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 France
Day 18.
Friday, May 12
어제 체크인한 동양인은 밤새 두 차례 화장실을 사용했지만 매번 물을 내리지 않았다.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라 하기엔 어제는 낮에도 그랬으니 그냥 습관이거나 고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서양인은 두 차례 큰일을 보고도 손을 씻지 않았다. 투숙객 수준이 왜 이렇지? 자면서도 남들 뭐하는지 다 알게 되었고 그렇게 수시로 깨긴 했지만 코 고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달콤한 꿈을 꾸었다. 언제나 익숙한 느낌이 가장 편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8시다. 아래 침대 서양인은 아침부터 분주하길래 나가는 줄 알았는데 다시 눕더니 잔다.
난 9시쯤 룸 체인지를 위해 리셉션으로 내려갔더니 22번 룸 키를 준다. 같은 위치였지만 그래도 좀 더 높아졌으니 바깥 쓰레기에서도 조금 멀어졌고 하늘이 보여서 날씨 확인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 룸은 관리를 잘해서 깨끗하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안 머물러서 조금 나은 정도였다. 손이 덜 탄만큼 화장실 커튼은 망가지지 않아 제대로 닫혔고 창문도 멀쩡했다.
내 침대는 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아래쪽 3번 침대였다. 이 룸은 콘센트가 두 곳뿐인데 3번 침대에는 없었다.
무리하지 않으려 세 차례에 걸쳐 짐을 옮겨왔다.
머리맡이 화장실 쪽이라 방향을 바꾸었다. 화장실을 굳이 방 안에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화장실 딸린 룸이란 걸 내세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창고처럼 한쪽 모서리에 덩그러니 만들어진 화장실 공간 위쪽엔 먼지가 쌓여있어서 2층 침대에선 보기에 좋지 않았다. 사람이 있을 경우엔 사용하기에도 서로 민망했다.
대충 정리하고 앉아있으니 1번 침대의 스페인 아주머니가 이름을 묻는다. 자기 이름은 소리란다. 모기 때문에 옮겼다니까 여기도 모기는 많단다.
이제는 더 이상의 일정이 없으므로 그냥 누워만 있었다. 스페인 아주머니가 나가다가 너무 춥다며 다시 들어왔다.
오후엔 비가 온다니 아무것도 계획하고 싶지 않았다. 비어있는 위층 4번 침대에 쓰지 않을 이불을 올려두었더니 뭐라 그런다. 누가 있는 건가 싶어 치우려고 하니 자기 위층 침대로 이불을 옮긴다. 2번 침대에는 사람이 없는 걸까? 리셉션에 확실히 물어볼 걸 그랬다.
스페인 아주머니가 무장을 하고 다시 나갔다. 밖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지만 열쇠가 있으니 안에서도 열리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안 열린다. 설마!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역시였다. 누구든 올 때까지 기다릴까 싶었는데 만약 그때까지 아무도 안 오고 심지어 리셉션도 문을 닫아버린다면?
불안함은 순식간에 두려움이 되었다.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으니 불안함은 더욱 커져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는 점점 더 거세어졌다.
리셉션은 1층 복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니 거기까지 들릴 리가 없었다. 다른 투숙객이라도 전해주길 바라며 그렇게 30분가량 문을 두드리자 직원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문이 안 열린다고 하니 직원이 밖에서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 보는데 순간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고 직원은 열쇠를 가지고 오겠다며 내려갔다.
기다리다 혹시나 싶어서 열쇠로 열어보니 이번에는 스르륵 열린다. 순간 직원이 열어주고 간 건가 싶은 생각에 멍해졌다. 잠시 후에 직원이 열쇠를 가지고 다시 올라왔는데 문이 열려있으니 화를 낸다. 나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올라온 김에 2번 베드로 옮길 수 있냐고 물으니 안된단다. 콘센트 때문에 바꾸겠다고 하니 체념한 듯 나가길래 따라내려 갔다. 그런데 4번 침대 열쇠만 있으니 2번은 누가 쓰고 있나 보다.
그냥 올라왔는데 4번으로라도 바꿀 걸 그랬다. 정말 아찔한 오전이었다.
억지로 장을 비우고 런던에서 사 왔던 진저 너트 과자는 오늘에서야 다 먹었다. 비스킷은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앞으로는 스낵을 먹어야겠다.
3층 공용 욕실은 훨씬 밝아서 좋았으나 잠금이 망가져 있었다. 다시 2층에 내려가서 씻었다. 누가 담배를 피웠는지 욕실 안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왜 호텔이라고 하는 걸까?
비가 오기 전에 바게트라도 사 와야 하는데 오늘은 정말 꼼짝하기 싫었다. 이렇게 보내는 일주일보단 3일간의 편안한 호텔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배가 여전히 불편해서 다시 장을 비웠더니 이젠 현기증이 난다. 굶으면 안 될 것 같아 14시쯤 나갔는데 하늘이 잔뜩 흐리다.
오늘은 성당 앞쪽 골목을 통해 가면서 H&M 구경도 하고 까르푸로 갔다. 바게트 200g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노트르담 대성당에 들렀다.
오늘 일정은 끝이라 샤워를 하는데 여전히 욕실은 하수구가 막혀 있었다. 습한 날씨에 잘 마르지 않던 수건은 냄새가 났다.
아침에 춥다고 잔뜩 껴입고 나갔던 스페인 아주머니는 들어오자마자 덥다고 창문을 연다. 창밖에 모기가 잔뜩 있었는데 오늘 밤도 무사하지는 못할 듯하다.
그리고 4번 침대 주인인 서양인이 돌아왔다. 이미 가득 찼던 룸이었는데 직원이 모르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더구나 위층엔 서양인만 보였으니 동양인은 아랫 층만 주는 건가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커다란 오스프리 배낭의 주인인 그녀는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갈 거라고 양해를 구하더니 다시 나가서 9시 반쯤 돌아왔다. 다들 열심히 노는 걸 보니 부러웠다.
따끈한 바게트는 맛있었다. 내일은 땅콩버터를 발라 먹어야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이런저런 음식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면 천 원짜리 콩나물 대신 1유로짜리 샐러드를 먹는 셈인데 왜 아끼는 걸까? 새우깡 두 봉지 대신 감자칩 한 봉지를 먹는 셈인데 왜 사 먹질 못하는 걸까? 바게트도 한국의 1/4의 가격인데 맘껏 먹지도 못하고 있다.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데 먹는 거라도 제대로 먹자고 다짐해 보지만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게 아까웠고 주방이 없으니 지저분한 화장실 세면대에서 채소를 씻긴 싫었다.
상처는 아물어가는 듯 하지만 배낭을 메고 리옹에 가면 또다시 한바탕 홍역을 치를 텐데 걱정이다. 더 이상은 베드버그가 남아있지 않길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Basilique et Paroisse Notre Dame de Nice
Baguette 200g -0.45€
Nice Art Hotel -1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