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pitalera en Madrid
Sábado, 07 de Junio
24°~31°
7시 반 순례자들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샤워하고 바닥의 물기를 닦고 있으니 식사를 마친 이들이 화장실에 들어왔다. 밖에서 머리를 빗고 수건을 빨아서 널었다.
모두가 나가고 9시 청소가 시작되었다. 나는 화장실 두 군데를 떠맡게 되었다. 바닥청소는 자기네들이 하는 거라더니 이제는 나보고 바닥도 직접 하란다.
알베르게 입구 쪽에는 샤워실이 딸린 장애인 화장실을 포함하여 변기 2칸, 샤워실 2칸, 세면대 4개가 있었다. 순례자들이 지내는 도미토리룸 안에는 샤워실 1칸, 화장실 2칸, 세면대 2가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세면대, 변기, 샤워실 청소가 끝나고 바닥 청소를 했다. 바닥을 쓸고 막대걸레질을 했다.
청소가 끝나자 어느덧 10시가 되었다.
남은 바게트를 데우고 고다치즈를 빵에 올려서 녹였다. 레체도 다 먹었다. 요구르 먹었다.
가예따스는 종이를 꺼내고 비닐만 남겨 봉해두었다. 더 사 오긴 해야 했다.
아직 머리가 마르지 않아 햇볕에 머리를 말리러 밖에 나가니 수에리도 밖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관광객이 신기한지 사진을 찍었다.
11시 두꺼운 이불을 치울 수 없어서 침낭을 정리해서 배낭에 집어넣었다.
Jean은 청소를 먼저 끝내고 자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침대에 올라가서 누웠다. 열린 창문으로 찬바람이 불어왔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바깥은 더웠지만 그늘은 시원했다.
나는 여전히 추워서 이불을 덮었다. 적당한 온도 습도에 깜빡 잠이 들었다.
13시, 디에고가 왔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지만 묵직함은 사라져서 일어났다.
디에고는 장바구니를 들고나갔다 오더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마드리드의 명물 Bar La Campana 오징어 보카디요.
디에고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 수에리에게 가져다주더니 Jean을 찾는다. 잔다고 했지만 그 소리에 깨서 나왔다. 얼마 먹지 않았지만 남은 오징어 튀김은 모두 Jean의 접시로 갔다.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다 같이 후식 타임.
내 장은 활발히 움직여서 화장실에 가는데, 그때 로사 아주머니가 와서 인사했다.
리셉션에는 이야기 꽃이 피었지만 스페인어가 되는 사람들의 대화라 나는 낄 수조차 없다.
오늘은 저녁 타임이라 잠시 나갔다 와도 되는데 깜빡했다.
인터넷이 될 때 정리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귀찮다.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그러다 기사를 찾았다.
'2019년까지 카탈루냐계 혈통인 앙헬라 리알과 마드리드계 혈통인 파코 산체스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관광업에 종사하며 살았다.
여러 형태로 여러 번 완주했던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녀는 삶을 바꾸고 싶어 했다. 파코도 함께했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약 4년 동안 운영해 온 폰타니야스 데 카스트로 순례자 호스텔을 찾았다. 이곳은 순례자들에게 소위 "전통적인 환영"을 제공하는 두 곳의 호스텔 중 하나다."
(타바라에 있는 호스텔과 함께)
이 환영은 이제 인류 무형문화유산 후보에 올랐다.'
이 글에서 그들을 부부라고 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막연히 짐작했었는데 역시나였다.
잠깐 현기증이 났고, 컵을 집어 들다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뜨렸다. 컵은 산산조각이 났고 커피는 쏟아져서 바닥에 얼룩을 남겼다.
커튼이 가리고 있었지만, 리셉션에서 다들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기사 충격의 회복보다 사고 처리가 우선이었다. 유리조각을 치우고 커피를 닦았다. 하지만 바닥에 스며든 커피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예전의 커피 자국은 많이 사라졌지만 오늘 쏟은 커피는 너무 진해서 사라지긴 할까 싶다.
디에고에게 얘기하려고 리셉션에 나갔는데 그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톡을 보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디에고 목소리가 들리더니 주방에 들어왔다. 하지만 순례자와 얘기하느라 이곳은 못 보고 그대로 나갔다.
수에리는 바닥을 닦느라 분주한 내 모습을 쳐다봤고, Jean은 방에 들어와서 굳이 바닥을 대놓고 쳐다보았다.
디에고와 계속 마주치지 못하면 얘기할 기회가 없을까 봐 결국 톡을 보냈다.
한국인들이 주방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사온 멜론을 리셉션에 나누어 준 모양이었다. 멜론을 먹으라고 디에고가 부르러 왔다. 얘기하려고 했지만 기회를 놓쳤다.
숙소에서 나가자 한국인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감기에 걸렸냐고 물었다. 내가 나가자 리셉션에 있던 접시를 다시 가져가더니 멜론을 더 담아주었다.
그사이 나는 디에고에게 톡을 봤냐고 물었는데, 이미 컵을 깨뜨릴 때 봤단다. 이거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 컵을 사놓고 가야 하나? 컵 하나 깨고 이렇게 주눅이 들 수 있을까 싶다.
컵은 근처 매장에는 없었다. 접시 세트를 사 올까 했으나 알베르게에서 쓰기엔 아까웠다.
어느덧 30분 전이다. 고작 천 원짜리 컵 하나 깨 먹고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창밖에 경찰이 보여서 사고가 났나 싶어 나가 봤더니 광장에 행사 준비 중이었다.
20시 교대하러 가보니 수에리가 리셉션에 앉아있었다. Jean은 어디 가고 대신 앉아있지?
수에리는 바로 외출했다. 내가 맡은 밤에만 나가는 저 할머니는 뭐지?
10분 후에 Jean이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장을 비우니까 편하지 않고 허기진다.
초인종이 울렸다. 중국인이 예약 없이 왔다. QR패스 등록완료.
아스또르가에서 만났던 순례자가 스페인에서 산 감기약을 주었다. 미역국 블록이 있어서 물을 끓여서 마시고 약을 먹었다. 컵을 쓰기가 민망해졌다.
저녁에 외출한 중국인이 늦지 않게 들어오길 기다렸는데 둘이 나갔던 한국인 순례자가 혼자 들어왔다.
언니 동생하는 사이로 함께 순례길을 마치고 이곳에 왔는데 의견차이가 있었던 모양인지 낮에 헤어졌단다.
감기가 심해져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도 버텼다.
나는 감기에 걸렸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몸도 아프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냉난방을 하지 않았고 영하 20도의 한 겨울에도 온수 사용을 하지 않았다.
겨울에도 하루에 두 번은 샤워를 했는데 알고 보니 운동선수들이 자주 사용하는 치료법이라고 했다.
그게 힘들지도 않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난방으로 인한 건조함이 사라졌고, 밖과의 기온차로 인한 데미지도 없었다. 불안한 가습기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누군가 집에 오면 난방을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집으로 부르지 않았고 굳이 불러야 한다면 따뜻한 날에만 초대했다.
감기가 어떻냐고 묻는 질문에, 안 죽으면 다행이라고 답
했다.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22시 순례자들이 모두 돌아왔다. 오늘은 제시간에 마감할 수 있을 것 같다.
3개월 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앙헬라에게 장난 삼아 폰따니야스의 엄마라고 했는데 그럼 빠꼬는 아빠인가?
미역국을 먹었다고 또 장이 부글거렸다. 오늘은 여러모로 힘든 날이다.
왼쪽 팔목이 갑자기 저렸다. 무엇 하나 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