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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7

Bayonne→Saint Jean Pied de Port, France

by 안녕
Day 5.
Sunday, May 31


새벽에 일어나 씻고 준비를 하고 주방으로 가니 아저씨가 이미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식탁 위에 간단한 조식이 준비되어 있어서 커피와 빵을 먹고 설거지를 해놓고 어제 써니 하우스 집주인에게 미리 얘기해 두었던 사과 몇 알을 챙겼다. 식사가 끝나고 7시 되기 전에 아저씨와 같이 숙소를 나섰다. 어스름한 새벽이라 조심하며 걸었고 두 번째 나서는 길이라 헤매지 않고 무사히 바욘 기차역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티켓을 미리 구입하지 않으셨다는데 티켓 부스는 오픈 전이라 티켓 머신에서 티켓을 구입했다. 의자에 앉아 7시 45분이 되길 기다렸다.

전광판을 보면 해당 기차 시간 플랫폼 번호에 버스 모양의 아이콘이 표시되어 있는데 TER가 버스로 대체된 경우에 이렇게 표시된다. 잘 모르는 사람은 무작정 기차 플랫폼에 나가서 기다리다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기차표를 끊었으니 당연히 기차를 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티켓부스에서 티켓을 구입하게 되면 직원의 설명을 들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오픈 전이라면 모를 수밖에 없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시간이 다가오는데 플랫폼 번호가 뜨지 않아 당황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첫날부터 차 놓치는 불운으로 까미노를 시작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다. 말 한마디 해 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몇 명에게 전광판을 가리키며 생장 행 TER는 버스로 대체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주변을 보니 대부분이 배낭을 멘 걸 보니 생장 가는 사람들 같았다. 사람들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되었다.

Gare Bayonne 광장으로 나가니 Saint Jean Pied de Port 행 버스가 대기 중이었다. 대형버스였는데 배낭은 버스에 갖고 타지 못한대서 비닐로 감싸서 화물칸에 넣고 티켓을 제출하고 버스에 오르니 거의 만석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다 탄 것일까? 또 다른 한국인 두 명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낯선 사람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것이 까미노였다.

산을 오르는 길은 역시 험난했고 버스 멀미를 했다. 가파른 좁은 길을 지날 때는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기차역마다 버스를 잠시 세웠는데 기차가 달렸으면 도착했을 그 시간에 맞추느라 무지 서둘렀는지도 모르겠다. 두통으로 인해 잠시 눈을 감아보기도 했지만 잠들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무사히 생장에 도착했다. 그것도 제시간에!




Saint Jean Pied de Port (179M)는 스페인 국경으로부터 약 8km가량 떨어져 Río Nive, 니베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스크 지역 곳곳으로 도로가 뻗어있는 교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바스크 지방의 중심인 Pays de Cize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생장 삐에드뽀르는 피레네를 건너 론세스바예스로 향하기 직전의 마지막 구간으로 전통적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을 따라는 순례자들에 있어서 중요한 마을이다. 또한 파리 (París), 베즈레이 (Vézelay), 르 퓌 (Le Puy)에서 출발한 3개의 까미노 루트들이 만나게 되는 마을로 순례자들이 험난한 피레네 산맥 직전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을이다.

생장 삐에드뽀르를 통과해 피레네를 넘는 길은 과거 로마의 십자군, 서고트인, 게르만 민족, 순례자, 무역상과 나폴레옹의 군대 모두에게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Pied de Port라는 말은 피레네 지방의 방언으로 ‘통로의 발치’라는 말이라고 한다. 마을은 분홍색을 띠는 사암으로 만들어진 생장 삐에드뽀르 성을 마을을 관통하는 중심도로가 둘러쳐 있다.

