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6
Lourdes→Bayonne, France
Day 4.
Saturday, May 30
겨우 일어나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조식을 먹는데 오늘은 모니까가 서빙을 하고 있었다. 로핀 아저씨가 보이지 않아 기차역까지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시간에 맞춰서 태워다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란다.
성지 내에서 하루 두 번 진행하는 침수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미리 준비해 두었던 샘물로 홀로 침수하고 호텔을 나섰다.
루르드 성지로 가서 십자가의 길을 하고 곳곳을 다니며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마음에도 담았다.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이라 사진으로 남기며 이별을 준비했다. 광장에서 빛의 신비, 묵주 기도를 드리고 9일 기도를 하러 동굴 성당으로 가니 미사 중이라 얼떨결에 참여했다. 초를 하나 사서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촛불 봉헌했다. 돌아오다 어제 한국 그룹의 일행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했다. 한번 인연이 생기면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보니 기간이 같으면 어디서건 자주 만나게 된다.
성지를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로핀 아저씨가 계셨다. 첫날 숙박비로 약간의 신경전이 있긴 했지만 지내는 동안 불편함 없이 챙겨준 모니까와 작별 인사를 하고 로핀 아저씨의 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 안에서 먹으라며 런치 박스를 건네주는데 순간 울컥했다. 이런 게 정이지. 물론 점심값을 지불한 셈이었지만 난 이런 작은 선물에 지나친 감동을 받는 것 같다. 더 머무르다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가야 할 길이 있음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작별했다.
살아오면서 큰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정말 소박한 꿈이 전부였지만 그 작은 꿈조차도 나에겐 사치였나 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평범한 일상이 나의 꿈인 셈이다.
어릴 때는 오빠와 차별하는 어머니에게 설움이 있었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무언의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밥상 위에 고기반찬이 올라올 때면 어머니의 차별은 너무나 노골적이셨다. 내 젓가락이 고기 접시를 향한다 싶으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내 손을 쳐내셨다. 물론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내 머릿속엔 항상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설움에 혼자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내 방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 울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울지 못했고 참았다가 조용한 곳에 가서 한꺼번에 울다 오곤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어차피 먹지 못할 바엔 스스로 먹지 말자고 다짐했다. 못 먹는 것과 안 먹는 것의 차이, 나는 상처받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다행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모른 척하셨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고기반찬이 남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제야 어머니가 내게 고기를 왜 안 먹는지 물어보셨다. 그래서 난 고기가 싫어졌다고, 먹으면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친척 모임에서도 어머니는 내가 고기를 먹으면 배가 아파서 안 먹는다고 대신 말씀해 주셨고 난 더 이상 어디에서도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고기를 포기하면 생선은 내 차지가 될 줄 알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맛있는 걸 먹는 게 싫으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고기를 먹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났고 어쩌다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끝내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복통으로 고생하다 결국 토해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작은 거짓말처럼 고기를 먹으면 정말 배가 아픈 아이가 되어 버렸다.
고3이 되자 오빠가 군대에 갔다. 그러자 영양을 위해서 이제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며 어머니는 내게 고기를 강요하셨다. 난 아플까 봐 무서워 끝내 먹지 않았더니 모르고 먹으면 괜찮을 거라며 어머니는 카레에 고기를 잘게 다져서 넣으셨다. 하지만 난 이미 고기 냄새조차 싫어져서 금방 알아차렸다. 억지로 먹어도 되었지만 배가 아픈 것은 더 싫었다. 이제 와서 이러시는 어머니가 미워서 밥상에서 고기를 건져내는 시위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맞았던 적이 있었다. 맞아서 아픈 것보다도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쳐 결국 울음이 터져버렸고 그날 난 아버지에게 편식하는 아이로 찍혀서 죽도록 맞았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고기를 강요하진 않으셨다.
