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덜 몸을 터는 모터 소리에 발걸음이 분주하다. 장기 하우스를 떠난 밴은 십 분 거리에 위치한 선버드 하우스로 향한다. 선버드 하우스는 봉사활동 숙소 중 본채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그늘진 마당의 테이블은 이미 수다 삼매경으로 왁자지껄하다. 월요일에는 신규단원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풍성한 파마머리에 화려한 패턴이 그려진 빨간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참여자 모두에게 정성스레 악수를 청한다. 그녀는 리빙스턴 워크캠프의 책임자 레베카이다. 그간 메일과 전화로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던 지라 괜스레 반갑고 정이 간다. 프로그램 담당자 레베카와 케네디를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기소개는 서른 번을 훌쩍 넘는다.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화끈거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 내 이름은 지수야. 코리아에서 왔어. 물론 남쪽이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잠비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지원했어. 만나서 반가워.
뺨이 분홍빛으로 상기되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두근거림은 쉽사리 멎지 않아 다른 참여자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친다.
- 악수하듯 손을 잡으세요. 엄지를 건 상태에서 네 손가락으로 상대의 손등을 덮으세요. 운동선수들이 손을 맞잡듯이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서로를 끌어당겨 어깨를 부딪쳐요. 다 같이 해볼게요. 하나, 둘, 셋!
컨테이너 벨트가 돌아가듯 대열이 빙그르르 한 칸씩 옮겨간다. 삼 단계로 짜인 잠비아식 인사는 가까워진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의 간극을 유쾌하게 좁힌다. 오고 가는 눈빛과 번지는 미소와 따스운 말마디에 어색함이 녹아내린다. 국적도 나이도 하는 일도 동기도 다르지만 맞잡은 손은 우리를 한 팀으로 묶는다.
현장에서 갖추어야 할 복장과 예절, 규칙을 배운 후 고대하던 프로젝트 장소를 공개한다. 내가 근무할 곳은 ‘졸리 제미야 유치원’이다. 봉사활동 참여자들을 실은 밴은 선버드 하우스를 출발해 도시 곳곳을 누빈다. 리빙스턴은 바둑판처럼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교차로를 따라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니 동서남북을 못 가리겠다. 케네디는 지형지물을 가리키며 간결하게 설명한다.
- 저기 커다란 배출구 보이죠? 저기서 우회전이에요. 길 건너 학교 보이죠? 좌회전하세요.
좌회전, 우회전, 다시 우회전, 좌회전. 머리가 핑글핑글 돈다. 다들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순서를 외우거나 꼼꼼하게 기록한다. 리빙스턴은 스카이라인이 야트막하고 건물의 생김새가 비슷비슷하다. 그 골목이 그 골목 같은데 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온다. 오늘은 케네디가 안내하지만 내일부터는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근무지가 산발적으로 위치하다 보니 숙소에서 10분 거리부터 1시간 거리까지 다양하다. 나는 한 시간 당첨이다. 다행히 룸메이트 제시카와 같은 장소라 한 시름 덜었다.
화요일 새벽 여섯 시 알람이 울린다. 씻고 식사까지 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삐걱거리는 이 층 침대를 조심조심 내려온다. 아래층에는 스칼렛이 곤히 자고 있다. 끽끽 거리는 화장실 문을 살포시 닫고 수도꼭지를 돌린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잠비아는 열대 기후에 속하지만 지금 계절은 겨울이라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그런데 온수가 영 나올 기미가 없다. 찬물로 헹궈내듯 샤워하고 수건으로 급하게 감싼다. 오들오들 몸이 떨리면서 잠이 확 깬다. 젖은 머리를 말리려는데 헤어 드라이기가 먹통이다.
- 전기가 또 끊겼어.
스칼렛이 어깨를 으쓱한다. 아침부터 정전인가 보다. 충전기가 무색하게 핸드폰 배터리의 눈금이 제자리다. 리빙스턴에서 정전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어제도 저녁식사 중 갑자기 전등이 나가서 촛불을 켜야 했다. 아침 식탁에서는 안부인사로 물의 온도와 모기의 활약상을 묻는다.
- 온수 안 나오지?
- 응, 우리 방도.
- 어젯밤에 모기한테 엄청 뜯겼어. 귓가에서 계속 윙윙거리더라고.