생장 삐에드뽀르는 원래 사자왕 리차드에 의해 세워진 St. Jean le Vieux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나바르의 왕에 의해서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만들어졌다. 생장 삐에드뽀르는 나바레 왕의 지시로 12세기말에 이후 건설된 뒤 나바레 왕국 북피레네 중심 도시가 되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가로지르는 핵심 포인트인 Col de Cize의 자락에 있는 생장 삐에드뽀르의 전략적 위치는 이 도시를 군사 거점지, 요새 도시, 거래 중심지,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향하는 순례길의 핵심 경유지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생장 르비유에는 로마 십자군의 캠프 흔적이 남아있으며 오랫동안 이 마을은 Bordeaux에서 Astorga로 이어지는 로마 루트의 포스트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프랑크 왕조가 이 길 위에 남겨놓은 유물들은 그리 많지 않으나 론세스바예스와 생장 삐에드뽀르에는 778년 롤랑과 샤를마뉴의 군대가 남긴 역사적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

또한 우루쿠루로 가는 길에서는 Château Pignon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1512년 나바레의 정복자였던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방어 성곽으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 파괴되었으나 현재까지도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례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생장 삐에드뽀르에서 시작되는 순례길은 Alba의 공작에 의해 1512년 복구되었고 1714년에 Isabel de Farnenesio의 통행을 쉽게 하기 위해 확장되었다고 한다. 또한 1807년에 프랑스 포병대의 스코트 장군은 나폴레옹의 이름으로 스페인을 침공하기 위해 이 길로 병사들을 이끌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오며 산티아고 가는 길로 인해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된 생장 삐에드뽀르는 도심에서 피레네 산맥의 험한 오르막길을 시작하는 길까지 나무로 된 발코니와 아름다운 추녀를 갖춘 바스크 지방 특유의 건물들로 순례자를 들뜨게 한다.




#La Citadelle
생장 삐에드뽀르 성은 70m 이상의 높이로 멘디귀렌(Mendiguren) 언덕에 세워진 성채로 1625년에 건설되었으며 1640년대에 보강되었다. 이는 보방(Voban) 이전의 군사 기술자가 설계한 항성 형태 축성의 뛰어난 예이다. 보방이 1685년 이 성채를 방문한 이후 재설계하였다. 시즈 산악 패스에 이르는 중심 도로이자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으로 향하는 핵심 포인트인 이 지점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Demi lune Royale Viewpoint
로열 반달 전망대에서는 계곡과 산 중턱의 동굴 너머로 펼쳐진 훌륭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작은 첨탑이 있는 시장의 관사(Pavillon des Gouverneurs)로 연결되는 도계교의 아래에는 269개 계단이 있는 도보로가 있다. 이 길은 니베 강둑에 위치한 교회 애프스 옆 Porte de l’Echaugette 자락까지 연결된다. 성당으로 갈 때 이 길을 따르는 것도 재미있으나 처음부터 힘을 빼고 싶지 않은 순례자는 길을 되돌아가 다른 루트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Porte de Saint Jacque
199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야고보의 문은 순례자들이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향하는 전통적인 출입구다. 전통적으로 프랑스인들은 생장 르비유, 마들렌 지구를 거쳐 이 문을 통과해 론세스바예스로 향했다. Irouléguy 소유의 포도밭으로 뒤덮인 Arradoy 언덕을 조망할 수 있다.

