시 50분 도착했다. 그는 레온에서 까미노를 시작한단다.
체크인하고 톡으로 보고 하자마자 23시 도어록 이중 장치 설정음이 들렸다.
오늘은 폰이 내 손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다. 내가 힘들어서 짜증이 나는 경우에는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그들이 이 상황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이 힘들다고 내가 옆에 있는데도 짜증을 낸다면 나는 어떨까를 생각하니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떠한 짜증이 나더라도 누군가 있다면 미소를 짓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폰을 잃어버렸을 때 표정을 숨기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감정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