독립을 해서는 돈이 없으니 굳이 사 먹을 일은 없었고 직장에서 회식이 있어도 난 냉면이나 된장찌개만 먹었다. 직장생활이 길어지니 회식이 아니더라도 고기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겼는데 그렇게 한 번 두 번 먹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기다 보니 나중엔 설사만 하면 괜찮아지곤 했다.
그래서 다이어트가 필요하면 고기를 먹게 되었고 열 번 먹으면 열 번 다 아프더니 이것도 반복되자 어느 순간 열 번에서 아홉 번으로, 열 번에서 여덟 번으로 그리고 일곱 번으로 그렇게 점차 줄어들더니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기를 끊은 지 이십 년이 지나서야 다시 먹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쩌다 설사하는 정도가 되었다.
플랫폼에서 런치 박스를 열어보니 바게트 샌드위치 반 조각 두 개랑 바나나 한 개와 생수 한 병이 들어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며 바나나를 까먹는데 뒤늦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낯선 이들 앞에서 잘 울지 않는 편이지만 이때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동안 엉엉 울었다. 더 머무르다 가고 싶은 아쉬움이 컸던 걸까?
바욘으로 가는 Intercités가 들어왔고 설렘 반 긴장 반으로 기차에 올랐다. 12시 24분 정시에 기차는 출발했다. 익숙한 풍경이 창 밖으로 펼쳐지고 있어 마지막으로 두 눈에 담았다.
바게트 샌드위치를 하나 꺼냈는데 햄 하나 달랑 들어있었다. 약간 불안했지만 괜찮았다. 치즈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맛있게 다 먹었다.
루르드를 떠나온 기차는 연착 없이 14시쯤 바욘 역에 도착했고 내일 생장행 티켓을 구입하는데 첫 기차는 버스로 대체되었단다. 상황에 따라 기차가 될 수도, 버스가 배정될 수도 있었다. 바욘 역에서 지도를 보며 숙소까지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지만 내일 새벽에 나와야 하는데 버스 배차시간이 걱정되어 그냥 걷기로 했다. 길을 익히기 위해 갈 때도 걸어갔다.
20분 남짓 걸어서 도착했고 한 건물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렸다. 젊은 민박집 사장이 나와 안내해 주었다.
런치박스에 남아있던 바게트 샌드위치는 치즈 한 장 달랑 들어있었다. 딱딱한 치즈가 들어있는 샌드위치였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숙소 앞 마트에서 소다수 한 병을 사서 바욘 시내로 걸어갔다. 바욘에서는 버스비가 1€, 24시간을 쓸 수 있는 일일권이 2€였지만 난 계속 걸어 다녔다. 까미노를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 하는 셈 쳤다. 니브 강을 지나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로 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흥미가 없었다. 은근히 날이 더워서 소다수 한 병을 다 비웠다. 돌아오는 길에 숙소 앞 마트에서 필요한 것을 구입했다.
숙소에 들어와서 빨래하고 씻고 일찍 자려고 누우려는데 옆방에 남자분이 체크인하는 것 같더라니 이내 내 방문을 두드렸다. 한국에서 온 아저씨였는데 내일 같이 가자고 하신다. 첫 차를 타야 해서 새벽에 걸어갈 거라고 말씀드리니 괜찮으시단다. 그렇게 까미노 동행이 생겼다.
Lourdes→Bayonne, France
Lourdes 12:24~14:01 Bayonne
○Lourdes
●Bayonne
-Cathédrale Sainte Marie de Bayonne
-Eglise Saint Andre
-Arènes de Bayonne
-Cloitre De La Cathedrale Sainte Marie
-Stade Jean Dauger
-La rue Port Neuf
-Maison Moulis
-Château Vieux
Lourdes~Bayonne Intercités -10.00€
Lourdes Candle -2.50€
Bayonne Leader Price 2.24€
Orange Soda -0.79€
Gold Baran -0.63€
Baguette 250g -0.47€
Shampoo 300g -0.35€
Sunny House +B -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