#La prison des Evêques
메종 라보르드(순례자 사무실)에서 정원으로 구분되어 떨어져 있는 주교의 감옥은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로 흥미로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의 이름은 각기 다른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주교좌 도시로서의 역할은 교황 분열기(14세기 후반~15세기 초반)에 바욘 교구의 주교를 찾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최소 18세기말까지도 유명했던 감옥으로서의 역할이었다. 현재 위치에 있는 건물은 그 형태가 일반적이지는 않다. 즉, 조각돌로 조각된 입구는 초소를 향해 나있으며 곧장 감방으로 이어진다. 감방은 꽤 넓고 밝다. 좁은 계단은 지하의 거대한 갈비뼈 모양의 방으로 연결되는데 이곳에서는 산티아고 순례자에 관련된 전시가 진행 중으로 중세 시대로 돌아가 그 먼 옛날부터 야고보의 길을 따르는 순례자들의 따뜻한 경유지가 되고 있는 생장 삐에드뽀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Maison Arcanzola
아르캉졸라 저택은 1510년의 가장 오래된 명문을 가지고 있다. 벽돌이 헤링본 패턴으로 채워진 목재 골조로 구성된 상층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가장 오래된 비문인 ‘아뇨 1510’라는 표식이 화살촉 무늬 벽돌로 매운 상부 목재 프레임으로 유명한 이 집의 상인방에 새겨져 있다. 상업이 활발한 이 도시의 역동성을 보여주듯 이 저택의 지상층은 모두 큰 상점들이 차지하고 있다. 1531년 Jean de Mayorga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 예수회 수사는 카나리 아일랜드에서 위그노 교도의 사나포선에 의해 순교하였다.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 중 하나에는 이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한 작은 하얀색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Église Notre Dame du Bout du Pont
노트르담 뒤퐁 성당은 프랑스 바스크 지역에서 바욘 대성당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1212년 Las Navas de Tolosa 전투에서 무어인을 격퇴한 기념으로 나바레의 왕, 산초 엘 푸에르테에게 헌정된 것으로 13세기 초반 건물 원형이 남아있는 성모승천 성당이다. 회랑은 19세기에 증축되었는데 바스크 전통에 따라 남성만 이용할 수 있었다. 장엄한 분홍빛의 사암 파사드는 조각된 기둥과 기둥머리의 고딕 문을 더욱 특색 있게 만든다. 내부에는 19세기에 추가된 두 개의 통로와 두 층에 걸친 좌석으로 된 넓은 신도석이 있으며 이는 기둥과 들보의 장대한 앙상블을 자아낸다. 다변형의 성가대석 양쪽으로 두 개의 륄로 삼각형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이 도시와 나바레 왕국의 문장을 그려내고 있다. 최근 복구된 Cavaillé Coll 오르간으로 아름다운 미사곡이 연주된다.

#Maison Larrabure
라라뷔레 저택인 Rue de la Citadelle 7번지는 예전 생장 삐에드뽀르 교구의 사제관이었으며 현재는 문화 관련 물품들과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예술 작품들까지 다채로운 각종 전시회가 열린다.

#Porte de France
우강게 거리를 지켜보고 있는 프랑스 문은 프랑스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 성의 설계는 다른 성문의 것들과 비슷하다. 프랑스로부터 오는 군대가 이 문을 통하여 들어왔다.

#Porte d’Espagne
1840년대에 도시의 성벽에 건설된 스페인 문은 피레네를 넘는 널찍한 중세 도로 쪽으로 향해 있다. 나폴레옹 루트(Route Napoléon)의 이름은 아리스프 원수 루트(Route du Maréchal Harispe)로 변경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날 반드시 지나야 하는 문으로 아름다운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론세스바예스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이 길을 따라 걷게 된다.

#Porte de Notre Dame
노트르담 문은 니베 강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다리와 Rue d’Espagne를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성문 타워의 상단에는 세례자 요한의 성상과 자애로움의 상징인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위치하여 도시를 굽어 보살피고 있다.

#Maison des États de Navarre
나바레의 의회는 일종의 나바레 왕국의 삼부회로 1610년 카르투슈 양식의 입구를 가진 17세기 건축물이다.

#Accueil des Pèlerins de Saint Jacques de Compostelle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로 쓰이고 있는 이 가옥은 Béarn 출신의 양모 거상인 David de Fourré에 의해 18세기 초반에 지어진 루이 14세 풍의 도시형 저택이다. 가옥의 분홍빛 사암 파사드는 심미적 통일성과 대칭적 디자인의 관점에서 특히 빼어나다고 볼 수 있다. 이곳의 이름은 이중구조의 슬레이트 지붕으로 인해 붙여졌다. 1950년부터 생장 시 시청사로 이용하고 있다.

