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21

Nice, France

by 안녕
Day 16.
Wednesday, May 10


밤새 가려움에 치를 떨었고, 모기 소리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솔직히 새로 무언가에 물려도 잠결에는 그게 모기인지 베드버그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무엇에 물렸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지만 만약 베드버그라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물린 위치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지만 베드버그라도 전진만 하지는 않을 테니 무조건 줄줄이 물지는 않는다.

상처의 모양이 분화구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이게 되는데 주변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딱딱해져서 그렇게 보인다.

내 피부가 맞나 싶을 정도의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상처가 생긴 가운데는 염증으로 진물과 고름이 흘러나와 움푹 파인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모기에게 물려도 긴 시간 동안 염증과 알레르기로 고생했는데 일반 사람이 물려도 미치게 만드는 베드버그의 상처는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어젯밤 외출에서 돌아온 중국인이 건너편 아래 침대에 자기 가방과 옷을 놔두는 게 보였다. 그 침대엔 뭔지 모를 흙이 잔뜩 떨어져 있었던 터라 굳이 더러운 곳에 왜 자기 가방을 놔두나 싶어 의아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짐을 정리하던 그녀가 그 가방을 치우자 어제보다 더 지저분해져 있었다. 오염의 원인이 그녀의 가방 때문이라 생각하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투숙객을 받기 위해 청소가 끝난 침대에 지저분한 자신의 가방을 올려두고 치우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닥에 내려두었던 가방을 집에 돌아오면 침대 위에 올려두는 경우가 많았다. 캐리어도 마찬가지였다.

바깥에서 끌고 다니던 캐리어를 집 안에서도 끌고 다니고, 정리할 때도 당연한 듯 침대에 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다시 눈을 뜨니 8시 반, 아래 침대는 체크아웃한 모양인지 비어있었다. 대충 치우긴 했지만 그럼에도 지저분한 흔적은 남았으니 누가 쓰게 될지 걱정이다.

숙소의 이미지는 함께 머무는 투숙객의 매너에 의해 달라지기도 한다. 지금은 나 또한 좋은 투숙객은 아니라 마음이 씁쓸했다.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베드버그가 어디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혼자 남겨진 11번 룸, 멍하다.




어제 몫까지 장을 비우고 샤워를 했다. 물린 곳에 더운물이 닿으면 가렵고 쓰라리지만 물기가 제거되고 마르면서 잠시나마 나아지는 것 같아 샤워를 멈출 수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려면 리셉션에 내려가서 뜨거운 물을 얻어와야 하는데 나가는 길에 들리려고 했지만 오늘은 입맛도 없고, 날씨도 흐려서 나가기가 싫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뒹굴거리다가 땅콩버터 샌드위치 두 조각을 먹고 오렌지를 다 까먹었다.




니스에서의 1순위인 모나코는 내일 가야겠다. 다들 모나코행 100번 버스 정류소 위치를 헷갈려했다. 그래서 난 Gare Routière Nice Côte d'Azur에서 타기로 했다.

모나코행 100번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하여 시내 일부를 통과하여 모나코로 가는 듯하니 터미널로 가면 앉아서 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Musée Matisse, Musé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는 멀어도 한번 가볼까 했는데 오르세 미술관처럼 박차고 나올 것 같아 오늘은 해변에 가서 발이나 담그기로 했다.




할 일은 없고 와이파이는 잘 되지만 딱히 연락할 지인이 없어 오랜만에 한 친구에게 조심스레 톡을 날렸다.

서울에 왔을 때, 처음 갔던 성당에서 신부님의 소개로 단체 활동을 했다. 거기서 만난 친구였는데 서로의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만나보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했었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등 떠밀리듯이 그 친구는 나의 서울살이를 도와주었고 친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연애를 하러 성당에 왔냐는 한 선배의 한마디에 화가 났고 결국 만난 지 한 달 만에 친구로 돌아갔다.

그 후로 그 친구는 성당에 나오지 않았지만 종종 연락이 왔다. 내가 이사를 간 이후에도 전화가 왔고 잊을 만하면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나는 그때 술을 마시고 전화하는 그런 연락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을 때마다 싫은 티를 내면서 끊었다. 십 년쯤 지나니 그런 연락도 뜸해지더니 어느 순간 연락이 뚝 끊겼다.

지나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생겼다. 그저 안부가 궁금해서 연락했을 뿐일 텐데 싶었다.

