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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un 20. 2019

이별하는 법을 배웁니다

오늘의 헤어짐은 달래 향이 물씬 피어오르네



할머니, 돌아가셨다.


이별은 쓰라리다. 별생각 없이 집어먹은 고추 한 입에 볼 안쪽이 얼얼하게 타듯, 갑작스레 찾아온 작은 파동은 온 정신을 마비시킨다. 더욱이 사람을 영영 보내는 헤어짐은 비릿하다 못해 가슴속 묻을 자리를 마련한다. 분주한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거울 너머 조금은 다급한 벨소리가 울렸다. 침묵의 여백을 뚫고 안쓰러움 한 방울을 흘려보냈다.

“아빠는 괜찮아?”


여느 직장인의 삶처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를 서성인다. 그날이 그러했다. 마음은 버스정류장을 향해 내달렸지만 당장 내일의 급한 업무가 발걸음을 막아 세웠다. 상사에게 알려야 했다. 지은 죄도 없는데 누가 엿듣기라도 할 듯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오늘 아침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마지막 마디를 들었을까? 속삭임은 마지막 낱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주의를 쏟지 않으면 읽지 못할 말 모양이었다. 죽음을 알리는 행위가 낯설기도, 담담하게 이야기할 단단함도 없기에 그저 소곤거릴 뿐이었다.


저녁 한 술을 뜨지 못했다. 오래오래 알알이 씹어 넘겼지만 위는 거칠게 밀어냈다. 천장이, 들어찬 가구들이 빙그르 돌았다. 손을 뻗어 타이레놀을 털어 넣었다. 삼십 분이면 금세 가라앉던 통증이 덩치를 키웠다. 병원에 가봐야 할까. 벌써 문 닫았겠다. 응급실이라도 갈까. 텁텁한 체기에 마냥 눕고 싶었다. 뜬 눈으로 방안을 훑는다. 긴긴밤이었다.




탁한 연기가 장례식장을 메운다. 끊임없이 피우는 향과 초는 조문객의 날숨과 함께 빈소를 돌고 나온다. 가는 몸뚱아리를 태운 하이얀 냄새는 상주와 어머니를 잃은 가족들을 몽롱하게 만든다. 바쁘게 보내야 상실감을 잊을 수 있다기에 서둘러 몸을 놀린다. 향내에 취한 어지럼증은 차가운 유리문을 열고 나가게 한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할머니는 네모난 방에 들어가셨다. 내 나이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세월을 함께 한 사내 곁에서 또다시 오랜 시절을 울고 웃겠지. 딸들과 며느리들, 손녀들은 한 세기를 보낸 집에서 그녀의 이불과 옷가지, 아끼던 물건들을 꺼낸다. 새벽 우수수 떨리는 대기에 불길을 피워 인부들의 몸을 녹이던 자리로 간다. 불씨가 살아있다. 하나씩 까맣게 그을린다. 막내 고모가 바짓단을 털고 일어난다. 문득 엄마에게 말한다.

“우리 엄마 천국 가라고 기도했어? 안 했지? 노래 부르면서 기도해.”

당황할 법도 한데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막대기를 집는다. 그러더니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천국에서 만나리~”

옆에서 지켜보던 셋째 고모가 장단을 맞춘다.

“잘한다~”

누군가 보았으면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며느리가 신나서 노래하는 줄 알겠다.


불쏘시개 근처에 달래가 진을 치고 있다. 갑자기 달래 캐기에 돌입한다. 어느 정도 불길이 잡히자 엄마도 거든다. 아낙들은 팔을 걷어 부치고 봄을 딴다. 뒷짐 지고 서있던 막내 고모는 안 되겠는지 물러서라 신다.

“이건 호미로 되는 게 아니야.”

과수원을 일구던 손길은 거침없이 달래를 흙 무리에서 뽑아낸다.


곁을 지나던 옆집 아지매가 짜증을 부린다.

“불 저거 어떻게 할끼고! 돌이 다 꺼메졌다이가!”

길목을 표시하는 하얀 돌은 어느새 시커먼 옷을 입고 있었다. 불이 뿜은 검은 입김은 바로 하늘로 꽈리를 틀지 않고 제가 갖지 못한 순백의 돌덩이를 탐냈나 보다. 물동이를 길어와 끼얹는다. 그을음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한참을 수세미로 닦았지만 택도 없다. 전문가가 등판한다. 막내 고모가 흙을 퍼오더니 돌 위에 잔뜩 붓는다.

“원래 돌은 흙으로 닦아야 돼.”




장정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점심상에는 달래가 올랐다. 톡 쏘는 매운 향은 눈물보다 진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달래를 캐고, 노래를 부르고, 돌을 닦은 이야기를 전한다. 오빠는 황당하다는 듯 웃는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역시 달래된장찌개와 달래무침이다. 달래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연신 맛있다고 했다. 슬픔만이 가득할 줄 알았던 옛집에는 정겨움이 남았다.


매 순간의 이별은 참 아팠다. 짧디 짧은 인생에서 수많은 작별을 경험하는 우리네지만 화사한 봄 같은, 톡 쏘는 웃음이 흘러나오는 그런 헤어짐도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소답한 떠나보냄은 진한 달래된장국만큼이나 땅을 뚫고 나온 초록의 머리채만큼이나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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