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24

Nice, France

by 안녕
Day 19.
Saturday, May 13


이상한 꿈을 꾸었다. 보고 싶지 않은 지인이 나타나서 순간 긴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습이 달라지며 낯선 이가 되더니 딸이라는 어린아이까지 등장했다.

그 낯선 방문객들은 내 집에 오려고 했다며 무언가를 잔뜩 챙겨 왔다.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냉동실 문이 열려있고 음식이 다 녹아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놀라는 찰나 마루 너머로 진열장이 보이더니 고향집으로 바뀌면서 둘째 외삼촌이 나타났다.

집에 아무도 없다니깐 다들 병원에 간다더니 갔나 보다며 혼잣말을 하면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방안에 오른쪽 발목이 절단된 채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고 또 다른 방엔 앓아누워계신 어머니가 보였다.

손님이 왔다고 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오늘은 그냥 돌아가셔야 될 것 같다고 하니 아이가 아쉬워했다.




4번 침대는 아침 일찍 체크아웃했다. 리셉션엔 4번 열쇠가 있었고 밤새 2번 침대가 비어있는 걸 보니 2번 침대를 배정받은 그녀가 무단으로 4번 침대를 사용한 것 같았다.

분위기도 살필 겸 커피도 마실 겸 리셉션에 내려가니 어제의 소동 때문인지 괜히 경계하는 직원.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어젠 정말 무서웠다니까요. 그래서 침대 바꿔달란 말은 하지 못하고 올라왔다.

1번 침대 스페인 아주머니는 일찍 나가더니 리셉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12시가 되자 체크아웃하는 걸 보니 체크아웃 전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나 보다.

이 룸에는 이제 나 혼자다.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11번 룸이 차지 않으면 22번 룸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4층에도 26번까지 룸이 있던데 거긴 어떤 곳일까?




바닷가에 가볼까 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처음 니스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 뜨거운 햇살 아래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 해변에서 선텐 하는 꿈을 꾸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바닥이 자갈이라 누울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수심이 너무 깊었다. 발이라도 담그려면 무릎 깊이의 절벽 같은 자갈 끝에 앉아서 발을 담가야 했다. 세찬 파도에 자갈이 젖어있으니 앉을 수가 없었고 물에 들어가자니 너무 무서웠다.

파도가 심해서인지 자갈해변이 직각으로 깎여있었고 해변 정리를 위해 어디선가 운반해 온 자갈을 해변에 깔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해변은 계속 높아지니 바닷속으로 몇 발자국만 걸어 들어가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난 수영을 할 줄 모르고 구해줄 사람도 없었다.




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강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다들 강에서 수영을 했지만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는 수심이 얕은 물가에서 고둥을 잡고 있었다.

처음엔 물가에서 강가를 보며 잡았지만 한참을 잡다 보니 어느 순간 뒷걸음질을 치면서 고둥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강 속에 숨어있던 거대한 물 웅덩이에 빠졌다.

그 찰나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았으나 도와줄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어른들은 돌아갈 준비를 하느라 바위 위에서 옷을 벗어 말리고 있었고 외사촌들은 더 멀리 있었다.

허우적대면서도 죽기 전에 한번 시도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TV에서 보았던 수영 방법을 떠올리며 온몸의 힘을 빼고 열심히 시도해 보았으나 그럴수록 몸은 더 가라앉고 있었다.

뒤늦게 이모들이 나를 발견했지만 허둥대는 사이 외사촌 오빠가 먼저 헤엄쳐 왔다. 그러나 이미 물을 많이 먹은 나는 그 와중에도 살겠다고 외사촌 오빠를 끌어당겼다. 내가 손을 놓아야 둘 다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손을 놓지 못해서 둘 다 물을 엄청나게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기운이 빠지면서 아슬하니 나를 건져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둘 다 살았다.

강 근처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포클레인이 강 속의 흙을 파내어 여기저기 구덩이가 생겼다. 강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거대한 물 웅덩이가 곳곳에 숨어있었던 거였다.