#Porte de Navarre
중세 담벼락 사이에 위치한 나바레 문은 유려한 첨두아치와 통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문은 중세 시장 터였던 교회 앞 작은 광장을 향해 열려 있다. 옛날에는 시장의 가판대로 물건을 운송하려던 수많은 이륜마차, 수레, 마차들이 빼곡히 이 문을 빠져나가곤 했다.

#Pont d’Eyheraberry
이쇼게트 문을 지나면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니베 강변을 따라 걷는 아름다운 도보로가 이예라베리 산책로로 연결된다. 이곳의 뜻은 바스크의 새로운 물방앗간이라는 뜻으로 프랑스 혁명기에 국가적 축제나 애국적 행사가 행해졌던 아름다운 실외 공간이다. 송어가 노니는 맑은 물 위로 돌로 만들어진 홍예다리로 로마 시대의 것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Le Marché Ville de Saint Jean Pied de Port
함께 모이고 새로운 소식과 견해를 서로 나누는 최적의 장소인 월요 시장은 생장 삐에드뽀르의 또 다른 명물이다. 도시의 사람들과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수많은 방문객들이 함께 시장의 유쾌한 분위기와 친근한 분위기에서 모임을 즐긴다. 한때 노트르담 뒤퐁 성당의 맞은편 성벽 안쪽으로 위치했던 생장 삐에드뽀르 시장은 18세기에 성벽 다른 쪽 현재 위치인 샤를 드골 광장과 트랭케 광장으로 옮겨졌다. 지역 공예품과 직물, 가죽제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차지하고 있다.




생장 피에드포르의 문장(紋章)은 마을의 역사를 대표하는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수호성인 세례자 요한의 왼손에는 이름인 적힌 깃발이, 발아래에는 어린양이 잠들어 있다.
-세례자 요한의 오른손은 상징하는 총안(銃眼)이 있는 아성(牙城)인 생장성을 가리키고 있다.
-체인 뭉치가 중심의 에메랄드를 둘러싸고 있는 나바레 왕국의 문장이 성의 아래쪽에 위치한다.

생장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사진에 꼭 담는 Rue de la Citadelle 있다. 오르막 길을 따라 집들이 모여있는, 요새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은 거리다. 지역 석재인 분홍빛 아라두아(Arradoy) 사암이 파사드에 널리 이용되었으며 간혹 다른 빛깔의 석재를 섞기도 한다. 돌출형 바닥, 목재 건물, 조각된 기둥을 이용한 처마는 이 거리 가옥들의 건축적 특징이다. 상인방에는 암시적인 명문이 음각되어 있으며 기하학적 디자인이나 종교적 상징들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이제는 나바레 문에서 야고보의 문까지 중세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생장 피에드포르의 중심지를 굳건히 지키던 요새 수비대 병사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초소, 망루, 총안 등이 우리를 역사 속으로 이끌며 도시의 군사 문화유산과 건축물들을 탐험해 보도록 유혹할 것이다. 도시의 상공에서 걷는 것처럼 매력적인 길이 될 것이다. 또한 중세 야고보의 문에서 성채까지 말을 타거나 걷던 길이 있다. 비탈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좀 더 말을 타기 쉽도록 의도적으로 조약돌을 배치한 조약돌의 길을 걸어보자.