오랜 기간 끈질긴 그의 안부 전화에도 그토록 차갑게만 대하다가 이렇듯 내가 먼저 연락하는 날이 다 온다 싶다. 불행 중 다행인지 답은 없었다.




리셉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데 테이블에 시내버스 노선표가 있었지만 어차피 니스는 걸어 다닐 거라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직원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머니박스를 캐비넛에 넣고 잠그고 다녔다. 내가 없으면 문을 잠그고 다녀왔을 텐데 싶었다. 괜히 불편해 보여 그냥 방으로 올라왔다.




체크아웃한 사람이 있으니 룸 클리닝은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쓰레기만 치우고 아래 침대는 그냥 정리만 하고 나간 걸 보니 청소하는 직원의 퀄리티가 보였다.

이곳의 평점이 왜 나쁜지 알 것 같았다. 이 호텔도 그다지 깨끗하게 관리되지는 않았던 셈이다.

혹시 몰라 침대를 벽에서 떼어놓고 벽 쪽 난간에 빨래를 널어두었다. 바깥쪽 난간에 빨래를 널어두면 서로 번거로울까 싶어서 그랬는데 침대가 벽 쪽으로 바짝 붙여져 있었다. 심지어 덜 마른빨래가 벽에 붙어서 먼지가 잔뜩 묻었다.

방향제만 엄청 뿌리고 간 모양인데 창이 열려있었다. 모기를 애써 잡은 보람도 없이 또다시 모기 세상이 되었다. 나쁜 룸메이드! 하루라도 잠을 자봤더라면 환기보다 모기가 더 무서운 걸 알게 될 텐데 싶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13시 반, 바닷가로 나갔다.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던 바다가 오늘은 그레이 빛이다. 게다가 해변 정리 중이라 뭔가 어수선했다.

이 기나긴 해변은 구역별로 임대를 주고 남은 구역 중에서도 작업하는 곳을 제외한 곳에 일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은 그 작업 구역에도 사람들이 선을 넘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트랙터가 지나다니는 상태라 불안해서 난 더 우측으로 갔는데 폐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건너편으로 내려가니 해변가가 아니라 그냥 절벽이었다.

수심이 너무 깊어 들어가지 못해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좀 더 얕은 곳을 간신히 찾아 드디어 니스의 바닷물에 첫 발을 담갔다.

바닷물은 차가웠고 바람도 심하게 불었지만 춥지는 않았다. 다만 뙤약볕에 소독하려고 가져간 수건은 구름이 잔뜩이라 들고 다녀야만 했다. 바로 옆에서 폐수가 흘러나오는 걸 본 상태라 바닷물도 왠지 찝찝하게 느껴졌다.

따사로운 햇살을 기대했지만 다시 해변가 벤치로 돌아왔다. 오늘은 흐려서인지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젖은 발로 있어도 발이 시리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 해변이라 더 좋을 줄 알았는데 해변가는 너무 지저분해서 앉고 싶지 않았다.

다 싫어진다. 내 남은 일정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내일은 무조건 모나코로 가야겠다. 꼭 해야 할 일을 먼저 끝내고 쉬자.




돌아오는 길에 노트르담 대성당에 들렀다 오려고 했지만 몸이 너무 가려워서 바로 돌아와야 했다.

또다시 장을 비우고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할 일이 없으니 혹시나 싶어 배낭을 열어보았다. 비닐을 깔고 배낭 속의 짐을 모두 꺼내는데 깔아 둔 비닐에 작은 베드버그가 보였다.

잡았는데 피가 터지지 않았고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더 불안해졌다. 배낭 속 짐들은 지퍼백으로 개별 밀봉되어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배낭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며칠 지나면 이 배낭을 다시 매야 한다는 게 더 끔찍했다. 니스를 떠나기 전엔 모두 박멸되었으면 좋겠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파리에선 생각이 많아져서 룸을 바꿔달라고 말하지 못한 게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의심스러우면 당당하게 바꾸어 달라고 할 참이었다.

창밖 아래로 옆 건물 지붕 일부가 있었고 그곳에 호텔방에서 버린 듯한 쓰레기가 쌓여있었는데 창밖 환경이 이러니 여기선 모기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기 때문에 불을 끄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22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은 나 혼자다.




●Vieux Nice
●Place Masséna
●Neuf Lignes Obliques
●La Promenade des Anglais




Bonus +0.01€
Nice Art Hotel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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