살아오면서 물을 볼 때마다 그때 일이 한 번씩 생각나곤 했는데 솔직히 그때 살려주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뻔했다.




좋은 구경거리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의미가 없었다. 청소를 하지 않을 셈인지 소식이 없어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재 벨이 울렸다. 일단 나가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누군가 담배를 피워서 울린 모양인지 금방 그쳤다.




15시, 한 명이 체크인했는데 아직 청소하러 오지 않았다고 얘기하니 알고 있단다. 곧이어 룸 메이드가 따라 들어왔고 매트리스 커버와 베개 커버를 교체하는 걸 보니 추가로 놔두는 시트는 이불 커버였다.

근데 난 그걸 매트리스 커버로 깔고 있었으니 뭐라고 한 거였다. 알려주지 않으니 알 길이 없었고 게다가 매트리스 커버에 얼룩이 많아서 그대로 쓸 수도 없었다.

룸메이드는 매트리스 커버를 교체하기 위해 철제 침대를 벽에서 떼어놓고 정리하고 있었다.

벽 쪽에는 손이 타지 않는 곳이라 빨래를 놔두었다. 잘 모셔두었다 생각했던 빨래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왠지 찝찝했다. 겨우 말라가고 있던 내 수건을 기어이 떨어뜨렸다.

청소가 끝나기만을 복도에 서서 기다렸다.

침대를 옮기더라도 허락 없이 옮길 거라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주말이라 투숙객이 있더라도 4번 침대까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내일 하루만 아무도 오지 않으면 걸릴 염려도 없었다. 알게 되더라도 뭘 어쩌겠냐? 어제 2번 침대의 그녀처럼 그냥 넘어가겠지. 그런데 기껏 내일 하루 편하자고 욕먹자니 고민이 되었던 거다.

월요일 새벽에 짐을 옮기려면 아래가 편하긴 한데 잠깐 고민을 했으나 결국 실행에 옮겼다. 2번 침대는 화장실이 안 보여 아늑하지만 4번 침대는 화장실 앞이지만 콘센트가 있었다.

아늑함보다 실용성을 택했고 완전범죄를 꿈꾸기 위해 체크인 그녀가 오기 전에 4번 침대로 짐을 옮기고 내가 썼던 3번 침대는 새 시트를 깔아놨다.




오늘은 나가지 않을 거라 샤워하고 왔다.

니스에선 어제 하루만 1층 침대를 쓴 셈이다. 4번 침대에는 콘센트가 있어서 폰 충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사실 허락받으려면 2번 침대를 사용했겠지만 지금은 아늑함보다도 충전이 자유로운 게 최고다.

리셉션이 문을 닫았으니 오늘은 2명으로 끝이다. 미국에서 왔다는 그녀도 여분의 시트를 매트리스에 깔았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친구는 카톡을 확인했지만 답이 없었다. 궁금하지 않은가 보다.




이런 궁핍한 여행을 하다 보니 대접받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호텔 조식에 익숙해진 나, 벌써부터 푸짐한 뷔페 조식이 그리워졌다. 그걸 먹으면 하루 종일 안 먹어도 될 텐데. 베트남에 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 끼에 5천 원이라 가려고 했던 건데 그 돈이면 여기서도 먹고 싶은 것은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모기에게 뜯기는 더운 곳에 가려고 하는 걸까? 여기서도 못하면 거기서도 못한다. 그냥 여기서 맛있는 것 사 먹자.

리옹에 가면 피자부터 사 먹어야겠다. 파스타도 그리웠다. 리스본에 가면 쇼핑이나 제대로 하자. 제발~ 꼭!

일주일에 오렌지 주스 한팩은 구입하고 하루에 바게트 하나는 필수로 먹자. 드레싱을 사서 양상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자. 홍합 넣고 수제비를 끓여 먹어도 될 것 같았다.

기운 내자, 주방이 있는 리옹에선 먹는 걸로 마음을 채우자.




Nice Art Hotel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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