- 우린 지수가 모기기피제를 가져와서 괜찮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 온 모기기피제가 제 몫을 톡톡히 해낸 모양이다. 리빙스턴은 모기 천국이다. 큰 강 덕분에 물이 많이 고여 모기가 서식하기에 좋다. 칠흑같이 어둠이 내린 지난밤과 한기 서린 새벽의 기억을 아침식사와 함께 꿀꺽 삼킨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가 한창인 자전거 가게와 과일상
리빙스턴은 흙빛 도시이다. 뿌연 먼지가 이는 황토색 토양과 땅의 색채를 닮은 건물들은 모래성을 연상하게 한다. 씩씩하게 황량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숨은 그림 찾기 마냥 동네를 배회한다. 워크캠프 최대 미션이 길 찾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주택가 사이로 간간히 차들이 지나친다. 벽 쪽으로 비켜서면 바짝 마른 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미세한 입자들이 느릿하게 착륙할 즈음 얕은 기침과 함께 신기루를 빠져나온다.
- 그때 케네디가 우회전이라고 하지 않았어?
- 구글 지도상으로는 두 블록까지 직진이야.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제시카와 머리를 맞대며 어느 방향이 맞는지 회의를 거듭한다. 샛길로 접어들자 도로 한복판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나이가 있다. 목이 늘어진 허연 민소매 차림으로 듣는 이가 없는데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토해내고 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빠르게 지나치는데 아뿔싸, 눈이 마주친다. 갑자기 손에 움켜쥐고 있던 물체를 나를 향해 던진다. 황급히 달리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몸을 맞고 떨어진다. 곡식 껍질 같기도 하고 과자 포장지 같기도 하다. 그의 처진 목덜미마냥 약하디 약하다. 광경을 목격한 젊은이가 우리를 안심시킨다.
- 괜찮아? 다음에는 쳐다보지 마.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지나가는 게 좋을 거야.
이후에도 여러 차례 출근길에서 그 사내를 만났다. 주의를 끌지 않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니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하는 서글픈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비통한 표정은 한동안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왔다.
예기치 않은 상황과 달리 리빙스턴의 아침은 평화롭다. 여덟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마람바 마켓은 장을 준비하는 손길로 분주하다. 숲처럼 빽빽이 들어선 야외시장에는 나무 기둥과 판자 지붕이 연리지처럼 이어져 있다. 연약해 보이는 토대 아래로 똑 닮은 색감의 나무 탁자와 평상이 자리한다. 재료가 담긴 바구니와 상자, 포대가 곳곳에 쌓여 있고 상인들은 자전거와 수레로 부지런히 물건을 나른다. 현지인들은 관광지도 아닌 곳을 이른 시간부터 방문한 이방인을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건 환영의 제스처도, 적대적인 몸짓도, 궁금증 어린 시선도 아니다.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를 발견한 듯하다. 길가의 아낙에게 웃으며 냔자어로 안부를 묻는다.
- Muli Bwanji? (무르 브완지, 안녕하세요?)
- Ndili Bwino. (니딜 비노, 안녕하세요.)
굳은 표정을 풀고 웃으며 답하는가 하면 낯선 이를 외면하기도 한다. 푸른 교복을 입은 사춘기 소녀들이 웃음을 머금은 채 속닥이다가 앞으로 뛰어가며 인사를 한다. 눈 맞춤이 부끄러운가 보다. 세 걸음 앞에서 어깨를 숙이며 반응을 엿본다. 큰 목소리로 화답하자 뒤돌아 손을 흔든다. 꼬마들은 우리를 Mzungu(므중구, 백인)라 부른다. 그들보다 비교적 피부색이 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인종의 구분은 우월성과 멸시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단순한 시각적 차이의 반영이다. 학생들의 등굣길을 뒤따르니 점차 각양각색의 교복이 등장한다. 고지가 눈앞이다. 유치원은 철문과 철조망으로 굳게 닫혀 있다. 견고한 문을 두드리자 지긋하게 나이 든 여인이 우리를 환대한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에 파란색 정장 재킷을 걸친 교장선생님이 악수를 청한다. 몸에 익을 정도로 연습한 잠비아식 인사를 선보이니 허리를 젖히며 웃는다. 자그마한 학교만큼 아담한 교실 앞에 멈춰 선다. 나무문을 밀자 스물네 명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품속으로 달려든다. 반가워, 너희를 만나러 지구 저 건너에서 왔어!