스페인 거리(Rue d’Espagne)는 도시 성벽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집들은 상인방에 집주인의 직업이나 거래품목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현재도 9번지에는 밀 가격이 주요 이슈였던 1789년의 높은 밀 가격의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처럼 생장 피에드포르의 구도시는 중세의 특징들이 많이 남아있다. 단순히 중세로부터 전해져 오는 길거리 양식뿐 아니라 전통적 건축양식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로 된 다리와 함께 성당거리와 데스빵 거리의 길들은 도시의 역사적 핵심을 이루고 있다. 좁고 조약돌로 포장된 도로와 일직선으로 늘어 선 파사드, 잘 보존된 역사적 건축물이 이 오래된 거리에 매력을 더하며 과거 시절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제는 거친 까미노 순례를 시작할 순례자의 입을 즐겁게 할 시간이다. 생장 피에드포르의 식당에서는 이 지역 특산물을 이용하여 순례자들에게 매우 다양한 요리를 제공하며 뛰어난 요리 솜씨로 이 지역 전통을 잘 유지해 오고 있다. 살비데빨롱베 (나무비둘기 구이), 아쇼아(소고기나 송아지고기), 어린양 스위브레드, 작은 송어, 바스크 스타일의 닭고기, 피레라드 (양파와 후추 그리고 토마토를 넣은), 바스크 스타일의 새끼오징어 요리 등 이 지역의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다.




Saint Jean Pied de Port 기차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가야 한다.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순례자 증명서인 끄레덴시알(Credencial)을 발급해 주고 몇 가지 간단한 주의사항과 지도, 알베르게 리스트 등을 제공해 준다. 이때 자신의 체력과 여행 기간, 날씨 등을 고려하여 자원봉사자인 오스삐딸레로의 안내를 받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게 되는 지도는 론세스바예스까지의 루트 지도와 프랑스 길의 고도표 등이다.

파리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시차에 적응했고 생장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면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일정을 하루로 계획할 수 있지만 오후에 도착하였거나 시차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면 가급적 생장에서 순례의 첫날을 보내거나 아니면 피레네 산맥에 있는 오리손이나 운또, 겨울철에는 발까를로스까지 짧게 걸으며 이틀에 걸쳐 피레네를 넘는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생장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까미노 사인은 일반적인 스페인식 노란색 화살표보다는 빨강과 흰색 페인트로 표시된 프랑스식 사인이다.




사진으로 보아서 이미 익숙해진 Porte de France, 프랑스 문으로 들어갔다. 이 골목으로 들어서면 배낭을 멘 순례자를 따라가기만 해도 순례자 사무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순례자 여권인 끄레덴시알을 만들어야 한다. 이 끄레덴시알이 있어야 알베르게와 성당, 바르 등에서 세요를 받을 수 있고 이 세요를 통해 이 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와 피스떼라 그리고 무시아에서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끄레덴시알을 발급받으면서 알베르게 리스트와 고도표 등 각종 안내문을 받았고 비를 맞아도 끄떡없는 지퍼팩까지 받아 챙겼다. 조가비 하나를 배낭에 달고나니 정말 순례자가 된 것 같았다. 한 명은 짧은 일정으로 왔다며 생장에서 묵지 않고 지금 바로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간다고 했다. 모두가 말렸지만 그냥 출발해 버렸다. 부엔 까미노!

공립 알베르게는 아직 오픈 전이라 문 앞에 배낭만 줄 세워놓고 근처 햇볕 좋은 벤치에 앉아서 써니 하우스에서 같이 온 아저씨와 버스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과 통성명을 했다. 다들 아무런 계획 없이 오셨단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받은 알베르게 리스트를 가지고 대략 설명해 드렸더니 당분간 같이 걷자고 하신다. 음, 저도 초행길인데요. 아침부터 안내해 주어서 고맙다며 아저씨가 커피를 사주겠단다. 아직은 불안한 마음에 줄 세워 두었던 배낭을 다시 가지고 와서 화장실도 해결할 겸 가까운 바르(Bar)로 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보니 여기엔 화장실이 없단다. 노상 바르인 셈이다. Y는 화장실을 알아보러 간다며 어딘가로 떠났고 아저씨랑 의자에 앉아서 배낭을 지키며 기다리는데 바로 옆이 노뜨르담 뒤퐁 성당이었다. 급한 마음에 무작정 성당에 들어갔으나 누가 현지인이고 누가 외지인인지 몰라 푸근한 모습의 할아버지 신부님께 화장실을 물어보니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화장실이 프랑스어로 뭐였지? 바르로 가서 폰을 가져와 번역기로 보여드리니 따라오란다. 당연히 성당의 화장실을 안내해 주실 줄 알았는데 제의 방 안의 화장실을 기꺼이 내어주셨다. 내부와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Nive 강가 난간 위에 설치된 통로로 이어진 화장실이었다. 볼일을 보고 나오니 미사가 시작되었다. 돌아와서 일행에게 화장실은 찾았으나 이미 미사가 시작되어 당장은 사용이 힘들 거라고 알려드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다. 몰랐으면 모를까 기회가 생겼으니 11시 미사에 다녀오겠다고 하니까 Y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결국 아저씨 혼자 배낭을 지키기로 했다. 미사는 프랑스어로 진행되었고 알아들을 수 없으니 순서가 조금 헷갈렸는데 Y가 매일 미사 어플을 보여준다. Y는 프랑스어도 곧잘 따라 해서 대단하다고 했더니 이런저런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실은 자신이 신부임을 밝히며 이 길에서의 성직자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아서 알리지 않고 다닐 예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Y는 뜻하지 않게 주일 미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감사의 뜻으로 점심을 사겠단다. 그렇게 아저씨랑 같이 근처 레스토랑 Leonenia로 갔고 13€인 Menu du Days를 주문했다. Salade Vieille Auberge, Poulet Basquaise, Icecream, Vino. 험난한 까미노에 앞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한 시간 동안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다 14시, 공립 알베르게 오픈 시간이 되어 다 같이 가서 등록했다. 10€를 내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드디어 끄레덴시알에 첫 번째 알베르게 세요가 찍혔다.

아직은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다. 풍경이 너무 아까워서 억지로라도 주변을 산책하고 왔지만 여전히 멀미 두통이 가라앉질 않아 오후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참 지나도 나아지지 않더니 장을 비우고 나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18시쯤 주변을 산책하다 멘디귀렌 언덕에 세워진 성채, 생장 삐에드뽀르 성에 다시 올라갔다. 성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너무 예뻤다. 큰 나무 아래에 양 떼도 보였는데 한가로운 풍경이 바로 이런 모습이겠지 싶었다. 여기서 며칠 지내다 출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여기에 다시 꼭 와야 할 것 같았다.

20시, 아직 밖은 환했지만 한국으로 따지면 새벽 3시라 누우면 그냥 잠이 들 것 같았다. 이 길을 걸을 때는 굳이 시차 적응을 하지 않고 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일의 첫걸음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Bayonne→Saint Jean Pied de Port, France

Bayonne 07:45~09:00 Saint Jean Pied de Port




○Bayonne
●Saint Jean Pied de Port (179M)
-La Citadelle
-Demi lune Royale Viewpoint
-Porte de Saint Jacque
-La prison des Évêques
-Maison Arcanzola
-Notre Dame du Bout du Pont
-Maison Larrabure
-Porte de France
-Collines de Mendiguren
-Porte d'Espagne
-Porte de Notre Dame
-Maison des États de Navarre
-Maison Mansart
-Accueil des Pèlerins de Saint Jacques de Compostelle
-Porte de Navarre
-Pont Eyheraberry
-Le Marché Ville de Saint Jean Pied de Port

775.0km/775.0km




Bayonne~Saint Jean Pied de Port TER -10.10€
Saint Jean Pied de Port Misa -1.00€
Credencial&Concha -2.00€
Café 1.00€
Menu du Days 13.00€
Refuge Municipal +B -10.00€




토스트, 커피, 사과
까페
Salade vieille auberge, Poulet basquaise, Icecream, Vino


Comedor
Supermercado Carrefour




각 마을의 정보는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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